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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3)

대학연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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安祿山 專制三道하여 陰蓄異志 殆將十年이로되 以上待之厚 欲待上晏駕然後 作亂이러니
會楊國忠 與祿山不相悅하여 屢言祿山 且反이라한대 不聽이어시늘 國忠 數以事激之하여 欲其速反하여 以取信於上하니
祿山 由是 決意遂反하여 發所部兵十五萬衆하여 以討國忠爲名이어늘 召宰相謀之하신대 國忠 揚揚有色曰
不過旬日 必傳首詣行在하리이다 以爲然하시니 大臣 相顧失色하더라


19-22-가
안녹산安祿山이 3를 전담하여 절제하여 몰래 모반하려는 뜻을 키운 지가 거의 10년이나 되었지만 현종이 그를 후대하였기 때문에 현종이 붕어하기를 기다렸다가 그 뒤에 반란을 일으키고자 하였다.
마침 양국충楊國忠이 안녹산과 사이가 좋지 않아서 안녹산이 장차 반란을 일으킬 것이라고 여러 차례 말하였으나 현종은 따르지 않았다. 그러자 양국충은 자주 일을 벌여 안녹산을 격노시켜 안녹산이 빨리 반란을 일으키도록 해서 현종에게 신뢰를 얻고자 하였다.
안녹산이 이로 말미암아 뜻을 정하고 마침내 반란을 일으켰다. 그리하여 휘하의 15만 군사를 동원하여 양국충 토벌을 명분으로 삼았다. 그러자 현종이 재상들을 불러 대책을 논의하자 양국충이 매우 득의양양하여 말하였다.
“지금 반란을 일으킨 자는 오직 안녹산뿐이고, 장수와 군사는 모두 반란을 원하지 않으니 열흘이 못 되어 반드시 안녹산의 수급이 행재소에 이를 것입니다.” 현종이 그렇게 생각했다. 대신들이 서로 돌아보며 아연실색하였다.


역주
역주1 19-22-가 : 《資治通鑑》 卷217 〈唐紀33 玄宗 下之下〉 天寶 14년(755) 10월 경인, 11월 庚午 조에 보인다.
역주2 : 대전본‧사고본에는 ‘德’으로 되어 있다. 통행본 《자치통감》에도 德으로 되어 있다.
역주3 今反……欲也 : 처음에 안녹산은 孔目官 太僕丞 嚴莊, 掌書記 屯田員外郞 高尙, 將軍 阿史那承慶 등하고만 반란에 대해 밀모하였고 다른 이들은 이를 몰랐다. 天寶 14년(755) 10월에 범양도의 奏事官이 경사에서 돌아오자 가짜 密旨를 만들어 諸將들을 소집하여 보여주면서 출병하여 楊國忠을 토벌하겠다고 선언하니, 제장이 모두 놀랐지만 감히 다른 말을 하지 못했다. 이리하여 11월 갑자일에 部兵 및 同羅, 奚, 契丹, 室韋의 군병 총 15만 명을 동원하고 20만이라고 일컬으며 범양에서 거병하였다.

대학연의(3) 책은 2021.01.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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