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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4)

대학연의(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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使人諭注+贄時爲相.호대 往年攝政 有不臣之言注+晉卿, 肅‧代時宰相, . 粲, 其子也.하고 하니
今不欲明行斥逐하노니 兄弟 宜各降外官하라 奏曰 凡是譖愬之輩 多非信實之言이라
利於中傷하고 懼於公辯하여 或云歲月已久하니 不可究尋이라하며 或云事體有妨하니 須爲隱忍이라하며
或云惡跡未露하니 宜假他事爲名이라하며 或云但棄其人이라 何必明言責辱이리오하나니
詞皆近理 意實矯誣 傷善 莫斯爲甚이니이다


23-8-가
陸贄陸贄
덕종德宗이 사람을 보내 육지陸贄에게 다음과 같이 유시諭示하였다.注+육지陸贄는 당시 재상이었다.묘찬苗粲의 아비 묘진경苗晉卿이 예전에 임시로 정사를 주관할 때 신하로서 할 수 없는 말을 하였고注+묘진경苗晉卿숙종肅宗대종代宗 때의 재상으로, 숙종 조 말에 섭총재攝冢宰가 되었다. 묘찬苗粲묘진경苗晉卿의 아들이다. 아들들이 모두 옛 제왕의 이름과 같다.
지금 드러내놓고 내쫓고 싶지는 않으니 묘찬의 형제들을 각각 지방관으로 강등시키도록 하라.” 육지가 상주하여 말하였다. “무릇 참소하는 무리가 하는 말은 대부분 미덥고 진실한 말이 아닙니다.
남몰래 해치는 것을 이롭게 여기고 공개적으로 논의하는 것을 두려워하여, 혹은 ‘세월이 이미 오래 흘렀으니 끝까지 추적할 수 없다.’라고 하고, 혹은 ‘사체事體에 방해가 되니 눌러 참아야 한다.’라고 하며,
혹은 ‘악행의 형적이 드러나지 않았으니 다른 일을 빌려 명분으로 삼아야 한다.’라고 하고, 혹은 ‘다만 그 사람을 버릴 뿐이니 어찌 굳이 책망하고 모욕 주는 말을 드러내놓고 할 필요가 있겠는가.’라고 합니다.
말이 모두 그럴듯하지만 그 속뜻은 실로 명의名義를 빌려 무함하는 것입니다. 선인善人을 해치고 간계奸計를 꾸미는 것이 이보다 더 심한 것이 없습니다.”


역주
역주1 23-8-가 : 《資治通鑑》 卷234 〈唐紀50 德宗9〉 貞元 9년(793) 2월 조에 보인다.
역주2 德宗 : 20-5-가 ‘德宗’ 주석 참조.
역주3 陸贄 : 754~805. 당나라 때 유명한 정치가이자 문학가이다. 자는 敬輿이며 蘇州 嘉興 사람이다. 代宗 大曆 8년(773)에 進士가 되고 博學宏詞科에 합격하였다. 德宗이 즉위한 뒤 翰林學士가 되었다. 덕종 建中 4년(783)에 朱泚(주자)가 반란을 일으키자 덕종을 호종하여 奉天으로 갔는데, 그가 기초한 詔書에 武夫悍卒도 눈물을 흘리며 감동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주자의 반란은 20-8-가 ‘朱泚’ 주석 참조. 덕종 貞元 7년(791)에 兵部侍郞이 되었고, 이듬해에 中書侍郞‧同門下平章事가 되었다. 재상으로 있으면서 弊政을 진달하고 가혹한 세금을 폐지하였다. 정원 10년(794)에 戶部侍郞 裴延齡의 모함으로 재상에서 파면되었고 이듬해에 忠州別駕로 폄적되었다. 順宗 永貞 원년(805)에 임소에서 죽었다. 시문에 뛰어났으며 특히 制誥와 政論에 뛰어났다. 저술에 《陸宣公翰苑集》 등이 있다. 시호는 宣이다.
역주4 苗粲 : 생몰년은 자세하지 않다. 당나라 때의 대신으로, 潞州 壺關 사람이다. 苗晉卿의 아들이다. 玄宗, 肅宗, 代宗의 세 조정에 벼슬하였다.
역주5 晉卿 : 苗晉卿(675~765)이다. 당나라 때의 재상으로, 苗粲의 아버지이다. 進士에 급제하였으며, 侍御史, 兵部員外郞, 吏部郞中, 中書舍人, 吏部侍郞, 工部尙書, 憲部尙書 등을 역임하였다. 安史의 난이 일어나 長安이 함락되자 金州로 달아났다가 肅宗의 부름을 받고 鳳翔의 행재소로 가서 宰相이 되었다. 장안으로 돌아온 뒤 侍中에 임명되고 韓國公에 봉해졌다. 代宗 廣德 원년(763)에 太保로 致仕하였다. 病死하였다. 시호는 처음에 懿獻이었다가 뒤에 文貞으로 바뀌었다.
역주6 肅宗末攝冢宰 : 숙종 寶應 원년(762) 4월 5일 甲寅日에 玄宗(685~762)이 神龍殿에서 붕어하고 숙종이 병으로 드러눕자, 동년 4월 7일 丙辰日에 苗晉卿에게 攝冢宰를 명하였고, 숙종이 동년 4월 18일 丁卯日에 붕어하자 代宗이 동년 4월 20일 己巳日에 즉위하여 다시 한 번 묘진경에게 섭총재를 명하였다. 그러나 묘진경은 두 번 모두 표문을 올려서 간곡하게 이를 사양하여 모두 윤허를 받았다. 묘진경이 올린 두 편의 표문은 《구당서》에 실려 있다. 《資治通鑑 卷222 唐紀38 肅宗 下之下 寶應 元年》 《舊唐書 卷113 苗晉卿列傳》
역주7 諸子……同名 : 묘진경의 아들 열 명의 이름은 發, 丕, 堅, 粲, 垂, 向, 呂, 稷, 望, 咸이다. 여기에서는 이 가운데 發, 丕, 堅, 粲, 垂의 이름이 옛 제왕인 周 武王 姬發(기원전 1087~기원전 1043), 魏 文帝 曹丕(187~226)와 東晉 哀帝 司馬丕(341~365)와 前秦 哀平帝 苻丕(?~386), 前秦 宣昭帝 苻堅(338~385), 漢(前趙) 隱帝 劉粲(?~318), 後燕 成武帝 慕容垂(326~396)와 같은 것을 이른다.
역주8 : 대전본에는 ‘受’로 되어 있다.

대학연의(4) 책은 2021.01.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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