原注
11-5-나5(按)
[臣按] 中과 和를 미루어 지극히 하면 天地가 제자리를 편안히 하고 萬物이 잘 길러진다는 것은 바로 天地와 대등하게 셋으로 병립하고 化育을 돕는 일이니 어렵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힘을 쓰는 방법을 궁구해보면 ‘敬’에 지나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때에 경계하고 삼가고 두려워하고 조심하는 것이 敬이고, 자기 혼자만 알고 남은 아직 알지 못하는 때에 삼가기를 지극히 하는 것도 敬입니다.
아직 발현하지 않아 고요할 때 공경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 바로 中을 지극히 하는 것이고, 발현하여 동하는 때 공경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 바로 和를 지극히 하는 것입니다.
임금은 단지 하나의 敬을 마땅히 삼가고 지켜서 고요할 때에 이것을 가지고 함양하고 동하는 때에 이것을 가지고 성찰하여, 이것으로 天理를 보존하며 이것으로 人欲을 막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공부가 지극한 경지에 이르는 것이 바로 이른바 ‘中을 지극히 하는 것[致中]’과 ‘和를 지극히 하는 것[致和]’입니다. 이렇게 되면 저절로 天地가 제자리를 편안히 하고 萬物이 잘 길러지게 됩니다. 이를테면 箕子의 〈洪範〉에서 “엄정함[肅]‧조리 있음[乂]‧지혜로움[哲]‧법도 있음[謀]‧통달함[聖]에 비오는 것[雨]‧햇볕이 나는 것[暘]‧더운 것[燠]‧추운 것[寒]‧바람이 부는 것[風]이 응한다.[肅乂哲謀聖而雨暘燠寒風應之]”라고 말하고,
董仲舒가 “임금이 마음을 바르게 하여 조정과 백관과 만민을 바르게 하면 음양이 조화롭고 비와 바람이 때에 맞아 모든 복된 물건이 다 이르지 않는 것이 없다.[人君正心以正朝廷‧正百官‧正萬民 則陰陽和風雨時 諸福之物 莫不畢至]”라고 한 것이 모두 이 이치입니다.
바라옵건대 聖上께서는 깊이 체득하고 힘써 행하여 그 어려움을 꺼려서 행하지 않아서는 안 되니, 그렇게 하신다면 천하 만백성의 다행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