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尙書注疏(3)

상서정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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嗚呼 威克厥愛하면 允濟
아! 위엄이 동정심을 이기면 진실로 성공할 것이고,
[傳]嘆能以威勝所愛 則必有成功이라
탄식하면서 “능히 위엄으로 동정심을 이기면 반드시 성공할 게다.”라고 한 것이다.
愛克厥威하면 允罔功이니
동정심이 위엄을 이기면 진실로 공이 없을 것이니,
[傳]以愛勝威 無以濟衆이니 信無功이라
동정심으로 위엄을 이기면 민중을 구제할 수 없으니 진실로 공이 없을 게라고 한 것이다.
其爾衆士 懋戒哉어다
너희 여러 군사들은 힘써 경계할지어다.
[傳]言當勉以用命하되 戒以辟戮이라
마땅히 힘써 왕명을 받들어 〈죄인을 주벌하되 무고한 사람을 함부로〉 殺戮하는 일은 피하도록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疏]‘今予’至‘戒哉’
經의 [今予]에서 [戒哉]까지
○正義曰:“羲和所犯如上, 故今我用汝所有之衆, 奉王命行天罰,
○正義曰:“羲氏와 和氏가 범법한 것이 이상과 같기 때문에 지금 나는 너희가 소유한 여러 군사를 써서 왕명을 받들어 하늘이 내린 벌을 행하려고 하니,
汝等衆士, 當同心盡力於王室, 庶幾輔我敬承天子之命, 使我伐必克之.”
너희들 여러 군사는 응당 한 마음으로 王室에 힘을 다하여 부디 나를 도와 천자의 명을 경건히 받들어 나로 하여금 정벌하여 반드시 이기게 하라.”고 한 것이다.
又恐兵威所及, 濫殺無辜, 故假喩以戒之 “火炎崐山之岡, 玉石俱被焚燒. 天王之吏, 爲過惡之德, 則酷烈甚於猛火.
또 군사의 위력이 미치는 곳에 무고한 사람을 함부로 죽일까 염려하기 때문에 비유를 해서 경계하기를 “崐山의 산등성이에 불이 나면 옥과 돌이 모두 타게 된다. 天王의 관리가 過惡한 德을 행하면 그 酷烈이 사나운 불길보다 심하다.
宜誅惡存善, 不得濫殺. 滅其爲惡大帥, 罪止羲和之身, 其被迫脅而從距王師者, 皆無治責其罪.
마땅히 악한 자는 주벌하고 선한 자는 보존시켜야지, 함부로 죽여서는 안 된다. 그 惡을 자행한 큰 괴수를 멸하여 죄가 羲氏와 和氏의 몸에만 그치고 협박을 당하여 따라서 王師를 막은 자는 모두 그 죄를 다스리는 일이 없을 것이다.
久染汚穢之俗, 本無惡心, 皆與惟德更新, 一無所問.” 又言將軍之法, 必有殺戮. 嗚呼, 重其事, 故嘆而言之.
오랫동안 더러운 습속에 물든 것이지 본래 악한 마음은 없는 것이니, 모두 德의 更新에 참여시키고 한 명도 죄를 묻지 않겠다.”라고 한 것이다. 또 將軍의 法에 반드시 殺戮이 있음을 말하였다. ‘嗚呼’는 그 일을 중시하기 때문에 탄식하고 말한 것이다.
“將軍威嚴, 能勝其愛心, 有罪者雖愛必誅, 信有成功, 若愛心勝其威嚴, 親愛者有罪不殺, 信無功矣.” 言我雖愛汝, 有罪必殺.
“將軍의 威嚴이 능히 동정심을 이기어, 죄가 있는 자는 비록 사랑하더라도 반드시 주벌하면 진실로 공을 이룸이 있을 것이고, 만일 동정심이 그 위엄을 이기어 親愛하는 자가 죄를 지어도 죽이지 않으면 진실로 공이 없을 것이다.”라고 한 것은 나는 비록 너희를 사랑하나 죄를 지으면 반드시 죽일 것임을 말한 것이다.
“其汝衆士, 宜勉力以戒愼哉.” 勿違我命以取殺也.
“너희 여러 군사들은 의당 힘써 경계할지어다.”라는 것은 나의 명을 어기어 살육을 취하지 말라는 것이다.
[疏]○傳‘將行’至‘子弟’
傳의 [將行]에서 [子弟]까지
○正義曰:將之爲行, 常訓也. 天欲加罪, 王者順天之罰, 則王誅也.
○正義曰:‘將’이 行(실행)의 뜻이란 것은 일상적인 풀이이다. 하늘이 죄를 주려고 할 때에 王者가 하늘의 벌을 따르기 때문에 王의 誅伐이다.
‘奉王命行王誅 謂殺淫湎之身’, 羲和之罪, 不及其嗣, 故知殺其身, 立其賢子弟.
[奉王命行王誅 謂殺淫湎之身] 羲氏와 和氏의 죄가 그 嗣子에게 미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본인을 죽이고 그 어진 子弟를 세운다는 것을 〈공안국은〉 알았다.
楚語云 “重黎之後, 世掌天地四時之官, 至於夏商.” 則此不滅其族, 故傳言此也.
≪國語≫ 〈楚語〉에 “重黎의 후손은 대대로 天地와 四時에 관한 벼슬을 관장하여 夏나라와 商나라에까지 이르렀다.”라고 하였으니, 이렇게 그 족속을 멸하지 않았기 때문에 孔傳에서 이를 말한 것이다.
[疏]○傳‘山脊’至‘害玉’
傳의 [山脊]에서 [害玉]까지
○正義曰:釋山云 “山脊, 岡.” 孫炎曰 “長山之脊也.” 以‘崐山出玉, 言火逸害玉’, 喩誅惡害善也.
○正義曰:≪爾雅≫ 〈釋山〉에 “산등성이를 ‘岡’이라 한다.”라고 하였는데, 孫炎은 “긴 산의 등성이이다.”라고 하였다. ‘崐山에서 玉이 나오는데, 불이 잘못 번져서 옥을 해치는 경우를 말한 것’으로 악한 사람을 주벌하다가 선한 사람을 해친 점을 비유한 것이다.
[疏]○傳‘逸過’至‘於火’
傳의 [逸過]에서 [於火]까지
○正義曰:逸卽佚也, 佚是淫縱之名, 故爲過也.
○正義曰:‘逸’은 곧 佚의 뜻이고, 佚은 바로 음탕하고 방종한 것을 이르는 명칭이기 때문에 過의 뜻으로 여긴 것이다.
‘天王之吏’, 言位貴而威高, 乘貴勢而逞毒心, 或睚眥而害良善,
[天王之吏] 지위가 귀하고 위세가 높아서 貴勢를 타고 毒心을 풀거나 혹은 눈을 부릅뜨고 良善한 사람을 해치기 때문에
故“爲過惡之德, 其傷害天下, 甚於火之害玉, 猛火爲烈甚矣, 又復烈之於火.” 言其害之深也.
“過惡한 德을 행하면 그 天下를 상해하는 것이 불이 玉을 해치는 것보다 심하다. 사나운 불길도 酷烈한데, 그 사나운 불길보다 더 酷烈하다는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그 해가 깊음을 말한 것이다.
[疏]○傳‘殲滅’至‘無治’
傳의 [殲滅]에서 [無治]까지
○正義曰:‘殲 盡也’, 釋詁文. 舍人曰 “殲, 衆之盡也.” 衆皆死盡爲殲也.
○正義曰:[殲 盡也] ≪爾雅≫ 〈釋詁〉의 글이다. 郭舍人은 “殲은 여러 사람이 없어진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여러 사람이 모두 죽어 없어진 것을 ‘殲’이라 한다.
‘渠 大’‧‘魁 帥’, 無正訓. 以上‘殲厥渠魁’ 謂滅其元首, 故以渠爲大, 魁爲帥. 史傳因此謂賊之首領爲渠帥, 本原出於此.
[渠 大]‧[魁 帥] 일정한 풀이가 없다. 위의 ‘殲厥渠魁’가 그 元首를 멸하는 것을 이르기 때문에 ‘渠’를 大의 뜻으로, ‘魁’를 帥의 뜻으로 본 것이다. 史傳에서 이로 인하여 賊의 首領을 ‘渠帥’라고 한 것은 本原이 여기에서 나왔다.
自契至於成湯 八遷이라
契에서부터 成湯에 이르기까지 여덟 번 〈國都를〉 옮겼다.
[傳]十四世 凡八徙國都
14世 동안에 모두 여덟 번 國都를 옮겼다.
○契 殷之始祖 八遷之書 史唯見四
○契은 殷의 始祖이다. “여덟 번 옮겼다.”는 기록은 역사책에 오직 네 번 옮긴 것만 보일 뿐이다.
湯始居亳이니 從先王居
湯임금이 비로소 亳에 살았으니, 先王의 거주지를 따른 것이다.
[傳]契父帝嚳 都亳하고 湯自商丘遷焉이라 故曰從先王居라하니라
契의 부친인 帝嚳은 亳에 도읍을 세웠고, 湯임금이 商丘로부터 그곳으로 옮겼다. 그러므로 “先王의 거주지를 따랐다.”라고 한 것이다.
作帝告釐沃이라
〈史官이 그 일을 서술하여〉 〈帝告〉와 〈釐沃〉을 지었다.
[傳]告來居 治沃土러니 二篇皆亡이라
“와서 거주하면서 沃土를 다스리는 일을 고했다.”라는 내용이었는데, 두 篇이 다 망실되었다.
○此 舊解是夏書 馬‧鄭之徒 以爲商書라하니 兩義竝通이라
○이 ‘망실된 다섯 篇’을 옛 해석에서는 〈夏書〉로 다루었고, 馬融과 鄭玄의 무리는 〈商書〉로 여겼으니, 둘 다 뜻이 통한다.
[疏]‘自契’至‘釐沃’
書序의 [自契]에서 [釐沃]까지
○正義曰:自此已下皆商書也. 序本別卷, 與經不連, 孔以經序宜相附近, 引之各冠其篇首.
○正義曰:이 이하는 모두 〈商書〉이다. 書序는 본래 別卷으로 되어 있고 經과 연해있지 않았는데, 孔安國이 經과 書序는 서로 가깝게 붙어 있어야 한다고 해서, 끌어다가 각각 그 해당 篇 첫머리에 올려놓았다.
此篇經亡序存, 文無所託, 不可以無經之序爲卷之首, 本書在此, 故附此卷之末. 是商之始祖, 故遠本之.
이 篇은 經은 없어지고 書序만 남아 글을 붙일 곳이 없고, 經文이 없는 書序를 卷의 첫머리로 삼을 수 없어, 本書의 위치가 원래 여기에 있었기 때문에 卷의 끄트머리에 붙인 것이다. 〈契은〉 바로 商나라의 始祖였기 때문에 멀리 本原을 댄 것이다.
自契至於成湯, 凡八遷都. 至湯始往居亳, 從其先王帝嚳舊居. 當時湯有言告, 史序其事, 作帝告‧釐沃二篇.
契로부터 成湯에 이르기까지 모두 여덟 번 도읍을 옮겼다. 湯임금에 이르러 비로소 亳邑으로 가서 살았으니, 그 先王인 帝嚳의 옛 거주지를 따른 것이다. 당시 湯임금에게 말로 고한 일이 있었기 때문에 史官이 그 일을 서술하여 〈帝告〉와 〈釐沃〉 두 편을 지었다.
[疏]○傳‘十四’至‘國都’
傳의 [十四]에서 [國都]까지
○正義曰:周語曰 “玄王勤商, 十四世而興.” 玄王謂契也. 勤殖功業十四世, 至湯而興, 爲天子也.
○正義曰:≪國語≫ 〈周語〉에 “玄王이 열심히 공적을 쌓아 商나라를 일으키고 14대만에 흥성했다.”라고 하였다. 玄王은 契을 이른다. 열심히 功業을 쌓아 14대째 湯임금에 이르러 흥성해서 天子가 되었다.
殷本紀云 “契生昭明. 昭明卒, 子相土立. 相土卒, 子昌若立. 昌若卒, 子曹圉立. 曹圉卒, 子冥立. 冥卒, 子振立.
≪史記≫ 〈殷本紀〉에 “契이 昭明을 낳았다. 昭明이 작고하니 아들 相土가 즉위하였다. 相土가 작고하니 아들 昌若이 즉위하였다. 昌若이 작고하니 아들 曹圉가 즉위하였다. 曹圉가 작고하니 아들 冥이 즉위하였다. 冥이 작고하니 아들 振이 즉위하였다.
振卒, 子微立. 微卒, 子報丁立. 報丁卒, 子報乙立. 報乙卒, 子報丙立. 報丙卒, 子主壬立. 主壬卒, 子主癸立.
振이 작고하니 아들 微가 즉위하였다. 微가 작고하니 아들 報丁이 즉위하였다. 報丁이 작고하니 아들 報乙이 즉위하였다. 報乙이 작고하니 아들 報丙이 즉위하였다. 報丙이 작고하니 아들 主壬이 즉위하였다. 主壬이 작고하니 아들 主癸가 즉위하였다.
主癸卒, 子天乙立. 天乙是爲成湯.” 是也. 契至成湯十四世, 凡八遷國都者. 商頌云 “帝立子生商.” 是契居商也.
主癸가 작고하니 아들 天乙이 즉위하였다. 天乙이 바로 成湯이다.”라고 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契에서 成湯에 이르기까지가 14대인데 모두 여덟 번 國都를 옮긴 것이다. ≪詩經≫ 〈商頌 玄鳥〉에 “上帝께서 아들을 세워 商나라를 탄생시키셨네.”라고 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契이 商나라에 살았다는 증거이다.
世本云 “昭明居砥石.” 左傳稱相土居商丘, 及今湯居亳, 事見經傳者, 有此四遷, 其餘四遷未詳聞也.
≪世本≫에 “昭明이 砥石에 살았다.”라고 하였고, ≪春秋左氏傳≫에 相土가 商丘에 살았다고 칭하였는데, 지금 와서 湯임금이 亳에 살았으니, 사적이 經傳에 나타난 것으로는 이처럼 네 번 옮긴 바가 있고, 그 밖에 네 번 옮긴 것에 대해서는 자세히 듣지 못하였다.
鄭玄云 “契本封商, 國在太華之陽.” 皇甫謐云 “今上洛商是也.”
鄭玄은 “契은 본래 商에 봉해지고 나라는 太華山의 남쪽에 있었다.”라고 하고, 皇甫謐은 “지금(西晉)의 上洛郡 商縣이 이곳이다.”라고 하였다.
襄九年左傳云 “陶唐氏之火正閼伯居商丘, 相土因之.” 杜預云 “今梁國睢陽宋都是也.” 其‘砥石’先儒無言, 不知所在.
≪春秋左氏傳≫ 襄公 9년 조에 “陶唐氏(堯)의 火正이었던 閼伯이 商丘에 살았고, 相土는 〈閼伯의 뒤를 이어〉 그대로 商丘에서 살았다.”라고 하였는데, 杜預는 “지금(西晉) 梁國의 睢陽縣이니 〈춘추시대〉 宋나라 도읍이 이곳이다.”라고 하였다. ‘砥石’에 대해서는 先儒가 말해놓은 것이 없기 때문에 그 소재처를 알 수가 없다.
自契至湯, 諸侯之國而得數遷都者, 蓋以時王命之使遷. 至湯乃以商爲天下號, 則都雖數遷, 商名不改.
契로부터 湯임금에 이르기까지는 諸侯의 나라였고 자주 도읍을 옮기게 된 것은 아마 당시 천자가 명하여 옮기도록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湯임금에 와서는 商을 天下의 호칭으로 삼았기 때문에 도읍은 비록 자주 옮겨졌지만, ‘商’이라는 이름은 고치지 않았다.
今湯遷亳, 乃作此篇, 若是諸侯遷都, 則不得史錄其事以爲商書之首. 文在‘湯征諸侯’‧‘伊尹去亳’之上, 是湯將欲爲王時事.
지금 湯임금이 亳邑으로 〈도읍을〉 옮기고 이에 이 篇을 지었는데, 만일 諸侯로서 도읍을 옮긴 것이라면 사관이 그 일을 기록하여 〈商書〉의 머리로 삼을 수 없을 것이다. 글이 ‘湯征諸侯’와 ‘伊尹去亳’의 위에 놓여있는 것으로 보면 이것은 湯임금이 장차 王이 되려고 할 적의 일이다.
史以商有天下, 乃追錄初興, 竝湯征與汝鳩‧汝方, 皆是伐桀前事, 後追錄之也.
사관은 商나라가 천하를 소유하였기 때문에 곧 처음 흥성했을 때를 追錄하고 아울러 〈湯征〉 및 〈汝鳩〉‧〈汝方〉은 모두 桀을 정벌하기 전 일이기 때문에 뒤에 추록한 것이다.
[疏]○傳‘契父’至‘王居’
傳의 [契父]에서 [王居]까지
○正義曰:‘先王’, 天子也. 自契已下, 皆是諸侯, 且文稱契至湯, 今云 ‘從先王居’者, 必從契之先世天子所居也.
○正義曰:‘先王’은 天子를 가리킨다. 契 이하는 모두 諸侯의 신분이었고, 또 經文에서 ‘契에서 湯임금에 이르기까지’라고 칭하였으니 지금 ‘先王의 거주지를 따랐다.’라고 한 것은 필시 契의 先世 天子가 살던 곳을 따랐을 것이다.
世本‧本紀皆云 “契是帝嚳子.” 知先王是契父帝嚳. 帝嚳本居亳, 今湯往從之, 嚳實帝也.
≪世本≫과 ≪史記≫ 〈殷本紀〉에서 모두 “契은 帝嚳의 아들이다.”라고 하였으니, 先王은 바로 契의 아버지인 帝嚳임을 알 수 있다. 帝嚳이 본래 亳 땅에 살았기 때문에 지금 湯임금이 가서 따랐던 것이고, 嚳은 실로 帝였다.
言‘先王’者, 對文論優劣, 則有皇與帝及王之別, 散文則雖皇與帝皆得言王也.
‘先王’이라 말한 것은, 對文으로 優劣을 논한다면 皇과 帝 및 王의 구별이 있지만, 散文의 경우는 비록 皇과 帝라 하더라도 모두 王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故禮運云 “昔者先王未有宮室.” 乃謂上皇爲王, 是其類也. 孔言‘湯自商丘遷焉’, 以相土之居商丘.
그러므로 ≪禮記≫ 〈禮運〉에서 “옛날에 先王은 집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라고 하였다. 上皇을 ‘王’이라 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그런 類이다. 孔安國이 “湯임금이 商丘로부터 옮겼다.”라고 말한 것은 相土가 商丘에 살았기 때문이다.
其文見於左傳, 因之言自商丘徙耳, 此言不必然也. 何則, 相土, 契之孫也.
그 글이 ≪春秋左氏傳≫에 보이므로 인하여 商丘로부터 옮겼음을 말했을 뿐인데, 이 말은 꼭 그렇지는 않다. 왜냐하면 相土는 契의 손자이기 때문이다.
自契至湯凡八遷, 若相土至湯都遂不改, 豈契至相土三世而七遷也.
契로부터 湯임금에 이르기까지 모두 여덟 번 〈도읍을〉 옮겼는데 만일 相土에서 湯임금에 이르기까지 도읍이 끝내 변경되지 않았다면 契에서 相土에 이르기까지 3대 동안에 일곱 번 옮겼단 말인가.
相土至湯必更遷都, 但不知湯從何地而遷亳耳, 必不從商丘遷也.
相土에서 湯임금에 이르기까지 반드시 다시 도읍을 옮겼을 것인데, 다만 湯임금이 어떤 곳으로부터 亳으로 옮겼는지를 알지 못할 뿐이니, 반드시 尙丘로부터 옮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鄭玄云 “亳, 今河南偃師縣有湯亭.” 漢書音義臣瓚者云 “湯居亳, 今濟陰亳縣是也, 今亳有湯冢, 己氏有伊尹冢.”
鄭玄은 “亳은 지금의 河南 偃師縣인데 湯亭이 있다.”라고 하였고, ≪漢書音義≫에서 臣瓚이란 자는 “湯임금이 거주한 亳은 지금의 濟陰 亳縣이 그곳인데, 지금 亳에 湯임금의 무덤이 있고, 己氏에 伊尹의 무덤이 있다.”라고 하였고,
杜預云 “梁國蒙縣北有亳城, 城中有成湯冢, 其西又有伊尹冢.”
杜預는 “梁國 蒙縣 북쪽에 亳城이 있고 城 가운데에 成湯의 무덤이 있으며, 그 서쪽에 또 伊尹의 무덤이 있다.”라고 하였으며,
皇甫謐云 “孟子稱湯居亳, 與葛爲隣, 葛伯不祀, 湯使亳衆爲之耕. 葛卽今梁國寧陵之葛鄕也.
皇甫謐은 “孟子가 ‘湯임금은 亳에 거주하여 葛나라와 이웃을 하였는데, 葛나라 임금이 〈방탕하여〉 제사를 지내지 않자, 湯임금이 亳의 백성들로 하여금 葛나라에 가서 밭을 갈아주게 하였다.’고 칭하였으니, 葛은 곧 지금의 梁國 寧陵의 葛鄕이다.
若湯居偃師, 去寧陵八百餘里, 豈當使民爲之耕乎. 亳今梁國穀熟縣是也.” 諸說不同, 未知孰是.
만일 湯임금이 偃師에 거주했다면 寧陵과의 거리가 800여 리나 되는데, 어떻게 백성들로 하여금 밭을 갈아주게 할 수 있었겠는가. 亳은 지금의 梁國 穀熟縣이 그곳이다.”라고 하였는데, 여러 학설이 같지 않기 때문에 누구의 말이 옳은지 모르겠다.
[疏]○傳‘告來’至‘皆亡’
傳의 [告來]에서 [皆亡]까지
○正義曰:經文旣亡, 其義難明, 孔以意言耳. 所言‘帝告’, 不知告誰, 序言‘從先王居’, 或當告帝嚳也.
○正義曰:經文이 이미 없어져서 그 뜻을 밝히기 어려우니, 孔安國은 그저 자기 생각으로 말했을 뿐이다. ‘帝告’라고 말한 것은 누구에게 고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書序에서 “先王의 거주지를 따랐다.”라고 하였으니, 혹 응당 帝嚳에게 고했을 것이다.
湯征諸侯하시다
湯임금이 諸侯를 정벌하셨다.
[傳]爲夏方伯하니 得專征伐이라
〈湯임금이〉 夏나라의 方伯이 되었으니 마음대로 정벌을 할 수 있었다.
葛伯不祀한대 湯始征之하시다
葛나라 임금이 제사를 지내지 않자, 湯임금이 비로소 〈葛나라를〉 정벌하셨다.
[傳]葛이요 爵也 廢其土地山川及宗廟神祇하고 皆不祀한대 湯始伐之하시니 伐始於葛이라
葛은 나라이고, 伯은 爵位이다. 그가 土地와 山川 및 宗廟의 神祇를 폐기하고 모두 제사를 지내지 않자, 湯임금이 비로소 〈葛나라를〉 정벌하셨으니, 정벌은 葛에서 시작한 셈이다.
[疏]傳‘葛國’‘於葛’
傳의 [葛國]에서 [於葛]까지
○正義曰:序言‘湯征諸侯’, 知其人是葛國之君, 伯爵. 直云‘不祀’, 文無指斥.
○正義曰:書序에서 “湯임금이 諸侯를 정벌하셨다.”라고 말했기 때문에 그 사람이 바로 葛나라의 임금이고, 伯이 관작이란 것을 알았다. 단지 ‘제사 지내지 않았다.’라고만 하였을 뿐 글에 〈무엇에 제사를 지내지 않았는지〉 딱 가리킨 것은 없다.
王制云 “山川神祗, 有不擧者, 爲不敬, 不敬者, 君削以地. 宗廟有不順者, 爲不孝, 不孝者, 君黜以爵.”
≪禮記≫ 〈王制〉에 “山川神祗의 제사를 거행하지 않는 경우가 있으면 불경한 일이니, 불경한 일이 있을 경우 그 나라의 임금은 封地를 삭감한다. 宗廟에 불순한 경우가 있으면 불효한 일이니, 불효한 일이 있을 경우 그 나라의 임금은 관작에서 내쫓는다.”라고 하였다.
是言不祀, 必廢其土地山川之神祗及宗廟, 皆不祀, 故湯始征之. 湯伐諸侯, 伐始於葛, 仲虺之誥云 “初征自葛.” 是也.
여기서 말한 ‘不祀’는 반드시 그 土地‧山川의 神祗와 宗廟를 폐기하고 모두 제사를 지내지 않았기 때문에 湯임금이 비로소 정벌을 한 것이다. 湯임금이 諸侯를 정벌한 것은 정벌을 葛나라에서 시작하였으니, 〈仲虺之誥〉에 “처음 정벌은 葛나라로부터 하였다.”란 것이 이것이다.
孟子云 “湯居亳, 與葛爲隣, 葛伯不祀, 湯使人問之曰 ‘何爲不祀’, 曰 ‘無以供犧牲也’.
≪孟子≫ 〈滕文公 下〉에 孟子가 “湯임금이 亳에 거주하실 때에 葛나라와 이웃을 하였는데, 葛나라 임금이 〈방탕하여〉 제사를 지내지 않자, 湯임금이 사람을 시켜서 묻기를 ‘왜 제사를 지내지 않는가?’ 하니, ‘바칠 犧牲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湯使遺之牛羊, 葛伯食之, 又不祀. 湯又使人問之曰 ‘何爲不祀’, 曰 ‘無以供粢盛也’.
湯임금이 사람을 시켜서 소와 양을 보내주셨는데, 葛나라 임금은 그것을 먹어버리고 또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 湯임금이 또 사람을 시켜서 묻기를 ‘왜 제사를 지내지 않는가?’ 하니, ‘바칠 粢盛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湯使亳往爲之耕, 老弱饋食, 葛伯率其人, 要其酒食黍稻者, 劫而奪之, 不授者殺之.
湯임금이 亳邑 백성들로 하여금 葛나라에 가서 밭을 갈아주게 하시니, 노약자들이 밥을 내다 먹였는데, 葛나라 임금이 자기 사람을 거느리고 가서 술과 밥과 기장밥‧쌀밥을 내온 자들을 강요하여 빼앗되, 주지 않는 자는 죽였다.
有童子以黍肉餉, 殺而奪之. 書曰 ‘葛伯仇餉’, 此之謂也.” 是說伐始於葛之事也.
어떤 童子가 기장밥과 고기를 가지고 와서 밥을 먹이자, 그를 죽이고 빼앗았다. ≪書經≫에 이르기를 ‘葛나라 임금이 밥을 먹이는 자를 원수로 여겼다.’고 하였으니, 이를 이른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는 〈湯임금이〉 정벌을 葛나라로부터 시작한 일을 말한 것이다.
作湯征이라
〈史官이 그 일을 서술하여〉 〈湯征〉을 지었다.
[傳]述始征之義也이라
처음 정벌한 내용을 서술한 것인데, 망실되었다.
伊尹 去亳適夏
伊尹이 亳을 떠나 夏나라로 갔다.
[傳]伊尹 字氏이니 進於桀이라
‘伊尹’은 字와 氏이니, 湯임금이 桀에게 추천한 것이다.
[疏]傳‘伊尹’至‘於桀’
傳의 [伊尹]에서 [於桀]까지
○正義曰:伊, 氏, 尹, 字, 故云‘字氏’, 以曉人也. 伊尹不得叛湯, 知湯貢之於桀.
○正義曰:伊는 氏이고, 尹은 字이다. 그러므로 ‘字氏’라고 하여 倒文法을 써서 사람을 이해시켰다. 伊尹이 湯임금을 배반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湯임금이 伊尹을 桀에게 보낸 점을 〈孔安國은〉 알았던 것이다.
必貢之者, 湯欲以誠輔桀, 冀其用賢以治, 不可匡輔, 乃始伐之, 此時未有伐桀之意, 故貢伊尹使輔之.
伊尹을 꼭 보낸 것은 湯임금이 성심으로 桀을 보필하여 그가 어진 이를 써서 바른 정사를 하기를 기대하려고 하였는데, 결국 바로잡아 보필할 수 없게 되자 비로소 정벌을 한 것이니, 이때에는 桀을 정벌하고 싶은 생각이 전연 없었기 때문에 伊尹을 보내어 보필하게 하였던 것이다.
孫武兵書 反間篇曰 “商之興也, 伊尹在夏, 周之興也, 呂牙在殷.” 言使之爲反間也, 與此說殊.
≪孫武兵書≫ 〈反間〉편에 “商나라가 일어날 때에 伊尹이 夏나라에 있었고, 周나라가 일어날 때에 呂牙가 殷나라에 있었다.”라고 한 것은 그들로 하여금 반간(간첩질)을 하게 했음을 말한 것이니, 여기의 말과는 영 다르다.
旣醜有夏 復歸於亳이라
桀이 이미 夏나라의 정사를 추악하게 한지라 伊尹이 다시 亳으로 돌아왔다.
[傳]醜惡其政하여 不能用賢이라 退還이라
그 정사를 추악하게 해서 능히 어진 이를 쓰지 않았기 때문에 되돌아온 것이다.
入自北門하여 乃遇汝鳩汝方이라
北門으로 들어와서 汝鳩와 汝方을 만났다.
[傳]鳩方二人 湯之賢臣이라 不期而會曰遇
여구와 여방 두 사람은 湯임금의 어진 신하이다. 기약하지 않고 만난 것을 ‘遇’라고 한다.
[疏]傳‘鳩方’至‘曰遇’
傳의 [鳩方]에서 [曰遇]까지
○正義曰:伊尹與之言, 知是賢臣也.
○正義曰:伊尹이 그들과 더불어 말한 것으로 보아 그들이 어진 신하라는 점을 〈孔安國은〉 알았던 것이다.
‘不期而會曰遇’, 隱八年穀梁傳文也.
[不期而會曰遇] ≪春秋穀梁傳≫ 隱公 8년 조의 글이다.
作汝鳩汝方이라
〈史官이 그 일을 서술하여〉 〈汝鳩〉와 〈汝方〉을 지었다.
[傳]言所以醜夏而還之意러니 二篇 皆亡이라
夏나라 정사가 추악하기 때문에 伊尹이 돌아오게 된 내용을 말한 것인데, 두 篇이 다 망실되었다.
역주
역주1 (曰) : 저본에는 ‘曰’자가 있으나, “宋本에는 ‘曰’자가 없다. 山井鼎이 ‘曰자가 없는 것이 옳다.’라고 하였다.”라고 한 阮元의 校勘記에 의거하여 衍字로 처리하였다.
역주2 五亡篇 : 帝告‧釐沃‧湯征‧汝鳩‧汝方 5편을 가리킨다.
역주3 [衆] : 저본에는 ‘衆’자가 없으나, “毛本에는 ‘衆’자가 있으니, 살펴보건대 있는 것이 옳다.”라고 한 阮元의 校勘記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역주4 倒文 : ‘氏字’라 하지 않고 ‘字氏’로 적은 것을 말한다.

상서정의(3) 책은 2019.10.01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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