初
에 이 以才學有盛名
하여 久當樞要
러니 煬帝
가 卽位
에 道衡
이 上<확인 chi="高祖文皇帝頌" key="301" kor="고조문황제송" 비고="">高祖文皇帝頌확인>
한대
上
이 覽之不悅曰 道衡
이 致美先朝
하니 此
가 魚藻之義也
注+.라하고 將置之罪
러니
會議新令不決
이어늘 道衡
이 謂朝士曰 向使
不死
런들 令決當久行
注+熲者, 文帝賢相, 煬帝殺之.이라하여늘 有人
이 奏之
하니 帝
가 怒
하여 付執法者推之
한대
裴蘊이 奏호대 道衡이 負材恃舊하여 有無君之心하니 論其罪名컨대 似如隠昧어니와 原其情意컨대 深爲悖逆이로소이다
帝가 曰 公論其逆이 妙體本心이라하고 遂令自盡하니 天下가 寃之하더라
帝가 稱裴矩之能하여 謂群臣曰 裴矩가 大識朕意하여 凡所陳奏가 皆朕之成算이라
未發之頃
에 矩
가 輒以聞
하니 自非奉國盡心
이면 孰能
是
리오
是時
에 矩
가 與左翊衛大將軍
‧內史侍郞虞世基‧御史大夫裴蘊‧光祿大夫
으로 皆以諂諛
로 有寵
이러니
述이 善於供奉하여 容止便辟하니 侍衛者가 皆取則焉하더라
郭衍이 嘗勸帝五日一視朝曰 無效高祖의 空自勞苦하소서 帝가 益以爲忠曰 唯有郭衍이 心與朕同이라하더라
19-1-가3
당초에 내사시랑 설도형內史侍郞 薛道衡이 재능과 학문으로 명성이 드높아서 오랫동안 추요직樞要職을 맡았다. 양제煬帝가 즉위하자 설도형이 〈고조문황제송高祖文皇帝頌〉을 올렸는데,
양제가 이를 보고 불쾌해하면서 말하기를 “설도형이
선황제先皇帝를 지극히 찬미하니 여기에는 〈
어조魚藻〉의 뜻이 있다.”
注+‘어조魚藻’는 《시경詩經》 〈대아大雅〉의 편명篇名이니, 주 유왕周 幽王을 풍자하고 주 무왕周 武王을 그리워하는 내용이다. 라고 하였다. 장차 그를 죄에 걸려들게 하려고 하였다.
마침 새로운 법령을 논의하는데 결정이 나지 않자, 설도형이 조정의 관원들에게 말하기를 “가령
고경高熲이 죽지 않았다면 새로운 법령이 결정되어 시행된 지 오래일 것이다.”
注+‘고경高熲’이란 자는 수 문제隋 文帝의 현상賢相으로 양제煬帝가 그를 죽였다. 라고 하였다. 어떤 사람이 이를 아뢰자 양제가 노하여 사법 관원에게 회부하여 심문하게 하였다.
배온裴蘊이 아뢰기를 “설도형이 재주를 자부하고 선황제의 신임을 믿고서 군주를 무시하는 마음을 가졌으니 그의 죄명을 논해보면 죄상이 명확하지 않은 듯하지만 그의 본심을 따져보면 실로 패역을 행한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양제가 말하기를 “공이 그를 패역죄로 논죄한 것은 짐의 마음을 매우 잘 이해한 것이다.” 라고 하였다. 마침내 설도형에게 자진自盡하도록 명하니 천하 사람들이 원통하게 여겼다.
양제煬帝가 배구裴矩의 재간을 칭찬하여 신하들에게 말하였다. “배구裴矩는 짐의 뜻을 매우 잘 알아서 진언하고 상주하는 것 모두가 짐이 생각했던 것과 같다.
말을 꺼내기도 전에 배구가 그때마다 이를 아뢰니, 본래 나라를 받드는 데 마음을 다하는 자가 아니라면 누가 이처럼 할 수 있겠는가.”
이 당시에 배구가 좌익위대장군 우문술左翊衛大將軍 宇文述, 내사시랑 우세기內史侍郞 虞世基, 어사대부 배온御史大夫 裴蘊, 광록대부 곽연光祿大夫 郭衍과 더불어 모두 아첨으로 총애를 받았다.
우문술은 양제를 모시는 데 능하여 행동거지가 편벽하니, 양제를 시종하고 호위하는 자들이 모두 그를 본받았다.
곽연郭衍은 일찍이 양제에게 5일에 한 번만 조당에 나아가 정무를 볼 것을 권하면서 말하기를 “고조께서 공연히 스스로를 수고롭게 한 것을 본받지 마십시오.”라고 하니, 양제가 더욱 그가 충성스럽다고 생각하여 “오직 곽연郭衍만이 짐의 마음과 같다.”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