河內人李好德
이 坐妖言下獄
이어늘 大理丞
가 以爲 好德
이 病狂瞀
하니 法不當坐
니이다
治書侍御史
가 이라한대 太宗
이 怒
하여 遽斬蘊古
하시고
久之
요 謂群臣曰 死者
가 不可更生
이니 決囚
를 雖
覆奏而頃刻之間
에 何暇思慮
리오
自今宜二日五覆奏
하고 決日
에 이 勿進酒肉
하고 이 輟敎習
하고
諸州死罪를 三覆奏하고 其日에 亦蔬食하여 務合禮撤樂减膳之意하라
太宗이 以英武定天下하시나 然其天姿가 仁恕하여 初卽位에 有勸以威刑肅天下者어늘
魏徵이 以爲不可라하여 因爲上言王政이 本於仁恩하니 所以愛民厚俗之意라한대
太宗이 欣然納之하사 遂以寬仁治天下而於刑法에 尤愼하시니 四年에 天下斷死罪二十九人이러라
六年에 親錄囚徒하사 閔死罪者三百九十人하사 縱之還家하시고 期以明年秋卽刑하시니
及期하여 囚皆詣朝堂無後者어늘 太宗이 嘉其誠信하사 悉原之하시다
25-12-가
하내河內 사람 이호덕李好德이 요언妖言을 한 죄를 지어 하옥되었는데, 대리승 장온고大理丞 張蘊古가 말하기를 “이호덕은 정신착란증을 앓고 있으니 법에 따르면 죄를 처벌해서는 안 됩니다.”라고 하였다.
치서시어사 권만기治書侍御史 權萬紀는 장온고가 사실대로 상주하지 않았다고 탄핵하자, 태종太宗이 노하여 대번에 장온고를 참형에 처하였다.
얼마 안 되어 크게 후회하고서 이어 조서를 내려 사형을 비록 즉시 처결하도록 하더라도 모두 두 차례 복주覆奏하도록 하였다.
꽤 세월이 지나 신하들에게 일렀다. “죽은 사람은 다시 살아날 수 없다. 사형으로 처결한 죄수를 비록 두 차례 복주한다고 하더라도 아주 짧은 시간 동안에 어찌 깊이 생각할 겨를이 있겠는가.
지금부터는 2일 동안 다섯 차례 복주하고, 처형하는 당일에 상식국尙食局은 술과 고기를 올리지 말고, 교방敎坊과 태상시太常寺는 교습을 그치고,
각 주州는 사형으로 처결한 죄수를 세 차례 복주하고 처형하는 당일에는 마찬가지로 소사蔬食를 먹어 음악을 거두고 음식 가짓수를 줄인 예禮의 뜻에 부합하도록 힘쓰라.”
당 태종唐 太宗이 영준함과 용맹함으로 천하를 평정하였지만 그 타고난 자질이 인자하고 관대하였다. 그리하여 처음 즉위했을 때 엄혹한 형벌을 써서 천하를 숙청肅淸하라고 권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위징魏徵이 불가하다고 하고서 이어 태종을 위해 왕도정치는 인자함과 은덕에 바탕을 두니 백성을 사랑하고 풍속을 순후하게 하는 뜻이라고 말하였다.
태종이 기뻐하며 이를 받아들여 마침내 관대함과 인자함으로 천하를 다스리고 형벌과 법률에 있어서 더욱 신중히 하였다. 정관貞觀 4년(630)에는 전국에 사형에 해당하는 죄로 처결한 것이 29인뿐이었다.
정관 6년(632)에는 직접 죄수의 죄안罪案를 검토하고서 사형에 해당하는 죄를 지은 사람 390인을 가엾게 여겨 이들을 풀어주어 집으로 돌려보내고 다음해 가을에 나아와 형벌을 받도록 약속을 정하였다.
기한이 되자 죄수들이 모두 조당朝堂에 나아왔는데 늦은 자가 없었다. 그러자 태종이 그들이 성실하게 약속을 지킨 것을 훌륭하게 여겨 모두 용서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