傳
[傳]地高曰丘라 大水去하니 民下丘하여 居平土하고 就桑蠶하니라
疏
○正義曰:宜桑之土, 旣得桑養蠶矣. 洪水之時, 民居丘
, 於是得下丘陵, 居平土矣.
疏
○正義曰:釋丘云 “非人爲之丘.” 孫炎曰 “地性自然也.” 是‘地高曰丘’也. ‘降丘宅土’與‘旣蠶’連文, 知‘下丘, 居平土, 就桑蠶’也.
計下丘居土, 諸處皆然, 獨於此州言之者, 鄭玄云 “此州寡於山, 而夾
兩大流之間, 遭洪水, 其民尤困.
水害旣除, 於是下丘居土, 以其免於厄, 尤喜, 故記之.”
뽕나무가 잘 자라는 곳에 이미 누에를 칠 수 있게 되었으니, 이에 사람들이 언덕에서 내려와 평지에 산다.
傳
땅이 높은 데를 ‘丘’라 한다. 홍수가 물러가니, 백성들이 언덕을 내려와 평지에 살면서 뽕나무를 얻어 누에를 치게 되었다.
疏
○正義曰:뽕나무가 자라기 알맞은 땅에서 이미 뽕나무를 얻어 누에를 치게 되었다. 홍수가 범람했을 때에 백성들이 언덕 위에서 살다가 이제 丘陵에서 내려와 평지에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疏
○正義曰:≪爾雅≫ 〈釋丘〉에 “사람이 만든 언덕이 아니다.”라고 하였는데, 孫炎이 “地性은 자연한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이래서 ‘땅이 높은 데를 丘라 한다.’라고 한 것이다. ‘降丘宅土’가 ‘旣蠶’과 連文하였기 때문에 “구릉을 내려와 평지에 살면서 뽕나무를 얻어 누에를 쳤다.”라는 점을 안 것이다.
생각하건대, 구릉에서 내려와 평지에 사는 것은 모든 곳이 다 그랬을 터인데, 유독 이 州(兗州)에서만 그 일을 말한 것은 鄭玄이 “이 州는 산이 적은데다 두 大流의 사이에 끼어서 홍수를 만나니, 그 백성들이 더욱 곤액을 당했다.
수해가 이미 제거되자 이에 〈백성들이〉 구릉에서 내려와 평지에 삶으로써 곤액을 면하여 더욱 기뻐했기 때문에 그 일을 기록한 것이다.”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