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尙書注疏(2)

상서정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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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 가까이에 있는 신하들은 〈그 직책을〉 경건히 닦게 하고, 여러 頑愚하고 讒說하는 사람들이 만약 행하는 바가 옳은 일에 있지 않거든
[傳]四近前後左右之臣 勅使敬其職하고 衆頑愚讒說之人 若所行 不在於是而爲非者어든 當察之
사방 가까이에 있는 前‧後‧左‧右의 신하들은 경계하여 그 직책을 경건히 닦게 하고, 여러 頑愚하고 讒說하는 사람들이 만약 행하는 바가 옳은 일에 있지 않고 그른 일일 경우에는 마땅히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하고 撻以記之하며
射侯禮(천자의 大射禮)를 행하여 善惡의 가르침을 밝히고, 회초리로 때려서 잘못을 기억하게 하며,
[傳]當行射侯之禮하여 以明善惡之敎하고 笞撻不是者하여 使記識其過니라
마땅히 射侯禮를 행하여 善惡의 가르침을 밝히고, 옳지 못한 짓을 하는 자를 회초리로 때려서 그 잘못을 기억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書用識哉하여 欲竝生哉
장부에 〈잘못을〉 기재하여 〈뉘우쳐 깨닫게 해서 허물이 없는 사람들과〉 함께 살게 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傳]書識其非하여 欲使改悔하여 與共竝生이라
그 잘못을 장부에 기록하여 그들로 하여금 悔改해서 〈허물이 없는 사람들과〉 함께 살게 하려고 해서라는 것이다.
이니 而颺之니라
樂工은 〈詩를 읊어〉 諫言을 바치니, 그 〈詩의〉 뜻을 시정해서 잘 인도해야 한다.
[傳]工 樂官으로 誦詩以納諫이니 當是正其義而颺道之
工은 樂官으로서 詩를 읊어 諫言을 바치는 일을 관장하니, 마땅히 그 〈詩의〉 뜻을 시정해서 잘 인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格則承之庸之하고 否則威之니라
〈바른 길로〉 나가면 받아들여 등용하고, 그렇지 않으면 〈형벌로써〉 위엄을 보여야 한다.”
[傳]天下人 能至于道 則承用之하여 任以官하고 不從敎 則以刑威之
천하의 사람들 중에 능히 바른 길로 나가는 자가 있으면 그를 받아들여 등용해서 벼슬을 맡기고,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 자가 있으면 형벌로써 위엄을 보인다는 것이다.
[疏]‘帝曰臣’至‘威之’
經의 [帝曰臣]에서 [威之]까지
○正義曰:帝以禹然己言, 又說須臣之事. “作我股肱耳目, -言己動作視聽, 皆由臣也.-
○正義曰:帝舜은 禹가 자기의 말을 옳게 여겼기 때문에 또 신하에게 의지하는 일을 다음과 같이 말한 것이다. “〈신하는〉 나의 팔과 다리와 귀와 눈의 역할을 하고 있으니, -자기의 동작과 視聽을 모두 신하에게 의지한다는 점을 말한 것이다.-
我欲助我所有之人, 使之家給人足, 汝當翼贊我也. 我欲布陳智力於天下四方, 爲立治之功, 汝等當與我爲之.
내가 나의 소유한 백성들을 도와 그들로 하여금 가호가 불어나고 인구가 늘어나게 하려고 하거든 너는 마땅히 나를 도와야 한다. 내가 천하 사방에 智力을 펴서 治政의 공을 세우려고 하거든 너희들은 마땅히 나와 함께 그 일을 해야 한다.
我欲觀示君臣上下以古人衣服之法象, 其日‧月‧星辰‧山‧龍‧華蟲, 作會合五采而畫之. 又畫山‧龍‧華蟲於宗廟彝罇.
내가 君臣과 上下에게 옛사람이 입은 의복의 법상을 보이기 위하여 해와 달과 별, 산과 용과 華蟲을 다섯 가지 채색으로 그림을 그리고, 또 산과 용과 華蟲을 宗廟의 彝罇에 그려 넣으며,
其藻‧火‧粉‧米‧黼‧黻於絺葛而刺繡, 以五種之彩明施於五色, 制作衣服, 汝當爲我明其差等而制度之.
藻와 火와 粉과 米와 黼와 黻의 무늬를 葛布에 수를 놓아 다섯 종류의 채색을 다섯 가지 색깔〈의 옷감에〉 선명하게 입혀서 의복을 제작하려고 하거든 너는 마땅히 나를 위하여 그 차등을 밝혀서 제도화해야 한다.
我欲聞知六律, 和五聲, 播之於八音, 以此音樂察其政治與忽怠者, 其樂音又以出納五德之言, 汝當爲我聽審之.
내가 六律을 듣고 알아서 五聲과 조화시켜 八音에 전파하고, 이 음악을 가지고 다스려짐과 태만함을 살피려고 하며, 그 樂音으로 또 五德의 말을 출납하려고 하거든 너는 마땅히 나를 위하여 듣고 살펴야 한다.
我有違道, 汝當以義輔成我. 汝無得知我違非而對面從我, 退而後更有言云我不可輔也.”
내가 도를 어기는 일이 있거든 너는 마땅히 義로써 나를 보필하여 〈바로잡아〉 성취시켜야 하니, 너는 나의 非違를 알고도 면전에서는 나를 따르고 물러난 뒤에는 다시 말을 하여 ‘나는 보필할 수 없다.’고 하지 말도록 하라.”
[疏]旣言其須臣之力, 乃總勅之, “敬其職事哉, 汝在我前後左右四旁隣近之臣也.
이미 신하들의 힘에 의지하겠다고 말하고 나서 곧 총괄적으로 경계하기를 “그 職事를 경건히 닦게 해야 한다. 너희는 나의 前後‧左右 사방 가까운 곳에 있는 신하들이다.
其衆類頑愚讒說之人, 若有所行不在於是而爲非者, 汝當察之以法, 行射侯之禮, 知其善惡以明別之.
여러 완악하고 어리석고 참소하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만일 행하는 바가 옳은 일에 있지 않고 그른 일일 경우에는 너희는 마땅히 법으로 살펴야 하고, 射侯禮를 행하여 그들의 善惡을 알아내어 밝게 구별하도록 하라.
行有不是者, 又撻其身以記之. 書其過者以以識. 所以撻之書之者, 冀其改悔, 欲與竝生活哉.
행동에 옳지 못한 짓을 하는 자가 있거든 또 그의 몸을 회초리로 때려서 〈그 잘못을〉 기억하게 해야 하고, 〈장부에〉 잘못을 기재하여 〈그 잘못을〉 기억하게 해야 하니, 회초리로 때리고 〈장부에〉 기재하는 목적은 그들이 悔改해서 함께 생활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工樂之官以納諫言於上, 當是正其義而顯揚之, 使我自知得失也.”
樂을 맡은 관원은 위에 諫言을 바치는 일을 관장하니, 마땅히 그 〈詩의〉 뜻을 시정하여 顯揚해서 나로 하여금 득실을 스스로 알게 해야 한다.”라고 하였다.
又總言御下之法, “天下之人有能至於道者, 則當承受而進用之, 當任以官也.
또 총괄적으로 아랫사람을 어거하는 법을 말하기를 “천하의 사람들 중에 능히 바른 길로 나가는 자가 있으면 마땅히 받아들여 등용해서 벼슬을 맡겨야 한다.
不從敎者, 則以刑罰威之, 當罪其身也. 此等皆汝臣之所爲.”
그리고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 자가 있으면 형벌로 위엄을 보여서 몸에 죄주어야 한다. 이런 일들은 모두 너희 신하들이 해야 할 몫이다.”라고 하였다.
[疏]○傳‘言大體若身’
○傳의 [言大體若身]
○正義曰:君爲元首, 臣爲股肱耳目, 大體如一身也. 足行手取, 耳聽目視,
○正義曰:임금은 머리가 되고 신하는 股肱과 耳目이 되니, 〈임금과 신하의 관계는〉 大體로 一身과 같다. 발은 다니고 손은 〈물건을〉 취하며 귀는 듣고 눈은 보니,
身雖百體, 四者爲大, 故擧以爲言. 鄭玄云 “動作視聽, 皆由臣也.”
몸이 비록 百體라 하더라도 네 가지가 중요하기 때문에 그것을 들어서 말하였다. 鄭玄은 “동작하고 보고 듣는 일을 모두 신하에게 의지한다.”라고 하였다.
[疏]○傳‘左右’至‘成我’
○傳의 [左右]에서 [成我]까지
○正義曰:釋詁云 “左‧右‧助, 也.” 同訓爲(慮)[勴], 是左右得爲助也.
○正義曰:≪爾雅≫ 〈釋詁〉에 “左‧右‧助는 勴(돕다)의 뜻이다.”라고 하였다. 다같이 勴의 뜻이기 때문에 左右가 助의 뜻이 될 수 있는 것이다.
立君所以牧人, 人之自營生産, 人君當助救之. 論語稱孔子適衛, 欲先富民而後敎之, 故云 “助我所有之民, 欲富而敎之也.”
임금을 세우는 것은 백성을 牧養하기 위해서이니, 백성이 스스로 생산을 경영하거든 임금은 응당 그들을 도와주어야 한다. ≪論語≫ 〈子路〉에 孔子께서 衛나라로 가셨을 때에 먼저 백성을 부유하게 한 뒤에 가르치고자 해야 한다고 칭하였기 때문에 “내가 소유한 백성들을 도와서 부유하게 만들고서 가르치려고 한다.”고 한 것이다.
君子施敎, 本爲養人, 故先云助人, 擧其重者. 以其爲人事重, 當須翼成, 故言‘汝翼.’ 次顯君施敎化, 須臣爲之, 故言‘汝爲’.
君子가 가르침을 베푸는 것은 본래 백성을 양육하기 위한 것이므로 먼저 백성을 돕는 일을 말하였으니, 중대한 일을 든 것이다. 백성을 다스리는 일이 중대하니 마땅히 도움의 손길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너는 나를 도우라.”고 말한 것이다. 그 다음은 임금이 교화를 베풀 때 신하가 그 일을 해주어야 함을 드러내야 하기 때문에 “너는 〈그 일을〉 해주라.”고 한 것이다.
次明衣服上下, 標顯尊卑, 故云‘汝明’. 次云六律‧五聲, 故云‘汝聽’. 各隨事立文, 其實不異.
그 다음은 衣服의 上下를 밝혀 尊卑를 나타내야 하기 때문에 “너는 밝히라.”고 한 것이다. 그 다음은 六律과 五聲을 말했기 때문에 “너는 들어보라.”고 한 것이다. 각각 일에 따라 글을 적었지만, 그 실제는 다르지 않다.
[疏]○傳‘布力’至‘爲之’
○傳의 [布力]에서 [爲之]까지
○正義曰:詩云 “四方于宣.” 論語云 “陳力就列.” 是布政用力, 故言“布力立治之功, 汝群臣當爲之.”
○正義曰:≪詩經≫ 〈大雅 崧高〉에 “〈덕택을〉 사방에 베풀도다.”라 하고, ≪論語≫ 〈季氏〉에 “능력을 펴서 지위에 나아가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정사를 펴고 재능을 쓴 것이다. 그러므로 “智力을 펴서 治政의 功을 세우려고 하거든 너희 여러 신하들이 당연히 해야 한다.”라고 하였다.
[疏]○傳‘欲觀’至‘服制’
○傳의 [欲觀]에서 [服制]까지
○正義曰:‘觀示法象之服制’者, 謂欲申明古人法象之衣服, 垂示在下, 使觀之也.
○正義曰:[觀示法象之服制] 옛사람의 法象의 衣服을 거듭 밝혀서 아래에 있는 사람들에게 보여주어 그들로 하여금 살펴보게 하고자 한다는 점을 이른 것이다.
辭云 “黃帝‧堯‧舜, 垂衣裳而天下治.” 象物制服, 蓋因黃帝以還, 未知何代而具彩章. 舜言己欲觀古, 知在舜之前耳.
≪周易≫ 〈繫辭傳 下〉에 “黃帝‧堯‧舜은 衣裳을 드리우고 가만히 앉아 있어도 천하가 다스려졌다.”라고 하였으니, 物形을 본받아 의복을 제작함은 아마 黃帝 이후일 것이나 어느 시대에 채색 문장을 구비했는지는 모르겠다. 舜임금이 자기가 옛 제도를 보고 싶다고 말하였으니, 舜임금 이전에 〈의복제도가 이미〉 있었던 것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疏]○傳‘日月’至‘旌旗’
○傳의 [日月]에서 [旌旗]까지
○正義曰:桓二年左傳云 “三辰旂旗, 昭其明也.” 三辰, 謂此日‧月‧星也, 故‘日月星爲三辰’, 辰卽時也.
○正義曰:≪春秋≫ 桓公 2년 조의 ≪左氏傳≫에 “三辰을 그린 기는 〈하늘의〉 밝음을 상징한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三辰은 여기의 日‧月‧星을 이른다. 그러므로 日‧月‧星이 三辰이라고 하였으니, 辰은 곧 時의 뜻이다.
三者皆是示人時節, 故竝稱辰焉. 傳言此者, 以辰在星下, 總上三事爲辰, 辰非別爲物也.
세 가지(해‧달‧별)는 모두 사람에게 시절을 보여주기 때문에 아울러 ‘辰’이라고 칭한 것이다. 孔傳에서 이것을 말할 때 辰을 星 아래에 놓은 것은 위의 세 가지 일을 총괄해서 辰이라고 한 것이지 辰이 별도의 사물이 되는 것은 아니다.
周禮大宗伯云 “祀日‧月‧星辰.” 鄭玄云 “星謂也, 辰謂日月所會十二次也.”
≪周禮≫ 〈大宗伯〉에 “實柴로 해와 달과 별에 제사 지낸다.”라고 하였는데, 鄭玄은 “星은 다섯 緯星을 이르고, 辰은 해와 달이 만나는 열두 座次를 이른다.”라고 하였다.
星‧辰異者, 彼鄭以徧祭天之諸神, 十二次亦當祭之, 故令辰與星別.
星과 辰이 달라지게 된 것은 저 鄭玄이 하늘의 여러 神에게 두루 제사 지내고 열두 座次에도 응당 제사를 지내야 한다고 했기 때문에 辰을 星과 구별되게 하였다.
此云畫之於衣, 日月合宿之辰, 非有形容可畫. 且左傳云 “三辰, 卽日‧月‧星也.”
여기서 “옷에 그림을 그린다.”라고 하였으나, 해와 달이 만나는 座次인 辰은 형용하여 그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또 ≪春秋左氏傳≫ 〈杜預의 注〉에 “三辰은 곧 해와 달과 별이다.”라고 하였고,
周禮“司常掌” 惟日月爲常, 不言畫星, 蓋太常之上, 又畫星也.
≪周禮≫ 〈春官 宗伯 司常〉에 “司常은 아홉 깃발의 物名을 관장한다.”라고 하면서 오직 해와 달만을 그린 것을 常이라고 하였을 뿐 별을 그렸다고는 말하지 않았으니, 아마 太常의 위에 또 별을 그렸을 것이다.
穆天子傳稱天子葬盛姬, 畫日月七星, 蓋畫北斗也. 草木雖皆有華, 而草華爲美, 故云‘華象草華’.
≪穆天子傳≫에 天子가 盛姬를 장사지낼 때에 해와 달과 7星을 그렸다고 칭하였으니, 아마 北斗를 그렸던 모양이다. 풀과 나무에는 모두 꽃이 있으나 풀꽃이 아름답기 때문에 “華는 풀꽃을 상징한다.”라고 한 것이다.
蟲, 雉也. 周禮司服有鷩冕, 鷩則雉焉, 雉五色, 象草華也. 月令五時皆云其蟲, 蟲是鳥獸之總名也.
蟲은 꿩이다. ≪周禮≫ 〈春官 宗伯 司服〉에 ‘鷩冕’이 있으니, 鷩이 바로 꿩인데, 꿩의 다섯 가지 색깔은 풀꽃을 상징한다. ≪禮記≫ 〈月令〉에서 ‘다섯 시절’에 모두 그에 해당한 蟲을 말하였으니, 蟲은 새와 짐승의 總稱이다.
下云‘作服汝明’. 知畫三辰‧山‧龍‧華蟲於衣服也.
아래에서 “옷을 만들려 하거든 너는 〈그 大小와 尊卑의 차등을〉 밝혀주며”라고 하였으니, 三辰과 山과 龍과 華蟲을 衣服에 그렸음을 안 것이다.
[疏]又言‘旌旗’者, 左傳言‘三辰旂旗’. 周禮司常云‘日月爲常’. 王者禮有沿革, 後因於前, 故知舜時三辰亦畫之於旌旗也.
또 ‘旌旗’라고 말한 것은 ≪春秋左氏傳≫에 “三辰을 그린 기”라 하고, ≪周禮≫ 〈春官 宗伯 司常〉에 “해와 달을 그린 것을 常이라 한다.”라고 하였다. 王者는 禮에 沿革함이 있으니, 후대에는 전대의 禮를 답습하였기 때문에 舜임금 때에도 三辰을 旌旗에 그렸다는 점을 안 것이다.
下傳云‘天子服日月而下’, 則三辰畫之於衣服, 又畫於旌旗也. 周禮司服云 “享先王則袞冕.”
아래 孔傳에서 “天子의 옷은 日‧月 이하를 모두 그린다.”라고 하였으니, 三辰을 옷에 그리고, 또 깃발에도 그렸을 것이다. ≪周禮≫ 〈司服〉에 “先王에게 제사 지낼 때에는 袞冕을 착용한다.”라고 하였다.
袞者, 卷也, 言龍首卷然. 以袞爲名, 則所畫自龍已下, 無日月星也.
袞은 卷의 뜻이니, 龍이 머리를 숙인 것을 말한다. 袞으로 이름을 하였다면 그림을 그린 것이 龍 이하이니, 해와 달과 별은 없었을 것이다.
郊特牲云 “祭之日, 王被袞, 以象天也.” 又曰 “龍章而設日月, 以象天也.”
≪禮記≫ 〈郊特牲〉에 “제삿날에는 王이 〈해와 달, 별과 별자리 무늬가 있는〉 袞冕을 착용하여 하늘을 상징한다.”라 하고, 또 “용의 무늬에 해와 달을 그려 하늘을 상징한다.”라고 하였다.
鄭玄云 “謂有日月星辰之章, 設日月畫於衣服旌旗也.” 據此, 記文袞冕之服, 亦畫日月.
鄭玄은 “해와 달과 별과 별자리의 무늬가 있음을 이르니, 해와 달을 베풀어 옷과 깃발에 그렸다.”라고 하였다. 이 ≪禮記≫의 글에 의거하면 袞冕의 옷에도 해와 달을 그렸던 것이다.
鄭注禮記, 言郊特牲所云‘謂魯禮也’. 要其文稱王被服袞冕, 非魯事也. 或當二代, 天子衣上亦畫三辰, 自龍章爲首, 而使袞統名耳.
鄭玄은 ≪禮記≫에 주를 달면서 〈郊特牲〉에서 말한 “魯나라의 禮를 이른다.”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그 글에 “王이 袞冕을 입었다.”라고 칭한 것을 살펴보면 魯나라의 일이 아니다. 혹시 二代 적에 天子의 옷에도 三辰을 그리고 용의 무늬가 으뜸이라 하여 袞으로 통칭한 것인 듯하다.
禮文殘缺, 不可得詳. 但如孔解, 舜時天子之衣畫日月耳. 鄭玄亦以爲然.
그러나 禮文이 殘缺되어 자상하게 상고할 수 없다. 다만 孔安國의 풀이대로라면 舜임금 때에는 天子의 옷에 해와 달을 그렸을 것이다. 鄭玄도 그렇게 여겼다.
王肅以爲“舜時三辰卽畫於旌旗, 不在衣也. 天子山‧龍‧華蟲耳.”
王肅은 “舜임금 때에는 三辰을 곧 깃발에 그리고 옷에는 그리지 않았다. 天子의 옷에는 산과 용과 華蟲만 그렸을 뿐이다.”라고 하였다.
[疏]○傳‘會五’至‘爲飾’
○傳의 [會五]에서 [爲飾]까지
○正義曰:會者, 合聚之名. 下云 “以五彩彰施於五色, 作服.” 知會謂五色也.
○正義曰:會는 한데 합하여 모으는 것을 이르는 명칭이다. 아래에 “다섯 가지 채색을 다섯 가지 색깔〈의 옷감에〉 선명하게 입혀 옷을 만들려 한다.”라고 하였으니, 會가 다섯 가지 색깔을 말했다는 점을 안 것이다.
禮衣畫而裳繡, 五色備謂之繡, 知畫亦備五色, 故云‘以五彩成此畫焉’, 謂畫之於衣.
禮에 衣에는 그림을 그리고 裳에는 수를 놓고, 다섯 가지 색깔이 갖추어진 것을 繡라 이르니, 그림에도 다섯 가지 색깔을 갖추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다섯 가지 채색으로 이 그림을 이루었다.’라고 한 것은 옷에 그림을 그린 것을 이른다.
‘宗彝’라는 글은 ‘作會’의 아래를 이어받았기 때문에 “宗廟의 彝樽에도 산‧용‧華蟲으로 꾸몄다.”라고 한 것이다. 해와 달과 별로 꾸미지 않았다는 점을 안 것은 孔安國이 三辰의 존귀함은 응당 器物에 베풀어서는 안 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周禮有山罍‧龍勺‧鷄彝‧鳥彝, 以類言之, 知彝樽以山‧龍‧華蟲爲飾, 亦畫之以爲飾也.
≪周禮≫에 山罍‧龍勺‧鷄彝‧鳥彝라는 것들이 있으니, 그 類例로 말하면 彝樽은 산과 용과 華蟲으로 꾸밈을 하되 또한 그림으로 그려서 꾸밈을 한 것을 안 것이다.
周禮彝器所云犧‧象‧鷄‧鳥者, 鄭玄皆爲畫飾, 與孔意同也. 周禮彝器無山‧龍‧華蟲爲飾者, 帝王革易, 所尙不同, 故有異也.
≪周禮≫ 〈彝器〉에서 말한 犧‧象‧鷄‧鳥를 鄭玄은 모두 그림으로 꾸민 것으로 여겼으니, 孔安國의 생각과 같다. ≪周禮≫ 〈彝器〉에 산과 용과 華蟲으로 꾸밈이 없는 것은 帝王이 개혁할 때 숭상한 것이 동일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점이 있는 것이다.
[疏]○傳‘藻水’至‘曰繡’
○傳의 [藻水]에서 [曰繡]까지
○正義曰:詩云 “魚在在藻.” 是藻爲水草. 草類多矣, 獨取此草者, 謂此草有文故也.
○正義曰:≪詩經≫ 〈小雅 魚藻〉에 “물고기가 마름풀에 있다.[魚在在藻]”라고 하였는데, 이 藻는 물에서 자라는 풀이다. 풀의 종류가 많은데도 유독 이 풀을 취한 것은 이 풀에 무늬가 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火爲火字’, 謂刺繡爲火字也. 考工記云 “火以圜.” 鄭司農云 “爲圜形似火也.” 鄭玄云 “形如半環.”
[火爲火字] 刺繡로 ‘火’字를 만들었음을 이른 것이다. ≪周禮≫ 〈考工記〉에 “불은 둥그스름하게 나타낸다.”라고 하였는데, 鄭司農(鄭衆)은 “원형이 불과 같음을 이른다.”라 하였고, 鄭玄은 “형상이 半環과 같다.”라고 하였다.
然記是後人所作, 何必能得其眞. 今之服章繡爲火字者, 如孔所說也.
그러나 〈考工記〉는 후세 사람이 지은 것인데 어떻게 꼭 참뜻을 터득했다고 할 수 있겠는가. 지금의 옷에 ‘火’字를 수놓는 것은 孔安國이 말한 바와 같다.
‘粉若粟氷’者, 粉之在粟, 其狀如氷.
[粉若粟氷] 가루가 좁쌀에 있는 그 형태가 마치 얼음과 같은 것이다.
‘米若聚米’者, 刺繡爲文, 類聚米形也.
[米若聚米] 刺繡로 무늬를 놓은 것이 쌀을 모아놓은 형상과 비슷한 것이다.
‘黼若斧形’, 考工記云 “白與黑謂之黼.” 釋器云 “斧謂之黼.” 孫炎云 “黼文如斧形.” 蓋半白半黑, 似斧刃白而身黑.
[黼若斧形] 〈考工記〉에 “흰색과 검은색을 ‘黼’라 이른다.”라 하였고, ≪爾雅≫ 〈釋器〉에 “斧를 黼라 이른다.”라고 하였는데, 孫炎이 “黼의 무늬는 도끼 형상과 같다.”라고 하였으니 아마 반은 희고 반은 검은 것이 마치 도끼의 날은 희고 몸통은 검은 것과 같은 것이다.
‘黻謂兩己相背’, 謂刺繡爲己字, 兩己字相背也. 考工記云 ‘黑與靑謂之黻.’ 刺繡爲兩己字, 以靑黑線繡也.
[黻謂兩己相背] 刺繡로 ‘己’字를 놓되 두 己字가 서로 등진 것을 이른다. 〈考工記〉에 “검은색과 푸른색〈으로 선을 두르고 수를 놓은 것〉을 ‘黻’이라 이른다.”라고 하였는데, 刺繡로 두 ‘己’字를 놓되, 푸른색과 검은색으로 선을 두르고 수를 놓은 것이다.
詩葛覃云 “爲絺爲綌.” 是絺用葛也. 玉藻云 “浴用二巾, 上絺下綌.”
≪詩經≫ 〈周南 葛覃〉에 “정세한 갈포를 만들고 거친 갈포를 만들도다.”라고 하였으니, 이 정세한 갈포는 칡을 사용한다. ≪禮記≫ 〈玉藻〉에는 “목욕할 때엔 수건 두 장을 사용하는데 몸의 상체는 정세한 갈포로 만든 수건을 쓰고, 하체는 거친 갈포로 만든 수건을 쓴다.”라 하였고,
曲禮云 “爲天子削瓜者, 副之, 巾以絺, 爲國君者, 華之, 巾以綌.” 皆以絺貴而綌賤, 是絺精而綌麤, 故“葛之精者曰絺.”
〈曲禮〉에는 “天子를 위하여 참외를 깎는 사람은 〈넷으로〉 쪼개고 〈가로로 자른 다음〉 정세한 葛布로 덮어서 올리고, 國君을 위하여 〈참외를 깎는 사람은 반으로〉 쪼개고 〈가로로 자른 다음〉 거친 갈포로 덮어서 올린다.”라고 하였으니, 모두 정세한 것을 귀하게 여기고 거친 것을 천하게 여겼다. 여기서는 絺가 정세한 것이고 綌이 거친 것이기 때문에 “갈포 가운데 정세한 것을 絺라 한다.”라고 한 것이다.
[疏]‘五色備謂之繡’, 考工記文也. 計此所陳, 皆述祭服, 祭服玄纁爲之.
[五色備謂之繡] ≪周禮≫ 〈考工記〉의 글이다. 여기에 진열된 것들을 살펴보면, 모두 祭服에 대한 기술이다. 祭服은 검붉은 비단으로 만들었다.
後代無用絺者, 蓋於時仍質, 暑月染絺爲纁而繡之, 以爲祭服. 孔以‘華象草華蟲雉’, 則合華蟲爲一.
後代에 정세한 갈포를 쓰지 않은 것은 아마 당시에 그대로 질박함을 유지하면서 더운 철에 정세한 갈포를 물들여 검붉은 색으로 만들고 거기에 수를 놓아서 祭服을 만들었던 모양이다. 孔安國은 ‘華는 풀꽃을 상징하고 蟲은 꿩이다.’라고 하였으니, 華와 蟲을 합하여 하나로 만든 것이다.
周禮鄭玄注亦然, 則以日‧月‧星辰‧山‧龍‧華蟲六章畫於衣也, 藻‧火‧粉‧米‧黼‧黻六章繡於裳也.
≪周禮≫에 단 鄭玄의 注도 그렇게 하였으니, 日‧月‧星辰‧山‧龍‧華蟲 6章을 衣에 그리고, 藻‧火‧粉‧米‧黼‧黻 6章을 裳에 수놓은 것으로 여겼다.
天之大數, 不過十二, 故王者製作, 皆以十二象天也. 顧氏取先儒等說,
하늘의 大數는 12에 불과하기 때문에 王者의 제작은 모두 12를 가지고 하늘을 상징하였다. 顧氏(顧彪)는 先儒들의 說을 취하여
以爲“日月星取其照臨, 山取能興雲雨, 龍取變化無方, 華取文章, 雉取耿介.”
“해와 달과 별은 그 照臨을 취한 것이고, 산은 능히 雲雨를 일으킴을 취한 것이고, 용은 변화무쌍함을 취한 것이고, 꽃은 무늬를 취한 것이고, 꿩은 耿介(굳게 지조를 지킴)를 취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顧氏雖以華蟲爲二, 其取象則同. 又云 “藻取有文, 火取炎上, 粉取絜白, 米取能養, 黼取能斷, 黻取善惡相背.”
顧氏가 비록 華와 蟲을 둘로 여겼으나 그 象을 취함은 같았다. 또 “藻는 무늬가 있음을 취한 것이고, 火는 불꽃이 올라감을 취한 것이고, 粉은 결백함을 취한 것이고, 米는 능히 양육함을 취한 것이고, 黼는 능히 결단함을 취한 것이고, 黻은 善과 惡이 서로 등진 점을 취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疏]鄭玄云 “會讀爲繪. 宗彝, 謂宗廟之鬱鬯樽也. 故虞夏以上, 蓋取虎彝蜼彝而已. 粉米, 白米也.
鄭玄은 “會는 繪로 읽어야 한다. 宗彝는 宗廟의 鬱鬯樽을 이른다. 그러므로 虞나라와 夏나라 이상은 아마 虎彝와 蜼彝를 취했을 뿐이다. 粉米는 白米이다.
絺讀爲黹, 黹, 紩也. 自日月至黼黻, 凡十二章, 天子以飾祭服. 凡畫者爲繪, 刺者爲繡.
絺는 黹로 읽어야 하니, 黹는 紩의 뜻이다. ‘日月’로부터 ‘黼黻’에 이르기까지 모두 12章(무늬)이니 天子가 그것으로 祭服을 꾸민다. 일반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을 ‘繪’라 하고, 수를 놓는 것을 ‘繡’라고 한다.
此繡與繪各有六, 衣用繪, 裳用繡. 至周而變之, 以三辰爲旂旗, 謂龍爲袞, 宗彝爲毳, 或損益上下, 更其等差.”
이 繡와 繪에는 각각 여섯 가지씩 있으니, 衣에는 그림을 그리고, 裳에는 수를 놓는다. 周나라에 와서 변경하여 三辰으로 깃발을 만들었는가 하면, 龍을 ‘袞’이라 하고 宗彝를 ‘毳’라고 하였으며, 더러는 덜어내기도 하고 보태기도 하고 올리기도 하고 내리기도 하여 그 등차를 변경하였다.”라고 하였다.
鄭意以華蟲爲一, 粉米爲一, 加宗彝謂虎蜼也. 周禮宗廟彝器有虎彝‧蜼彝, 故以宗彝爲虎蜼也.
鄭玄의 생각은 華와 蟲을 하나로 여기고, 粉과 米를 하나로 여겼으며, 宗廟의 彝樽인 ‘虎彝와 蜼彝’라고 이르는 것을 보태었다. ≪周禮≫ 宗廟의 彝器에 虎彝와 蜼彝가 있기 때문에 宗彝를 虎彝와 蜼彝라고 한 것이다.
此經所云凡十二章, 日也‧月也‧星也‧山也‧龍也‧華蟲也, 六者畫以作繪, 施於衣也.
이 經文에서 말한 12章 중에 日‧月‧星‧山‧龍‧華蟲 여섯 가지는 그림으로 그려서 衣에 베풀고,
宗彝也‧藻也‧火也‧粉米也‧黼也‧黻也, 此六者紩以爲繡, 施之於裳也.
宗彝‧藻‧火‧粉米‧黼‧黻 여섯 가지는 꿰매어 수를 놓아 裳에 베푼다.
鄭玄云 “至周而變易之, 損益上下, 更其等差.” 周禮司服之注, 具引此文, 乃云 “此古天子冕服十二章也.
鄭玄은 “周나라에 와서 변역하여 덜어내기도 하고 보태기도 하고 올리기도 하고 내리기도 하여 그 등차를 변경했다.”라고 하였는데, ≪周禮≫ 〈春官 宗伯 司服〉의 注에서 이 글을 모두 인용하고 이에 이르기를 “이것은 옛날 天子의 冕服 12章이다.
王者相變, 至周而以日‧月‧星畫於旌旗. 冕服九章, 登龍於山, 登火於宗彝, 尊其神明也.
王者는 서로 변역하였고, 周나라에 와서는 해와 달과 별을 깃발에 그렸다. 冕服 9章은 龍을 山보다 올리고 火를 宗彝보다 올려서 그 神明을 높였다.
九章, 初一曰龍, 次二曰山, 次三曰華蟲, 次四曰火, 次五曰宗彝, 皆畫以爲繢,
9章은 첫째는 龍, 둘째는 山, 셋째는 華蟲, 넷째는 火, 다섯째는 宗彝인데 모두 그려서 무늬를 만들고,
次六曰藻, 次七曰粉米, 次八曰黼, 次九曰黻, 以絺爲繡. 則袞之衣五章, 裳四章, 凡九也.
여섯째는 藻, 일곱째는 粉米, 여덟째는 黼, 아홉째는 黻인데, 精細한 葛布에 수를 놓았다. 袞冕服은 衣 5章과 裳 4章으로 모두 9章이다.
鷩畫以雉, 謂華蟲也. 其衣三章, 裳四章, 凡七也. 毳畫虎蜼, 謂宗彝也. 其衣三章, 裳二章, 凡五也.”
鷩冕服에는 꿩을 그리니 華蟲을 이른다. 〈별면복은〉 衣 3章과 裳 4章으로 모두 7章이다. 毳冕服에는 범과 원숭이를 그리니 宗彝를 이른다. 그 〈취면복은〉 衣 3章과 裳 2章으로 모두 5章이다.”라고 하였으니,
是鄭以冕服之名, 皆取章首爲義, 袞冕九章, 以龍爲首, 龍首卷然, 故以袞爲名.
鄭玄이 冕服의 이름을 가지고 모두 章의 머리를 취하여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袞冕 9章은 龍을 으뜸으로 삼았는데, 龍이 머리를 숙였기 때문에 ‘袞’으로 이름을 한 것이다.
鷩冕七章, 華蟲爲首, 華蟲卽鷩雉也. 毳冕五章, 虎蜼爲首, 虎蜼毛淺, 毳是亂毛, 故以毳爲名.
鷩冕 7章은 華蟲을 으뜸으로 삼았는데, 華蟲은 곧 꿩이다. 毳冕 5章은 범과 원숭이를 으뜸으로 삼았는데, 범과 원숭이는 털이 짧고 毳는 바로 헝클어진 털이기 때문에 毳로 이름을 한 것이다.
如鄭此解, 配文甚便, 於絺繡之義, 總爲消帖, 但解宗彝爲虎蜼, 取理太廻. 未知所說 誰得經旨.
鄭玄의 이 풀이와 같다면 문채를 배분한 것이 매우 편리하고 수를 놓는 뜻에 있어서도 모두 소상하고 친절한데, 다만 宗彝를 범과 원숭이로 풀이하여 이치를 취한 것은 너무도 우회적이다. 설명한 것 중에 누가 經文의 뜻을 제대로 터득하였는지 모르겠다.
[疏]○傳‘天子’至‘制之’
○傳의 [天子]에서 [制之]까지
○正義曰:此言“作服, 汝明.” 故傳辨其等差. 天子服日月而下十二章, 諸侯自龍袞而下至黼黻八章,
○正義曰:여기서 “옷을 만들려 하거든 너는 〈그 大小와 尊卑의 차등을〉 밝혀주라.”고 말했기 때문에 孔傳에서 그 차등을 변별한 것이다. 天子의 옷은 ‘日月’ 이하 12章이고, 諸侯의 옷은 ‘龍袞’ 이하부터 ‘黼黻’까지 8章인데,
再言而下, 明天子‧諸侯皆至黼黻也. 士服藻火二章, 大夫加粉米四章.
두 번 ‘而下’라고 말한 것은 天子와 諸侯의 옷이 모두 ‘黼黻’까지라는 점을 밝히기 위한 것이다. 士의 옷은 藻와 火 2章이고, 大夫의 옷은 粉과 米를 더한 4章이다.
孔注上篇五服, 謂“天子‧諸侯‧卿‧大夫‧士”, 則卿與大夫不同, 當加之以黼黻爲六章.
孔安國이 上篇의 ‘五服’에 주를 달기를 “〈五服은〉 天子‧諸侯‧卿‧大夫‧士〈의 옷〉이다.”라고 하였으니, 卿은 大夫와 같지 않기 때문에 응당 黼와 黻을 더한 6章으로 하였다.
孔略而不言, 孔意蓋以周禮制諸侯有三等之服, 此諸侯同八章者, 上古樸質, 諸侯俱南面之尊, 故合三爲一等.
孔傳에서 생략하고 말하지 않았으니, 孔安國의 생각에는 아마 ≪周禮≫에서 諸侯의 옷을 제정할 때에는 세 등급의 옷을 정해 두었으나 여기에서 諸侯를 다같이 8章으로 한 것은 상고시대엔 〈풍속이〉 질박했을 뿐더러 諸侯들은 모두 南面하는 尊位이기 때문에 세 등급을 합해서 한 등급으로 했다고 여긴 것일 것이다.
且禮諸侯多同爲一等, 故雜記云 “, 諸侯七虞.” 左傳云 “天子七月而葬, 諸侯五月而葬.”是也.
또 ≪禮記≫에서 諸侯는 대부분 같은 한 등급이기 때문에 〈雜記〉에 “天子는 아홉 번 虞祭를 지내고, 諸侯는 일곱 번 虞祭를 지낸다.”라 하고, ≪春秋左氏傳≫ 隱公 원년 조에 “天子는 일곱 달 만에 장사지내고, 諸侯는 다섯 달 만에 장사지낸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孔以此經上句日‧月‧星辰‧山‧龍‧華蟲尊者在上, 下句藻‧火‧粉‧米‧黼‧黻尊者在下, 黼黻尊於粉米, 粉米尊於藻火, 故從上以尊卑差之.
孔安國은 이 經文의 上句의 日‧月‧星辰‧山‧龍‧華蟲은 존귀한 것이 앞에 있고, 下句의 藻‧火‧粉‧米‧黼‧黻은 존귀한 것이 뒤에 있으니, 黼와 黻은 粉과 米보다 높고, 粉과 米는 藻와 火보다 높기 때문에 위로부터 尊卑를 가지고 차등을 정한 것이다.
士服藻火, 大夫加以粉米, 竝藻火爲四章. 馬融不見孔傳, 其注亦以爲然, 以古有此言, 相傳爲說也.
士의 옷은 藻와 火를 그리고, 大夫의 옷은 粉과 米를 더해서 藻와 火를 아울러 4章이다. 馬融은 孔傳을 보지 못했으나 그 注에 또한 그렇다고 한 것은 예전에 이런 말이 있어서 서로 전하여 〈저마다 자신의〉 설로 삼았기 때문이다.
蓋以衣在上爲陽, 陽統於上, 故所尊在先. 裳在下爲陰, 陰統於下, 故所重在後.
대개 衣는 위에 있어 陽이 되고 陽은 위에서 통솔하기 때문에 존귀한 것이 앞에 있고, 裳은 아래 있어 陰이 되고 陰은 아래에서 통솔하기 때문에 소중한 것이 뒤에 있다.
詩稱‘玄袞及黼’, 顧命云‘麻冕黼裳’, 當以黼爲裳, 故首擧黼以言其事, 如孔說也.
≪詩經≫ 〈小雅 采菽〉에 “玄袞과 黼로다.”라 하고, ≪書經≫ 〈顧命〉에 ‘麻冕과 黼裳 차림으로’라고 하였으니, 응당 黼를 가지고 裳을 삼아야 한다. 그러므로 첫머리에서 黼를 들어 그 일을 말하기를 마치 孔安國의 말처럼 한 것이다.
天子‧諸侯, 下至黼黻, 大夫粉米兼服藻火, 是‘上得兼下’也. 士不得服粉米, 大夫不得服黼黻, 是‘下不得僭上’也.
天子와 諸侯는 아래로 黼와 黻에 이르고, 大夫는 粉과 米에 藻와 火를 겸해서 입었으니, 이것이 “윗사람은 아랫사람〈의 문장〉을 겸할 수 있다.”란 것이다. 士는 粉과 米를 입지 못하고, 大夫는 黼와 黻을 입지 못하니, 이것이 “아랫사람은 윗사람〈의 문장〉을 참람할 수 없다.”란 것이다.
[疏]訓彰爲明, 以五種之彩, 明施於五色, 作尊卑之服, 汝當分明制之, 令其勿使僭濫也.
彰을 明의 뜻으로 풀이해서 다섯 종류의 채색을 다섯 가지 색깔〈의 옷감에〉 선명하게 입혀 尊卑를 〈드러내는〉 옷을 만들려 하거든 너는 〈그 大小‧尊卑의 차등을〉 밝혀 제도화하여 그들로 하여금 참람하지 말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鄭玄云 “性曰采, 施曰色.” 以本性施於繒帛, 故云‘以五采施於五色’也.
鄭玄은 “성질을 采라 하고 입힌 것을 色이라 한다.”라고 하였으니, 본래의 성질을 비단에 베풀기 때문에 “다섯 가지 채색을 다섯 가지 색깔〈의 옷감에〉 입힌다.”라고 한 것이다.
鄭云 “作服者, 此十二章爲五服, 天子備有焉. 公自山龍而下, 侯伯自華蟲而下, 子男自藻火而下, 卿大夫自粉米而下.” 亦是以意說也.
鄭玄은 “옷을 만들 경우 이 12章으로 다섯 가지 복식을 만들어 天子가 갖춰두었다. 公은 山과 龍으로부터 이하를 가지고, 侯와 伯은 華蟲으로부터 이하를 가지고, 子와 男은 藻와 火로부터 이하를 가지고, 卿과 大夫는 粉과 米 이하를 가지고 만든다.”라고 하였으니, 또한 뜻으로 말한 것이다.
此云‘作服’, 推據衣服, 所以經有‘宗彝’, 及孔云‘旌旗亦以山‧龍‧華蟲爲飾’者, 但此雖以服爲主,
여기서 ‘作服’이라고 한 것은 의복을 미루어 근거한 것인데, 經文에 ‘宗彝’란 것이 있고, 孔安國이 “旌旗에도 山‧龍‧華蟲으로 꾸몄다.”라고 한 것은, 단지 여기서는 비록 옷을 위주로 하였지만,
上旣云‘古人之象’, 則法象分在器物, 皆悉明之, 非止衣服而已. 旌旗器物, 皆是彩飾, 被服以明尊卑, 故總云‘作服’以結之.
위에서 이미 ‘옛사람의 法象’이라고 하였으니, 法象은 器物에 나누어져 있으므로 모두 밝히고 의복에만 국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旌旗와 器物은 모두 채색으로 꾸민 것이지만, 옷을 입어서 尊卑를 드러내기 때문에 총괄하여 ‘作服’이라 해서 매듭을 지은 것이다.
[疏]○傳‘言欲’至‘審之’
○傳의 [言欲]에서 [審之]까지
○正義曰:此經大意, 令臣審聽樂音, 察世之治否以報君也. 金‧石‧絲‧竹‧匏‧土‧革‧木, 八物各出其音, 謂之八音.
○正義曰:이 經文의 大意는 신하로 하여금 음악 소리를 살펴 듣고 세상의 다스려짐과 다스려지지 않음을 살펴서 임금에게 보고하도록 하는 것이다. 金‧石‧絲‧竹‧匏‧土‧革‧木의 여덟 기물이 각각 그 소리를 내니, 이것을 ‘八音’이라 이른다.
八音之聲, 皆有淸濁, 聖人差之以爲五品. 宮‧商‧角‧徵‧羽, 謂之五聲.
八音의 소리에는 모두 淸音과 濁音이 있기 때문에 聖人이 차등해서 5品을 만들었다. 宮‧商‧角‧徵‧羽를 ‘五聲’이라 이른다.
五聲高下, 各有所準則, 聖人制爲六律, 與五聲相均, 作樂者, 以律均聲, 聲從器出.
五聲의 높낮이에는 각각 준칙이 있기 때문에 聖人이 六律을 제정하여 五聲과 서로 균형을 맞추어놓았고, 樂을 제작하는 자가 律로 소리를 고르게 하니 소리가 악기에서 흘러나왔다.
帝言我欲以六律和彼五聲八音, 以此樂之音聲, 察世之治否. 詩序云 “治世之音安以樂, 其政和, 亂世之音怨以怒, 其政乖.”
帝舜은 “나는 六律을 가지고 저 五聲과 八音을 조화시켜서 이 樂의 음성을 가지고 세상의 다스려짐과 다스려지지 않음을 살피려고 한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詩序〉에는 “治世의 음악이 편안하고 즐거운 것은 그 정사가 화평하기 때문이고, 亂世의 음악이 원망하고 노여운 것은 그 정사가 괴리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此則聽聲知政之道也. 言今聽作樂, 若其音安樂和平, 則時政辨治而修理也,
이것은 음악 소리를 듣고 정사를 알아보는 방법이다. 말하자면 지금 음악 소리를 들었을 때 만일 그 음악 소리가 편안하고 즐겁고 화평하면 時政이 잘 다스려지고 있다는 증거이고,
若其音怨怒乖離, 則時政忽慢而怠惰也, 是用樂之聲音, 察天下治理及忽怠者也.
만일 그 음악 소리가 원망하고 노여워하고 괴리되면 時政이 忽慢하고 怠惰하다는 증거이니, 음악 소리를 가지고 天下의 다스려짐과 태만함을 살핀다는 것이다.
知其治理, 則保以修之, 知其忽怠, 則改以修之, 此治理忽怠, 人君所願聞也.
그 정사가 잘 다스려진다는 것을 알면 보존해서 닦게 되고 그 정사가 태만하다는 것을 알면 고쳐서 닦게 되므로 다스려짐과 태만함은 임금이 듣기 원하는 것이다.
又樂之感人, 使和易調暢, 若樂云合度, 則言必得理.
또한 음악은 사람을 감동시켜 화평하고 창명하게 하기 때문에 만일 음악 소리가 법도에 맞으면 말이 반드시 이치를 얻는다.
以此樂音, 出納仁義禮智信五德之言, 乃君之發言, 合彼五德, 施之於人, 可以成其敎化, 是出五言也.
이와 같은 음악 소리로 仁‧義‧禮‧智‧信 五德의 말을 출납하여야 이에 임금이 하는 말이 저 五德에 합하여 사람에게 베풀면 그 교화를 이룰 수 있으니, 이것은 五言을 내는 것이요,
人之五言, 合彼五德, 歸之於君, 可以成諷諫, 是納五言也. 君言可以利民, 民言可以益君, 是言之善惡, 由樂音而知也.
사람의 五言이 저 五德에 합하여 임금에게 돌아가면 諷諫을 이룰 수 있으니, 이것은 五言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임금의 말은 백성을 이롭게 할 수 있고 백성의 말은 임금을 유익하게 할 수 있으니, 말의 善惡은 음악 소리로 말미암아 알 수 있다.
此言之善惡, 亦人君之所願聞也. 政之理忽, 言之善惡, 皆是上所願聞,
이 말의 善惡은 또한 임금이 듣기 원하는 것이다. 정사의 다스려짐과 태만함, 말의 선함과 악함은 모두 윗사람이 듣기 원하는 것이니,
欲令察知以告己, 得守善而改惡, 故帝令臣, 汝當爲我聽審之也.
살펴 알아서 자기에게 보고하게 하여 선한 것은 지키고 악한 것은 고치고자 하였다. 그러므로 帝舜이 신하에게 “너는 마땅히 나를 위하여 들어 살피도록 하라.”고 명령한 것이다.
[疏]六律‧六呂, 當有十二, 惟言‘六律’者, 鄭玄云 “擧陽, 陰從可知也.”
六律과 六呂는 응당 12律이 있어야 하는데도 오직 ‘六律’만을 말한 것은 鄭玄이 말한 “陽을 들면 陰은 따라서 알 수 있다.”란 것이다.
傳以‘五言’爲‘五德之言’者, 漢書律歷志稱“五聲播於五常, 則角爲仁, 商爲義, 徵爲禮, 羽爲智, 宮爲信.”
孔傳에서 五言을 五德의 말이라 한 것은 ≪漢書≫ 〈律曆志〉에 “五聲을 五常에 분배하면 角은 仁이 되고, 商은 義가 되고, 徵는 禮가 되고, 羽는 智가 되고, 宮은 信이 된다.”라고 칭하였으니,
志之所稱, 必有舊說也. 言五聲與五德相協, 此論樂事而云‘出納五言’, 知是出納五德之言也.
〈律曆志〉에서 칭한 바는 반드시 舊說이 있었을 것이다. 五聲과 五德이 서로 화협함을 말한 것인데, 여기에서 음악에 대한 일을 논하면서 “다섯 가지 말로 출납하려 한다.”고 하였으니, 이것으로 五德의 말을 출납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樂音和, 則五德之言, 得其理, 音不和, 則五德之言, 違其度, 故亦以樂音, 察五言也. 帝之此言, 自說臣之大法.
음악 소리가 화평하면 五德의 말이 그 이치를 얻고 음악 소리가 화평하지 않으면 五德의 말이 그 법도를 어기기 때문에 또한 음악 소리로 五言을 살폈던 것이다. 帝舜의 이 말은 스스로 신하의 大法을 설명한 것이다.
於舜所聽, 使聽韶樂也. 襄二十九年左傳吳季札見舞韶樂而歎曰 “德至矣哉. 大矣, 如天之無不幬也, 如地之無不載也.”
舜임금에게 듣게 한 것은 韶樂을 듣게 한 것이다. ≪春秋≫ 襄公 29년 조의 ≪左氏傳≫에 吳나라 季札이 韶樂으로 춤추는 것을 보고 탄미하기를 “德이 지극하도다. 위대함이 하늘이 〈한 가지도〉 덮어주지 않음이 없고 땅이 〈한 가지도〉 실어주지 않음이 없는 것과 같도다.”라고 하였다.
然則韶樂盡善盡美, 有理無忽, 而竝言‘忽’者, 韶樂自美, 取樂採人歌爲曲, 若怠忽, 則音辭亦有焉, 故常使聽察之也.
그렇다면 韶樂은 진선진미한 것이어서 다스려짐은 있고 태만함은 없었을 터인데, 태만함을 아울러 말한 것은 韶樂이 본래 아름답지만, 樂을 취할 때에는 사람들의 노래를 채집하여 곡을 만드니 만일 태만함이 있다면 음조와 가사에도 〈태만함이〉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항상 들어 살피도록 한 것이다.
[疏]○傳‘四近’至‘察之’
○傳의 [四近]에서 [察之]까지
○正義曰:冏命云 “惟予一人無良, 實賴左右前後有位之士, 匡其不及.” 知‘四近’謂前後左右四者近君之臣, 勅使敬其職也.
○正義曰:〈冏命〉에 “나 한 사람이 어질지 못하여 실로 좌우‧전후에 官位를 가진 賢士들이 나의 미급한 점을 바로잡아 주는 것에 의지하고자 하노라.”고 하였으니, 四近은 前‧後‧左‧右 사방에서 임금을 가까이 모시는 신하들을 이르고, 〈欽은〉 삼가 그 직책을 경건히 닦게 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更欲告以此下之辭, 故勅之. 衆頑愚讒說之人, 若有所行不在於是而爲非者, 當察之, 知其非, 乃撻之書之.
다시 이 아래의 말을 가지고 고하려고 하였기 때문에 경계한 것이다. 여러 頑愚하고 讒說하는 사람들이 행하는 바가 옳은 일에 있지 않고 그른 일일 경우에는 마땅히 살펴서 그른 것을 알아내면 회초리로 때리고 〈장부에〉 기록하는 것이다. 이것은 이하와 더불어 단서를 꺼낸 것이다.
此與以下發端也. ‘庶頑讒說’, 謂朝廷之臣. ‘格則承之’, 乃謂天下之人. 舜之朝廷, 當無讒說之人, 故設爲大法, 戒愼之耳.
여러 頑愚하고 讒說하는 사람은 朝廷의 신하를 이르고, 바른 길로 나가면 받아들이는 것은 바로 천하 사람을 이른다. 舜임금의 조정에는 당연히 讒說하는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大法을 가설하여 경계한 것일 뿐이다.
四近之臣, 普謂近君之臣耳, 無常人也. 鄭玄以四近爲左輔右弼, 前疑後,
사방 가까이에서 모시는 신하는 보편적으로 임금을 가까이에서 모시는 신하를 이를 뿐, 일정한 사람은 없다. 鄭玄은 四近을 左輔‧右弼과 前疑‧後丞으로 여겼으나
惟伏生書傳有此言, 文王世子云 “有師保, 有疑(承)[丞].” 以外經傳無此官也.
오직 伏生의 ≪尙書大傳≫에만 이 말이 있고, ≪禮記≫ 〈文王世子〉에는 “師와 保를 두고, 疑와 丞을 둔다.”라고 했을 뿐 이 밖의 經傳에는 이런 벼슬이 없다.
[疏]○傳‘當行’至‘其過’
○傳의 [當行]에서 [其過]까지
○正義曰:禮, 射皆張侯射之, 知‘侯以明之’, ‘當行射侯之禮, 以明善惡之敎’. 射禮有序賓以賢, 詢衆擇善之義, 是可以明善惡也.
○正義曰:禮에 활쏘기를 할 때에는 모두 과녁을 설치하고 활을 쏘는 것으로 되어 있으므로 “〈經文의〉 ‘侯以明之’가 ‘마땅히 射侯禮를 행하여 善惡의 가르침을 밝힌 것’임을 알 수 있다. 射禮에 어짊을 가지고 賓의 서열을 정하고 여러 사람에게 물어서 착한 사람을 택하는 뜻이 있으니, 이것이 바로 善惡을 밝힐 수 있는 것이다.
‘笞撻不是者 使記識其過’ 謂過輕者也, 大罪刑殺之矣. 古之射侯之士, 無以言之.
[笞撻不是者 使記識其過] 허물이 가벼운 자를 이르니, 큰 죄는 刑殺한다. 옛날 射侯에 대한 일은 언급한 데가 없다.
案周禮司裘云 “王大射則供虎侯‧熊侯‧豹侯, 設其鵠. 諸侯則供熊侯‧豹侯, 卿大夫則供麋侯, 皆設其鵠.”
≪周禮≫ 〈天官 冢宰 司裘〉를 살펴보면 “王이 大射禮를 행할 경우 虎侯‧熊侯‧豹侯를 설치하고 鵠(정곡)을 붙이며, 諸侯일 경우 熊侯와 豹侯를 설치하고, 卿과 大夫일 경우 麋侯를 설치하고서 모두 鵠을 붙인다.”라고 하였는데,
鄭玄注云 “虎九十, 卽方一丈八尺, 熊七十弓, 方一丈四尺, 豹‧麋五十弓, 方一丈.”
鄭玄의 注에 “虎侯는 〈侯道(과녁과의 거리)가〉 90弓(54丈)이니, 곧 侯의 사방이 1丈 8尺이고, 熊侯는 〈侯道가〉 70弓(42丈)이니, 侯의 사방이 1丈 4尺이고, 豹侯와 麋侯는 〈侯道가〉 50弓(30丈)이니, 侯의 사방이 1丈이다.”라고 하였다.
鄭又引梓人“爲侯, 廣與崇方, 三分其廣, 而鵠居一焉.” 則丈八之侯, 鵠方六尺, 丈四之侯, 鵠方四尺六寸大半寸,
鄭玄은 또 ≪周禮≫ 〈冬官 考工記 榟人〉에 “〈梓人이〉 과녁을 만들 적에는 〈射布의〉 너비와 높이를 균등하게 하고 〈사포의〉 너비를 3등분하여 鵠이 3분의 1을 차지하게 한다.”라고 한 말을 인용하였으니, 1丈 8尺의 과녁은 鵠이 사방 6尺이고, 1丈 4尺의 과녁은 鵠이 사방 4尺 6寸 大半寸(半寸이 훨씬 넘음)이고,
一丈之侯, 鵠方三尺三寸少半寸, 此皆大射之侯也. 射人云 “王以六耦射, 三侯五正. 諸侯以四耦射, 二侯三正.
1丈의 과녁은 鵠이 사방 3尺 4寸 少半寸(半寸이 조금 안 됨)이니, 이것은 모두 大射의 과녁이다. ≪周禮≫ 〈夏官 司馬 射人〉에 “王은 6耦와 활을 쏘는데 3侯(虎侯‧熊侯‧豹侯)에 5正이고, 諸侯는 4耦와 활을 쏘는데 2侯(熊侯‧豹侯)에 3正이고,
孤卿大夫以三耦射, 一侯二正. 士以三耦射侯二正.” 鄭玄注云 “五正者, 五采. 中朱, 次白, 次蒼, 次黃, 玄居外.
孤卿과 大夫는 3耦와 활을 쏘는데 1侯(麋侯)에 2正이고, 士는 3耦와 활을 쏘는데 豻侯에 2正이다.”라고 하였는데, 鄭玄의 注에 “5正은 다섯 가지 채색이다. 중앙은 붉은색, 그 다음은 흰색, 그 다음은 푸른색, 그 다음은 누런색이고, 검은색은 밖에 있다.
三正者, 去玄‧黃. 二正者, 去白‧蒼而畫以朱‧綠.” 此賓射之侯也. 鄭以賓射三侯步數高廣, 與大射侯同, 正大如鵠.
3正은 검은색과 누런색을 제외하고 2正은 흰색과 푸른색을 제외하고 붉은색과 녹색으로 그린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은 賓射의 과녁이다. 鄭玄은 賓射의 세 과녁의 步數(과녁과의 거리)와 高廣(과녁의 높이와 너비)은 大射의 과녁과 동일하고, 正의 크기는 鵠과 같다고 여겼다.
司裘及射人所云諸侯者, 謂圻內諸侯. 若圻外諸侯, 則儀禮大射云 “大侯九十弓, 熊侯七十弓, 豹侯五十弓.” 皆以三耦,
〈司裘〉 및 〈射人〉에서 말한 ‘諸侯’는 圻內의 諸侯를 이른다. 만일 圻外의 諸侯라면 ≪儀禮≫ 〈大射〉에서 말한 “大侯는 90弓, 熊侯는 70弓, 豹侯는 50弓이다.”란 것이니 모두 3耦와 하였다.
其賓射則無文. 若天子已下之燕射, 案鄕射記云 “天子熊侯, 白質, 諸侯麋侯, 赤質,
賓射의 경우는 글이 없다. 天子 이하 燕射와 같은 경우는 〈≪儀禮≫의〉 〈鄕射記〉를 살펴보면 “天子의 熊侯는 흰 바탕이고, 諸侯의 麋侯는 붉은 바탕이고,
大夫布侯, 畫以虎豹, 士布侯, 畫以鹿豕.” 熊侯已下同五十弓, 卽侯身高一丈, 君臣共射之.
大夫의 布侯는 범과 표범을 그리고, 士의 布侯는 사슴과 돼지를 그린다.”라고 하였다. 熊侯 이하는 다같이 50弓으로 곧 侯身의 높이가 1丈인데, 임금과 신하가 함께 쏘았다.
[疏]○傳‘書識’至‘竝生’
○傳의 [書識]에서 [竝生]까지
○正義曰:‘書識其非’, 亦是小過者也.
○正義曰:[書識其非] 또한 작은 허물이기 때문이다.
‘欲竝生哉’, 總上三者, ‘侯以明之 撻以記之 書用識哉’, 皆是欲其改悔, 與無過之人共竝生也.
[欲竝生哉] 위의 세 가지 ‘侯以明之 撻以記之 書用識哉’를 총괄한 것이니, 모두 그들로 하여금 회개해서 허물이 없는 사람들과 함께 살게 하려는 것이다.
[疏]○傳‘工樂’至‘道之’
○傳의 [工樂]에서 [道之]까지
○正義曰:禮通謂樂官爲工, 知工是樂官, 則周禮大師‧瞽矇之類也.
○正義曰:禮에 樂官을 통칭하여 ‘工’이라 하였으므로, 工이 바로 樂官임을 알았으니, ≪周禮≫의 大師와 瞽矇 따위이다.
樂官掌頌詩言以納諫, 以詩之義理或微, 人君聽之, 若有不悟, 當正其義而揚道之. 揚, 擧也, 擧而道向君也.
樂官은 詩言을 읊어 간언을 바치는 일을 관장하니, 詩의 뜻이 혹 미묘하여 임금이 듣고 만일 깨닫지 못하는 점이 있으면 응당 그 뜻을 바로잡아 인도해야 한다. 揚은 擧의 뜻이니, 들어서 임금을 〈바른 쪽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疏]○傳‘天下’至‘威之’
○傳의 [天下]에서 [威之]까지
○正義曰:言‘承之用之’, 則此人未在官也, 故言謂天下民必也. 能至於道, 卽賢者, 故承用之而任以官也.
○正義曰:‘받아들여 등용한다.’라고 말하였으니, 이 사람은 벼슬에 있지 않은 사람이다. 그러므로 천하의 백성들을 이름이 틀림없다고 말한 것이다. 능히 바른 길로 나가는 사람은 곧 賢者이기 때문에 받아들여 등용해서 벼슬을 맡기는 것이다.
否, 謂不從敎者, 則以刑威之, 而罪其身也. 臣過必小, 故撻之書之. 人罪或大, 故以刑威之.
否는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 자를 이르니, 형벌로 위엄을 보여 그 몸을 죄주는 것이다. 신하의 허물이 반드시 작기 때문에 회초리로 때리고 잘못을 〈장부에〉 기록하는 것이요, 사람의 죄가 혹 크기 때문에 형벌로 위엄을 보이는 것이다.
역주
역주1 欽四隣……若不在時 : 蔡傳은 欽四隣에 대해서는 “너의 이웃된 직책을 경건히 수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不可不敬爾隣之職也]”로 풀이하였고, ‘庶頑讒說 若不在時’에 대해서는 ‘여러 頑愚하고 讒說을 하는 자들이 만약 이 忠直의 班列에 끼어있지 않거든’으로 풀이하였다. 그러나 陳師凱(元)가 “欽四隣에 대한 蔡傳의 말이 분명치 못하니, 마땅히 ‘너의 사방 이웃의 近臣이 된 직책을 경건히 수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해야 한다. 또 살펴보건대 欽四隣 위아래에 빠진 글이 있는 듯하니, 朱子도 일찍이 의심하였다.”라고 하였다. ≪書蔡氏傳旁通≫
역주2 侯以明之 : 蔡傳에는 侯는 활을 쏘는 과녁으로 보아 활의 명중률로써 풀이하였고, 明은 “과연 頑愚하고 讒說하는 자인가의 여부를 밝히려고 한 것이다.[欲明其果頑愚讒說與否]”라고 풀이하였다.
역주3 庶頑讒說……時而颺之 : 朱子는 “당시에 이런 제도가 있었던 모양인데, 지금은 알 수 없다. 또한 억측을 해서는 안 되니 그냥 두어야 한다.”라고 하였다. ≪書傳集註 小註≫
역주4 納言 : 蔡傳에서는 여러 頑愚하고 讒說하는 사람들이 바치는 말로 보았다.
역주5 : 蔡傳에서는 본음으로 읽어 ‘수시로’라고 풀이하였다.
역주6 (當)[掌] : 저본에는 ‘當’으로 되어 있으나. 古本‧岳本‧四庫本 등에 의거하여 ‘掌’으로 바로잡았다.
역주7 (慮)[勴] : 저본에는 ‘慮’로 되어 있으나, ≪爾雅注疏≫에 의거하여 ‘勴’로 바로잡았다. 아래도 같다.
역주8 [繫] : 저본에는 없으나, “宋板에는 ‘易’ 아래에 ‘繫’자가 있으니, 옳다.”라고 한 阮元의 校勘記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역주9 實柴 : 나무를 쌓고 그 위에 희생물을 올려놓는 일이다.
역주10 五緯 : 金‧木‧水‧火‧土 다섯 緯星(行星)을 가리킨다.
역주11 (也次) : 저본에는 ‘也次’가 있으나, “毛本에는 ‘也次’ 두 글자가 없다.[毛本無也次二字]”라고 한 阮元의 校勘記에 의거하여 ‘也次’ 두 자를 衍字로 처리하였다.
역주12 九旗之物 : 아홉 가지 깃발의 물명이다. 곧 해와 달을 그린 常, 交龍을 그린 旂, 通帛으로 만든 旜, 雜帛으로 만든 物, 곰과 호랑이를 그린 旗, 새매를 그린 旟, 거북과 뱀을 그린 旐, 全羽로 만든 旞, 析羽로 만든 旌을 가리킨다.
역주13 : ≪禮記≫에는 이 글자가 없다.
역주14 文承作會之下……不宜施於器物也 : 四庫本 ≪尙書注疏≫의 〈考證〉에서 “그 ‘宗廟의 彝樽에도 산‧용‧華蟲으로 꾸몄다.’고 한 것은 鄭玄이 ‘범과 원숭이로 꾸몄다.’고 말한 것과 같을 뿐이니, ‘作會’의 글을 이어받지 않았다. 그런데 孔疏에서는 孔傳의 뜻을 잘못 이해하고 결국 ‘作會宗彝’로 句를 하였으니, 변별하지 않을 수 없다.[其言亦以山龍華蟲爲飾 猶鄭言以虎蜼爲飾耳 不蒙作會之文也 孔疏誤解傳意 遂以作會宗彝爲句 不可不辨]”라고 지적하였다.
역주15 天子九虞 : 沈廷芳(淸)의 ≪十三經注疏正字≫에 의하면, “≪春秋公羊傳≫ 文公 2년 조 何休의 注에 보이고, ≪禮記≫ 〈雜記〉에는 이 문구가 없다.”라고 하였다.
역주16 (其)[有] : 저본에는 ‘其’로 되어 있으나, “毛本에는 有로 되어 있다.”라고 한 阮元의 校勘記에 의거하여 ‘有’로 바로잡았다.
역주17 (承)[丞] : 저본에는 ‘承’으로 되어 있으나, ≪禮記≫ 〈文王世子〉에 의거하여 ‘丞’으로 바로잡았다. 아래도 같다.
역주18 : 길이의 단위로 1弓은 6尺이다.
역주19 (豹)[豻] : 저본에는 ‘豹’로 되어 있으나, ≪周禮≫에 의거하여 ‘豻’으로 바로잡았다.

상서정의(2) 책은 2019.10.01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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