原注
【臣按】 先儒 胡寅이 말하기를, “顯宗이 스승을 섬긴 뜻은 수백, 수천 년 동안에 견줄 사람이 드무니, 임금으로서 높은 경지라 할 수 있다.
桓榮이 경전을 전수한 것은 오로지 章句之學일 뿐, 자신을 수양하여 천하에 治世를 이룩하려 했던 孔子의 은미한 뜻은 몰랐다.
그러므로 현종의 덕과 업적이 이러한 정도에서 그쳤다.”라고 하였으니, 이 말이 옳습니다.
그러므로 西漢의 名儒 匡衡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性을 다스리는 방법은, 반드시 자신의 넉넉한 점을 살피고 자신의 부족한 점에 힘쓰는 것이다.
그러므로 총명하고 통달한 사람은 지나치게 살피는 것을 경계해야 하고, 견문이 부족한 사람은 꽉 막히는 것을 경계해야 하며, 용맹하고 굳센 사람은 지나치게 포악해지는 것을 경계해야 하고, 인자하고 온량한 사람은 결단력이 없는 것을 경계해야 하며, 침착하고 느긋한 사람은 때에 뒤쳐지는 것을 경계해야 하고, 마음이 넓고 호탕한 사람은 빠뜨리거나 잊어버리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그렇다면 현종과 같은 사람은 어찌 경계해야 할 것이 없겠습니까.
原注
옛 기록에 이르기를, 明帝는 성격이 편협하고 까다롭게 살펴서 염탐하여 비밀을 들추어내는 것을 가지고 명철하다고 생각하기를 좋아하여, 公卿大臣이 자주 무함을 당하고 近臣인 尙書 이하가 명제가 던진 물건에 맞고 끌려가기까지 하였다고 합니다.
명제는 일찍이 스승에게 《尙書》를 전수받았습니다.
《상서》에서 堯임금을 일컫기를 “允恭(진실로 공손하다)”이라 하였고, 舜임금을 일컫기를 “溫恭(온화하고 공손하였다)”이라 하였으며, 文王을 일컫기를 “徽柔懿恭(아름답고 유순하시며 훌륭하고 공손하였다)”이라 하였으니, 이는 모두 공손함을 귀하게 여긴 것입니다.
그리고 《상서》에 “御衆以寬(사람들을 관대함으로 다스렸다)”이라 하였고, 또 “寬綽厥心(그 마음을 너그럽고 여유롭게 가졌다)”이라 하였으니, 이는 또 관대함을 귀하게 여긴 것입니다.
명제는 공손함과 관대함에 대해 둘 다 잘못하여 남을 용납하는 도량이 없었는데 또 아랫사람을 대우하는 예까지 잃었으니, 그렇다면 또 어찌 학문을 귀하게 여겼겠습니까.
先儒가 말하기를, “책을 읽기 전이나 책을 읽고 난 다음이나 여전히 같은 사람이면 제대로 읽지 않은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아마도 顯宗을 두고 한 말인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