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尙書注疏(3)

상서정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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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宗肜日 第十五
孔氏 傳 孔穎達 疏
高宗 祭成湯 有飛雉升鼎耳而雊
[傳]耳不聰之異이라
祖己訓諸王이라
[傳]賢臣也諫王이라
作高宗肜日高宗之訓이라
[傳]所以訓也이라
[疏]‘高宗’至‘之訓’
○正義曰:高宗祭其太祖成湯, 於肜祭之日, 有飛雉來升祭之鼎耳而雊鳴,
其臣祖己, 以爲王有失德而致此祥, 遂以道義訓王, 勸王改修德政. 史敍其事, 作高宗肜日‧高宗之訓二篇.
[疏]○傳‘耳不’至‘雊鳴’
○正義曰:經言‘肜日有雊雉’, 不知祭何廟, 鳴何處, 故序言‘祭成湯’‧‘升鼎耳’ 以足.
禘祫與四時之祭, 祭之明日, 皆爲肜祭, 不知此肜是何祭之肜也.
洪範 ‘五事’ 有貌‧言‧視‧聽‧思, 若貌不恭‧言不從‧視不明‧聽不聰‧思不睿, 各有妖異興焉.
雉乃野鳥, 不應入室, 今乃入宗廟之內, 升鼎耳而鳴. 孔以雉鳴在鼎耳, 故以爲‘耳不聰之異’也.
洪範五行傳云 “視之不明, 時則有羽蟲之孽, 聽之不聰, 時則有介蟲之孽, 言之不從, 時則有毛蟲之孽,
貌之不恭, 時則有鱗蟲之孽, 思之不睿, 時則有裸蟲之孽.” 先儒多以此爲羽蟲之孽, 非爲‘耳不聰’也.
漢書五行志 “劉歆以爲鼎三足, 三公象也, 而以耳行. 野鳥居鼎耳, 是小人將居公位, 敗宗廟之祀也.”
鄭云 “鼎, 三公象也, 又用耳行, 雉升鼎耳而鳴, 象視不明, 天意若云當任三公之謀以爲政.”
劉‧鄭雖小異, 其爲羽蟲之孽則同, 與孔意異. 詩云 “雉之朝雊, 尚求其雌.”
說文云 “雊, 雄雉鳴也. 雷始動, 雉乃鳴而其頸.”
[疏]○傳‘所以訓也 亡’
○正義曰:名高宗之訓, 所以訓高宗也. 此二篇俱是祖己之言, 竝是訓王之事. 經云 “乃訓于王.” 此篇亦是訓也.
但所訓事異, 分爲二篇. 標此爲發言之端, 故以‘肜日’爲名. 下篇總諫王之事, 故名之‘訓’, 終始互相明也.
肆命‧徂后, 孔歷其名於伊訓之下, 別爲之傳, 此高宗之訓因序爲傳, 不重出名者, 此以訓王事同, 因解文便作傳, 不爲例也.
高宗肜日
[傳]祭之明日又祭 殷曰肜이요 周曰이라
○繹 字書 作釋이라 爾雅云 “又祭也 周曰繹이요 商曰肜이요 夏曰復胙라하니라
[疏]傳‘祭之’至‘曰繹’
○正義曰:釋天云 “繹, 又祭也. 周曰繹, 商曰肜.” 孫炎曰 “祭之明日尋繹復祭也.” ‘肜’者, 相尋不絕之意.
春秋宣八年六月 “辛巳, 有事於太廟, 壬午, 猶繹.” 穀梁傳曰 “繹者, 祭之旦日之享賓也.” 是肜者, 祭之明日又祭也.
爾雅因繹祭而本之上世, 故先周後商, 此以上代先後, 故與爾雅倒也.
釋天云 “夏曰復胙.” 郭璞云 “未見所出.” 或無此一句, 孔傳不言 ‘夏曰復胙’, 於義非所須, 或本無此事也.
儀禮有司徹 上大夫曰‘’, 與正祭同日. 鄭康成注詩鳧鷖云 “祭天地社稷山川, 五祀皆有繹祭.”
高宗肜日 越有雊雉어늘
[傳]於肜日 有雉異


高宗이 成湯에게 제사 지낼 때에 날아가던 꿩이 〈와서〉 솥귀로 올라가서 울었다.
귀가 밝지 못한 데 대한 이상한 징상이다. 雊는 鳴의 뜻이다.
祖己가 王을 訓諫하였다.
祖己는 어진 신하이니, 道義를 가지고 王을 訓諫하였다.
〈史官이 그 일을 서술하여〉 〈高宗肜日〉과 〈高宗之訓〉을 지었다.
〈두 편은〉 훈계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高宗之訓〉은〉 망실되었다.
書序의 [高宗]에서 [之訓]까지
○正義曰:高宗이 그 太祖인 成湯에게 제사 지내고 〈그 다음 날〉 肜祭를 지낼 때에 날아가던 꿩이 와서 제사 지내는 솥귀에 올라가서 울자,
그 신하인 祖己가 王에게 失德이 있어 이와 같은 괴변[祥]을 불러온 것으로 여기고 드디어 道義를 가지고 王을 訓諫하고 王에게 德政을 改修하도록 권면하였는데. 史官이 그 일을 서술하여 〈高宗肜日〉과 〈高宗之訓〉 두 편을 지었다.
○傳의 [耳不]에서 [雊鳴]까지
○正義曰:經文에서 “肜祭를 지내는 날 꿩이 우는 괴변이 있었다.”라고 말하였으니, 제사는 어떤 사당에서 지냈고 꿩은 어떤 곳에서 울었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書序에서 “成湯에게 제사 지냈다.”‧“솥귀에 올라갔다.”라고 말하여 충분히 알 수 있게 하였다.
禘祭든 祫祭든 四時祭든 제사 지낸 다음 날 모두 肜祭를 지내니, 여기의 肜祭는 어떤 제사의 肜祭인지 알 수 없다.
〈洪範〉 ‘五事’에 貌‧言‧視‧聽‧思가 있어, 만일 용모가 공손하지 못하거나 언어가 이치를 따르지 않거나 보는 것이 밝지 못하거나 듣는 것이 분명하지 못하거나 생각하는 것이 슬기롭지 못하면 각각 요괴한 이변이 일어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꿩은 들새이니 응당 집에 들어올 것이 아닌데 지금 宗廟 안으로 들어와서 솥귀에 올라가 울었다. 孔安國은 꿩이 솥귀에서 울었기 때문에 귀로 듣는 것이 밝지 못해서 생긴 이변으로 여겼다.
≪洪範五行傳≫에 “보는 것이 밝지 못하면 이때는 羽蟲의 妖孼이 있게 되고, 듣는 것이 분명치 못하면 이때는 介蟲의 요얼이 있게 되고, 언어가 이치를 따르지 않으면 이때는 毛蟲의 요얼이 있게 되고,
용모가 공손치 못하면 이때는 鱗蟲의 요얼이 있게 되고, 생각이 슬기롭지 못하면 이때는 裸蟲의 요얼이 있게 된다.”라고 하였다. 先儒들은 대부분 이것을 羽蟲의 요얼로 여겼지, ‘귀로 듣는 것이 밝지 못해서 생긴 요얼로 여기지 않았다.
≪漢書≫ 〈五行志〉에 “劉歆은 ‘솥의 세 발은 三公의 상징이고 귀를 이용해서 다니는 것인데, 들새가 솥귀에 웅거한 것은 바로 소인이 장차 公의 자리에 웅거하여 宗廟의 제사를 패망시킬 징조이다.”라고 하였고,
鄭玄은 “솥은 三公의 상징이고 또 귀를 이용해서 다니는 것인데, 꿩이 솥귀에 올라가서 우는 것은 보는 것이 밝지 못함을 상징하므로 하늘의 뜻이 ‘마땅히 三公의 謀計에 맡겨서 정치를 해야 한다.’고 한 것 같다.”라고 하였으니,
劉歆과 鄭玄은 비록 조금은 다르나 그 羽蟲의 요얼이라고 한 것은 동일하여 孔安國의 뜻과는 다르다. ≪詩經≫ 〈小雅 小弁〉에 “꿩은 아침에 울 때에도 오히려 그 암놈을 찾는다.”라고 하였다.
≪說文解字≫에 “‘雊’는 장끼의 울음이다. 〈正月에 陽氣가 처음 회복되어 땅속에서〉 우레가 처음 움직이면 꿩이 우는데 그 목을 구부리고 운다.”라고 하였다.
○傳의 [所以訓也 亡]
○正義曰:‘高宗之訓’으로 명명한 것은 高宗을 訓諫했기 때문이다. 이 두 편은 모두 祖己의 말이며 아울러 王을 訓諫한 일이다. 經文에 “王에게 訓諫했다.”라고 하였으니, 이 편 역시 訓諫이다.
다만 訓諫한 일이 다르기 때문에 나누어 두 편으로 만들었을 뿐이다. 이를 표방하여 발언의 단서로 삼았기 때문에 ‘肜日’로 명명한 것이다. 下篇은 모두 王을 訓諫한 일이기 때문에 ‘訓’으로 명명하였으니, 시종일관 상호적으로 밝힌 것이다.
〈肆命〉과 〈徂后〉는 孔安國이 그 이름을 〈伊訓〉의 아래에 죽 적어서 별도로 傳을 하였는데, 이 〈高宗之訓〉은 序로 인하여 傳을 하고 거듭 이름을 내지 않은 것은 바로 王을 訓諫한 일이 같기 때문이었으니, 글을 해석함에 따라 곧 傳을 짓고 例를 만들지는 않았던 것이다.
○肜은 제사 지낸 다음 날 다시 제사 지내는 것이니, 殷에서는 ‘肜’이라 하고, 周에서는 ‘繹’이라 하였다.
○繹은 ≪字書≫에 ‘釋’으로 되어 있다. ≪爾雅≫에 “또 제사 지내는 것이니, 周나라에서는 ‘繹’이라 하고, 商나라에서는 ‘肜’이라 하고, 夏나라에서는 ‘復胙’라 했다.”라고 하였다.
傳의 [祭之]에서 [曰繹]까지
○正義曰:≪爾雅≫ 〈釋天〉에 “繹은 또 제사 지내는 것이다. 周나라에서는 ‘繹’이라 하고, 商나라에서는 ‘肜’이라 했다.”라고 하였는데, 孫炎은 “제사 지낸 그 다음 날 연이어서 다시 제사 지내는 것이다.”라고 했으니, ‘肜’이란 것은 서로 이어져 끊어지지 않는 뜻이다.
≪春秋≫ 宣公 8년 6월 조에 “辛巳日(17일)에 太廟(周公의 사당)에서 禘祭를 행하였고, 壬午日(18일)에도 繹祭를 지냈다.”라고 하였는데, ≪春秋穀梁傳≫에 “繹이란 제사 지낸 다음 날 賓을 대접하는 것이다.”고 하였으니, 이 肜이란 제사 지낸 다음 날 또 제사 지내는 것이다.
≪爾雅≫는 繹祭로 인하여 上世 쪽으로 근본을 추구해갔기 때문에 周나라를 먼저, 商나라를 뒤에 적었고, 여기서는 上代의 선후를 따랐기 때문에 ≪爾雅≫와 반대로 적은 것이다.
≪爾雅≫ 〈釋天〉에 또 “夏나라에서는 ‘復胙’라 했다.”라고 하였는데, 郭璞이 “출처를 보지 못했다.”고 하였으니, 혹시 이 1句가 없었기 때문에 孔傳에서 ‘夏曰復胙’라고 말하지 않은 모양이다. 의미상 꼭 있어야 할 것이 아니니, 혹시 본래부터 이런 일이 없었을 수도 있다.
≪儀禮≫ 〈有司徹〉에는 上大夫를 ‘儐尸’라 하고 正祭와 같은 날 행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鄭康成(鄭玄)은 ≪詩經≫ 〈鳧鷖〉에 注를 달기를 “天‧地‧社‧稷‧山‧川에 제사를 지내는데, 5祀에 모두 繹祭가 있었다.”라고 하였다.
高宗이 肜祭를 지내는 날 꿩이 우는 이변이 있거늘
肜祭를 지내는 날에 꿩의 이변이 있었다.


역주
역주1 (訓道)[道訓] : 저본에는 ‘訓道’라고 되어 있으나, “浦鏜이 ‘訓道 2자는 잘못 도치되었거나 以訓 2자가 도치된 듯하다.’고 하였다. 살펴보건대 아래 傳에서 ‘遂以道訓諫王’이라고 하였으니, 여기의 訓道 2자는 잘못 도치된 것이 분명하다.”라고 한 阮元의 校勘記에 의거하여 ‘道訓’으로 바로잡았다.
역주2 (以)[之] : 저본에는 ‘以’로 되어 있으나, 宋刊 單疏本에 의거하여 ‘之’로 바로잡았다.
역주3 (雊)[句] : 저본에는 ‘雊’로 되어 있으나, ≪說文解字≫에 의거하여 ‘句’로 바로잡았다.
역주4 : ≪詩經≫ 〈鳧鷖〉에서 ‘繹’에 대하여 廬陵李氏는 “‘繹’은 앞서 지낸 제사에 이어 제사 지내는 것이다.[繹 尋繹前祭]”라고 하고, 朱子는 “옛날 宗廟의 제사에 尸를 앉혀 神을 의지하게 하고, 제사 지낸 그 다음 날은 그 제사음식을 데워 尸 노릇 한 사람에게 연회를 베풀어 대접했다.[古者宗廟之祭有尸 既祭之明日 則煖其祭食 以燕為尸之人]”라고 하였다. ≪詩傳大全≫
역주5 (文)[又] : 저본에는 ‘文’으로 되어 있으나, 宋刊 單疏本 및 “十行本‧閩本‧監本에는 〈‘又’가〉 ‘文’으로 잘못되어 있다.”라고 한 阮元의 校勘記에 의거하여 ‘又’로 바로잡았다.
역주6 儐尸 : 제사 때 尸가 된 사람을 賓禮로 대접하는 일이다.

상서정의(3) 책은 2019.10.01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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