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
에 郞
이 爲人
이 美麗自喜
러니 帝
가 召與語
하시고 拜爲黃門郞
하시니
繇是始幸하여 出則參乘하고 入御左右하니 旬月間에 賞賜가 累鉅萬이요 貴震朝廷하더라
賢
이 性
이 柔和便辟
하여 善爲媚以自固
하여 每賜
에 不肯出
하고 常留中視醫藥
이라
하여 爲起大第
하니 木土之功
이 窮極技巧
하고 下至僮僕
히 亦受上賜
하고
及
禁兵
과 珍寶
가 其選物上第
는 盡在董氏
요 而
所服
은 迺其副也
러라
러니 라 雖爲
이나 常
하니 百官
이 因賢奏事
하더라
커시늘 하신대 卽日自殺
하고 家屬
을 徙合浦
하고 縣官
이 斥賣董氏財
하니 凡四十三
이러라
24-3-가
斷袖:침상에서 누워 자는 董賢을 깨우지 않으려 자신의 소매를 자르는 漢 哀帝 한 애제漢 哀帝 때
낭관 동현郞官 董賢은 외모가 수려하여 저절로 호감을 샀는데, 애제가 그를 불러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황문랑黃門郞으로 임명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동현이 비로소 총애를 받아 출행할 때에는 황제가 타는 수레에 같이 타고 들어와서는 애제를 곁에서 모시니, 한 달도 되지 않은 사이에 상으로 하사받은 것이 수백만 전錢이나 되었으며 존귀함이 조정을 진동시켰다.
동현은 성품이 유순하고 남의 비위를 잘 맞추어 아첨을 잘함으로써 자신의 지위를 공고히 하였다. 그리하여 애제가 휴가를 내릴 때마다 동현이 궁 밖으로 나가려고 하지 않고 늘 궁중에 머무르며 의약을 살폈다.
애제가 장작대장將作大匠에게 조서詔書를 내려 동현을 위해 큰 저택을 지어주니 토목공사에 기교를 극도로 다하였으며, 아래로 동현의 동복僮僕들에 이르기까지 역시 애제의 하사품을 받았다.
그리고 무고武庫에 있던 황제의 전용 무기와 궁중의 진귀한 보물에 이르기까지 선택된 물건 중 최상급의 것은 모두 동씨董氏 일가에 있었으며, 황제가 사용하는 기물들은 바로 그 다음 등급의 것이었다.
또 동현을 고안후高安侯로 봉하였는데, 후에 또 대사마大司馬‧위장군衛將軍으로 임명하니 이때 동현의 나이가 22세였다. 동현이 비록 삼공三公이 되었으나 늘 궁중에서 사무를 처리하며 상서尙書의 업무를 총괄하니 백관들이 동현을 통하여 나랏일을 상주하였다.
애제가 붕어하자 태후가 책서冊書를 내려 동현을 파면하였는데, 동현이 그날로 자살하고 그의 가속家屬들을 합포合浦로 강제 이주시켰으며 관부官府에서 동씨 일가의 재산을 내어다 매각하니 총 43만 전錢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