疏
說文云 “璿, 美玉也.” 玉是大名, 璿是玉之別稱.
璣衡, 俱以玉飾, 但史之立文, 不可以玉璣‧玉衡一指玉體, 一指玉名, 猶左傳云 “
.” 所以變其文.
傳以璿言玉名. 故云“美玉.” 其實玉衡, 亦美玉也.
以璿爲璣, 以玉爲衡, 蓋貴天象也.” 蔡邕云 “玉衡長八尺, 孔徑一寸, 下端望之, 以視星辰.
蓋懸璣以象天而衡望之, 轉璣窺衡, 以知星宿.” 是其說也.
七政, 其政有七, 於璣衡察之, 必在天者, 知七政謂日月與五星也.
木曰歲星, 火曰熒惑星, 土曰鎭星, 金曰太白星, 水曰辰星.
舜旣受終, 乃察璣衡, 是舜察天文, 齊七政, 以審己之受禪, 當天心與否也.
馬融云 “日月星, 皆以璿璣玉衡, 度知其盈縮進退失政所在.
聖人謙讓, 猶不自安, 視璿璣玉衡, 以驗齊日月五星行度, 知其政是與否, 重審己之事也.
蔡邕天文志云 “言天體者, 有三家, 一曰周髀, 二曰宣夜, 三曰渾天.
惟渾天者, 近得其情, 今史所用候臺銅儀, 卽其法也.”
周髀之術, 以爲天似覆盆. 蓋以斗極爲中, 中高而四邊下,
日月旁行遶之, 日近而見之爲晝, 日遠而不見爲夜.
渾天者, 以爲地在其中, 天周其外, 日月初登於天, 後入於地. 晝則日在地上, 夜則日入地下.”
王蕃渾天說曰 “天之形狀, 似鳥卵, 天包地外, 猶卵之
黃, 圓如彈丸.
其術, 以爲天半覆地上, 半在地下, 其天居地上見, 有一百八十二度半强, 地下亦然.
北極, 出地上三十六度, 南極, 入地下亦三十六度而嵩高正當天之中.
極南五十五度, 當嵩高之上, 又其南十
度, 爲夏至之日道, 又其南二十四度, 爲春秋分之日道, 又其南二十四度, 爲冬至之日道, 南下去地三十一度而已, 是夏至日, 北去極六十七度, 春秋分, 去極九十一度, 冬至, 去極一百一十五, 此其大率也.
其南北極, 持其兩端, 其天與日月星宿, 斜而迴轉.”
揚子法言云 “或問渾天, 曰
, 營之, 鮮于妄人, 度之,
中丞象之, 幾乎幾乎, 莫之能違也.”
宣帝時, 司農中丞耿壽昌, 始鑄銅爲之象, 史官施用焉.
蔡邕‧鄭玄‧陸績, 吳時王
, 晉世姜岌‧張衡‧葛洪, 皆論渾天之義, 竝以渾說爲長.
江南宋元嘉
, 皮延宗, 又作是渾天論, 太史丞錢樂, 鑄銅作渾天儀, 傳於齊梁.
疏
○正義曰:傳以旣受終事, 又察璣衡, 方始祭於群神, 是舜察天文, 考齊七政, 知己攝位而當於天心.
祭法云 “有
下者, 祭百神.” 徧祭群神, 是天子事也.
類, 謂攝位事類, 旣知攝當天心, 遂以攝位事類, 告天帝也.
周禮肆師云 “
上帝.” 王制云 “天子將出, 類乎上帝.”
周禮小宗伯云 “天地之大烖, 類社稷則爲位.” 是類之爲祭, 所及者廣.
周禮司服云 “王祀昊天上帝, 則服大裘而冕, 祀五帝, 亦如之.” 是昊天外更有五帝.
鄭玄篤信讖緯, 以爲 “昊天上帝, 謂天皇大帝, 北辰之星也,
五帝, 謂靈威仰等, 太微宮中有五帝座星是也.” 如鄭之言, 天神有六也.
家語云 “季康子問五帝之名, 孔子曰 ‘天有五行, 金‧木‧水‧火‧土.
王肅云 “五行之神, 助天理物者也.” 孔意亦當然矣.
此經惟有祭天, 不言祭地及社稷, 必皆祭之, 但史略文耳.
疏
釋詁云 “禋, 祭也.” 孫炎曰 “禋, 絜敬之祭也.”
周禮大宗伯云 “以禋祀祀昊天上帝, 以
祀日‧月‧星辰, 以
祀司中‧司命‧風師‧雨師.”
鄭云 “禋之言
, 周人尙臭, 煙氣之臭聞者也.” 鄭以禋祀之文, 在燎柴之上. 故以禋爲此解耳.
而洛誥云 “秬鬯二鹵曰明禋.” 又曰 “禋于文王‧武王.” 又曰 “王賓殺禋咸格.”
名曰六宗, 明是所尊祭者有六, 但不知六者爲何神耳.
祭法云 “埋少牢於太昭, 祭時,
於坎壇, 祭寒暑,
王宮, 祭日, 夜明, 祭月, 幽
, 祭星, 雩(禜)[宗], 祭水旱也.”
據此言六宗, 彼祭六神. 故傳以彼六神, 謂此六宗,
必謂彼之所祭是此六宗者, 彼文上有祭天祭地, 下有山谷丘陵, 此六宗之文, 在上帝之下, 山川之上, 二者次第相類, 故知是此六宗.
上不謂天, 下不謂地, 旁不謂四方, 在六者之間, 助陰陽變化, 實一而名六宗矣.”
孔光‧劉歆, 以六宗謂 “乾坤六子水‧火‧雷‧風‧山‧澤也.”
賈逵以爲 “六宗者, 天宗三, 日‧月‧星也, 地宗三, 河‧海‧岱也.”
馬融云 “萬物, 非天不覆, 非地不載, 非春不生, 非夏不長, 非秋不收, 非冬不藏, 此其謂六也.”
鄭玄以六宗言禋, 與祭天同名, 則六者皆是天之神祗, 謂“星‧辰‧司中‧司命‧風師‧雨師. 星謂五緯也, 辰謂日月所會十二次也.
司中‧司命, 文昌第五第四星也, 風師, 箕也, 雨師, 畢也.”
晉初幽州秀才張髦上表云 “臣謂禋于六宗, 祀祖考所尊者六, 三昭‧三穆是也.”
“天宗者, 日月‧星辰‧寒暑之屬也, 地宗, 社稷‧五祀之屬也, 四方之宗, 四時‧五帝之屬.”
司馬彪續漢書云 “安帝元初六年, 立六宗祠於洛陽城西北亥地, 祀比大社.” 魏亦因之.
晉初荀顗定新祀, 以六宗之神, 諸說不同廢之, 摯虞駁之謂 “宜依舊, 近代以來, 皆不立六宗之祠也.”
疏
故知九州之內所有名山‧大川, 五岳‧四瀆之屬, 皆一時望祭之也.
釋山云 “泰山爲東嶽, 華山爲西嶽, 霍山爲南嶽, 恒山爲北嶽, 嵩高山爲中嶽.”
然則四方方有一大山, 天子巡守至其下, 桷考諸侯功德而黜陟之.
釋水云 “江河淮濟爲四瀆, 四瀆者, 發源注海者也.”
鄭云 “四鎭, 山之重大者, 謂揚州之會稽山, 靑州之沂山, 幽州醫無閭山, 冀州之霍山.” 是五岳之外名山也.
周禮職方氏每州云‘其山’‧‘其浸’, 若雍州云 “其川涇汭, 其浸渭洛.” 如此之類, 是四瀆之外大川也.
周禮大司樂云 “凡
者, 一變而致川澤之
, 再變而致山林之
,
三變而致丘陵之
, 四變而致墳衍之
.”
鄭玄大司徒注云 “積石曰山, 竹木曰林, 注瀆曰川, 水鍾曰澤, 土高曰丘, 大阜曰陵, 水崖曰墳, 下平曰衍.”
古之聖賢, 謂祭法所云 ‘在祀典’者, 黃帝‧顓頊‧句龍之類, 皆祭之也.
疏
下云 “班瑞于群后.” 則知輯者, 從群后而斂之.
周禮典瑞云 “公執桓圭, 侯執信圭, 伯執躬圭, 子執穀璧, 男執蒲璧.”
舜以朔日受終於文祖, 又徧祭群神及斂五瑞, 則入月以多日矣.
‘乃日日見四岳及九州牧監’, 舜初攝位, 當發號出令, 日日見之, 與之言也.
更復還五瑞於諸侯者, 此瑞本受於堯, 斂而又還之, 若言舜新付之, 改爲舜臣, 與之正新君之始也.
疏
○정의왈正義曰:순舜은 이미 사양하였으나 허락을 받지 못하자 곧 요堯임금이 선위禪位한 그 이듬해 정월正月 초하루에 요堯임금이 제위帝位를 끝낸 사무를 요堯임금 문조文祖의 사당에서 인수받았다.
비록 요堯임금의 명命을 받았으나 오히려 자신이 편안하지는 못하였다.
또 선璿으로 기璣를 만들고 옥玉으로 형衡을 만든 것은 바로 왕자王者가 천문天文을 바로잡는 기구를 삼기 위해서였다.
이에 다시 이와 같은 선기璿璣와 옥형玉衡을 살펴서 하늘의 일日‧월月‧오성五星의 칠요정七曜政을 제정齊整하였다.
제정함과 제정하지 못함을 관찰하여 제정했으면 선위禪位를 받는 것이 옳은 일이고, 제정하지 못했으면 선위禪位를 받는 것이 잘못된 일임을 가늠하였다.
칠정七政이 모두 제정되었음을 드러내서 자기가 선위를 받는 것이 옳음을 알게 하고 나서 드디어 제왕帝王이 된 일을 실행하여 섭위攝位한 일 따위를 고하기 위한 뜻에서 상제上帝에게 제사를 지내고 호천昊天과 오제五帝에게 제사를 지냈다.
또 육종六宗 등 높고 낮은 신神에게 인제禋祭를 지내고 명산대천名山大川인 오악五岳과 사독四瀆에 망제望祭를 지내고 또 산천山川‧구릉丘陵‧분연墳衍과 옛적 성현聖賢의 여러 신神에게 두루 제사를 지내어 자기가 선위禪位를 받은 것을 고하였다.
고제告祭가 이미 끝나자 곧 공公‧후侯‧백伯‧자子‧남男 5등급의 서옥瑞玉을 거두었다.
서규瑞圭와 서벽瑞璧을 다 거두어놓고서 정월 중에 날마다 사악四岳과 군목群牧을 접견하였다.
접견하는 일이 이미 끝나자 거두어놓은 다섯 가지 서옥瑞玉을 다시 5등급의 여러 제후諸侯에게 돌려주어 그들과 함께 모든 일을 다시 시작하였고, 자기가 요堯임금의 선위禪位를 받아 천자天子의 일을 행한다는 것을 보였다.
疏
○정의왈正義曰:달의 첫째 날을 삭일朔日(초하루)라 이른다.
달마다 모두 초하루가 있으니, 이것이 바로 정월正月 초하루이다.
그러므로 상일上日이라 이르니 한 해의 첫째 일출日出을 말한다.
정현鄭玄은 “제왕帝王이 대代가 바뀌면 으레 정월正月을 고쳤다.
요堯임금은 축월丑月을 정월正月로 삼고, 순舜임금은 자월子月을 정월正月로 삼고, 이때에는 아직 요堯임금의 정월正月을 고치지 못하였다.
즉위卽位해서는 곧 요堯임금의 정월正月을 고쳤다.
그러므로 문체를 달리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선유先儒 왕숙王肅 등은 “오직 은殷나라와 주周나라만이 정월正月을 고쳐서 백성의 시청視聽을 바꾸었다.
하夏나라 이상은 모두 인월寅月을 정월正月로 삼았다.
이 편篇의 두 문체가 같지 않은 것은 사관史官이 말을 다르게 적었을 뿐이다.”라고 하였다.
아래에서 ‘세이월歲二月’이라 하였는데, 전傳에서 “이미 서옥瑞玉을 돌려주고 난 다음 달”이라고 하였으니, 이것을 가지고 인월寅月을 정월正月로 삼은 것으로 여긴다.
‘수종受終’이란 것은 요堯임금이 천자天子가 되었다가 이에 일을 끝내고 순舜에게 넘겨준 것이다.
그러므로 “종終은 요堯임금이 제위帝位를 끝낸 일을 이른다.”는 것을 알았으니, 종終은 요堯임금의 재위가 끝나고 순舜임금의 재위가 시작함을 말한 것이다.
예禮에서 큰일이 있으면 사당에 행하였는데 하물며 이것은 바로 일의 큰 것임에랴.
‘문조文祖’라는 것은 요堯임금의 문덕文德이 있는 조묘祖廟임을 알겠다.
또한 아래에서 이르기를 “돌아와 예조藝祖에 이르렀다.”라고 하였으니, 예藝와 문文은 뜻이 같은 것이다.
문조文祖가 바로 사당[廟]임을 알 수 있는 것은 〈함유일덕咸有一德〉에 이르기를 “7세世의 사당에서 덕德을 관찰할 수 있다.”라고 하였으니, 천자天子의 7묘廟는 그 유래가 구원久遠한 것이었다.
요堯임금의 문조文祖는 아마 요堯임금의 시조始祖의 사당인가 본데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제계帝繫》와 《세본世本》에 모두 이르기를 “황제黃帝는 현효玄囂를 낳고, 현효玄囂는 교극僑極을 낳고, 교극僑極은 제곡帝嚳을 낳고, 제곡帝嚳은 요堯를 낳았다.”라고 하였으니, 곧 거기의 말과 같다면 황제黃帝는 요堯임금의 고조高祖가 되는데,
황제黃帝 이상은 다시 어떤 사람을 이 일곱이란 숫자에 채워서 제사를 지냈는지 알 수 없거니와, 더구나 저 두 책은 꼭 믿을 수 있는 것이 못되니, 요堯임금의 문조文祖는 굳이 말할 것이 못된다.
疏
○정의왈正義曰:[在 察] 《이아爾雅》 〈석고釋詁〉의 글이다.
《설문해자說文解字》에 이르기를 “선璿은 아름다운 옥玉이다.”라고 하였으니, 옥玉은 바로 대명大名(總名)이고, 선璿은 바로 별칭別稱이다.
기璣와 형衡은 모두 옥玉으로 꾸민 것이나 다만 사관史官이 입문立文할 때에 〈다 같이 옥玉자를 써서〉 옥기玉璣와 옥형玉衡을 가지고 하나는 옥체玉體를 가리키고 다른 하나는 옥명玉名을 가리킬 수 없으니 마치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서 말한 경변瓊弁과 옥영玉纓처럼 한 것은 그 문체를 변경했을 뿐이다.
전傳에서는 선璿을 옥玉의 이름으로 말했기 때문에 “아름다운 옥이다.”라고 하였지만, 실은 옥형玉衡도 역시 아름다운 옥玉이다.
《주역周易》 비괘賁卦 단사彖辭에 이르기를 “천문天文을 관찰하여 사시의 변화를 살핀다.”라고 하였다.
해와 달과 별이 하늘에 운행하니 이것이 바로 천문天文이다.
기형璣衡이란 것은, 기璣는 전운轉運하는 것이고, 형衡은 가로로 된 통筩이다.
기璣를 전운轉運하여 움직이게 하고 그 아래에서 형衡으로 바라보니, 이것은 왕자王者가 천문天文을 바로잡는 기구이다.
한대漢代 이래로 혼천의渾天儀라고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마융馬融은 이르기를 “혼천의渾天儀는 회전할 수 있다.
형衡은 가로로 된 통筩이니, 별을 관찰하기 위한 것이다.
선璿으로 기璣를 만들고 옥玉으로 형衡을 만든 것은 대개 천상天象을 귀중하게 한 것이다.”라고 하였고, 채옹蔡邕은 이르기를 “옥형玉衡은 길이가 8척尺이고 구멍의 지름이 1촌寸이니, 하단下端에서 바라보아 별을 관찰하는 것이다.
대개 기璣를 매달아 하늘을 상징하고 형衡으로 바라보며, 기璣를 회전하면서 형衡을 엿보아 별들을 알아낸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이 그 말이다.
칠정七政은 그 정政에 일곱 가지가 있는데, 기형璣衡에서 살피는 것은 반드시 하늘을 살피는 것이니, 칠정七政은 해와 달과 오성五星을 이른 것임을 알았다.
목木은 세성歲星이라 하고, 화火는 형혹성熒惑星이라 하고, 토土는 진성鎭星이라 하고, 금金은 태백성太白星이라 하고, 수水는 진성辰星이라 한다.
《주역周易》 〈계사繫辭〉에 이르기를 “하늘이 상象을 드리워 길흉吉凶을 나타내니, 성인聖人이 그것을 본받는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해와 달과 오성五星에 길흉吉凶의 상象이 있으니 그 변동變動을 인하여 점占을 친다.
그러므로 칠정七政이라 한 것이고, 득실得失은 정政에 연유하기 때문에 정政이라 칭한 것이다.
순舜임금은 이미 끝낸 제위帝位를 받고 이에 기형璣衡을 살폈으니, 이는 순舜임금이 천문天文을 살피고 칠정七政을 제정해서 자기가 선위禪位를 받는 일이 천심天心에 해당했는지 여부를 살핀 것이다.
마융馬融은 이르기를 “해와 달과 별은 모두 선기璿璣와 옥형玉衡으로 그 영축盈縮과 진퇴進退에 실정失政이 있는 바를 살펴서 아는 것이다.
성인聖人은 겸양謙讓하여 오히려 스스로 편안해 하지 못하고 선기璿璣와 옥형玉衡을 보아 해와 달과 오성五星의 행도行度를 징험하고 제정해서 그 정政이 옳은지 여부를 알아보고 거듭 자기의 일을 살핀 것이다.
상천上天의 체體는 알아볼 수 없고 하늘을 헤아리는 일이 경經에 나타난 것은 오직 선기옥형璿璣玉衡의 한 가지 일이 있을 뿐이다.”라고 하였다.
채옹蔡邕의 〈천문지天文志〉에 이르기를 “천체天體를 말한 3가家가 있었으니, 첫째는 주비周髀요, 둘째는 선야宣夜요, 셋째는 혼천渾天이다.
선야宣夜는 전연 사설師說이 없으므로 그 형상이 어떻게 생긴 것인지 알 수 없다.
주비周髀의 술수術數는 갖추어 있으나 천상天象을 고험考驗하면 위실違失한 바가 많다.
오직 혼천渾天이란 것만은 그 실정을 가까이 얻었으니, 지금 사관史官이 사용하는 후대동의候臺銅儀가 바로 그 법法이다.”라고 하였다.
우희虞喜가 이르기를 “선宣은 밝다라는 뜻이요, 야夜는 어둡다라는 뜻이다.
다만 전혀 사설師說이 없으니, 그 형상이 어떻게 생긴 것인지 알 수 없을 뿐이다.
주비周髀의 술수術數는 ‘하늘이 엎어놓은 동이와 같으니, 대개 북두성北斗星과 북극성北極星을 중심으로 삼아 중앙은 높고 사방 가장자리는 낮다.
해와 달이 옆으로 운행하여 도니, 해가 가까워서 보이면 낮이 되고 해가 멀어서 보이지 않으면 밤이 된다.’는 식이고,
혼천渾天은 ‘땅은 그 가운데에 있고 하늘은 그 밖을 둘러 있으니, 해와 달이 처음에는 하늘에 솟아오르고 뒤에는 땅에 들어가기 때문에 낮에는 해가 지상에 있고 밤에는 해가 지하로 들어간다.’는 식이다.”라고 하였다.
왕번王蕃의 혼천설渾天說에 이르기를 “하늘의 형상은 새알과 같아 땅은 가운데에 있고 하늘은 땅 밖을 싸고 있어서 알이 노른자를 싸고 있는 것과 같고 둥글기는 탄환과 같다.
그러므로 혼천의渾天儀라고 하였으니, 그 형체가 혼연함을 말한 것이다.
그 술수術數는 ‘하늘이 반은 지상을 덮고 반은 지하에 있으니, 하늘이 지상에 있어 보이는 것이 182도와 반이 넘고, 지하도 마찬가지이다.
북극北極은 지상으로 나온 것이 36도요, 남극南極은 지하로 들어간 것이 또한 36도인데 숭고嵩高(中岳)가 바로 하늘의 중앙에 해당한다.
극남極南의 55도는 숭고嵩高의 위에 해당하고 또 그 남쪽 13도는 하지夏至의 일도日道(해가 다니는 길)가 되고 또 그 남쪽 24도는 춘분春分과 추분秋分의 일도日道가 되며, 또 그 남쪽 24도는 동지冬至의 일도日道가 되니, 남쪽 아래로 땅과 31도가 떨어져 있을 뿐이면 이는 하짓날이니, 북쪽으로 북극과의 거리가 67도이고 춘분春分과 추분秋分은 북극과의 거리가 91도요 동지冬至는 북극과의 거리가 115도이니, 이것이 그 대략적인 것이다.
그 남극과 북극이 두 끝을 잡고 있고 그 하늘과 해와 달과 별이 비껴서 회전을 한다.’는 식이다.”라고 하였다.
이는 반드시 옛날에 이에 대한 법식이 있었을 터이나 진秦나라를 만나 불타 없어져버렸다.
양자揚子의 《법언法言》에 이르기를 “어떤 이가 혼천渾天에 대해 묻자, 양자揚子가 말하기를 ‘낙하굉落下閎이 처음으로 경영하고 선우망인鮮于妄人이 또 그것을 추산하였으며, 경중승耿中丞(耿壽昌)이 〈구리로 주조하여〉 상象을 만들었는데, 이치에 가까우므로 〈담천자談天者는〉 그것을 어길 수 없다.’라고 했다.” 하였다.
이것은 바로 양웅揚雄의 뜻인데, 혼천渾天에 대한 물음을 빌어서 발설한 것이다.
낙하굉落下閎과 선우망인鮮于妄人은 한漢나라 무제武帝 때 사람이다.
선제宣帝 때 사농중승司農中丞 경수창耿壽昌이 비로소 동銅으로 주조하여 상象을 만드니 사관史官이 그것을 사용하였다.
후한後漢 때 장형張衡은 《영헌靈憲》을 지어 그 형상을 설명하였다.
채옹蔡邕‧정현鄭玄‧육적陸績과 오吳나라 때 왕번王蕃, 진晉나라 때 강급姜岌‧장형張衡‧갈홍葛洪은 모두 혼천渾天의 뜻을 논하고 아울러 혼천渾天의 설說을 최상으로 여겼다.
강남江南 송宋나라의 원가元嘉 연간에 피연종皮延宗이 또 〈혼천론渾天論〉을 짓고, 태사승太史丞 전락錢樂이 주동鑄銅으로 주조하여 혼천의渾天儀를 만들어서 제齊나라와 양梁나라에 전하였다.
북주北周가 강릉江陵을 평정하고 그 기구를 장안長安으로 옮겼는데 지금 태사대太史臺에 보관되어 있다.
형衡은 길이가 8척尺이고, 기璣는 지름이 8척尺에 둥근 둘레가 2장丈 5척尺이 조금 넘는다.
회전하면서 바라보는 데에는 그 법식이 있는 것이다.
疏
○정의왈正義曰:전傳에서 이미 제위帝位를 끝낸 사무를 인수받고 또 기형璣衡을 살피고 나서 비로소 여러 신神에게 제사를 지낸 것으로 다루었으니, 이는 순舜이 천문天文을 관찰하고 칠정七政을 살펴 제정해서 자기의 섭위攝位가 천심天心에 해당했음을 안 것이다.
《예기禮記》 〈제법祭法〉에 이르기를 “천하天下를 가진 자는 백신百神에게 제사를 지낸다.”라고 하였으니, 여러 신神에게 두루 제사를 지내는 것은 바로 천자天子의 일이다.
사肆는 바로 느슨하게 하는 말이니, 이는 앞일로 인하여 뒷일을 행한다.
그러므로 사肆를 수遂(드디어)의 뜻으로 본 것이다.
유類는 섭위攝位한 일 따위를 이르니, 이미 섭위攝位가 천심天心에 해당했음을 알고 드디어 섭위攝位한 일 따위를 가지고 천제天帝에게 고한 것이다.
이 ‘유類’는 아래의 ‘인禋’‧‘망望’과 서로 이어져 있으니 응당 제사 이름이 되어야 할 것이다.
《시경詩經》 〈대아大雅 황의皇矣〉에 이르기를 “이에 유제類祭를 지내고 이에 마제禡祭를 지낸다.”라고 하였다.
《주례周禮》 〈춘관春官 사사肆師〉에 이르기를 “상제上帝에게 유제類祭를 지낸다.”라고 하였고, 《예기禮記》 〈왕제王制〉에 이르기를 “천자天子가 출행하려고 할 때에 상제上帝에게 유제類祭를 지낸다.”라고 하였다.
여기서 말한 ‘유類’는 모두 하늘에 제사 지내는 일이니, 일 따위를 가지고 제사 지냄을 말한 것이다.
《주례周禮》 〈춘관春官 소종백小宗伯〉에 이르기를 “하늘과 땅의 큰 재앙이 있어서 사직社稷이나 종묘宗廟에 유제類祭를 지낼 경우는 제사 지낼 자리를 만든다.”라고 하였으니, 이 유類라는 제사는 쓰이는 범위가 넓었던 것이다.
전傳에서 이르기를 “유類는 섭위攝位한 일 따위를 이른 것이다.”라고 한 것은 섭위攝位한 일을 가지고 고제告祭한 것이다.
《주례周禮》 〈춘관春官 사복司服〉에 이르기를 “왕王이 호천상제昊天上帝에게 제사를 지낼 때에는 대구大裘를 입고 면류관을 쓰며, 오제五帝에게 제사를 지낼 때에도 이와 같이 한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호천昊天 밖에 다시 오제五帝가 있는 것이다.
정현鄭玄은 참위讖緯를 독실히 믿고 “호천상제昊天上帝는 천황대제天皇大帝를 이르니 북신北辰의 별이다.
오제五帝는 영위앙靈威仰 등을 이르니, 태미궁太微宮 안에 있는 오제좌성五帝座星이 바로 그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정현鄭玄의 말과 같다면 천신天神에 여섯 가지가 있는 것이다.
《공자가어孔子家語》에 이르기를 “계강자季康子가 오제五帝의 이름을 물으니, 공자孔子께서 답하시기를 ‘하늘에 오행五行이 있으니 금金‧목木‧수水‧화火‧토土라고 한다.
때를 나누어 화육化育하여 만물을 이루니, 그 신神을 오제五帝라 한다.’고 했다.” 하였다.
왕숙王肅이 이르기를 “오행五行의 신神은 하늘을 도와 사물을 다스린다.”라고 하였으니, 공안국孔安國의 뜻도 응당 그랬을 것이다.
이 경經에서 오직 하늘에 제사 지내는 것만 말하고 땅과 사직社稷에 제사 지내는 일을 말하지 않은 것은 반드시 다 제사를 지냈을 것이나 다만 사관史官이 글을 줄였을 뿐이다.
疏
○정의왈正義曰:《국어國語》에 이르기를 “정성으로 제향을 드리는 것이 인禋이다.”라고 하였다.
《이아爾雅》 〈석고釋詁〉에 이르기를 “인禋은 제사祭祀의 뜻이다.”라고 하고, 손염孫炎이 이르기를 “인禋은 깨끗하고 경건하게 지내는 제사이다.”라고 하였다.
《주례周禮》 〈대종백大宗伯〉에 이르기를 “인사禋祀로써 호천상제昊天上帝에게 제사 지내고, 실시實柴로써 해와 달과 별들에 제사 지내고, 유료槱燎로써 사중司中‧사명司命‧풍사風師‧우사雨師에게 제사 지낸다.”라고 하였다.
정현鄭玄이 이르기를 “인禋은 연煙(연기)을 말하니, 주周나라 사람들은 냄새를 숭상하여 연기의 냄새를 풍기는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정현鄭玄은 ‘인사禋祀로써 제사 지낸다.’는 글이 ‘요시燎柴’의 위에 있기 때문에 인禋을 가지고 이것을 해석했을 뿐이다.
〈낙고洛誥〉에 이르기를 “검은 기장과 울금鬱金으로 빚은 술 두 그릇으로 〈주공周公을 편안하게 하시고〉 밝게 공경한다.[明禋]”라고 하고, 또 “문왕文王과 무왕武王에게 인제禋祭를 지냈다.”고 하고, 또 “왕王의 손님들은 왕이 희생을 잡아 조묘祖廟에 인제禋祭를 지내므로 모두 왔다.”라고 하였다.
경전經傳의 글 중에 이와 같은 것이 많으니 번시燔柴로 제사 지낸 것이 아니다.
인禋은 바로 정성精誠과 혈경絜敬을 이르는 명칭이란 것을 알았다.
종宗은 존尊의 뜻이란 것은 일반적인 풀이이다.
이름을 육종六宗이라 한 것은 분명 높이 제사를 받드는 대상이 여섯이 있었을 터이나 다만 여섯이 어떤 신神인지 알 수 없을 뿐이다.
《예기禮記》 〈제법祭法〉에 이르기를 “소뢰少牢를 태소太昭에 묻는 것은 사시四時에 제사 지내는 것이고, 감단坎壇에서 송영送迎하는 것은 한서寒暑에 제사 지내는 것이고,
왕궁王宮은 해에 제사 지내는 것이고, 야명夜明은 달에 제사 지내는 것이고, 유종幽宗은 별에 제사 지내는 것이고, 우종雩宗은 수한水旱에 제사 지내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여기서는 ‘육종六宗’이라 말하고 저기서는 ‘육신六神’에 제사 지낸다고 한 것에 의거했기 때문에 전傳에서 저 육신六神을 가지고 이 육종六宗을 말한 것이다.
저기의 제사 지내는 바가 바로 이 육종六宗임을 꼭 말한 것은 저 글은 위에는 하늘에 제사 지내고 땅에 제사 지내는 것이 있고, 아래에는 산곡山谷과 구릉丘陵이 있으며, 이 육종六宗의 글은 상제上帝의 아래, 산천山川의 위에 놓여있으니, 두 가지의 경우는 차제가 서로 같기 때문에 바로 이 육종六宗임을 알았던 것이다.
왕숙王肅도 저 글을 인용하여 “육종六宗에 인제禋祭를 지낸 것이 바로 이것을 이른다.”라고 하였다.
정현鄭玄은 저기에 주를 달기를 “사시四時는 음양陰陽의 신神을 이른다.”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음양陰陽‧한서寒暑‧수한水旱에 각각 신神이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육종六宗에 인제禋祭를 지냈다.”고 하였으니, 육종六宗이 상례常禮인 것이다.
예禮에 이에 대한 글이 없으니, 어느 때에 제사를 지내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정현鄭玄은 저것을 기도祈禱하는 제사로 여겼으니, 정현鄭玄의 주注를 이용해서 이 전傳을 해석할 수는 없다.
한대漢代 이래로 육종六宗에 대해 말한 이가 많았다.
구양歐陽 및 대하후大夏侯‧소하후小夏侯는 《상서尙書》를 설명하면서 모두 “제사 지내는 바가 여섯이다.
위로는 하늘을 이르지 않고, 아래로는 땅을 이르지 않고, 곁으로는 사방을 이르지 않고, 여섯 가지의 사이에 있어서 음양陰陽의 변화變化를 도우니, 실은 하나이면서 이름이 육종六宗이다.”라고 하였고,
공광孔光과 유흠劉歆은 육종六宗을 “건곤乾坤의 육자六子인 수水‧화火‧뇌雷‧풍風‧산山‧택澤이다.”라고 말하였고,
가규賈逵는 “육종六宗이란 것은 천종天宗이 셋이니 일日‧월月‧성星이고, 지종地宗이 셋이니 하河‧해海‧대岱이다.”라고 하였고,
마융馬融은 “만물萬物은 하늘이 아니면 덮지 못하고, 땅이 아니면 싣지 못하고, 봄이 아니면 낳지 못하고, 여름이 아니면 기르지 못하고, 가을이 아니면 거두지 못하고, 겨울이 아니면 갈무리하지 못하니, 이것을 여섯이라 이른다.”라고 하였고,
정현鄭玄은, 육종六宗은 인禋을 말하여 제천祭天과 더불어 이름을 같이했으면 여섯 가지는 모두 하늘의 신지神祗이기 때문에 “성星‧신辰‧사중司中‧사명司命‧풍사風師‧우사雨師이니, 성星은 오위五緯를 이르고, 신辰은 해와 달이 모이는 12차次를 이른다.
사중司中과 사명司命은 문창文昌의 제5성星과 제4성星이고, 풍사風師는 기성箕星이고 우사雨師는 필성畢星이다.”라고 하였다.
진晉나라 초기에 유주幽州의 수재秀才 장모張髦는 상표上表하기를 “신臣은 생각하건대 ‘육종六宗에 인사禋祀를 지냈다.’고 한 것은 조고祖考의 높은 분에게 제사를 지낸 것이 여섯이니, 삼소三昭와 삼목三穆이 바로 그것입니다.”라고 하였고,
사마표司馬彪는 또 상표上表하기를 -諸家를 하나하나 힐난한 것과 자기의 뜻을 말한 것이다. -
“천종天宗이란 것은 일월日月‧성신星辰‧한서寒暑의 등속이고, 지종地宗이란 것은 사직社稷‧오사五祀의 등속이고, 사방四方의 종宗은 사시四時‧오제五帝의 등속입니다.”라고 하였다.
오직 왕숙王肅만이 《공자가어孔子家語》의 육종六宗에 의거하여 공안국孔安國과 같다.
각각 그 뜻을 말한 것이니 누가 옳은지는 모르겠다.
사마표司馬彪의 《속한서續漢書》에 이르기를 “안제安帝 원초元初 6년(119)에 육종사六宗祠를 낙양성洛陽城 서북쪽 해지亥地에 건립하고 제사는 태사大社에 견줄 정도로 지냈다.”고 하였는데, 위魏나라도 그대로 따랐다.
진晉나라 초기에 순의荀顗가 새로 사법祀法을 정할 때 육종六宗의 신神에 대해서는 제설諸說이 동일하지 않고 분분하기 때문에 폐지하자, 지우摯虞가 반박하기를 “옛 제도를 따르는 것이 마땅하거늘 근대近代 이래로 모두 육종六宗의 사祠를 건립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疏
○정의왈正義曰:‘망어산천望於山川’은 대충 한 말이다.
그러므로 구주九州의 안에 있는 명산名山‧대천大川과 오악五岳‧사독四瀆의 등속에 모두 일시에 망제望祭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기禮記》 〈왕제王制〉에 이르기를 “명산名山과 대천大川은 봉지封地에 포함시키지 않았다.”라고 하였다.
산山과 천川이 크면 곧 이름이 있는 법이니, 이것은 명名과 대大를 상호적으로 말했을 뿐이다.
《이아爾雅》 〈석산釋山〉에 이르기를 “태산泰山은 동악東嶽이요 화산華山은 서악西嶽이요 곽산霍山은 남악南嶽이요 항산恒山은 북악北嶽이요 숭고산嵩高山은 중악中嶽이다.”라고 하였다.
《백호통白虎通》에 이르기를 “악岳이란 것은 무엇인가?
상고하다라는 뜻이니, 공덕功德을 상고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응소應劭의 《풍속통風俗通》에 이르기를 “악岳이란 것은 공덕功德을 상고하여 퇴출하거나 승진시키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사방에는 각각 하나의 대산大山이 있기 마련이니, 천자天子가 순수巡守하다가 그 아래에 이르면 제후諸侯의 공덕功德을 상고하여 퇴출하거나 승진시킨다.
《이아爾雅》 〈석수釋水〉에 이르기를 “강江‧하河‧회淮‧제濟가 사독四瀆인데, 사독四瀆이란 것은 발원發源하여 바다로 주입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아爾雅》 〈석명釋名〉에 이르기를 “독瀆은 홀로라는 뜻인데, 각각 독자적으로 그 물이 나와서 바다로 들어간다.”라고 하였다.
악岳은 바로 명산名山이고, 독瀆은 바로 대천大川이다.
그러므로 먼저 명산名山과 대천大川을 말하고 또한 악岳과 독瀆을 들어 보였다.
악岳과 독瀆 밖에도 오히려 명산名山과 대천大川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지속之屬’이란 단어를 말해서 모두 포함시킨 것이다.
《주례周禮》 〈춘관春官 대사악大司樂〉에 이르기를 “사진四鎭과 오악五嶽이 무너지면 음악의 연주를 중단하도록 명한다.”라고 하였다.
정현鄭玄은 이르기를 “사진四鎭은 산山의 중대重大한 것이니, 양주揚州의 회계산會稽山과 청주靑州의 기산沂山과 유주幽州의 의무려산醫無閭山과 기주冀州의 곽산霍山을 이른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은 오악五岳 밖의 명산名山이다.
《주례周禮》 〈하관夏官 직방씨職方氏〉에는 매 주州마다 “그 산山[其山]은 어떻고 그 호수[其浸]는 어떻다.”라고 하고서 옹주雍州 같은 경우는 “그 천川은 경수涇水와 예수汭水요, 그 호수는 위수渭水와 낙수洛水이다.”라고 하였으니, 이와 같은 유類가 바로 사독四瀆 밖의 대천大川인 것이다.
‘변우군신徧于群神’이라고 말한 것은 신神은 어디나 있다.
그러므로 여러 신神은 구릉丘陵과 분연墳衍 그리고 옛적의 성현聖賢을 이르니, 모두 제사를 지냈던 것이다.
《주례周禮》 〈대사악大司樂〉에 이르기를 “6대代의 음악은 한 번 변경해서 연주하면 천택川澤의 신기神祇를 이르게 하고, 두 번 변경해서 연주하면 산림山林의 신기神祇를 이르게 하고,
세 번 변경해서 연주하면 구릉丘陵의 신기神祇를 이르게 하고, 네 번 변경해서 연주하면 분연墳衍의 신기神祇를 이르게 했다.”라고 하였다.
정현鄭玄이 《주례周禮》 〈지관地官 대사도大司徒〉에 대한 주注에 이르기를 “적석積石을 산山이라 하고, 죽목竹木을 림林이라 하고, 독瀆으로 주입注入한 것을 천川이라 하고, 물이 모인 곳을 택澤이라 하고, 흙이 높은 곳을 구丘라 하고, 큰 언덕을 능陵이라 하고, 물가 언덕을 분墳이라 하고, 낮고 편평한 곳을 연衍이라 한다.”라고 하였다.
이 전傳에서는 구丘‧능陵‧분墳‧연衍을 열거하였으니, 림林과 택澤도 포함된 것이다.
옛적의 성현聖賢은 《예기禮記》 〈제법祭法〉에 이른바 “사전祀典에 올라있다.”는 것은 황제黃帝‧전욱顓頊‧구룡句龍의 유類이니, 모두 제사를 지낸 것이다.
疏
○정의왈正義曰:[覲 見]‧[后 君] 《이아爾雅》 〈석고釋詁〉의 글이다.
《이아爾雅》 〈석언釋言〉에 이르기를 “집輯은 합合하다라는 뜻이다.”라고 하였으니, 집輯은 바로 합취合聚의 뜻을 가졌다.
해와 달이 다 먹히는 것을 기旣라 이르니 여기서는 기旣를 진盡의 뜻으로 본 것이다.
《이아爾雅》 〈석언釋言〉에 이르기를 “반班은 주다[賦]라는 뜻이다.”라고 하였는데, 손염孫炎은 말하기를 “펴서 주는 것을 이른다.”라고 하였다.
집輯은 바로 염취斂聚의 뜻이고, 반班은 산포散布의 뜻으로 보았기 때문에 환還(돌려주다)이라 한 것이다.
아래에서 이르기를 “서옥瑞玉을 여러 제후諸侯에게 돌려주었다.”라고 하였으니, 집輯은 여러 제후諸侯로부터 거둔 것임을 알았다.
그러므로 “순舜임금이 공公‧후侯‧백伯‧자子‧남男의 서규瑞圭와 서벽瑞璧을 거두었다.”라고 한 것이다.
《주례周禮》 〈춘관春官 전서典瑞〉에 이르기를 “공公은 환규桓圭를 가지고, 후侯는 신규信圭를 가지고, 백伯은 궁규躬圭를 가지고, 자子는 곡벽穀璧을 가지고, 남男은 포벽蒲璧을 가졌다.”라고 하였다.
이 규圭와 벽璧은 5등급의 서옥瑞玉인데, 제후諸侯들이 그것을 가져 왕자王者의 서신瑞信으로 삼았다.
순舜임금은 초하룻날 문조文祖에서 〈요堯임금이〉 끝낸 제위帝位를 받고 또 여러 신神에게 두루 제사를 지내고 따라서 오서五瑞를 거두었으니, 이달(正月) 들어 날수가 많았기 때문이다.
[盡以正月中]서옥瑞玉을 거둔 이후부터 월말月末까지를 이른다.
[乃日日見四岳及九州牧監]순舜이 처음 섭위攝位했을 때에 응당 호령을 발하여 날마다 접견하고 그들과 더불어 말을 나누었을 것임을 짐작한 것이다.
주목州牧이 각각 한 주州의 제후諸侯를 감시했기 때문에 감監이라고 말한 것이다.
다시 오서五瑞를 제후諸侯에게 돌려주었다는 것은 이 서옥瑞玉이 본래 요堯임금에게 받은 것인데, 거두었다가 또 돌려준 것을 마치 순舜임금이 새로 부여하여 순舜임금의 신하로 고쳐 만들고 그들과 더불어 새 임금의 시초를 바로잡는 것처럼 말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