原注
方其少在東宮에 本以孝名하니 儻能勵純乾之德하고 絶柔道之牽하여
當輔國進言之時에 奮發威斷하여 明諭諸將하여 斥其離間父子之罪하여 執而戮之하고 命駕西宮하여 俯伏謝過하면
二帝가 懽然하여 和氣充塞하리니 彼爪牙之士는 不過爲輔國所迫耳라 人誰無父子之情이리오
若告戒明切이면 必將幡然悔悟니 孰肯舍仁孝之天子而從悖逆之內侍哉리오
帝乃泯然無所開曉하고 但有垂涕而已라 將士가 見帝不言하고 未必不謂實已心許而不欲形之於口라 此가 輔國之計가 所以得行也니이다
原注
7-10-나(按)
[臣按] 肅宗이 長安을 평정했을 때 상황이 蜀에서 도성으로 돌아와 말하기를 “짐이 50년 동안 태평성대를 누린 천자였지만 그때까지는 귀하지 않았었는데, 이제 천자의 아버지가 되었으니 이제야 귀하게 되었다.” 하셨는데,
이것이 元結의 〈大唐中興頌〉에서 이른바 “宗廟는 다시 편안해지고 두 聖皇은 다시 재회의 기쁨을 누리셨다.”라는 것입니다. 어찌 성대하지 않겠습니까.
다만 내시가 병권을 장악하여 망령되이 참언으로 이간하여 협박하고 유폐하는 모략이 나왔으니, 아마도 그렇게 된 까닭은 숙종이 우유부단하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張皇后와 이보국이 숙종을 겁박할 수 있었으니, 존귀한 천자로서 자신의 아버지를 보호하지 못하여 답답하고 근심하여 마침내 병이 들게 하였으니, 숙종의 죄가 이 점에 있어 하늘을 찌를 정도로 큽니다.
原注
숙종이 젊어서 동궁에 있었을 때에는 본래 효성스럽다는 명성이 있었으니, 만일 순수한 乾德을 면려하고 陰柔의 道에 이끌리는 것을 끊어버려서,
이보국이 진언할 때 발분하여 결단을 내려 장군들을 분명하게 깨우쳐 그가 부자간을 이간한 죄를 배척하여 잡아서 주륙하고 서궁으로 거둥하여 엎드려 잘못을 사죄할 수 있었다면,
두 황제가 기뻐하여 화목한 기운이 가득했을 것입니다. 저 무신들은 이보국에게 핍박받은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람이 누군들 부자의 정이 없겠습니까.
만약 명백하고 절실하게 일러주어 깨우쳤다면 반드시 단번에 뉘우쳤을 것이니, 누구인들 인자하고 효성스런 천자를 버리고 패역한 내시를 따르고자 했겠습니까.
황제가 마침내 전혀 깨우쳐 인도하지는 않고 단지 눈물만 흘렸기 때문에 將士들이 황제가 말하지 않는 것을 보고 반드시 실은 이미 마음속으로 허락했지만 입으로 말하지 않고자 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이는 이보국의 계책이 행해질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