原注
12-11-나(按)
臣은 按 孟子此章은 敎人以善推其所爲也라 夫有所不忍하며 有所不爲者는 此心之正也니
能
是心而推之
하여 雖所忍者
라도 亦不忍
이 卽仁也
요 雖所爲者
라도 亦不爲
가 卽義也
라
如無欲害人이 此가 所謂不忍也니 私欲이 一動則不忍者를 有時而忍矣요
無欲穿窬가 此가 所謂不爲也니 私欲이 一動則不爲者를 有時而爲矣니
惟能卽是心而充之면 害人之事가 固所不欲이라 其未至於害人者도 亦皆不欲이니 仁其可勝用乎아
穿窬之事가 固所不爲라 其未至於穿窬者도 亦皆不爲니 義其可勝用乎아
爾汝
는 人所輕賤之稱
이라 知恥者之所不肯受
니 此
가 所謂
也
라 能自此充之則無所往而非義也
니라
原注
12-11-나(按)
[臣按] 《孟子》의 이 장은 사람들에게 그 행하는 바를 잘 미루어나갈 것을 가르친 것입니다. 무릇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이 있고 선뜻 하지 못하는 마음이 있는 것은 이 마음의 올바른 상태입니다.
능히 이 마음에 나아가 미루어서, 차마 할 수 있는 일이라 할지라도 차마 하지 못하는 것이 바로 仁이며, 선뜻 할 수 있는 일이라 할지라도 하지 않는 것이 바로 義입니다.
예를 들면 남을 해치는 일이 없고자 하는 것이 이른바 ‘차마 하지 못한다.[不忍]’는 것이니, 사욕이 한번 동하면 차마 하지 못했던 것을 차마 하게 되는 때가 있게 되며,
훔치는 일이 없고자 하는 것이 이른바 ‘선뜻 하지 않는다.[不爲]’는 것이니, 사욕이 한번 동하면 하지 않는 것을 할 때도 있게 됩니다.
능히 이 마음에 나아가서 확충하기만 한다면 남을 해치는 일은 본래 원하지 않았던 것이라 남을 해치는 데에까지 이르지 않은 것도 모두 원하지 않게 될 것이니, 仁을 이루 다 쓸 수 있겠습니까.
훔치는 일은 본래 하지 않았던 것이라 훔치는 일에까지 이르지 않은 것도 모두 하지 않게 될 것이니, 義를 이루 다 쓸 수 있겠습니까.
‘爾汝’는 사람들이 경멸하고 천시하는 호칭입니다. 부끄러움을 아는 자가 이러한 호칭을 받지 않으려는 것이 이른바 ‘부끄럽게 여기고 미워하는 마음[羞惡之心]’이라는 것입니다. 능히 여기에서부터 이를 확충해나간다면 무엇을 하든 義 아님이 없게 됩니다.
原注
무릇 사람의 본래 마음은 善하지 않은 것이 없으나 利欲이 이 마음을 빠트림으로 인해 그 본래 마음을 잃게 됩니다. 그러므로 차츰차츰 벗어나서 마침내는 不善에까지 흘러가게 됩니다.
이는 마치 백 보를 달아나는 것은 부끄러워할 줄 알지만 오십 보를 달아나는 것은 부끄럽다고 생각하지 않은 것과 같으니, 어찌 오십 보마저도 달아나는 일이 없는 것만 하겠습니까.
이는 마치 한 달에 한 번 닭을 훔치는 것은 부끄러워할 줄 알지만 일 년에 한 번 훔치는 것은 부끄럽다고 생각하지 않은 것과 같으니, 어찌 일 년에 한 번 훔치는 것마저도 하지 않는 것만 하겠습니까. 이를 안 연후에 맹자가 이 마음을 확충하라고 한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