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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2)

대학연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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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注

朱熹 曰 誠之爲言 實而已矣 然此篇之中 有以理之實而言者하니 如曰之類 是也
有以心之實而言者하니 如曰之類 是也 讀者 各隨文意所指而尋之則其義 各得矣리라
原注
所謂誠者物之終始不誠無物者 以理言之則天地之理 至實而無一息之妄이라
故自古至今 無一物之不實而一物之中 自始至終 皆實理之所爲也
以心言之則聖人之心 亦至實而無一息之妄이라 故從生至死 無一事之不實而一事之中 自始至終 皆實心之所爲也
所謂誠者 物之終始者 然也
原注
苟未至於聖人而其本心之實 猶未免於間斷則其實有是心之初以至未有間斷之前 所爲 無不實者라가
及其間斷之後以至于未相接續之前 凡所云爲 皆無實之可言이니 雖有其事 亦不異於無有矣니라
則三月之間 所爲皆實而三月之後 未免於無實이니 蓋不違之終始事之終始也
則至此之時 所爲皆實而去此之後 未免於無實이니 蓋至焉之終始 卽其之終始也 是則所謂不誠無物者 然也니라
原注
以是言之則在天者 本無不實之理 故凡物之生於理者 必有是理라사 方有是物이니 未有無其理而徒有不實之物者也
在人者 或有不實之心이라 故凡物之出於心者 必有是心之實이라사 乃有是物之實이니
未有無其心之實而能有其物之實者也 程子所謂 蓋如此也니라


原注
12-4-나1(朱)
朱熹가 말하였다. “‘誠’이란 말은 진실하다는 뜻일 뿐이다. 그러나 《中庸》 가운데 이치의 진실함으로 말한 것이 있으니, 예를 들면 ‘성실함을 가릴 수 없다.[誠之不可揜]’와 같은 것이다.
마음의 진실함으로 말한 것이 있으니, 예를 들면 ‘자신에게 돌이켜보아 성실하지 못하다.[反諸身不誠]’와 같은 것이다. 읽는 자가 각각 글의 뜻이 가리키는 바를 따라서 탐구한다면 그 의미가 저마다 터득될 것이다.
原注
이른바 ‘성실함은 사물의 마침이며 시작이니, 성실하지 않으면 사물도 없게 된다.[誠者物之終始 不誠無物]’라는 것은, 이치로 말하면 천지의 이치가 지극히 진실하여 한 순간도 거짓이 없기 때문에
예로부터 지금까지 어느 한 사물도 진실하지 않은 것이 없어서 하나의 사물 속에도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진실한 이치가 행한 것이며,
마음으로 말하면 聖人의 마음이 또한 지극히 진실하여 한 순간도 거짓이 없기 때문에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어느 한 가지 일도 진실하지 않은 것이 없어서 하나의 일 중에도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진실한 마음이 행한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성실함은 사물의 마침이며 시작이다.[誠者物之終始]’라는 것이다.
原注
진실로 아직 聖人의 단계에 이르지 못하여 그 본심의 진실함이 여전히 중간 중간 끊어지는 것을 면치 못한다면, 실제로 이 마음을 처음 가졌을 때부터 중간 중간 끊어지기 전까지는 진실하지 않은 것이 없다가,
중간 중간 끊어지게 된 이후로 심지어는 서로 이어지지 않는 데 이르기 전까지는 모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모두 일컬을 만한 진실함이 없는 것이니, 비록 그 일은 있다 하더라도 있지 않는 것과 다름이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3개월 동안 仁을 떠나지 않았다.”라고 했다면, 3개월 동안에는 행하는 것이 모두 진실하지만 3개월이 지난 뒤에는 진실함이 없는 것을 면치 못한 것이니, ‘떠나지 않음[不違]’의 終始는 바로 그 일의 終始인 것이다.
“하루나 한 달에 한 번 이르렀다.”라고 했다면, 이에 이르렀을 때에는 행한 것이 모두 진실하지만 이를 떠난 뒤에는 진실함이 없는 것을 면치 못한 것이니, ‘이름[至焉]’의 終始는 바로 그 일의 終始인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성실하지 않으면 사물도 없게 된다.[不誠無物]’라는 것이다.
原注
이것을 가지고 말한다면, 하늘에 있는 것은 본래 진실하지 않은 이치는 없다. 그러므로 이 이치에서 나온 모든 사물은 반드시 이 이치가 있어야 이 사물이 있게 되니, 이 이치가 없는데도 단지 진실하지 않은 사물만 있는 것은 없다.
사람에게 있는 것은 혹 진실하지 않은 마음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이 마음에서 나온 모든 사물은 반드시 이 마음의 진실함이 있어야 이에 이 사물의 진실함이 있게 되니,
그 마음의 진실함이 없는데도 그 사물의 진실함이 있을 수 있는 것은 없다. 程子가 말한 ‘徹頭徹尾’라는 것은 아마도 이러한 뜻일 것이다.”


역주
역주1 12-4-나1(朱) : 《中庸或問》 卷下에 보인다.
역주2 誠之不可揜 : 《中庸》 제16장에 “은미한 것이 드러나니, 성실함을 가릴 수 없음이 이와 같도다.[夫微之顯 誠之不可揜 如此夫]”라는 내용이 보인다.
역주3 反諸身不誠 : 《中庸》 제16장에 “어버이에게 순한 것이 방법이 있으니, 자신에게 돌이켜보아 성실하지 못하면 어버이에게 순하지 못할 것이다.[順乎親有道 反諸身不誠 不順乎親矣]”라는 내용이 보인다.
역주4 : 509본‧512본에는 ‘이’로 되어 있다.
역주5 : 대전본‧사고본에는 없다.
역주6 : 대전본에는 ‘故’로 되어 있다.
역주7 三月不違 : 《論語》 〈雍也〉 제5장에 “顔回는 그 마음이 3개월 동안 仁을 떠나지 않았고, 그 나머지 사람들은 하루나 한 달에 한 번 仁에 이를 뿐이다.[回也 其心三月不違仁 其餘則日月至焉而已矣]”라는 내용이 보인다.
역주8 : 사고본에는 없다.
역주9 日月至焉 : 12-4-나1(朱) ‘三月不違’ 주석 참조.
역주10 : 사고본에는 ‘物’로 되어 있다.
역주11 徹頭徹尾 : 《二程遺書》 卷18에 “‘성실함’은 자연히 이루어지는 것이다. 예를 들면 지극한 성실함으로 부모를 섬기면 자식이 되고, 지극한 성실함으로 임금을 섬기면 신하가 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성실함이 없으면 사물도 없으니, 성실함은 사물의 마침이며 시작이다. 세상에서 말하는 ‘철두철미’라는 말과 같으니, 성실하지 않다면 또 무슨 사물이 있겠는가.[誠者自成 如至誠事親則成人子 至誠事君則成人臣 不誠無物 誠者物之終始 猶俗說徹頭徹尾 不誠更有甚物也]”라는 程頤의 말이 보인다. 朱熹는 ‘誠者自成’의 ‘自成’에 “‘성실함’은 자연히 이루어지는 이치이며 사람이 인위적으로 안배하는 것이 아니다.[誠者是箇自然成就底道理 不是人去做作安排底物事]”라고 해석하였다. 《朱子語類 卷64 第25章》

대학연의(2) 책은 2019.10.11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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