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尙書注疏(2)

상서정의(2)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상서정의(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厥田 惟中
그 田의 등급은 中에 下요,
[傳]田 第六이라
田은 제 6등급이다.
이로소니
그 賦의 등급은 貞(正)이니,
[傳]貞 正也 相當이라
貞은 正의 뜻이다. 州가 제 9등급이니, 賦는 ‘正’으로서 9등급의 州와 서로 걸맞는 것이다.
[疏]傳‘貞正’至‘相當’
傳의 [貞正]에서 [相當]까지
○正義曰:周易彖‧象, 皆以貞爲正也. 諸州賦無下下, 貞卽下下, 爲第九也.
○正義曰:≪周易≫의 〈彖傳〉과 〈象傳〉에서 모두 貞을 正의 뜻이라고 하였다. 여러 州의 賦에는 下下가 없는데, 貞은 곧 下下로서 제 9등급이 된다.
此州治水最在後畢, 州爲第九成功, 其賦亦爲第九, 列賦於九州之差, 與第九州相當, 故變文爲貞, 見此意也.
이 州는 홍수를 다스리는 일이 가장 뒤에 끝났으니, 州가 9번째로 공을 이루었고, 그 賦 또한 제 9등급이 되므로, 賦를 九州의 차등에 배열하여 제 9등급의 州와 서로 걸맞게 했기 때문에 문체를 변경하여 ‘貞’이라고 해서 이러한 뜻을 보인 것이다.
作十有三載라사 乃同이로다
〈홍수를〉 다스린 지 13년 만에야 〈賦法을 두어 다른 州와〉 동등하게 하였다.
[傳]治水十三年 乃有賦法하여 與他州同이라
홍수를 다스린 지 13년 만에 賦法을 두어 다른 州와 동등하게 하였다.
○載 馬鄭本 作年이라
○‘載’는 馬本과 鄭本에 ‘年’으로 되어 있다.
[疏]傳‘治水’至‘州同’
傳의 [治水]에서 [州同]까지
○正義曰:作者, 役功作務, 謂治水也. 治水十三年, 乃有賦法, 始得貢賦, 與他州同也.
○正義曰:作은 공사를 해서 홍수를 다스림을 이른다. 홍수를 다스린 지 13년 만에야 賦法를 두어 비로소 貢賦를 실행함을 다른 州와 동등하게 하였다는 것이다.
他州十二年, 此州十三年, 比於他州最在後也. 堯典言鯀治水九載, 績用不成, 然後堯命得舜, 舜乃擧禹治水, 三載功成, 堯卽禪舜.
〈홍수를 다스린 일을〉 다른 州는 12년 동안 하였고, 이 州는 13년 동안 하였으니, 다른 州에 비하여 가장 뒤에 끝난 셈이다. 〈堯典〉에서 ‘鯀이 9년 동안 홍수를 다스렸으나 공을 이루지 못한 연후에야 堯임금이 명하여 舜을 얻었고, 舜은 禹를 기용하여 홍수를 다스려 3년 만에 공이 이루어졌으며, 堯임금이 곧 舜에게 禪位했다.’라고 말하였다.
此言十三載者, 竝鯀九載數之. 祭法云 “禹能修鯀之功.” 明鯀已加功, 而禹因之也.
그런데 여기서 말한 ‘13년’은 鯀의 9년을 아울러 계산한 것이다. ≪禮記≫ 〈祭法〉에 “禹는 능히 鯀의 공을 닦았다.”라고 하였으니, 鯀이 이미 공을 베풀었고 禹가 그것을 따랐음을 밝힌 것이다.
此言十三載者, 記其治水之年, 言其水害除耳, 非言十三年內皆是禹之治水施功也.
여기서 말한 ‘13년’은 홍수를 다스린 햇수를 기록하여 수해가 제거됨을 말했을 뿐이고, 13년 간 모두 禹가 홍수를 다스려 공을 베풀었다고 말한 것은 아니다.
馬融曰 “禹治水三年, 八州平, 故堯以爲功而禪舜.” 是十年而八州平, 十三年而兗州平, 兗州平在舜受終之年也.
馬融은 “禹가 홍수를 다스린 지 3년 만에 八州가 평정되었기 때문에 堯임금이 공으로 여겨 舜에게 선위했다.”라고 하였으니, 12년 만에 八州가 평정되고, 13년 만에 兗州가 평정된 것이다. 兗州의 평정은 舜이 帝位를 이어받은 해에 있었다.
역주
역주1 厥賦貞 : 蔡傳에서는 “貞은 正의 뜻이다. 兗州는 賦稅가 가장 박하니, 天下에 임금 노릇 하는 이는 賦稅를 박하게 함을 正則으로 삼는다는 점을 말한 것이다.[貞正也 兗賦最薄 言君天下者 以薄賦爲正也]”라고 풀이하였다.
역주2 州第九 賦正與九相當……與他州同 : 蔡傳에서는 “〈13년을〉 先儒(孔疏)는 ‘禹가 홍수를 다스리는 데 걸린 햇수’라 하고, 또 이 州의 홍수를 다스리는 일이 가장 뒤에 끝나서 州가 아홉 번째로 공을 이루었다 하고, 따라서 上文의 ‘厥賦貞’이란 것에 대하여 ‘賦 또한 제 9등급으로서 州正(州의 9등급)과 서로 걸맞았다.’고 하였는데, 이는 자못 의의가 없는 것이라, 그 말이 옳지 않다.[先儒 以爲禹治水所歷之年 且謂此州治水 最在後畢 州爲第九成功 因以上文厥賦貞者 謂賦亦第九 與州正爲相當 殊無意義 其說非是]”라고 하였다. 禹의 治水에 관한 孔安國과 蔡沈의 견해에 대해서 조선시대 西溪 朴世堂(1629~1703)은 “朱子가 ‘禹의 홍수를 다스림은 먼저 낮은 곳으로부터 했다……’고 하였는데, 蔡傳은 이를 따랐다. 그 ‘旣載壺口’에 대한 孔傳에서 ‘禹가 홍수를 다스릴 때 공사를 하는 순서는 모두 下流로부터 시작하였다. 그러므로 冀州 다음은 兗州, 靑州…… 순이었으니, 兗州가 가장 지역이 낮았기 때문에 먼저 공사를 하였고, 〈雍州가 가장 지역이 높기 때문에〉 맨 뒤에 공사를 한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그 師說에서 얻은 지식이 이와 같았다. 그러나 단지 師說을 지킬 줄만 알고 어떻게 말해야 할 줄은 몰랐기 때문에 이와 같은 오류를 면치 못하고, 도리어 先儒를 그르다고 하였는데, 先儒의 말은 하나도 그른 점이 없다. 무릇 홍수를 다스려 그 공을 이루자면, 반드시 낮은 곳을 먼저하고 높은 곳을 뒤에 하며, 하류를 먼저하고 상류를 뒤에 하며, 물이 빠질 때에 가서 그 공을 거두려면, 또 반드시 높은 곳을 먼저하고 낮은 곳을 뒤에 하는 것이니, 이 일은 쉽게 알 수 있는 것이건만 蔡氏만이 생각지 못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思辨錄≫
역주3 : 阮元의 校勘記에 “古本에는 ‘九’字 아래에 ‘州’字가 있다.”라고 하였다.
역주4 (三)[二] : 저본에는 ‘三’으로 되어 있으나, “‘三’은 마땅히 ‘二’가 되어야 한다. 閩本에도 ‘三’으로 되어 있다.”라고 한 阮元의 校勘記에 의거하여 ‘二’로 바로잡았다.

상서정의(2) 책은 2019.10.01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18 By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