原注
孟子가 將以攻其邪心이라 故直告之曰 王은 何必曰利잇고 亦有仁義而已矣라하시니
仁者는 本心之全德이요 義者는 當然之正理라 爲國者가 當躬行仁義於上而不可以利爲心이니
若王이 欲自利其國則大夫가 亦欲利其家하며 士庶人이 亦欲利其身하여
上下가 爭相求利면 國安得不危리오 蓋以仁義爲本이면 是는 導民於理也요 以利爲尙이면 是는 導民於欲也라
理明則尊卑上下之分이 定하고 不然則凡有血氣者가 皆思自足其欲하여 非盡攘上之所有면 不已也라
於是에 簒弑之事가 興하여 其害가 有不勝計者니 吁可畏哉인저
原注
26-1-나(안按)
[신안臣按] 맹자가 처음 양 혜왕을 만났을 때 혜왕이 먼저 나라를 이롭게 하는 방법으로 질문을 했습니다. 이는 춘추시대春秋時代부터 전국시대戰國時代에 이르기까지 전대前代의 훌륭한 군왕의 도道는 밝게 시행되지 않고 인심은 이욕利慾에 빠져들어 오직 이익이 있다는 것만 알 뿐이었기에,
맹자가 장차 이를 가지고 그 바르지 않은 마음을 다스리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일러주기를 “왕께서는 하필 이익을 말씀하십니까? 다만 인仁과 의義가 있을 뿐입니다.”라고 했던 것입니다.
인은 본심本心의 온전한 덕이고, 의는 마땅히 그래야 하는 올바른 이치입니다.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은 위에서 인과 의를 몸소 행해야지 이익을 얻겠다는 것을 마음으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만약 왕이 자신의 나라에 스스로 이익이 되게 하고자 한다면 대부가 또한 자신의 집안에 이익이 되게 하고자 하며 사士와 서인庶人이 자기 자신에 이익이 되게 하고자 하여,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앞다투어 서로 이익을 추구하면 나라가 어떻게 위태롭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대개 인과 의를 근본으로 삼으면 이는 백성을 이치로 인도하는 것이고, 이익을 최고의 목표로 삼으면 이는 백성을 욕망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이치가 밝아지면 존비尊卑와 상하上下의 구분이 정해집니다. 그렇지 않으면 무릇 생명을 가지고 있는 것은 모두 자신의 욕망을 스스로 충족시킬 것을 생각하여 윗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을 다 빼앗지 않으면 그치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찬탈하고 시해하는 일이 일어나서 그 해가 이루 셀 수 없으니 정말 두려워할 만합니다.
原注
대체로 어진 사람은 부모를 버리지 않으며 의로운 사람은 임금을 경시하지 않으니 억지로 그렇게 하도록 한 것이 아닙니다. 인은 사랑을 위주로 하니 사랑은 부모를 사랑하는 것보다 큰 것이 없고, 의는 마땅함이니 마땅함은 임금을 높이는 것보다 우선인 것이 없습니다.
온 세상 사람이 모두 인과 의를 따르면 자기 부모를 사랑하고 자기 임금을 높이지 않는 사람이 없을 것이니, 하夏‧은殷‧주 삼대周 三代의 성세盛世에 태평치세를 장구히 이어가면서도 후환이 없었던 이유입니다.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이 이를 버리고 장차 어디에서 구하겠습니까. 이 때문에 거듭하여 말하기를 “왕께서는 하필 이익을 말씀하십니까? 다만 인과 의가 있을 뿐입니다.”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대학大學》의 마지막 장에 천하를 태평하게 다스리는 것에 대해 논하여 “나라는 의를 이로움으로 여기고 이익을 이로움으로 여기지 않는다.”라고 하고서
이익을 추구하는 폐해를 확장시켜 말하여 “하늘이 내리는 재앙과 사람이 끼치는 해가 함께 이르는지라, 비록 잘하는 자가 있더라도 어찌할 수가 없을 것이다.”라고까지 하였습니다.
전대의 성인인 공자孔子와 후대의 현인인 맹자孟子가 이욕利慾의 물결을 돌리고 쟁탈의 틈을 막은 것이 마치 한 입에서 나온 것과 같으니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은 잘 살펴 도모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