八年
에 太后
가 崩
커늘 諸呂
가 欲爲亂
이러니 當是時
하여 趙王
‧梁王
이 將兵
하여 居
하니 太尉勃
이 不得入
主兵
이라
子
가 與呂祿善
이러니 絳侯
가 乃與丞相平
으로 謀
하여 使人劫酈商
하여 令其子寄
로 歸將印
하여 以兵屬太尉
하니
太尉
가 遂將北軍
하나 然尙有南軍
이러니 丞相平
이 乃召朱虛侯
佐太尉
하여 遂誅諸呂
하고 立文帝
하다
16-4-가
고후高后 8년(기원전 180)에 태후가 붕어하자 여씨들이 난을 일으키려고 하였다. 이 당시에 조왕 여록趙王 呂祿과 양왕 여산梁王 呂産이 군권을 맡아 남군南軍과 북군北軍을 장악하고 있었으므로, 태위 주발周勃은 군중軍中으로 들어가 군대를 지휘할 수 없었다.
역상酈商의 아들 역기酈寄가 여록과 사이가 좋았는데, 강후絳侯(주발)가 이에 승상 진평陳平과 모의하여 사람을 시켜서 역상을 겁박하여 그의 아들 역기로 하여금 거짓말로 여록을 설득해 장군의 인수印綬를 반납하여 군대를 태위에게 배속하도록 하였다.
태위가 마침내 북군을 통솔하였으나 아직도 남군이 남아 있었다. 승상 진평이 이에 주허후 유장朱虛侯 劉章을 불러 태위를 돕게 하여 마침내 여씨들을 주살하고 문제文帝를 옹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