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尙書注疏(2)

상서정의(2)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상서정의(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三旬 苗民 逆命이어늘
30일 동안 苗民이 명을 거역하자,
[傳]旬 十日也 以師臨之 一月不服하니 責舜不先有文誥之命 威讓之辭하고 而便憚之以威하고 脅之以兵 所以
旬은 10일이다. 군사를 이끌고 쳐들어갔으나 한 달이 지나도 〈苗民이〉 불복하자, 舜임금이 먼저 文誥의 命과 威讓(嚴責)의 말을 하지 않고 문득 위엄으로 떨게 하고 군사로 위협한 것이 〈불복의〉 구실거리를 만들어내게 한 점이라고 책망한 것이다.
贊于禹曰 惟德 動天하여 無遠弗屆하나니
益이 禹를 보좌하는 뜻에서 말하였다. “오직 德만이 하늘을 감동시킬 수 있어 아무리 먼 곳이라 하더라도 이르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傳]贊 至也 益以此義佐禹하여 欲其修德致遠이라
贊은 佐의 뜻이요, 屆는 至의 뜻이다. 益이 이런 뜻을 가지고 禹를 도와서 德을 닦아 멀리 파급되게 하려고 한 것이다.
滿招損하고 謙受益 時乃天道니이다
스스로 만족해하는 자는 덞을 부르고 스스로 겸허해하는 자는 보탬을 받는 것, 이것이 바로 하늘의 常道입니다.
[傳]自滿者 人損之하고 自謙者 人益之하니 是天之常道
스스로 만족해하는 자는 사람이 덜어내고, 스스로 겸허해하는 자는 사람이 보태주니, 이것이 하늘의 常道이다.
帝初于歷山 往于田하사 日號泣于旻天 于父母하사
황제께서 처음 歷山에서 농사지을 때에 밭에 가서 매일 旻天과 父母를 부르며 목 놓아 우시어,
[傳]仁覆愍下 謂之旻天이라 言舜初耕于歷山之時 爲父母所疾일새 日號泣于旻天及父母하니 克己自責하고 不責於人이라
仁으로 덮어주어 下民을 가엽게 여기는 것을 旻天이라 한다. 舜이 처음에 歷山에서 농사지을 때 父母에게 미움을 받았기 때문에 날마다 旻天과 父母를 부르며 울었으니, 자기를 극복하여 스스로를 꾸짖고 남을 꾸짖지 않았다는 말이다.
○田 本或作畋이라
○田은 어떤 本에 畋으로 되어 있다.
負罪引慝하사 祗載見瞽瞍하되 夔夔齋慄하신대 瞽亦允若하니
죄를 떠맡고 잘못을 자신에게 돌려가면서, 자식 된 직분을 경건하게 수행하여 아버지인 瞽瞍를 뵙되 송구하고 엄숙한 모습을 하시니, 瞽瞍 또한 믿고 따랐습니다.
[傳]慝이요 事也 夔夔 悚懼之貌 言舜負罪引惡하여 敬以事見于父하되 悚懼齋莊한대 父亦信順之 言能以至誠感頑父
慝은 惡의 뜻이요, 載는 事(일)의 뜻이다. 夔夔는 송구해 하는 모습이다. 舜이 죄를 떠맡고 잘못을 자신에게 돌려가면서 경건하게 일에 대한 것을 가지고 아버지를 찾아뵙되 悚懼하고 齋莊한 태도를 지음에 아버지 또한 〈舜을〉 믿고 따랐다고 말하였으니, 능히 지성으로 미련한 아버지를 감화시켰음을 말한 것이다.
至諴 感神이온 矧玆有苗이릿가
지극한 정성은 天神도 감동시키거늘 하물며 이 苗民쯤이야 말할 것 있겠습니까.”
[傳]諴 況也 至和感神이온 況有苗乎 言易感이라
諴은 和의 뜻이요, 矧은 況의 뜻이다. 지극한 정성은 天神도 감화시키는데, 하물며 有苗이겠는가. 감화시키기 쉬움을 말한 것이다.
禹拜昌言曰 兪 班師振旅어늘
禹가 온당한 말에 절을 하고서 “옳은 말씀이외다.” 하고는 군대를 돌려 병사들을 정돈하여 돌아왔다.
[傳]昌 當也 以益言爲當이라 拜受而然之하고 遂還師 兵入曰振旅 言整衆이라
昌은 當(온당)의 뜻이다. 益의 말을 온당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절을 하고 받아들여 옳게 여기고 드디어 군대를 돌이켰다. 군대가 돌아오는 것을 振旅라 하니, 병사들을 정돈함을 말한다.
帝乃誕敷文德하사
帝舜이 이에 文德을 크게 베푸시어
[傳]遠人不服하니 大布文德以來之
먼 데 있는 사람들이 굴복하지 않자, 文德을 크게 펴서 그들을 오게 한 것이다.
舞干羽于兩階러니
방패와 깃을 들고 두 섬돌 사이에서 춤을 추니,
[傳]干이요 翳也 皆舞者所執이라 修闡文敎하고 舞文舞于賓主階間하여 抑武事
干은 楯의 뜻이요, 羽는 翳의 뜻이니, 모두 춤추는 사람이 잡는 것이다. 文敎를 닦아 밝히고 賓主의 섬돌 사이에서 文舞를 추어 武事를 억제하였다.
七旬 有苗格하니라
70일 만에 有苗가 〈스스로 복종하여〉 이르렀다.
[傳]討而不服하고 不討自來하니 明御之者必有道 三苗之國 左洞庭하고 右彭蠡하니 在荒服之例하여 去京師二千五百里也
토벌할 때에는 굴복하지 않고 토벌하지 않자 저절로 왔으니, 어거(통솔)하는 데에는 반드시 방법이 있음을 밝힌 것이다. 三苗國은 洞庭이 왼쪽에 있고 彭蠡가 오른쪽에 있으니, 荒服의 例에 있어서 京師와 거리가 2,500리이다.
[疏]‘三旬’至‘苗格’
經의 [三旬]에서 [苗格]까지
○正義曰:禹旣誓於衆, 而以師臨苗, 經三旬, 苗民逆帝命, 不肯服罪.
○正義曰:禹가 이미 軍衆에게 맹세하고 나서 군대를 이끌고 苗國에 쳐들어갔는데, 30일이 지나도 苗民이 帝命을 거역하고 죄를 자복하려 하지 않았다.
益乃進謀以佐於禹曰 “惟是有德, 能動上天, 苟能修德, 無有遠而不至.”
그러자 益이 謀慮를 바쳐 禹를 돕기를 “오직 덕이 있는 사람만이 하늘을 감동시킬 수 있으니, 진실로 능히 덕을 닦는다면 아무리 거리가 멀어도 와서 항복하지 않을 자가 없습니다.”라 하고 나서,
因言行德之事, “自滿者招其損, 謙虛者受其益, 是乃天之常道.” 欲禹修德, 謙虛以來苗.
이내 덕을 행할 일을 말하기를 “스스로 만족해하는 자는 덞을 부르고 겸허해하는 자는 보탬을 받는 것, 이것이 바로 하늘의 常道입니다.”라고 하였으니 禹가 德을 닦아 겸허한 마음으로 有苗를 오게 하려는 것이었다.
旣說其理, 又言其驗, “帝乃初耕於歷山之時, 爲父母所疾, 往至于田, 日號泣于旻天於父母, 乃自負其罪, 自引其惡,
그 이치를 말하고 나서 또 그 증험을 말하기를 “황제께서 처음 歷山에서 농사지을 때에 부모에게 미움을 받았으므로 밭에 가서 날마다 旻天과 부모를 부르며 울어 〈부모에 대하여〉 스스로 그 죄를 떠맡고 잘못을 자신에게 돌려가면서,
恭敬以事, 見父瞽瞍, 夔夔然悚懼, 齋莊戰慄, 不敢言己無罪. 舜謙如此, 雖瞽瞍之頑愚, 亦能信順.
경건하게 일에 대한 것을 가지고 아버지인 瞽瞍를 뵙되 송구하고 엄숙한 모습을 하시고 감히 자기에게 죄가 없음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舜임금의 겸허함이 이와 같았으므로 미련한 瞽瞍 또한 믿고 따를 수 있었던 것입니다.
帝至和之德, 尙能感于冥神, 況此有苗乎.” 言其苗易感於瞽瞍. 禹拜益受之當言, 曰 “然.” 然益語也.
帝舜의 지극히 온화한 덕은 冥神도 감동시키거늘 하물며 이 有苗쯤이겠습니까.”라고 하였으니, 有苗가 瞽瞍보다 감동시키기 쉬움을 말한 것이다. 禹가 益에게 절하여 온당한 말로 받아들이고 “옳습니다.”라고 하였으니, 益의 말을 옳게 여기신 것이다.
遂還師整衆而歸. 帝舜乃大布文德, 舞干羽于兩階之間, 七旬而有苗自服來至. 言主聖臣賢, 御之有道也.
드디어 군대를 돌려 병사들을 정돈하여 돌아왔다. 帝舜이 이에 文德을 크게 베푸시어 방패와 깃을 들고 두 섬돌 사이에서 춤을 추니, 70일 만에 有苗가 스스로 복종하여 이르렀다. 임금은 성스럽고 신하는 어질어서 그들을 어거함에 방법이 있었음을 말한 것이다.
[疏]○傳‘旬十’至‘生辭’
○傳의 [旬十]에서 [生辭]까지
○正義曰:堯典云‘三百有六旬’, 是知‘旬十日’也. 以師臨之, 一月不服者,
○正義曰:〈堯典〉에서 ‘三百有六旬’이라고 하였기 때문에 ‘旬’이 10일임을 안 것이다. “군사를 이끌고 쳐들어갔으나 한 달이 지나도 〈苗民이〉 불복한 것은,
責舜不先有文告之命‧威讓之辭, 而便憚之以威, 脅之以兵, 所以有苗得生辭也.
舜임금이 먼저 文辭로 타이르는 命과 위엄을 세워 꾸짖는 말을 하지 않고 문득 위엄을 가지고 떨게 하고 군사를 가지고 위협하여 〈불복의〉 구실거리를 만들어내게 한 것이라고 책망한 것이다.” 하였는데,
傳知然者, 昭十三年左傳論征伐之事云 “告之以文辭, 董之以武師.” 是用兵者先告, 不服然後伐之.
孔傳에서 그러함을 알게 된 것은 ≪春秋≫ 昭公 13년 조의 ≪左氏傳≫에서 정벌한 일을 논하기를 “文辭를 가지고 고하고 武師를 가지고 감독했다.”라고 하였으니, 군사를 부리는 자는 먼저 〈상대방에게 문사를 가지고〉 고해주고 〈상대방이〉 불복한 연후에 〈군사를 내어〉 정벌하는 것이다.
今經無先告之文, 而有逆命之事, 故知責舜不先有文告之命, 而卽脅之以兵. 其‘文告之命 威讓之辭’,
그런데 지금 經文에 먼저 고해준 글은 없고 命을 어긴 일은 있기 때문에 舜임금이 먼저 글로 고한 명이 없이 즉시 병력으로써 위협했다고 책망한 것임을 알 수 있다. 文辭로 타이르는 命과 위엄을 세워 꾸짖는 말은 ≪國語≫ 〈周語〉에도 이런 일이 있다.
, 而不爲文告之命, 使之得生辭者, 有苗數干王誅, 逆者難以言服, 故憚之以威武, 任其生辭,
大舜은 군사를 부리는 방법에 달통하였는데 文辭로 타이르는 명을 하지 않아 그들로 하여금 구실거리를 만들어내게 한 것은 有苗처럼 자주 王誅(王法)를 범하여 거역하는 자는 말로 복종시키기 어렵기 때문에 威武를 가지고 떨게 해서 그들이 구실거리를 만들어내도록 맡겨두고,
待其有辭, 爲之振旅. 彼若師退而服, 我復更有何求. 爲退而又不降, 復往必無辭說.
그들이 구실거리를 만들어내기를 기다려서 군사를 정돈하여 돌아왔다. 저들이 만일 〈우리가〉 군사를 물렸을 때 복종하였다면 우리가 다시 무엇을 구하겠는가. 군사를 물렸으나 또 항복하지 않았으니, 다시 〈군사를 일으켜〉 가면 반드시 구실 삼을 말이 없을 것이다.
不恭而征之, 有辭而捨之, 正是柔服之道也. 若先告以辭, 未必卽得從命.
불공하면 정벌하고 구실 삼는 말을 하면 놓아두는 것이 바로 유화적으로 복종시키는 방법이다. 먼저 문사를 가지고 타이른다 하더라도 반드시 즉각 명을 따르지는 않는다.
不從而後行師, 必將大加殺戮. 不以文誥, 感德自來, 固是大聖之遠謀也.
명을 따르지 않은 뒤에 군사를 일으킨다면 반드시 장차 크게 살육을 가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文辭로 타이르지 않고 德에 감화되어 스스로 오게 하는 것이 진실로 大聖人의 원대한 모려이다.
[疏]○傳‘贊佐’至‘致遠’
○傳의 [贊佐]에서 [致遠]까지 .
○正義曰:禮有贊佐, 是助祭之人, 故贊爲佐也.
○正義曰:≪儀禮≫ 〈特牲饋食禮〉에 “贊은 佐이다.”란 말이 있는데, 제사를 돕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贊을 佐의 뜻으로 본 것이다.
“屆 至也” 釋詁文. 經云‘惟德動天’, 天遠而難動, 德能動遠. 又言‘無遠不屆’, 乃據人言“德動遠人, 無不至也.”
[屆 至也] ≪爾雅≫ 〈釋詁〉의 글이다. 經文에서 말한 ‘오직 德만이 하늘을 감동시킨다.’라는 것은 하늘은 멀리 있어서 감동시키기 어렵지만, 德이 있는 사람만이 먼 하늘을 감동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아무리 먼 곳이라 하더라도 이르러가지 않는 곳이 없다.’라고 말한 것은 바로 사람에 의거해서 “德은 먼 데 사람을 감동시켜 이르지 않는 곳이 없다.”라고 말한 것이다.
益以此義佐禹, 欲脩德致遠, 使有苗自來也. 德之動天, 經傳多矣.
益은 이런 뜻을 가지고 禹를 도와서 德을 닦아 멀리까지 파급하여 有苗로 하여금 저절로 오게 하려고 한 것이다. 德이 하늘을 감동시킨다는 말은 經傳에 많이 보인다.
禮運云 “聖人順民, 天不愛其道也, 地不愛其寶, 故天降膏露, 地出醴泉.” 如此之類, 皆德動之也.
≪禮記≫ 〈禮運〉에 “성인이 민심을 순히 따르면, 하늘은 그 道를 아끼지 않고 땅은 그 보배를 아끼지 않기 때문에 하늘이 기름 같은 이슬을 내리고 땅이 단술 같은 샘물을 내보낸다.”라고 하였으니, 이와 같은 따위는 모두 德이 감동시킨 것이다.
[疏]○傳‘自滿’至‘常道’
○傳의 [自滿]에서 [常道]까지
○正義曰:自以爲滿, 人必損之, 自謙受物, 人必益之. 易謙卦彖曰 “天道虧盈而益謙, 地道變盈而流謙,
○正義曰:스스로 만족하다고 여기는 자는 사람이 반드시 덜어내고, 스스로 겸손하여 남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자는 사람이 반드시 보태준다. ≪周易≫ 謙卦 〈彖傳〉에 “하늘의 道는 가득 찬 것을 덜어내 겸허한 것에 더해주고, 땅의 도는 가득 찬 것을 기울여 謙卑한 곳으로 흐르게 하며,
鬼神害盈而福謙, 人道惡盈而好謙.” 是滿招損, 謙受益, 爲天道之常也. 益言此者, 欲令禹脩德息師, 持謙以待有苗.
귀신은 가득 찬 것을 해치고 겸허한 것에 복을 주며, 사람의 도는 가득 찬 것을 미워하고 겸허한 것을 좋아한다.”라고 하였으니, 스스로 만족해하는 자는 덞을 부르고 스스로 겸허해하는 자는 보탬을 받는 것이 天道의 떳떳한 것이다. 益이 이 점을 말한 것은 禹로 하여금 덕을 닦고 군사를 止息시키며 겸손함을 가지고 有苗를 대하게 하고자 해서였다.
[疏]○傳‘仁覆’至‘責於人’
○傳의 [仁覆]에서 [責於人]까지
○正義曰:‘仁覆愍下 謂之旻天’. 詩毛傳文也. 旻, 愍也. 求天愍己, 故呼曰旻天.
○正義曰:[仁覆愍下 謂之旻天] ≪詩經≫ 毛傳의 글이다. 旻은 愍의 뜻이다. 하늘에게 자기를 가엽게 여겨주기를 요구하기 때문에 ‘旻天이시여.’라고 부른 것이다.
書傳言“舜耕於歷山.” 鄭玄云 “歷山在河東.” 是耕於歷山之時, 爲父母所疾, 故往於田, 日號泣于旻天.
≪尙書≫의 孔傳에서는 “舜이 歷山에서 농사지었다.”라 하고, 鄭玄은 “歷山은 河東에 자리 잡고 있다.”라고 하였으니, 歷山에서 농사지을 때에 부모에게 미움을 받았기 때문에 밭에 가서 날마다 旻天을 부르짖으며 울었다.
何爲然也. 孟子曰 “怨慕也. 長息問於公明高曰 ‘舜往于田, 則予旣聞命矣, 號泣于旻天及父母, 卽吾不知矣.’
왜 그렇게 부르짖으며 울었을까. ≪孟子≫ 〈萬章 上〉에 “맹자가 말씀하기를 ‘원망하고 사모하신 것이다.’라고 하였다. 長息이 公明高에게 묻기를 ‘舜이 밭에 가신 이유에 대해서는 제가 이미 선생님의 가르침을 들었거니와, 旻天과 父母를 부르며 우신 이유는 제가 잘 모르겠습니다.’ 하자,
公明高曰 ‘非爾所知也.’ 我竭力耕田, 供爲子職而已, 父母不愛我, 何哉.
公明高가 말하기를 ‘네가 알 바 아니니라.’라고 하였다. 舜은 ‘나는 힘을 다해 농사지어 자식 된 직분을 할 따름인데, 부모께서 나를 사랑하지 않으신 것은 나에게 무슨 죄가 있어서인가.’라고 여긴 것이다.
大孝終身慕父母, 五十而慕者, 予於大舜見之矣.” 言舜之號泣怨慕者, 克己自責, 不責於人也.
大孝는 종신토록 부모를 사모하나니, 50세가 되어서도 부모를 사모한 이를 나는 大舜에게서 보았노라.”라고 하였으니, 舜이 울부짖으며 원망하고 사모하신 것은 자기를 극복하며 스스로 책망하고, 남을 책망하지 않았음을 말한 것이다.
[疏]○傳‘慝惡’至‘頑父’
○傳 [慝惡]에서 [頑父]까지
○正義曰:慝之爲惡, 常訓耳. 舜典已訓載爲事, 以非常訓, 故詳其文.
○正義曰:慝이 惡의 뜻이란 것은 일반적인 풀이일 뿐이다. 〈舜典〉에서 이미 載를 事의 뜻으로 풀이했지만, 일반적인 풀이가 아니기 때문에 그 글을 자상하게 적은 것이다.
‘夔夔’與‘齋慄’共文, 故爲‘悚懼之貌.’ 自負其罪, 引惡歸己, 事同耳, 丁寧深言之.
夔夔와 齋慄은 같은 글이기 때문에 ‘송구해하는 모습이다.’라고 한 것이다. 스스로 그 죄를 떠맡고 惡을 끌어 자기에게 돌린 것은 사세가 동일할 뿐이니, 정녕코 깊이 말한 것이다.
‘敬以事見於父’者, 謂恭敬, 自因事務須見父, 恭敬以見. 夔夔然悚懼齋慄, 是見時之貌.
[敬以事見於父] 공경함을 이르니, 스스로 사무로 인하여 아버지를 뵐 때 공경스런 모습으로 뵌 것이다. 夔夔然히 悚懼하고 齋慄한 것은 뵐 때의 모습이다.
‘父亦信順之’者, 謂當以事見之時, 順帝意不悖怒也.
[父亦信順之] 일을 가지고 아버지를 뵈었을 때에 아버지가 帝舜의 뜻에 따르고 悖怒하지 않았음을 이른다.
‘言能以至誠感頑父’者, 言感使當時暫以順耳, 不能使每事信順, 變爲善人.
[言能以至誠感頑父] 感은 당시 잠깐 순종하게 했을 뿐, 능히 매사를 믿고 순종하여 착한 사람이 되게 하지는 못했음을 말한 것이다.
故孟子說舜旣被堯徵用, 堯妻之以二女, 瞽瞍猶與象欲謀殺舜而分其財物,
그러므로 孟子가 舜에 대한 설명에서 “舜은 堯임금의 徵用을 받은 뒤에 堯임금이 자기의 두 딸을 舜에게 아내로 삼아준 처지였는데도 瞽瞍는 오히려 象과 함께 舜을 죽이고 그 재물을 나눌 것을 도모하려고 했다.”는 식으로 말하였으니,
是下愚之性, 終不可改. 但舜善養之, 使不至于姦惡而已.
이는 下愚의 성품이라 끝내 고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舜은 그를 잘 봉양하여 姦惡에 이르지 않게 했을 뿐이다.
[疏]○傳‘諴和’至‘易感’
○傳의 [諴和]에서 [易感]까지
○正義曰:‘諴’, 亦咸也. 咸訓爲皆, 皆能相從, 亦和之義也.
○正義曰:‘諴’ 또한 咸의 뜻이다. 咸은 皆의 뜻으로 풀이하니 모두 능히 서로 따르는 것이니, 또한 和의 뜻이다.
‘矧 況’, 釋言文. 上言德能動天, 次言帝能感瞽. 天以玄遠難感, 瞽以頑愚難感. 言苗民近於天而智於瞽, 故言感天感瞽以況之.
[矧 況] ≪爾雅≫ 〈釋言〉의 글이다. 위에서는 德만이 하늘을 감동시킬 수 있음을 말하고, 그 다음 帝舜이 능히 瞽瞍를 감동시킨 것을 말하였다. 하늘은 워낙 멀기 때문에 감동시키기 어렵고, 瞽瞍는 워낙 頑愚하기 때문에 감동시키기 어렵다. 苗民은 하늘보다 가깝고 瞽瞍보다 지혜롭기 때문에 하늘을 감동시키고 고수를 감동시킴을 말해서 비유한 것이다.
天是神也. . 言至和尙能感天神, 而況於有苗乎. 言有苗易感.
天은 神이니, “지극한 정성은 오히려 天神을 감동시킬 수 있거늘 하물며 有苗임에랴.”라고 말한 것은 有苗는 감동시키기 쉬움을 말한 것이다.
覆動天而不覆言瞽者, 以瞽雖愚, 猶是人類, 天神事與人隔,
다만 天神을 감동함은 말하고 瞽瞍를 감동함을 말하지 않은 것은 瞽瞍는 아무리 어리석다 하더라도 오히려 인류이고 天神의 일은 인간과 격리된 것이니,
感天難於感瞽, 故擧難者以見之. 其實天與瞽, 俱言難感, 以況有苗易於彼二者.
하늘을 감동시키는 것이 瞽瞍를 감동시키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어려운 일을 들어서 보인 것이다. 그러나 실은 하늘과 瞽瞍가 모두 감동시키기 어려움을 말해서 有苗는 저 하늘과 瞽瞍보다 〈감동시키기〉 쉽다는 점을 비유한 것이다.
[疏]○傳‘昌當’至‘整衆’
○傳의 [昌當]에서 [整衆]까지
○正義曰:‘昌 當也’, 釋詁文. 禹以益言爲當, 拜而已卽還.
○正義曰:[昌 當也] ≪爾雅≫ 〈釋詁〉의 글이다. 禹는 益의 말을 온당한 것으로 여겨 절하여 받아들이고 즉시 회군하였다.
還不請者, 春秋襄十九年“晉士匄帥師侵齊, 聞齊侯卒, 乃還.”
회군하기를 〈황제에게〉 청하지 않은 것은 ≪春秋≫ 襄公 19년 조에 “晉나라 士匄가 군대를 이끌고 齊나라를 침범했다가 齊나라 임금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곧 회군했다.”라고 하였다.
公羊傳曰 “大夫 以君命出, 進退在大夫.” 是言進退由將, 不須請也. 或可當時請帝乃還, 文不具耳.
이에 대하여 ≪公羊傳≫에서는 “大夫가 임금의 명령을 받고 일단 나갔으면 진퇴문제는 大夫에게 달려있는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진퇴문제는 장수에게 달려있으니 청할 필요가 없음을 말한 것이다. 혹은 당시에 황제에게 청해서 회군하였으나 글이 갖추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
‘兵入曰振旅’, 釋天文. 與春秋二傳, 皆有此文.
[兵入曰振旅] ≪爾雅≫ 〈釋天〉의 글이다. ≪春秋≫의 두 傳에 모두 이 글이 있다.
‘振 整也’, 言整衆而還.
[振 整] 군대를 정돈해서 돌아옴을 말한다.
[疏]○傳‘遠人’至‘來之’
○傳의 [遠人]에서 [來之]까지
○正義曰:‘遠人不服 文德以來之’, 論語文也. 益贊於禹, 使脩德, 而帝自誕敷者, 言君臣同心.
○正義曰:[遠人不服 文德以來之] ≪論語≫ 〈季氏〉의 글이다. 益이 禹를 도와서 德을 닦게 하였는데, 帝舜이 스스로 ‘〈文德을〉 크게 베푼 것’은 임금과 신하가 마음을 함께 했음을 말한 것이다.
‘大布’者, 多設文德之敎, 君臣共行之也.
[大布] 文德의 가르침을 많이 베푼 것이니, 임금과 신하가 함께 행한 것이다.
[疏]○傳‘干楯’至‘武事’
○傳의 [干楯]에서 [武事]까지
○正義曰:釋言云 “干, 扞也.” 孫炎曰 “干楯, 自蔽扞也.” 以楯爲. 通以干爲楯名, 故干爲楯.
○正義曰:≪爾雅≫ 〈釋言〉에 이르기를 “干은 扞의 뜻이다.”라 하고, 孫炎이 말하기를 “干은 楯이니, 스스로 가려서 막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楯은 사람이 〈해를〉 막는 것이기 때문에 통틀어 干을 楯의 이름으로 삼았다. 그러므로 干을 楯이라고 한 것이다.
釋言又云 “纛, 翳也.” 郭璞云 “舞者持以自蔽翳也.” 故明堂位云 “朱干玉戚以舞大武.” 戚, 斧也, 是武舞執斧執楯.
〈釋言〉에 또 이르기를 “纛은 翳의 뜻이다.”라 하였고, 郭璞은 이르기를 “춤추는 사람이 가지고 스스로 가리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禮記≫ 〈明堂位〉에 이르기를 “朱干과 玉戚을 쥐고 大武를 춤추었다.”라고 하였다. 戚은 斧의 뜻이니, 武舞를 출 때에 도끼와 방패를 쥔 것이다.
詩云 “左手執籥, 右手秉翟.” 是文舞執籥. 故干羽皆舞者所執. 修闡文敎, 不復征伐, 故舞文德之舞於賓主階間, 言帝抑武事也.
≪詩經≫ 〈邶風 簡兮〉에 “왼손으로 피리를 쥐고 오른손으로 꿩 깃을 가졌노라.”고 하였으니, 文舞를 출 때에 피리를 쥔 것이다. 그러므로 방패와 깃은 모두 춤추는 사람이 가지는 것이다. 文敎를 닦아 드러내고 다시 정벌을 하지 않기 때문에 文德舞를 賓主의 섬돌 사이에서 춘 것이니, 帝舜이 武를 억제한 일을 말한 것이다.
經云‘舞干羽’, 卽亦舞武也. 傳惟言舞文者, 以據器言之, 則有武有文, 俱用以爲舞, 而不用於敵, 故敎爲文也.
經文에 ‘방패와 깃을 쥐고 춤을 추었다.’라고 한 것은 곧 또한 武舞를 춘 것이다. 그런데 傳에서 오직 文舞를 춘 것만을 말한 것은 악기에 의거해서 말한 것이니, 武舞든 文舞든 모두 방패와 깃을 이용해서 춤을 추고 敵에게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르침을 文으로 한 것이다.
[疏]○傳‘討而’至‘百里’
○傳의 [討而]에서 [百里]까지
○正義曰:‘御之必有道’者, 不恭而往征, 得辭而振旅, 而御之以道.
○正義曰:[御之必有道] 불공했을 때에 가서 정벌하고, 구실삼는 말을 했을 때에 군대를 정돈해서 돌아왔으니, 도리로써 그들을 어거한 것이다.
史記吳起對魏武侯云 “昔三苗氏左洞庭, 右彭蠡, 德義不修, 而禹滅之.” 此言來服, 則是不滅.
≪史記≫에 의하면 吳起가 魏 武侯에게 대답하기를 “옛날 三苗氏는 洞庭이 왼쪽에 있고, 彭蠡가 오른쪽에 있었으나, 德義를 닦지 않아 禹가 멸망시켰습니다.”라고 하였는데, 여기에 ‘와서 복종했다.’라고 말하였으니, 이는 멸망시키지 않은 것이다.
吳起言滅者, 以武侯恃險, 言滅以懼之. 辯士之說, 不必皆依實也.
吳起가 멸망시켰다고 말한 것은 武侯가 험고함을 믿었기 때문에 멸망을 말해서 두렵게 한 것이다. 辯士의 말은 반드시 모두 사실에 의거하지는 않는다.
知‘在荒服之例’者, 以其地驗之爲然. 禹貢五服, 甸‧侯‧綏‧要‧荒. 荒最在外,
[在荒服之例] 그 땅을 가지고 징험해서 그렇다고 여긴 것이다. 〈禹貢〉의 五服은 甸服‧侯服‧綏服‧要服‧荒服인데, 荒服이 가장 밖에 있다.
王畿面五百里, 其外四服, 又每服五百里, 是去京師爲二千五百里.
〈甸服은〉 王畿에서 四面이 面別로 500里요, 그 밖의 4服이 또 服마다 500里이니, 이래서 京師와의 거리가 2,500里가 된다.
역주
역주1 生辭 : 夏僎의 ≪尙書詳解≫에는 ‘生亂’으로 되어 있다.
역주2 國語亦有其事 : ≪國語≫ 〈周語 上〉에 “有刑罰之辟 有攻伐之兵 有征討之備 有威讓之令 有文告之辭”라고 보인다.
역주3 夫以大舜足達用兵之道……固是大聖之遠謀也 : 林之奇는 ≪尙書全解≫에서 “이 말을 사실이라고 믿는다면 이는 舜‧禹‧益의 용병술은 모두 권모술수의 謀慮에서 나온 것인데, 성인이 이런 얕은 수를 쓸 것이라고 어찌 생각이나 했겠는가. 요컨대 苗民이 명을 거역한 것은 다만 昬迷해서 공순하지 못했을 뿐이리라.[信斯言也 則是舜禹益 用師進退 皆出於權譎變詐之謀 何期聖人之淺邪 要之苗民逆命 但是昬迷不恭耳]”라고 하였다.
역주4 (瞽)[勢] : 저본에는 ‘瞽’로 되어 있으나, “宋本에는 ‘瞽’가 ‘勢’로 되어 있으니, 옳다.”라고 한 阮元의 校勘記에 의거하여 ‘勢’로 바로잡았다.
역주5 覆動上天 : 阮元의 校勘記에 “許宗彦은 ‘「覆上動天」이라고 해야 한다.’ 하였다.”라고 하였으나, 역시 해석이 잘 안되니, 誤脫字가 있거나 아니면 衍文인 듯하다.
역주6 (神)[祗] : 저본에는 ‘神’으로 되어 있으나, “살펴보건대 ‘神’은 마땅히 ‘祗’가 되어야 한다.”라고 한 阮元의 校勘記에 의거하여 ‘祗’로 바로잡았다.
역주7 (舜)[受] : 저본에는 ‘舜’으로 되어 있으나, 孔傳의 ‘拜受而然之’에 의거하여 ‘受’로 바로잡았다.
역주8 [○] : 저본에는 ‘○’이 있으나, 福建本‧汲古閣本‧武英殿本에 의거하여 삭제하였다.
역주9 人扞 : ≪春秋公羊傳注疏≫에 “干謂楯也 能爲人扞難 而不使害人”이란 말이 보인다.

상서정의(2) 책은 2019.10.01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18 By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