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大學衍義(2)

대학연의(2)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대학연의(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天下 有達尊이니 爵一‧齒一‧德一이니 朝廷 莫如爵이요 鄕黨 莫如齒이요 輔世長民 莫如德이니
惡得有其一하여 以慢其二哉리오 將大有爲之君 必有所不召之臣이라
欲有謀焉則就之하나니 其尊德樂道 不如是 不足有爲也니라
湯之於伊尹 學焉而後 臣之故 不勞而王하시고 桓公之於注+桓公, 齊君. 管仲, 齊相. 學焉而後 臣之故 不勞而覇注+先就學, 師之也, 後以爲臣, 任之也.하니라
今天下 地醜德齊注+醜, 類也.하여 莫能相尙 無他 好臣其所敎注+所敎, 謂聽從於己者.而不好臣其所受敎注+所受敎, 己之所從受者.니라
湯之於伊尹 桓公之於管仲 則不敢召하니 管仲 且猶不可召 而況不爲管仲者乎注+管仲, 伯者之佐, 猶不可召, 孟子, 學王道者也, 其可召乎?


10-13-가1
천하에 達尊이 세 가지가 있으니, 爵位가 하나요, 年齒가 하나요, 德이 하나이다. 조정에서는 작위만 한 것이 없고, 향당에서는 연치만 한 것이 없고, 세상을 돕고 백성을 기르는 데에는 덕만 한 것이 없으니,
어찌 그중 하나를 가지고 둘을 가진 이를 함부로 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장차 크게 훌륭한 일을 할 군주에게는 반드시 부르지 못하는 신하가 있었다.
그리하여 상의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찾아갔으니, 덕을 높이고 도를 즐거워함이 이와 같지 않으면, 그와 함께 훌륭한 일을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湯王은 伊尹에게 배운 뒤에 그를 신하로 삼았기 때문에 수고롭지 않고도 王者가 되었으며, 桓公은 管仲에게注+‘桓公’은 齊나라 임금이다. ‘管仲’은 齊나라 재상이다. 배운 뒤에 그를 신하로 삼았기 때문에 수고롭지 않고도 霸者가 된 것이다.注+먼저 찾아가 배우는 것은 스승으로 대한 것이고, 후에 신하로 삼은 것은 직임을 맡긴 것이다.
지금 천하에 제후국들이 영토가 비슷하고 덕이 같아서注+‘醜’는 ‘비슷하다’라는 뜻이다. 서로 더 우세한 나라가 없는 것은 다른 이유가 없다. 자신이 가르칠 사람을 신하로 삼기를 좋아하고注+‘所敎’는 자신의 말을 따르는 사람을 이른다. 자신이 가르침을 받아야 할 사람을 신하로 삼기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注+‘所受敎’는 자신이 배워야 할 사람이다.
湯王은 伊尹을, 桓公은 管仲을 감히 부르지 못하였다. 관중도 오히려 부르지 못했는데, 하물며 관중을 대단치 않게 여기는 사람에 있어서이겠는가.注+管仲은 霸者를 보필한 사람인데도 오히려 부르지 못했는데, 맹자는 王道를 배운 사람이니 어찌 부를 수 있겠는가.


역주
역주1 10-13-가1 : 《孟子》 〈公孫丑 下〉 제2장에 보인다. 10-4-가 참조.
역주2 : 대전본에는 ‘以’로 되어 있다. 통행본 《孟子》에는 ‘與’로 되어 있다.
역주3 管仲 : ?~기원전 645. 이름은 夷吾이며, 仲은 자로, 齊나라 潁上 사람이다. 처음에는 公子 糾를 섬겨 魯나라로 달아났다. 齊 襄公이 피살당하자 공자 규와 훗날 桓公이 되는 公子 小伯이 임금 자리를 두고 다투었는데, 결국 공자 규는 살해당하고 관중은 투옥되었다. 당시 관중의 지기인 鮑叔牙는 소백을 섬겼는데, 그의 추천으로 환공이 과거의 원한을 잊고 관중을 발탁하였으며 仲父로 불렸다. 제도를 개혁하고 부국강병을 도모하여 환공이 패자가 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다.
역주4 : 사고본에는 ‘敎’로 되어 있다.

대학연의(2) 책은 2019.10.11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22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