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尙書注疏(3)

상서정의(3)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상서정의(3)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胤征 第四
孔氏 傳 孔穎達 疏
羲和湎淫하여 廢時亂日이어늘
羲氏와 和氏가 지나치게 술에 빠져서 天時를 폐하고 日數를 어지럽히거늘
[傳]羲氏‧和氏 世掌天地四時之官하여 自唐虞至三代 世職不絶이러니
羲氏와 和氏가 대대로 天地와 四時를 맡은 관원이 되어 唐虞로부터 三代에 이르기까지 世職이 끊어지지 않았는데,
承太康之後하여 沈湎於酒 過差非度하여 廢天時하고 亂甲乙이라
太康을 받든 뒤로 술에 빠짐이 과도하여 天時를 폐하고 甲乙(날짜)을 어지럽혔다는 것이다.
胤往征之러니 作胤征이라
胤나라 諸侯가 〈王命을 받고〉 가서 정벌하였더니, 史官이 〈胤征〉을 지었다.
[傳]胤國之君 受王命往征之
胤나라의 임금이 王命을 받고 가서 정벌하였다.
○胤 國名이라
○胤은 나라 이름이다.
胤征
[傳]奉辭罰罪曰征이라
왕명을 받들고 가서 罪를 처벌하는 것을 ‘征’이라고 한다.
[疏]‘羲和’至‘胤征’
書序의 [羲和]에서 [胤征]까지
○正義曰:羲氏‧和氏, 世掌天地四時之官, 今乃沈湎於酒, 過差非度, 廢天時, 亂甲乙, 不以所掌爲意,
○正義曰:羲氏와 和氏가 대대로 天地와 四時를 맡은 관원이 되었는데, 지금 술에 빠짐이 과도하여 天時를 폐하고 甲乙을 어지럽혀 맡은 직무에 마음을 기울이지 않으니,
胤國之侯, 受王命往征之. 史敍其事, 作胤征.
胤나라 임금이 王命을 받고 가서 정벌하였다. 그래서 史官이 그 일을 서술하여 〈胤征〉을 지었다.
[疏]○傳‘羲氏’至‘甲乙’
傳의 [羲氏]에서 [甲乙]까지
○正義曰:‘羲氏‧和氏 世掌天地四時之官’, 堯典所言, 是其事也.
○正義曰:[羲氏和氏 世掌天地四時之官] 〈堯典〉에서 말한 것이 바로 그 일이다.
羲和是重黎之後, 楚語稱堯育重黎之後, 使典天地, 以至於夏商, 是‘自唐虞至三代, 世職不絶’.
羲氏와 和氏는 바로 重黎의 후손인데, ≪國語≫ 〈楚語〉에서 堯임금이 重黎의 후예를 육성하여 하늘과 땅에 관한 일을 맡게 해서 夏나라와 商나라에 이르렀다고 칭하였으니, 이것이 ‘唐虞로부터 三代에 이르기까지 世職이 끊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故此時羲和仍掌時日. 以太康逸豫, 臣亦縱弛. 此承太康之後, 於今仍亦懈惰, 沈湎於酒, 過差非度, 廢天時, 亂甲乙, 是其罪也.
그러므로 이때에 羲氏와 和氏가 그대로 時日에 관한 일을 관장하였다. 太康이 마냥 유일과 안락을 일삼기 때문에 신하들 또한 방종하고 해이해진 것이다. 이는 太康을 받든 뒤로 지금 그대로 또한 게으름을 부리고 술에 빠짐이 과도하여 天時를 폐하고 甲乙을 어지럽혔으니, 이것이 그 죄목이다.
經云 “酒荒于厥邑.” 惟言荒酒, 不言好色, 故訓淫爲過, 言耽酒爲過差也.
經文에 “그 고을에서 술에 빠져 지내자”라고 하여, 오직 술에 빠진 점만 말하고 여색을 좋아한 점은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淫’을 過(지나침)의 뜻으로 풀이하여 술을 탐닉함이 과도함을 말하였다.
聖人作歷數以紀天時, 不存歷數, 是‘廢天時’也. 日以甲乙爲紀, 不知日食, 是‘亂甲乙’也.
聖人이 歷數를 지어 天時를 기록하였는데, 歷數를 보존하지 못하였으니 이 점이 바로 ‘天時를 폐한 것’이요, 날짜는 甲乙을 가지고 기록하는데, 日食을 알지 못하였으니 이 점이 바로 ‘甲乙을 어지럽힌 것’이다.
[疏]○傳‘奉辭罰罪’
傳의 [奉辭罰罪]
○正義曰:奉責讓之辭, 伐不恭之罪, 名之曰征. 征者, 正也, 伐之以正其罪.
○正義曰:꾸짖는 말을 받들어 不恭한 죄를 치는 것을 명명하여 ‘征’이라고 한다. 征은 正의 뜻이니, 쳐서 그 죄를 바로잡는 것이다.
惟仲康 肇位四海하사
〈太康의 아우〉 仲康이 즉위하여 사해를 다스리기 시작할 적에
[傳]羿廢太康하고 而立其弟仲康爲天子
羿가 太康을 폐위하고 그 아우 仲康을 세워 天子로 삼았다.
胤侯 命掌六師러시니
胤나라 임금에게 명하여 六師를 관장하게 했는데,
[傳]仲康命胤侯掌六師하여 爲大司馬
仲康이 胤나라 임금에게 명하여 六師를 관장해서 大司馬가 되게 하였다.
羲和廢厥職하고 酒荒于厥邑한대
羲氏와 和氏가 그 직책을 폐하고 자기 고을에서 술에 빠져 지내자,
[傳]舍其職官하고 還其私邑하여 以酒迷亂하고 不修其業이라
職官을 버리고 私邑으로 돌아가서 술로 정신을 현란하게 하고 그 業을 닦지 않았다.
胤后承王命하여 徂征하니라
胤나라 임금이 왕명을 받들고 가서 그들을 정벌하였다.
[傳]徂 往也 就其私邑往討之
徂는 往의 뜻이니, 그 私邑으로 가서 토벌하였다는 것이다.
[疏]‘惟仲康’至‘徂征’
經의 [惟仲康]에서 [徂征]까지
○正義曰:惟仲康始卽王位, 臨四海, 胤國之侯, 受王命爲大司馬, 掌六師.
○正義曰:仲康이 비로소 王位에 올라 四海에 군림하였고, 胤나라 임금이 王命을 받아 大司馬가 되어 六師를 관장하였다.
於是有羲氏‧和氏, 廢其所掌之職, 縱酒荒迷, 亂於私邑, 胤國之君, 承王命往征之.
이에 羲氏와 和氏가 있어 그 관장한 직무를 폐하고 술에 빠져 私邑에서 정신을 현란하게 하자, 胤나라 임금이 王命을 받들고 가서 정벌하였다.
[疏]○傳‘羿廢’至‘天子’
傳의 [羿廢]에서 [天子]까지
○正義曰:以羿距太康於河, 於時必廢之也. 夏本紀云 “太康崩, 弟仲康立.” 襄四年左傳云 “羿因夏民以代夏政.”
○正義曰:羿가 太康을 河水에서 막았기 때문에 이때에 반드시 폐위시켰을 것이다. ≪史記≫ 〈夏本紀〉에는 “太康이 서거하고 아우 仲康이 즉위했다.”라고 하였고, ≪春秋左氏傳≫ 襄公 4년 조에 “羿가 夏나라 백성을 이용해 夏나라 정권을 대신했다.”라고 하였으니,
則羿於其後, 篡天子之位, 仲康不能殺羿, 必是羿握其權, 知仲康之立, 是羿立之矣,
羿가 그 뒤에 天子의 자리를 찬탈하였으나 仲康이 능히 羿를 죽이지 못한 것은 필시 羿가 그 권력을 잡았기 때문이었을 것이고, 仲康이 왕에 선 것은 바로 羿가 세운 것임을 알았다.
故云 “羿廢太康, 而立其弟仲康爲子.” 計五子之歌, 仲康當是其一, 仲康必賢於太康, 但形勢旣衰, 政由羿耳.
그러므로 “羿가 太康을 폐위하고 그 아우 仲康을 세워 천자를 삼았다.”라고 한 것이다. 〈五子之歌〉를 감안하면 仲康이 응당 그 중 하나를 차지하였을 뿐더러, 仲康이 반드시 太康보다 어질었을 터인데, 다만 형세가 이미 쇠퇴해져서 정사가 羿로 말미암아 행해졌을 뿐이다.
羿在夏世爲一代大賊, 左傳稱羿旣篡位, 寒浞殺之, 羿滅夏后相, 相子少康, 始滅浞復夏政.
羿는 夏나라에 있어서 한 시대의 큰 賊이 된 셈이라, ≪春秋左氏傳≫에서 “羿가 이미 왕위를 찬탈함에 寒浞이 그를 죽였다. 羿는 夏나라 임금 相을 멸하였으며, 相의 아들 少康이 비로소 浞을 멸하고 夏나라를 회복시켰다.”라고 일컬었다.
計羿‧浞相承, 百載, 爲夏亂甚矣.
羿와 浞이 서로 이어온 연수를 계산하면 대략 100년이 되는데, 그 동안 夏나라의 亂이 극심하였다.
而夏本紀云 “太康崩, 其弟仲康立. 仲康崩, 子相立. 相崩, 子少康立.” 都不言羿‧浞之事, 是馬遷之說疎矣.
그런데 ≪史記≫ 〈夏本紀〉에서는 “太康이 서거하니 그 아우 仲康이 즉위하였고, 仲康이 서거하니 아들 相이 즉위하였고, 相이 서거하니 아들 少康이 즉위하였다.”라고만 하고, 羿와 浞의 일은 도통 말하지 않았으니, 이것이 司馬遷의 說이 소략한 점이다.
역주
역주1 (王)[主] : 저본에는 ‘王’으로 되어 있으나, “宋本에는 ‘王’이 ‘主’로 되어 있고, 古本에는 ‘掌主也 主六師爲大司馬也’로 되어 있으니, 살펴보건대 마땅히 이것을 따라야 한다.”라고 한 阮元의 校勘記에 의거하여 ‘主’로 바로잡았다.
역주2 (太)[天] : 저본에는 ‘太’로 되어 있으나, “宋本에는 ‘太’가 ‘天’으로 되어 있으니, 注와 부합한다.”라고 한 阮元의 校勘記에 의거하여 ‘天’으로 바로잡았다.
역주3 (向有)[略爲] : 저본에는 ‘向有’로 되어 있으나, 문의상 ‘略爲’여야 되겠기에 ‘略爲’로 바로잡았다.

상서정의(3) 책은 2019.10.01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18 By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