唐高宗
이 立
에 義府
가 遷
이러니 爲長孫無忌所惡
하여 奏斥壁州司馬
러니
詔未下에 義府가 問計於舍人王德儉하니 德儉者는 許敬宗의 甥이라 多智善揣事하더니
因曰 武昭儀가 方有寵이라 上이 欲立爲后호대 畏宰相議하사 未有以發之하시나니 君能建白하면 是轉禍爲福也라하여늘
義府
가 卽叩
上表
하여 請廢后立昭儀
한대 帝悅
하사 召見與語
하사 賜珠一斛
하시고 復侍
하다
武后
가 已立
에 義府與敬宗等
이 相推轂
하여 濟其姦詐
하여 棄骨肉大臣
이라 故后
가 得肆意
하여 攘取威柄
하니 天子
는 歛
矣
러시다
義府
가 貌柔恭
하여 與人言
에 嬉怡微笑而陰賊褊忌
가 著于心
注+著, 直略反, 謂其姦惡根著于心也.이라
凡忤意者
를 皆中傷之
하니 時號義府笑中刀
라하며 又以柔而害物
이라 號曰人猫
라하더니 未幾
에 拜
‧
注+唐宰相名也.하다
後에 又主選事하니 無品鑑才요 谿壑之欲이 惟賄是利라 母妻諸子가 賣官市獄하니 門如沸湯하더라
19-4-가
당 고종唐 高宗이 즉위하자 이의부李義府가 중서사인中書舍人으로 전직轉職되었다. 장손무기長孫無忌에게 미움을 받아서 장손무기가 그를 벽주사마壁州司馬로 폄척하도록 아뢰었다.
조명이 아직 내려지지 않았을 때, 이의부가 사인 왕덕검舍人 王德儉에게 방법을 물었다. 왕덕검은 허경종許敬宗의 생질로 꾀가 많고 사리파악에 능했다.
물음에 답하였다. “무소의武昭儀가 한창 총애를 받아서 황상께서 그녀를 세워서 황후로 삼고자 하는데, 재상들의 비판을 두려워하여 아직 이를 거론하지 못하고 계십니다. 군君이 건의할 수 있다면 이는 전화위복이 될 것입니다.”
이의부가 즉시 합문閤門을 두드려서 표문을 올려 왕황후를 폐출하고 무소의를 황후로 세우기를 청하자, 고종이 기뻐하여 그를 소견召見하고서 이야기를 나누고 진주珍珠 1섬을 하사하고 조정에 머물러두어 다시 입시하도록 하였다.
무후武后가 황후가 되자, 이의부李義府와 허경종許敬宗 등이 서로 협력하여 그 간교한 계략을 이루어 골육과 같은 대신을 축출하였다. 이 때문에 무후가 마음대로 하여 권력을 훔칠 수 있었으니 천자는 고분고분히 넘겨주었다.
이의부가 외양은 유순하고 공손하여 타인과 이야기할 적에 기쁜 낯빛으로 미소를 지었지만 음험하고 잔인하며 속 좁고 시기하는 생각이 마음속에 있었다.
注+‘착著’은 ‘치直’과 ‘약略’의 반절이니, 그 간악함이 마음에 뿌리내려 붙어 있음을 이른다.
자신의 뜻을 거스르는 자들을 모두 남몰래 해치니 당시 사람들이 이의부를 ‘
소중도笑中刀(웃음 속에 칼이 들었다.)’라고 불렀으며, 또 유순해 보이면서도 남을 해쳤기 때문에 ‘
인묘人猫(사람 고양이)’라고 불렀다. 얼마 안 되어
중서시랑中書侍郞‧
동중서문하삼품同中書門下三品에 임명되었다.
注+‘중서시랑中書侍郞‧동중서문하삼품同中書門下三品’은 당唐나라 때 재상宰相을 맡는 관직의 명칭이다.
뒤에 또 전선銓選하는 일을 주관하였는데 인재를 품평하는 재주는 없으면서 채울 수 없는 골짜기같이 깊은 탐욕은 오직 뇌물만을 이익으로 여겼기 때문에, 모친과 처와 자식들이 돈을 받고 관직을 팔거나 처벌을 면하게 해주니 그의 집 문 앞이 물 끓듯 시끌벅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