時
에 이 爲相
하여 內結
注+守澄, 宦官之用事者.하니 勢傾朝野
러니 惟
이 每承顧問
에 嘗排抑之
하니
逢吉
이 患之而
이 待遇方厚
라 不能遠也
러니 會
이 이어늘
逢吉
이 薦紳宜在
라한대 上
이 以中丞
이 亦
이라하여 不疑而可之
하시다
會
로 爭<확인 chi="御史臺" key="201" kor="어사대" 비고="대만 태그로">臺參확인>
이러니 逢吉
이 奏二人
이 不恊
이라하여 한대
愈‧紳
이 入謝
어늘 上
이 各令自叙其事
하시고 乃深
하사 하시다
20-13-가
목종穆宗 때
이봉길李逢吉이 재상이 되어 안으로
추밀사 왕수징樞密使 王守澄과 결탁하니
注+왕수징王守澄은 환관 중에 권력을 전횡한 자이다. 그 권세가
조야朝野를 뒤흔들었다. 오직
한림학사 이신翰林學士 李紳이 매번 목종의
고문顧問을 받들 때마다 항상 그를 배척하고 억누르니,
이봉길이 이를 골칫거리로 여겼지만 목종의 〈이신에 대한〉 대우가 한창 두터울 때라 멀리 내쫓을 수가 없었다. 마침 어사중승御史中丞의 자리가 비었는데
이봉길이 이신을 추천하여 기강을 바로잡는 자리에 두어야 한다고 하자, 목종은 어사중승 역시 차대관次對官이라 하여 의심하지 않고 이를 윤허하였다.
韓愈 그 당시
이신李紳은
경조윤 한유京兆尹 韓愈와
어사대御史臺의
참알參謁 문제로 다투었는데,
이봉길李逢吉이
목종穆宗에게 두 사람이 불화한다고 아뢰어, 목종은 한유를
병부시랑兵部侍郞에 임명하고
이신李紳을
강서관찰사江西觀察使에 임명하였다.
한유와 이신이 사은하러 들어오자 목종은 각각 그 일을 직접 말하도록 하였다. 목종은 마침내 깊이 깨닫고 다시 한유를 이부시랑吏部侍郞에 임명하고 이신을 병부시랑에 임명하였다.
경종敬宗이 즉위하자 이봉길은 또 이신이 앞으로 경종에게 해로울 것이라고 무고하였다. 그리하여 이신은 단주사마端州司馬로 좌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