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尙書注疏(3)

상서정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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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서정의(3)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說命下 第十四
孔氏 傳 孔穎達 疏
王曰 來하라 汝說 台小子 舊學于甘盤이러니
왕께서 말씀하였다. “이리 오라. 너 傅說아! 나 小子는 옛날 甘盤에게 〈先王의 道를〉 배웠는데,
[傳]學先王之道 甘盤 殷賢臣有道德者
先王의 道를 배운 것이다. 甘盤은 殷나라의 賢臣으로 道德을 지닌 자였다.
[疏]‘王曰’至‘甘盤’
經의 [王曰]에서 [甘盤]까지
○正義曰:‘舊學于甘盤’, 謂爲王子時也. 君奭篇周公仰陳殷之賢臣云 “在武丁, 時則有若甘盤.”
○正義曰:[舊學于甘盤] 王子로 있을 때를 이른다. 〈君奭〉篇에서 周公이 殷나라의 어진 신하들에 대해 우러러 진술하기를 “武丁에게는 당시 甘盤 같은 이가 있었다.”라고 하였다.
然則甘盤於高宗之時有大功也. 上篇高宗免喪不言, 卽求傅說, 似得說時無賢臣矣.
그렇다면 甘盤은 高宗 때에 큰 공을 세운 사람이었다. 上篇에서 高宗이 喪을 마치고 나서도 아무 말하지 않다가 곧 傅說을 구하였으니, 傅說을 얻었을 때에는 어진 신하가 없었던 것 같다.
蓋甘盤於小乙之世以爲大臣, 小乙將崩, 受遺輔政, 高宗之初, 得有大功.
아마 甘盤은 小乙의 세대에는 大臣이 되었고, 小乙이 장차 서거하려고 할 때에는 유언을 받아 정사를 보좌하였으며, 高宗의 초기에는 큰 공을 세웠던 듯하다.
及高宗免喪, 甘盤已死, 故君奭傳曰 “高宗卽位, 甘盤佐之, 後有傅說.” 是言傅說之前, 有甘盤也.
高宗이 喪을 마쳤을 때에는 甘盤이 이미 죽었기 때문에 〈君奭〉의 傳에서 “高宗이 즉위함에 甘盤이 보좌하였고, 뒤에 傅說이 있었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傅說의 앞에 甘盤이 있었음을 말한 것이다.
但下句言‘旣乃遯於荒野’, 是學訖乃遁, 非卽位之初從甘盤學也.
다만 下句에서 “이윽고 荒野로 물러가 살았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高宗이 太子가 되기 전에〉 학업을 그만두고 물러간 것이지, 즉위 초에 甘盤에게 배운 것은 아니었다.
旣乃于荒野하며 入宅于河하며
이윽고 〈나는 학업을 중단하고〉 荒野로 물러가 살았고, 黃河의 河中島로 들어가 살았으며,
[傳]旣學而中廢業하고 遁居田野 洲也 其父欲使高宗知民之艱苦 使居民間이라
이윽고 배우다가 중간에 학업을 중단하고 田野로 물러가서 살았다. 河는 洲의 뜻이다. 그 아버지(小乙)가 高宗으로 하여금 백성들의 고생을 알게 하려고 했기 때문에 민간에 살도록 했던 것이다.
[疏]傳‘旣學’至‘民間’
傳의 [旣學]에서 [民間]까지
○正義曰:‘河’是水名, 水不可居, 而云‘入宅於河’, 知在河之洲也.
○正義曰:‘河’는 바로 물 이름인데 물위에서는 살 수 없어서 ‘黃河의 河中島로 들어가 살았으며’라고 하였으니, 황하의 河中島에 있었음을 〈孔安國이〉 알았던 것이다.
釋水云 “水中可居者曰洲.” 初遁田野, 後入河洲, 言其徙居無常也.
≪爾雅≫ 〈釋水〉에 “물 가운데 살 만한 곳을 ‘洲’라 한다.”라고 하였다. 처음에는 田野로 물러가고 뒤에는 황하의 河中島로 들어갔으니, 옮겨 다니며 살아 일정한 거처가 없었음을 말한 것이다.
無逸云 “其在高宗時, 舊勞於外, 爰暨小人.” 言‘其父欲使高宗知民之艱苦, 故使居民間’也.
〈無逸〉에 “高宗 때에는 오랫동안 밖에서 근로하여 小民들과 함께 지냈다.”라고 하였으니, ‘그 아버지가 高宗으로 하여금 백성들의 고생을 알게 하려고 했기 때문에 민간에 살도록 했던 것이다.’라고 말한 것이다.
於時蓋未爲太子. 殷道雖質, 不可旣爲太子, 更得與民雜居.
이때는 아마 太子가 되기 전이었을 것이다. 殷나라의 가치수준이 비록 질박했다 하더라도 이미 太子가 된 뒤에 다시 백성들과 섞여 살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여 曁厥終이라 罔顯호라
황하로부터 亳으로 가서 지금에서야 〈민간에서 사는 것을〉 마쳤기 때문에 나타난 德이 없노라.
[傳]自河往居亳하여 與今其終이라 遂無顯明之德이라
〈학업을 중단하고〉 河로부터 亳으로 가서 살아 지금에서야 〈민간에서 사는 것을〉 마쳤다. 그러므로 마침내 나타난 德이 없다는 것이다.
역주
역주1 : 蔡傳에서는 退의 뜻으로 보았다.
역주2 自河徂亳 : 蘇軾(≪書傳≫)은 “武丁이 太子로 있을 때에 甘盤에게 글을 배웠는데, 武丁이 卽位하자 甘盤이 피해가 荒野에 숨었다. 武丁이 사람을 시켜 찾게 하여 그가 간 곳을 추적하였더니, 황하 가에서 살다가 황하로부터 亳邑으로 갔기 때문에 끝내는 그가 간 곳을 알지 못하였다.……舊說(孔傳)에서는 ‘武丁이 荒野로 피해갔다(물러갔다).’고 하였는데, 武丁이 太子가 되어 피해갈(물러갈), 그럴 이치는 결코 없을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林之奇(≪尙書全解≫)‧呂祖謙(≪增修東萊書說≫) 등은 蘇軾을 따르고, 夏僎(≪尙書詳解≫)‧蔡沈(≪書經集傳≫)‧元代 朱祖義(≪尙書句解≫)‧淸代 毛奇齡(≪經問≫) 등은 孔傳을 따랐다.

상서정의(3) 책은 2019.10.01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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