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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3)

대학연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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旣尊重 欲以女配帝爲皇后하여 以固其權하여 奏言
17-9-가
왕망은 지위가 높아지고 권력이 커지자 딸을 황제의 배필로 삼아 황후가 되게 하여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고자 다음과 같이 아뢰었다.
未建하니 請考論五經하여 定娶禮하여 하여 以廣繼嗣호대 博采 列侯在長安者適子女注+適, 讀曰嫡, 謂妻所生也.하소서
“長秋宮(皇后)이 아직 세워지지 않았으니, 五經을 상고해 아내를 맞이하는 禮를 제정하여 열두 여인에게 장가드는 원칙을 바로 세움으로써 후사를 널리 두되, 殷나라와 周나라의 후예 및 周公‧孔子의 적통 후손과 長安에 있는 列侯의 적통 자녀注+適은 ‘嫡(적)’으로 읽으니, 妻의 소생을 말한다. 중에서 널리 선발하소서.”
事下 有司 上衆女名하니 王氏女 選中者어늘 恐其與己女하여 卽上言 身無德하고 子材下하니 不宜與衆女並采니이다
이 사안이 하달되자 有司가 뭇 여인들의 이름을 올렸는데 王氏의 여인들이 선발 대상에 많이 들어갔다. 왕망은 자기의 딸과 경쟁할까 두려워하여 곧바로 다음과 같이 上言하였다. “제 자신은 덕이 없고 제 여식은 자질이 못났으니 뭇 여인들과 함께 선발해서는 안 됩니다.”
太后 以爲至誠이라하여 乃下詔호대 王氏女 朕之外家 其勿采하라 庶民‧諸生‧郞吏以上 守闕上書하고
태후는 이를 지극히 진실하다고 여겨 이에 다음과 같이 조서를 내렸다. “왕씨의 여인은 짐의 친정이니 선발하지 말라.” 庶民‧諸生과 郎吏 이상의 관리들이 대궐 문 앞에 버티고서 上書를 하고,
及公卿大夫 咸言 安漢公盛勳堂堂 如此하니 今當立后하여 奈何廢公女리오 願得公女爲天下母하노이다
公卿大夫에 이르러서는 모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安漢公의 위대한 勳業이 이처럼 성대한데, 지금 황후를 세울 때에 어떻게 안한공의 딸을 내버려둘 수 있습니까. 안한공의 딸이 천하의 국모가 되기를 원합니다.”
以下하여 分部曉而上書者 愈甚이어늘 太后 不得已하여 聽采莽女하신대
왕망이 長史 이하의 관리들을 파견하여 여러 곳으로 나누어 보내 그만두라고 曉諭하였으나, 상서를 하는 자가 갈수록 많아지자 태후가 마지못하여 왕망의 딸을 선발하도록 허락하였다.
復自白宜博選衆女니이다 公卿 爭不宜采諸女하여 以貳正統이라하여늘 莽女 遂立爲后하다
왕망이 다시 직접 아뢰었다. “뭇 여인들을 널리 선발해야 합니다.” 공경들이 다음과 같이 쟁집하였다. “뭇 여인들을 선발하여 嫡統을 어지럽혀서는 안 됩니다.” 왕망의 딸이 마침내 황후로 책립되었다.
그 후에 또 伊尹과 周公의 칭호를 따 왕망에게 ‘宰衡’이라는 칭호를 더하고 上公의 지위를 주었다.
역주
역주1 17-9-가 : 관련 내용이 《前漢書》 卷99上 〈王莽傳〉, 《資治通鑑》 卷35 〈漢紀27 平帝 上〉 元始 2년(2) 기사에 보인다. 이해에 왕망은 자신의 딸을 황후로 만들어 자신의 권력을 공고하게 하려고 하였다. 이에 平帝가 즉위한 지 3년째가 되도록 황후와 媵妾들이 없다는 이유로 여인들을 널리 채택하라고 상주하면서 짐짓 자신의 딸은 채택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왕망의 딸을 황후로 맞이하라고 청원하자 왕망은 자신의 딸을 만나보라고 하였다. 이듬해인 원시 3년(3) 봄에 태후가 長樂宮 少府 夏侯藩 등을 파견하여 納采를 하면서 왕망의 딸을 보게 하였는데 이들은 돌아와 태후에게 왕망의 딸을 칭찬하였다. 마침내 원시 4년(4) 4월에 왕망의 딸이 황후가 되었다.
역주2 長秋宮 : 顔師古에 따르면, 秋는 수확하여 완성하는 때이며 長은 恒久의 의미이므로 이를 가지고 皇后宮의 이름으로 삼은 것이다. 여기에서는 황후를 가리킨다. 《前漢書 卷19上 百官公卿表》
역주3 正十二女之義 : 何休에 따르면 “오로지 천자만이 열두 여인에게 장가든다.[唯天子娶十二女]”라고 하였으며, 蔡邕의 《獨斷》에 따르면 “천자가 열두 여인에게 장가드는 것은 하나라 때의 제도이다.[天子取十二夏制也]”라고 하였다. 《春秋公羊傳注疏 成公 10年 何休注》 《獨斷 卷上》
역주4 二王……子世 : 明나라 때 嚴衍에 따르면, 二王後는 殷나라와 周나라의 후예이며, 周公孔子世는 주공과 공자의 후대 嫡子로 이어져 내려온 사람이다. 《資治通鑑補 卷36 漢紀28》
역주5 多在 : 대전본에는 ‘在多’로 되어 있다. 통행본 《전한서》에는 ‘多在’로 되어 있다.
역주6 : 대전본에는 ‘事’로 되어 있다. 통행본 《전한서》에는 ‘爭’으로 되어 있다.
역주7 長史 : 掾史들의 우두머리로서, 三公과 將軍府에 모두 이 직책을 두었다. 연사는 屬官의 범칭으로, 掾은 正職을 史는 副職을 가리킨다. 《漢書辭典 長史, 掾史》
역주8 : 대전본에는 ‘正’으로 되어 있으나 오자이다.
역주9 : 대전본‧사고본에는 없다.
역주10 又采……宰衡 : 伊尹의 이름은 阿衡이고 周公의 벼슬은 冢宰였다. ‘宰衡’은 이 두 가지에서 한 자씩을 따온 것이다. 《史記 卷3 殷本紀》 《資治通鑑補 卷36 漢紀28》

대학연의(3) 책은 2019.10.11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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