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尙書正義(1)

상서정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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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서정의(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시니라
이요 考也 能順考古道而行之者 帝堯니라
이요 敬也 言堯放上世之功하사 化而以敬明文思之四德으로 安天下之當安者이시니라
○放 徐云 鄭王
功也 馬云 放勳 堯名이라하고 皇甫謐同이며 一云 放勳 堯字
欽明文思 馬云 威儀表備 謂之欽이요 照臨四方 謂之明이요 經緯天地 謂之文이요 道德純備 謂之思
하사 被四表하고 格于上下니라
이요이요이요 至也
旣有四德하고 又信恭能讓이라
其名聞 充溢四外하고 至于天地니라
‘曰若’至‘上下’
○正義曰:史將述堯之美, 故爲題目之辭曰 “能順考校古道而行之者, 是帝堯也.”
又申其順考古道之事曰 “此帝堯能放效上世之功而施其敎化, 心意恒敬, 智慧甚明, 發擧則有文謀, 思慮則能通敏,
以此四德安天下之當安者.
在於己身則有此四德, 其於外接物, 又能信實‧恭勤‧善能‧謙讓.
恭則人不敢侮, 讓則人莫與爭, 由此爲下所服, 名譽著聞, 聖德美名, 充滿被溢於四方之外, 又至于上天下地.”
言其日月所照, 霜露所墜, 莫不聞其聲名, 被其恩澤. 此卽稽古之事也.
○傳‘若順’至‘帝堯’
○正義曰:‘若 順’, 釋言文.
詩稱“.” 洪範考卜之事, 謂之稽疑, 是稽爲考, 經傳常訓也.
爾雅一訓一也,
孔所以約文, 故數字俱訓, 其末以一也結之.
又已經訓者, 後傳多不重訓.
顯見可知, 則徑言其義, 皆務在省文故也.
言‘順考古道’者, 古人之道, 非無得失, 施之當時, 又有可否,
考其事之是非, 知其宜於今世, 乃順而行之.
言其行可否, 順是不順非也.
考古者自己之前, 無遠近之限,
但事有可取, 皆考而順之.
今古旣異時, 政必殊古, 事雖不得盡行, 又不可頓除古法,
故說命曰 “事不師古, 以克永世, 匪說攸聞.”
是後世爲治當師古法, 雖則聖人, 必須順古.
若空欲追遠, 不知考擇, 居今行古, 更致禍災.
故美其能順考也.
鄭玄信緯, 訓稽爲同, 訓古爲天, 言“能順天而行之, 與之同功.”
論語稱惟堯則天, 詩美文王順帝之則.
然則聖人之道, 莫不同天合德, 豈待同天之語, 然後得同之哉.
書爲世敎, 當因之人事,
以人繫天, 於義無取, 且古之爲天, 經無此訓.
, 皆以鄭爲長, 非篤論也.
○傳‘勳功’至‘安者’
○正義曰:‘勳 功’‧‘欽 敬’, 釋詁文.
此經述上稽古之事, 放效上世之功, 卽是考於古道也.
經言放勳, 放其功而已.
傳兼言化者, 據其勳業謂之功, 指其敎人則爲化, 功之與化所從言之異耳.
鄭玄云 “敬事節用謂之欽, 照臨四方謂之明, 經緯天地謂之文, 慮深通敏謂之思.” 孔無明說, 當與之同.
四者皆在身之德, 故謂之四德.
凡是臣人王者皆須安之, 故廣言“安天下之當安者.”
所安者則下文九族‧百姓‧萬邦是也.
其‘敬明文思’爲此次者, 顧氏云 “隨便而言, 無義例也.”
知者此先聰後明, 舜典云 “明四目, 達四聰.” 先明後聰,
故知無例也.
今考舜典云 “浚哲文明.” 又先文後明, 與此不類, 知顧氏爲得也.
○傳‘允信’至‘天地’
○正義曰:‘允 信’‧‘格 至’ 釋詁文.
‘克 能’‧‘光 充’ 釋言文.
在身爲德, 施之曰行.
鄭玄云 “不懈於位曰恭, 賢尙善曰讓.”
恭讓是施行之名.
上言堯德, 此言堯行,
故傳以文次言之. 言堯旣有敬明文思之四德, 又信實‧恭勤‧善能‧推讓.
下人愛其恭讓, 傳其德音,
故其名遠聞, 旁行則充溢四方, 上下則至于天地.
持身能恭, 與人能讓, 自己及物,
故先恭後讓.
恭言信, 讓言克, 交互其文耳. 皆言信實能爲也.
傳以溢解被, 言其饒多盈溢, 故被及之也.
表裏內外相對之言,
故以表爲外,
向上至有所限, 旁行四方無復限極,
故四表言被, 上下言至.
‘四外’者, 以其無限.
自內言之, 言其至於遠處, 正謂四方之外畔者, 當如爾雅所謂四海‧四荒之地也.
先四表後上下者, 人之聲名, 宜先及於人, 後被四表, 是人先知之,
故先言至人. 後言至于上下, 言至於天地, 喩其聲聞遠耳.
禮運稱聖人爲政, 能使‘天降膏露, 地出醴泉’.
是名聞遠達, 使天地效靈, 是亦格于上下之事.
能明俊德之士 任用之하여 以睦高祖玄孫之親이니라
○九族 上自高祖 下至玄孫 凡九族이니라
하니라
九族 旣睦이어늘 百姓하시니라
已也 이니라
言化九族而平和章明이니라
百姓 昭明하며 協和萬邦한대 黎民於變時雍하니라
昭亦明也
이요이요 和也 言天下衆民 皆變化하니 是以 風俗 大和니라
‘克明’至‘時雍’
○正義曰: 言堯能名聞廣遠, 由其委任賢哲, 故復陳之.
言堯之爲君也, 能尊明俊德之士, 使之助己施化, 以此賢臣之化, 先令親其九族之親, 九族蒙化已親睦矣.
又使之和協顯明於百官之族姓, 百姓蒙化, 皆有禮儀, 然而明顯矣.
又使之合會調和天下之萬國, 其萬國之衆人, 於是變化從上, 是以風俗大和.
能使九族敦睦, 百姓顯明, 萬邦和睦,
是‘安天下之當安’者也.
○傳‘能明’至‘之親’
○正義曰:鄭玄云 “俊德, 賢才兼人者.”
然則俊德, 謂有德.
‘能明俊德之士’者, 謂命爲大官, 賜之厚祿, 用其才智, 使之高顯也.
以其有德, 故任用之.
以此賢臣之化, 親睦高祖玄孫之親.
上至高祖, 下及玄孫, 是爲九族. 同出高曾, 皆當親之, 故言之親也.
禮記喪服小記云 “.”
‧夏侯‧歐陽等以爲 “九族者, 父族四‧母族三‧妻族二.” 皆據‘異姓有服’.
鄭玄駁云 “異姓之服, 不過緦麻, 言不廢昏.
又昏禮請期云 ‘惟是三族之不虞.’ 恐其廢昏, 明非外族也.” 是鄭與孔同.
‘九族’, 謂帝之九族, ‘百姓’, 謂百官族姓, ‘萬邦’, 謂天下衆民, 自內及外, 從高至卑, 以爲遠近之次也.
知九族非民之九族者, 以先親九族, 次及百姓, 百姓是群臣弟子, 不宜越百姓而先下民.
若是民之九族, 則九族旣睦, 民已和矣, 下句不當復言“協和萬邦.”
以此知帝之九族也.
堯不自親九族, 而待臣使之親者, 此言用臣法耳,
豈有聖人在上, 疏其骨肉者乎.
若以堯自能親, 不待臣化, 則化萬邦百姓, 堯豈不能化之, 而待臣化之也.
且言‘親九族’者, 非徒使帝親之, 亦使臣親之, 帝亦令其自相親愛, 故須臣子之化也.
○傳‘旣已’至‘章明’
○正義曰:‘旣’‧‘已’義同, 故訓旣爲已, 經傳之言.
‘百姓’, 或指天下百姓, 此下句乃有‘黎民’, 故知百姓卽百官也.
百官謂之百姓者, 隱八年左傳云 “天子建德, 因生以賜姓.”
謂建立有德以爲公卿, 因其所生之地而賜之以爲其姓, 令其收斂族親, 自爲宗主.
明王者, 任賢不任親,
故以百姓言之.
周官篇云 “唐‧虞稽古, 建官惟百.” 大禹謨云 “率百官若帝之初.”
是唐‧虞之世經文, 皆稱百官, 而禮記明堂位云 “有虞氏之官五十.” 後世所記不合經也.
‘平章’與‘百姓’, 其文非九族之事, 傳以此經之事文勢相因, 先化九族, 乃化百官, 故云 “化九族而平和章明.”
謂九族與百官皆須導之以德義, 平理之使之協和, 敎之以禮法, 章顯之使之明著.
○傳‘昭亦’至‘大和’
○正義曰:釋詁以昭爲光, 光‧明義同, 經已有明, 故云 “昭亦明也.”
釋詁以協爲和, 和‧合義同, 故訓協爲合也.
‘黎 衆’‧‘時 是’, 釋詁文.
‘雍 和’, 釋訓文.
堯民之變, 明其變惡從善, 人之所和, 惟風俗耳.
故知謂“天下衆人皆變化上, 是以風俗大和.” 人俗大和, 卽是太平之事也.
此上經三事相類, 古史交互立文.
以親言旣睦, 平章言昭明, 協和言時雍.
睦卽親也, 章卽明也, 雍卽和也, 各自變文以類相對.
平九族使之親, 平百姓使之明, 正謂使從順禮義, 恩情和合,
故於萬邦變言‘協和’, 明‘以親九族’‧‘平章百姓’, 亦是協和之也.
但九族宜相親睦, 百姓宜明禮義, 萬邦宜盡和協, 各因所宜爲文, 其實相通也.
民言‘於變’, 謂從上化, 則‘九族旣睦’‧‘百姓昭明’, 亦是變上,
故得睦得明也.


를 따라 상고하신 분은 제요帝堯이셨다.
은 따르다라는 뜻이고 는 상고하다라는 뜻이니, 능히 옛 를 따라 상고해서 행하신 분은 제요帝堯이셨음을 말한 것이다.
공훈功勳을 본받아 경의敬意명지明智문모文謀사려思慮로 편안해야 할 바를 편안하게 하셨다.
의 뜻이고 의 뜻이니, 임금께서 상세上世공훈功勳을 본받아 교화하되 경의敬意명지明智문모文謀사려思慮사덕四德을 가지고 천하의 응당 편안해야 할 바를 편안하도록 하셨다는 점을 말한 것이다.
자에 대하여 서씨徐氏는 “정현鄭玄왕숙王肅은 〈자를〉 여자如字(본음)로 보았다.”라고 하였다.
의 뜻인데, 마융馬融은 “‘방훈放勳’은 임금의 이름이다.”라고 하였고, 황보밀皇甫謐도 같은 뜻으로 보았으며, 어떤 사람은 “‘방훈放勳’은 임금의 이다.”라고 하였다.
흠명문사欽明文思’에 대하여 마융馬融은 “위의威儀가 드러나게 갖추어진 것을 이라 이르고, 사방四方을 밝게 살펴보는 것을 이라 이르고, 천하를 경륜하여 다스리는 것을 이라 이르고, 도덕道德이 순연하게 갖추어진 것을 라 이른다.”라고 하였다.
신실信實하고 공근恭勤하고 선능善能하고 겸양謙讓하시어 〈명성이〉 충만하여 사방의 밖에 넘치고 천지에 이르렀다.
신실信實하다라는 뜻이요, 하다라는 뜻이요, 은 충만하다라는 뜻이요, 은 이르다라는 뜻이다.
이미 사덕四德(敬意‧명지明智문모文謀사려思慮)을 가졌고 또 신실信實하고 공근恭勤하고 선능善能하고 겸양謙讓하셨다.
그러므로 그 명성이 사방의 밖에까지 충일充溢하고 천지天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의 [曰若]에서 [上下]까지
정의왈正義曰:사관史官은 장차 임금의 미덕美德을 기술하려고 하였기 때문에 제목題目의 말을 만들어서 “능히 옛 를 따라 상고해서 행하신 분은 바로 제요帝堯이셨다.”라고 하였다.
또 옛 를 따라 상고한 일을 거듭 밝히기를 “제요帝堯께서 능히 상세上世공훈功勳을 본받아 교화敎化를 베풀되, 심의心意는 항상 경건하시고, 지혜智慧는 심히 밝으시며, 발동하면 문모文謀가 있으시고, 사려思慮하면 능히 통민通敏하셨으니,
이와 같은 사덕四德을 가지고 천하天下의 응당 편안해야 할 바를 편안하게 하셨다.
그리고 자신에 있어서는 이와 같은 사덕四德을 가지시고, 밖으로 사물을 접함에 있어서는 또 능히 신실信實하시고 공근恭勤하시고 선능善能하시고 겸양謙讓하셨다.
공손하면 사람들이 감히 업신여기지 못하고, 겸양하면 사람들이 더불어 다투지 못하여 이로 말미암아 아랫사람들이 심복하게 되니, 명예名譽가 알려져서 성덕聖德미명美名이 충만하여 사방四方 밖에까지 넘치고, 또 위로는 하늘과 아래로는 땅에 이르렀다.”라고 하였다.
말하자면, 해와 달이 비치는 바와 서리와 이슬이 내리는 바에 그 명성名聲을 듣고 그 은택恩澤을 입지 않은 자가 없었다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고도古道를 상고하신 일이다.
의 [若順]에서 [帝堯]까지
정의왈正義曰:[若 順] 《이아爾雅》 〈석언釋言〉의 글이다.
시경詩經》에서 “점괘를 상고하신 무왕武王께서”라고 일컫고, 〈홍범洪範〉에서 점괘를 상고하는 일을 계의稽疑(의심스런 일이 있으면 점을 쳐서 상고함)라고 하였으니, 여기서 라 한 것은 경전經傳의 일반적인 풀이이다.
이아爾雅》에서는 한 글자 한 글자마다 각각 뜻풀이를 하였다.
그러나 공안국孔安國은 글을 생략했기 때문에 몇 글자를 한꺼번에 연달아 뜻풀이를 하고 말미에서 하나의 ‘’자를 가지고 끝을 맺었다.
또 이미 에서 뜻풀이를 한 것은 뒤의 에서 대부분 다시 뜻풀이를 하지 않았다.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곧바로 뜻풀이를 하였으니, 모두 글을 생략하는 데 힘썼기 때문이다.
[順考古道]고인古人라고 해서 득실得失이 없는 것이 아니고, 그 를 당시 시행할 적에 또한 가부可否가 있는 것이다.
그 일의 옳고 그름을 상고하고 그 가 지금 세상에 알맞은 것인가를 파악한 뒤에 그것을 따라서 행하였다.
그 가부를 봐서 행한다고 말한 것은 옳은 것은 따르고 그른 것은 따르지 않는 것이다.
옛일을 상고하는 것은 바로 자기 앞 세대의 일을 상고하는 것이고, 세대의 멀고 가까움에 한계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일에 취할 만한 것이 있으면 모두 상고해서 그것을 따랐을 뿐이다.
오늘날과 옛날은 이미 때가 다르고 오늘날의 정사는 반드시 옛날의 정사와 다르니, 일은 비록 다 행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또 옛 법을 모두 제거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상서尙書》 〈상서商書 열명說命〉에 “일에 있어 옛것을 본받지 않고도 오래 지속할 수 있다는 말은, 제가 들은 바가 아닙니다.”라고 하였다.
이는 후세에 정사를 함에 있어 응당 옛 법을 본받아야 하니, 비록 성인을 본받더라도 반드시 모름지기 옛 법을 따라야 할 것이다.
만일 공연히 먼 옛날 것을 추구하기만 하고 상고해서 선택할 줄 모르는 채로 오늘날에 있으면서 옛것을 행한다고 한다면 다시 재화災禍를 불러올 것이다.
양공襄公 같은 이는 의리를 사모하다가 군사가 패하고 몸이 상하였으며, 언왕偃王을 행하다가 나라가 망하고 집안이 멸망하였으니, 이것은 바로 옛 일을 상고하지 않은 과실이다.
그러므로 능히 순하게 상고한 것을 아름답게 여기는 것이다.
정현鄭玄위서緯書를 믿고는 의 뜻으로 보고 의 뜻으로 풀이하여 “능히 하늘을 따라 행하여 그와 더불어 공이 같았다.”라고 말하였다.
논어論語》에는 임금이 하늘을 본받은 것을 칭찬하였고, 《시경詩經》에는 문왕文王상제上帝의 법칙을 따른 것을 아름답게 여겼다.
그렇다면 성인聖人는 하늘과 같아서 을 합하지 않음이 없는데, 어찌 하늘과 같다는 말을 한 연후에 같을 수 있겠는가?
상서尙書》는 세상의 가르침이 되는 지침서이기 때문에 응당 사람의 일에 연관되어야 한다.
그러나 사람을 하늘에 잡아매기만 하고 뜻에 취함이 없으며 또 의 뜻으로 풀이하였으니, 에는 이러한 뜻풀이가 없다.
고귀향공高貴鄕公 등이 모두 정현鄭玄을 잘하였다고 여긴 것은 진실한 의논이 아니다.
의 [勳功]에서 [安者]까지
정의왈正義曰:[勳 功]‧[欽 敬] 《이아爾雅》 〈석고釋詁〉의 글이다.
에서 기술한 위로 옛일을 상고한다[稽古]는 것은 상세上世을 본받는 것이니, 곧 이것이 옛 를 상고하는 것이다.
에서 말한 방훈放勳은 그 을 본받을 뿐이다.
에서 ‘’를 겸해서 말한 것은 그 훈업勳業에 의거하면 이라 이르고, 그 사람을 가르침을 가리키면 ‘’가 되니, ‘’과 ‘’는 좇아서 말한 것이 다를 뿐이다.
정현鄭玄이 말하기를 “일을 경건히 하고 재용을 절약하는 것을 ‘’이라 이르고, 사방四方조림照臨하는 것을 ‘’이라 이르고, 천지天地경위經緯하는 것을 ‘’이라 이르고, 사려가 깊어 통민通敏한 것을 ‘’라 이른다.”라고 하였는데, 공안국孔安國이 이에 대해 밝게 설명한 것이 없으니, 당연히 정현鄭玄의 말과 같이 본 것이다.
이 네 가지는 모두 몸에 있는 이기 때문에 사덕四德이라고 이른 것이다.
무릇 신하나 임금이 모두 모름지기 편안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천하의 응당 편안해야 할 바를 편안하게 한다.”고 광범위하게 말한 것이다.
편안하게 할 대상은 아래의 글에 있는 구족九族, 백성百姓, 만방萬邦이 바로 그것이다.
가 이와 같은 차례로 된 것에 대해 고씨顧氏가 이르기를 “편리에 따라서 말한 것이지, 의례義例가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알 수 있는 것으로, 여기서는 을 먼저 하고 을 뒤에 하였지만, 〈순전舜典〉에서 이른 “사방의 눈을 밝히고 사방의 귀를 통달하게 했다.”는 데에서는 을 먼저하고 을 뒤에 하였다.
그러므로 의례義例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지금 〈순전舜典〉에서 이른 “깊고 명철하고 문채가 나고 밝았다.”란 것을 상고하면 또 을 먼저 하고 을 뒤에 한 것이 이와 같지 않으니, 고씨顧氏의 말이 맞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의 [允信]에서 [天地]까지
정의왈正義曰:[允 信]‧[格 至] 《이아爾雅》 〈석고釋詁〉의 글이다.
[克 能]‧[光 充] 《이아爾雅》 〈석언釋言〉의 글이다.
몸에 있으면 이라 하고, 시행하면 이라 이른다.
정현鄭玄이 이르기를 “직위에서 게으름을 부리지 않는 것을 이라 하고, 어진 이를 추앙하고 착한 사람을 숭상하는 것을 이라 한다.”라고 하였다.
은 바로 시행을 이르는 명칭이다.
위에서는 임금의 을 말하고, 여기서는 임금의 을 말하였다.
그러므로 에서 글의 차례를 가지고 말하였으니, 곧 임금은 이미 사덕四德을 가진데다가 또 신실信實하고 공근恭勤하고 선능善能하고 추양推讓했음을 말한 것이다.
이에 아랫사람들은 그 공양恭讓을 사랑하고, 그 덕음德音을 전하였다.
그러므로 그 명성이 멀리 들려서, 곁으로는 사방四方충일充溢하고 위아래로는 천지天地에 이르렀다.
몸가짐을 공손히 하고 남과 어울릴 때 겸양하여 자기로부터 사물에 미쳐갔다.
그러므로 을 먼저 하고 을 뒤에 한 것이다.
에는 을 말하고, 에는 을 말하였으나, 그 글을 상호 구성한 것일 뿐이니, 모두 신실하게 잘함을 말한 것이다.
에는 ‘’자를 가지고 ‘’자를 풀이하였는데, 충만하고 넘치기 때문에 파급할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표리表裏내외內外로 상대적인 말이다.
그러므로 를 ‘’로 삼은 것이다.
아래로 향해 가거나 위로 향해 가면 이르는 데에 한계점이 있지만, 곁으로 사방을 가면 한계점이 없다.
그러므로 사표四表(사방의 밖)에 대해서는 를 말하고, 상하上下에 대해서는 를 말하였다.
[四外] 그 한계지점이 없음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안쪽에서부터 말한 것은 그 먼 곳까지 이르러 감을 말하기 위함이니, 정말로 사방의 밖이란 것을 말하자면 마땅히 《이아爾雅》에서 말한 사해四海사황四荒의 땅과 같이 하여야 하는 것이다.
사표四表를 먼저하고 상하上下를 뒤에 한 것은 사람의 명성名聲은 의당 먼저 사람에게 미치고 뒤에 사표四表에 입히니, 이는 사람이 먼저 안다.
그러므로 먼저 사람에게 이름을 말하고 뒤에 상하上下에 이름을 말하였으니, 천지天地에 이름을 말한 것은 그 명성이 멀리 들림을 비유했을 뿐이다.
예기禮記》 〈예운禮運〉에 성인이 정치하는 것을 칭하여 능히 하늘이 고로膏露를 내리고 땅이 예천醴泉을 솟아나게 했다고 하였다.
이것은 명성이 멀리 미쳐가서 천지天地로 하여금 영험을 보이게 한 것이니, 이는 또한 위아래에 이르는 일이다.
능히 준덕俊德을 밝힌 〈를 임용해서〉 구족九族친목親睦하게 하셨다.
능히 준덕俊德을 밝힌 를 임용해서 고조高祖로부터 현손玄孫에 이르는 친족을 화목하게 하였다.
구족九族은 위로 고조高祖에서부터 아래로 현손玄孫에 이르기까지가 구족九族이다.
마융馬融정현鄭玄도 같은 뜻으로 보았다.
구족九族이 이미 친목하거늘 백성을 평화롭고 창명彰明하게 하셨다.
는 이미라는 뜻이요, 백성百姓백관百官이다.
구족九族을 변화하여 평화롭고 창명彰明하게 함을 말한 것이다.
백성百姓이 덕을 밝히며 만방萬邦협화協和한대 여민黎民이 아! 변화하여 이에 화평하였다.
는 또한 밝다라는 뜻이다.
은 화합하다라는 뜻이요, 는 많다라는 뜻이요, 는 이에라는 뜻이요, 은 화평하다라는 뜻이니, 천하天下중민衆民이 모두 변화하여 위를 따르므로 풍속이 크게 화평해짐을 말한 것이다.
의 [克明]에서 [時雍]까지
정의왈正義曰:임금이 명성이 널리 또는 멀리 들릴 수 있는 것은 현철賢哲한 사람에게 위임하여 정치를 잘한 데서 연유함을 강조하려고 하였기 때문에 다시 말을 꺼냈다.
말하자면, 가 임금이 됨에 능히 준덕俊德을 밝힌 를 높여 그들로 하여금 자기를 도와 정치교화를 베풀게 하였고, 이와 같은 현신賢臣의 정치교화를 가지고 먼저 그 구족九族의 친족을 친화하게 하니, 구족九族이 정치교화를 입어 이미 친목親睦하였으며,
현신賢臣들로 하여금 백관百官족성族姓화협和協하고 현명顯明해지게 하니, 백관百官족성族姓이 정치교화를 입어 모두 예의禮儀를 가짐으로써 밝게 나타났으며,
현신賢臣들로 하여금 천하天下만국萬國회합會合하여 조화調和를 이루게 하니, 이로써 풍속風俗이 크게 화평해졌으므로
능히 구족九族돈목敦睦하게 하고, 백성百姓현명顯明하게 하고, 만방萬邦화목和睦하게 하였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천하의 응당 편안해야 할 바를 편안하게 하셨다.”는 것이다.
의 [能明]에서 [之親]까지
정의왈正義曰:정현鄭玄이 이르기를 “준덕俊德현재賢才가 여느 사람보다 뛰어난 자이다.”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준덕俊德은 덕이 있는 사람을 말한 것이다.
[能明俊德之士] 큰 벼슬에 임명하고 많은 녹봉을 주며 그 재지才智를 이용하여 높이 나타나게 함을 말한 것이다.
덕이 있기 때문에 그를 임용한 것이다.
이와 같은 어진 신하의 변화를 가지고 고조高祖로부터 현손玄孫에 이르는 친족親族친목親睦하게 한 것이다.
위로 고조高祖에 이르고 아래로 현손玄孫에 미치는 것이 바로 구족九族이니, 고조와 증조에게서 함께 나왔으므로, 모두 응당 친목해야 하기 때문에 이라고 말한 것이다.
예기禮記》 〈상복소기喪服小記〉에 이르기를 “친족을 친애하되 셋을 가지고 다섯을 만들고, 다섯을 가지고 아홉을 만든다.”고 하였고,
또 《오경이의五經異義》‧하후夏侯구양歐陽 등이 “구족九族이란 것은, 부족父族이 넷, 모족母族이 셋, 처족妻族이 둘이다.”라고 한 말은 모두 “이성異姓이 있다.”는 문구에 의거한 것인데,
정현鄭玄이 반박하기를 “이성異姓시마緦麻에 지나지 않으므로 혼사를 폐지하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또 《의례儀禮》 〈사혼례士昏禮〉의 청기請期하는 말에 ‘삼족三族에게 무슨 일이 있을지 헤아릴 수 없다.’고 한 것은 그 혼사의 폐지를 염려한 것인바, 분명 외족外族이 아니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은 정현鄭玄공안국孔安國의 의견이 같았다.
구족九族’은 구족九族을 말하고, ‘백성百姓’은 백관百官족성族姓을 말하고, ‘만방萬邦’은 천하天下중민衆民을 말하는바, 안으로부터 밖으로 미쳐가고 높은 데로부터 낮은 데로 이르러 원근遠近의 차서로 삼았다.
구족九族이 일반 백성百姓구족九族이 아님을 알 수 있는 것은 먼저 구족九族을 친목하고, 그 다음 백성百姓에게 미쳐갔으며, 백성百姓은 바로 군신群臣제자弟子이니, 의당 백성百姓을 건너뛰어 하민下民에게 먼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만일 일반 백성百姓구족九族이라면, 구족九族이 이미 친목해져서 일반 백성百姓이 이미 친목해졌을 것이니, 하구下句에서 응당 다시 “만방萬邦협화協和했다.”고 말하지 않았어야 할 것이다.
이것으로 구족九族임을 알 수 있다.
임금이 스스로 구족九族을 친목하게 하지 않고 신하가 친목하게 하기를 기다린 것에 대해서는 신하를 임용하는 방법을 강조했을 뿐이다.
어찌 성인聖人이 위에 있으면서 그 골육骨肉을 소원하게 대할 리가 있겠는가.
만일 임금이 스스로 능히 구족九族을 친목하게 하고 신하의 변화를 기다리지 않았다면 만방萬邦백성百姓을 변화하는 일을 임금이 어찌 능히 변화하지 않고 신하가 변화하기를 기다렸겠는가?
[親九族] 한갓 제왕帝王이 친목하게 하고 또한 신하가 친목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제왕이 또한 그들이 서로 친애親愛하도록 했기 때문에 신자臣子의 변화를 기다린 것이다.
의 [旣已]에서 [章明]까지
정의왈正義曰:‘’와 ‘’는 뜻이 같기 때문에 ‘’를 ‘’의 뜻으로 풀이하는 것은 바로 경전經傳의 말이다.
[百姓] 혹 천하天下백성百姓으로 보기도 하지만, 하구下句에 바로 ‘여민黎民’이 있기 때문에 백성百姓이 곧 백관百官이란 것을 알 수 있다.
백관百官백성百姓이라고 한 것에 대해서는 은공隱公 8년 조의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천자天子이 있는 사람을 세우고서 그가 출생한 지명을 그의 으로 정해 주었다.”라고 하였으니,
이 있는 사람을 세워 공경公卿을 삼고, 그가 출생한 지명을 그의 으로 정해준 다음 그 족친族親을 거두어 스스로 종주宗主가 되게 하였음을 말한 것이다.
명왕明王은 어진 이를 임용하고 친척을 임용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백성百姓을 가지고 말한 것이다.
상서尙書》 〈주서周書 주관周官〉편에 이르기를 “의 시대에는 옛 제도를 상고하여 벼슬을 세우되 ‘’이란 숫자를 사용하였다.”라고 하였고, 《상서尙書》 〈우서虞書 대우모大禹謨〉에 이르기를 “백관百官을 통솔하시되 제순帝舜이 처음 했던 것과 같이 했다.”라고 하였다.
이는 의 시대의 경문經文에는 모두 백관百官이라고 칭하였는데, 《예기禮記》 〈명당위明堂位〉에는 “유우씨有虞氏의 관원은 50이었다.”라고 하였으니, 후세에 기록한 것은 경문經文과 합치되지 않는다.
평장平章’과 ‘백성百姓’은 그 글이 구족九族의 일에 관한 것이 아닌데, 에서는 이 의 일이 문세文勢가 서로 연관되어 먼저 구족九族을 변화하고 이에 백관百官을 변화했기 때문에 “구족九族을 변화하여 평화롭고 창명하게 하였다.”라고 하였으니,
구족九族백관百官을 모두 덕의德義를 가지고 인도하여 평화롭게 다스려서 협화協和하게 하고, 예법禮法을 가지고 가르쳐 환히 나타나서 밝게 드러나게 함을 이른 것이다.
의 [昭亦]에서 [大和]까지
정의왈正義曰:《이아爾雅》 〈석고釋詁〉에 의 뜻이라고 하였고, 은 뜻이 같은데, 에 이미 ‘’이 있기 때문에 “의 뜻이다.”라고 한 것이다.
석고釋詁〉에 의 뜻이라고 하였는데, 은 뜻이 같기 때문에 의 뜻으로 풀이하였다.
[黎 衆]‧[時 是] 〈석고釋詁〉의 글이다.
[雍 和] 《이아爾雅》 〈석훈釋訓〉의 글이다.
의 백성이 변한 것은 그 을 변개하여 을 따랐음을 밝힌 것이고, 사람이 화평한 것은 오직 풍속에 나타날 뿐이다.
그러므로 “천하天下중인衆人이 모두 변화하여 위를 따르니, 이렇기 때문에 풍속이 크게 화평하였다.”라고 이른 것을 알 수 있으니, 사람과 풍속이 크게 화평한 것이 곧 태평太平의 일이다.
이것은 상경上經의 세 가지 일이 서로 같기 때문에 옛 사관史官이 상호 연관성 있게 문장을 구성하였다.
으로써 ‘기목旣睦’을 말하고, 평장平章으로써 ‘소명昭明’을 말하고, 협화協和로써 ‘시옹時雍’을 말하였다.
, , 의 뜻이기 때문에 각각 문장을 변경해서 로써 서로 대우對偶를 맞춘 것이다.
구족九族을 평화롭게 하여 친목하도록 하고, 백성百姓을 평화롭게 하여 덕을 밝히도록 한 것은 틀림없이 예의禮義를 순종하여 은정恩情화합和合하게 함을 이른 것이다.
그러므로 만방萬邦에서는 ‘협화協和’로 변경해서 말하여 ‘이친구족以親九族’과 ‘평장백성平章百姓’ 역시 협화協和라는 것을 밝힌 것이다.
다만 구족九族은 마땅히 서로 친목해야 하고, 백성百姓은 마땅히 예의禮義를 밝혀야 하고, 만방萬邦은 마땅히 화협和協을 다해야 하므로 각각 마땅한 바를 인하여 문장을 구성하였으나 실은 서로 통하는 것이다.
백성에 대하여 ‘어변於變’이라 말한 것은 위를 따라 변화함을 이른 것이니, ‘구족기목九族旣睦’과 ‘백성소명百姓昭明’도 역시 위를 따라 변화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되고, 이 된 것이다.


역주
역주1 : 조선 후기 李瀷은 “曰자는 바로 역사를 지은 자의 말이다.”라고 하였다. 《星湖疾書 書經疾書 堯典》
역주2 稽古 : 鄭玄은 ‘稽’를 ‘同’, ‘古’를 ‘天’의 뜻으로 보아 “능히 하늘을 따라 행하여 하늘과 더불어 공을 같이하였다.”라고 풀이하였다.
역주3 曰若稽古 帝堯 : 蔡傳에서는 ‘曰若’은 ‘發語辭’로, ‘曰’은 “그 말이 이와 같았다고 말한 것과 같다.[猶言其說如此]”로 보고, ‘稽古 帝堯’는 “옛 帝堯를 상고하건대[考古之帝堯者]”로 풀이하였는데, 조선 후기의 丁若鏞은 그의 《尙書知遠錄》에서 “蔡說이 옳다. ‘曰若稽古’는 지금의 ‘臣謹按’과 같은 것이다.”라고 하였다.
역주4 [言] : 저본에는 없으나, 阮刻本에 “古本에 ‘能’ 위에는 ‘言’자가 있고, ‘堯’ 아래에는 ‘也’자가 있다.”라고 한 것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역주5 曰放勳……安安 : 蔡傳에는 “曰은 粤‧越과 뜻이 통한다. 《古文尙書》에는 ‘粤’로 적혀 있다. 曰若은 발어사이니, 〈周書〉의 ‘越若來三月’이란 것도 역시 이러한 例이다. 稽는 상고하다라는 뜻이다. 史臣이 장차 堯의 일을 서술하려고 하였기 때문에 먼저 말을 꺼내기를 ‘옛적 帝堯의 사적을 상고하건대[稽古帝堯] 그 德이 下文에서 운운한 바와 같다.’라고 한 것이다. 曰은 ‘그 말이 이와 같음을 말한다.’라는 것과 같다. 放은 이르다라는 뜻이니, 孟子께서 ‘사해에 이른다.[放四海]’라고 말씀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勳은 功의 뜻이니, 帝堯의 공이 무척 커서 이르지 않은 바가 없음을 말한 것이다. 欽은 恭敬의 뜻이고 明은 通明의 뜻인데, 敬은 體의 역할을 하고 明은 用의 역할을 한다. 文은 文章이고 思는 意思이니, 문장이 드러나고 생각이 심원한 것이다. 安安은 억지로 힘쓰는 바가 없음을 의미하여, 德性의 아름다움이 다 자연에서 나오는 것이지 억지로 힘쓰는 것이 아님을 말하니 이른바 ‘본성대로 한 분’이라는 것이다.[曰粤越通 古文作粤 曰若者 發語辭 周書越若來三月 亦此例也 稽考也 史臣將敍堯事 故先言考古之帝堯者 其德如下文所云也 曰者 猶言其說如此也 放至也 猶孟子言放乎四海是也 勳功也 言堯之功 大而無所不至也 欽恭敬也 明通明也 敬體而明用也 文文章也 思意思也 文著見而思深遠也 安安無所勉强也 言其德性之美 皆出於自然而非勉强 所謂性之者也]”라고 풀이하였다.
放勳에 대하여 조선시대 退溪 李滉은 ‘放하신 勳이시니’라고 하여 널리 베푼 공훈으로 보았다. 《三經釋義 書釋義 堯典》
역주6 如字 : 두 가지 用例가 있으니, 하나는 본래의 音과 같이 읽어야 하는 경우, 이를테면 ‘宿’字가 본래 音은 ‘숙(잘 숙)’이고, ‘수(별자리 수)’는 다른 音이다. 다른 하나는 某字와 같이 읽어야 하는 경우, 이를테면 ‘放’자를 ‘效’자와 ‘倣’자의 뜻으로 읽어야 하는 경우이다. 《尙書》의 孔疏 《說文通訓定聲》 《集韻》 《廣確釋誥》
역주7 允恭克讓 : 蔡傳에서는 “진실로 공손하고 능히 겸양한 것이다.[信恭而能讓]”라고 하여 두 가지로 보았다.
역주8 : 蔡傳에서는 “光은 드러나다라는 뜻이요, ……그 德의 성대함이 이와 같으므로, 그 미쳐가는 바가 먼 것이 이와 같음을 말한 것이다.[光顯……言其德之盛如此 故其所及之遠如此也]”라고 하여 德의 드러난 광채로 보았다.
역주9 考卜惟王 : 《詩經》 〈大雅 文王有聲〉에 “점괘를 상고하신 武王께서 이 鎬京에 거주하시도다.[考卜惟王 宅是鎬京]”라고 보인다.
역주10 若宋襄慕義 師敗身傷 : 《春秋左氏傳》 僖公 22년 조에 宋 襄公이 楚나라 군사와 泓水 가에서 싸울 때에 宋나라 군사는 이미 대열을 이루었으나 楚나라 군사는 아직 홍수를 다 건너지 못하였다. 옆에서 초나라 군사를 치자고 말하였으나 송 양공은 초나라 군사가 진을 이루기를 기다린 뒤에 공격하다가 패하였다. 송나라 사람들이 양공을 비난하자, 양공은 “옛날 전쟁에서는 적군을 험한 곳에서 괴롭히지 아니하였다. 과인은 비록 망국의 후손이지만, 대열을 정비하지 못한 적국에게 진격의 북을 치지는 않겠다.”라고 하였다.
역주11 徐偃行仁 國亡家滅 : 《說苑》 〈指武〉에 楚 文王이 徐 偃王을 쳐서 멸망시키니, 徐 偃王이 죽으면서 말하기를 “나는 文德에 힘입어 武備에 밝지 못하였고, 仁義의 道를 행하기를 좋아하여 남을 속이는 마음을 가질 줄 몰랐다가 이 지경에 이르렀다.”라고 하였다.
역주12 高貴鄕公 : 三國時代 魏나라 文帝의 손자인 曹髦(字 士彦)가 正始 연간에 郯縣 高貴鄕公에 봉해진 것에서 유래한 것이다.
역주13 (惟)[推] : 저본에는 ‘惟’로 되어있으나, 阮刻本에 “岳本에는 ‘惟’가 ‘推’로 되어있다. 살펴보건대 ‘推’자가 옳다.”라고 한 것에 의거하여 ‘推’로 바로잡았다.
역주14 (不)[下] : 저본에는 ‘不’로 되어있으나, 阮刻本에 “岳本과 宋本에는 ‘不’이 ‘下’로 되어있다. 살펴보건대 ‘下’자가 옳다.”라고 한 것에 의거하여 ‘下’로 바로잡았다.
역주15 克明俊德 以親九族 : 蔡傳에서는 “능히 俊德을 밝혀 九族을 親愛하시니”라고 풀이하여 堯임금이 직접 한 것으로 보았는데, 蔡傳의 풀이가 문법에 맞는 것 같다.
역주16 九族……馬鄭同 : 蔡傳에서는 이 孔傳의 내용을 따랐고, 淸代 顧炎武도 孔傳은 바꿀 수 없는 훌륭한 說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宋代 林之奇는 《尙書全解》에서 이를 비판하고 “‘九族’은 마땅히 夏侯‧歐陽氏가 ‘父族이 넷, 母族이 셋, 妻族이 둘이다.’란 말을 따라야 한다.”라고 하였다. 즉 孔傳은 그 화목의 범위가 좁기 때문에 內外의 친족을 두루 망라해야 한다는 것이다. 明末淸初 王夫之도 林之奇의 說이 良好하다고 하였다. 《船山全書 堯典》
역주17 平章 : 《史記》에는 ‘便章’, 淸代 孫之騄이 輯成한 《尙書大傳》에는 ‘辯章’으로 되어있다.
역주18 百姓百官 : 蔡傳에서는 ‘百姓’을 일반 백성으로 보았다.
역주19 (化)[從] : 저본에는 ‘化’로 되어있으나, 阮刻本에 “毛本에는 아래의 ‘化’가 ‘從’으로 되어있다.”라고 한 것에 의거하여 ‘從’으로 바로잡았다.
역주20 (昭)[照] : 저본에는 ‘昭’로 되어있으나, 阮刻本에 “岳本과 宋本에는 ‘照’로 되어있다.”라고 한 것에 의거하여 ‘照’로 바로잡았다.
역주21 (又)[人] : 저본에는 ‘又’로 되어있으나, 阮刻本에 “宋本에는 ‘又’가 ‘人’으로 되어있으니, 옳다.”라고 한 것에 의거하여 ‘人’으로 바로잡았다.
역주22 親親……以五爲九 : ‘以三爲五’의 ‘三’은 자신과 부모, 그리고 아들을 합친 숫자이고, ‘五’는 아버지로 해서 할아버지를 친애하게 되고 아들로 해서 손자를 친애하게 되어, 당초의 셋이 다섯으로 늘어나게 된 것을 말한다. ‘以五爲九’의 ‘九’는 할아버지로 해서 증조와 고조를 친애하게 되고, 손자로 해서 증손과 고손을 친애하게 되니, 다섯이 아홉으로 늘어나게 된 것을 말한다.
역주23 異義 : 漢代 許愼의 《五經異義》를 가리킨다.
역주24 (化)[從] : 저본에는 ‘化’로 되어있으나, 阮刻本에 “宋本과 閩本은 같고, 毛本에는 ‘化’가 ‘從’으로 되어있다.”라고 한 것에 의거하여 ‘從’으로 바로잡았다.

상서정의(1) 책은 2023.12.1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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