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尙書注疏(3)

상서정의(3)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상서정의(3)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乃審厥象하사 俾以形으로 旁求于天下하시니
[傳]審所夢之人하여 刻其形象하여 以四方旁求之於民間이라
하더니 惟肖하더라
[傳]傅氏之巖 在虞虢之界 通道所經 有澗水壞道하니 常使胥靡刑人築護此道
賢而隱이러니 代胥靡築之하여 以供食이라 似所夢之形이라
[疏]傳‘傅氏’至‘之形’
○正義曰:傳以‘傅’爲氏, 此巖以‘傅’爲名, 明巖傍有姓傅之民, 故云 ‘傅氏之巖’也.
尸子云 “傅巖在北海之洲.” 傳言‘虞虢之界’, 孔必有所案據而言之也.
史記殷本紀云 “是時說爲胥靡, 築於傅險.” 晉灼漢書音義云 “胥, 相也, 靡, 隨也, 古者相隨坐輕刑之名.”
言於時築傅險, 則以杵築地, 傅說賢人, 必身不犯罪, 言其說爲胥靡, 當是時代胥靡也.
傳云 “通道所經, 有澗水壞道, 常使胥靡刑人築護此道. 說賢而隱, 代胥靡築之以供食.” 或亦有成文也.
殷本紀又云 “武丁得說, 擧以爲相, 遂傅險姓之, 號曰傅說.” 鄭云 “得諸傅巖, 高宗因以傅命說爲氏.”
案序直言‘夢得說’. 不言‘傅’, 或如馬鄭之言, 如高宗始命爲傅氏, 不知舊何氏也.
皇甫謐云 “高宗夢天賜賢人, 胥靡之衣蒙之而來, 云 ‘我徒也, 姓傅名說, 天下得我者, 豈徒也哉.’
武丁悟而推之曰 ‘傅者, 相也, 說者, 歡悅也, 天下當有傅我而說民者哉.’ 明以夢視百官, 百官皆非也.
乃使百工寫其形象, 求諸天下, 果見築者胥靡衣褐帶索, 執役於虞虢之間傅巖之野, 名說.
以其得之傅巖, 謂之傅說.” 案謐言初夢卽云 “姓傅名說.” 又言 “得之傅巖, 謂之傅說.” 其言自不相副,
謐惟見此書, 傅會爲近世之語, 其言非實事也.


이에 그 형상을 자세히 살펴 그의 모습을 그려서 천하에 널리 그를 찾게 하였더니,
꿈에 본 사람을 세심히 살펴서 그 형상을 그려가지고 사방으로 널리 민간에서 찾았다는 것이다.
說이 傅巖의 들에서 땅을 다지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꿈에 본 사람과〉 그 모습이 비슷했다.
傅氏의 바위는 虞나라와 虢나라의 경계에 있었다. 통로가 지나가는 곳에 澗水가 있어 길을 파괴하므로 항상 胥靡의 刑人으로 하여금 땅을 다져 이 길을 보호하게 하였다.
說이 어질면서 은거하였는데, 胥靡를 대신하여 땅을 다지는 일을 해서 먹을거리를 마련하였다. 肖는 似의 뜻이니, 꿈에 본 사람의 형상과 비슷했다는 것이다.
傳의 [傅氏]에서 [之形]까지
○正義曰:傳에서 ‘傅’로써 氏를 삼고, 이 바위가 ‘傅’로써 이름을 한 것으로 보아 분명 바위 곁에 傅의 姓을 가진 인민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傅氏의 바위’라고 한 것이다.
≪尸子≫에 “傅巖은 北海의 물가에 있다.”라고 하였고, 傳에서 ‘虞나라와 虢나라의 경계’라고 말하였으니, 孔安國은 반드시 근거한 바가 있어서 말했을 것이다.
≪史記≫ 〈殷本紀〉에 “이때에 說이 胥靡가 되어 傅險에서 땅을 다지는 일을 했다.”라고 하고, 晉灼의 ≪漢書音義≫에 “胥는 相의 뜻이고 靡는 隨의 뜻이니, 〈胥靡는〉 옛적에 서로 따라서 가벼운 형벌에 연좌되는 명칭이다.”라고 하였다.
‘이때에 傅險에서 땅을 다지는 일을 했다.’라고 말하였으니, 공이로 땅을 다지는 일을 하였던 것이다. 傅說은 賢人이었기 때문에 반드시 자신이 죄를 범하지는 않았을 것이니, 그 ‘說이 胥靡가 되었다.’라고 말한 것은 이때에 胥靡를 대신한 것이었다.
傳에서 “통로가 지나가는 곳에 澗水가 있어 길을 파괴하므로 항상 胥靡의 刑人으로 하여금 땅을 다져 이 길을 보호하게 하였다. 說이 어질면서 은거하였는데, 胥靡를 대신하여 땅을 다지는 일을 해서 먹을거리를 마련했다.”라고 하였으니, 혹시 또한 그런 成文이 있었던가보다.
≪史記≫ 〈殷本紀〉에서 또 “武丁이 說을 찾아 그를 등용해서 재상을 삼고 결국 傅險으로써 姓을 삼고, 號를 傅說이라 했다.”라고 하였다. 鄭玄은 “〈說을〉 傅巖에서 찾았기 때문에 高宗이 그로 인하여 傅로써 說에게 명해서 氏를 삼게 했다.”라고 하였다.
書序를 살펴보면 단지 ‘꿈속에서 說을 얻었다.’라고만 말하고, 傅는 말하지 않았으니, 혹시 馬融과 鄭玄의 말처럼 만일 高宗이 비로소 명하여 傅氏를 하게 하였다면 예전에는 무슨 氏였는지 알 수가 없다.
皇甫謐은 “高宗이 꿈을 꾸니 하늘이 賢人을 주심에 胥靡의 옷을 걸치고 와서 ‘나는 노예로서 성은 傅요 이름은 說인데, 천하에 나를 얻은 이는 어찌 노예로만 취급하겠는가.’라고 했다.
武丁이 꿈을 깨서 추측하기를 ‘傅는 相(돕다)의 뜻이고, 說은 歡悅의 뜻이니, 천하에 응당 나를 도와 백성을 기쁘게 할 자가 있을 것이다.’라고 하고, 이튿날 꿈속에서 본 사람을 百官 중에서 살펴보았으나 百官은 모두 그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百工으로 하여금 그 形象을 그리게 해서 온 천하를 뒤져 찾았더니, 과연 땅을 다지는 자가 胥靡의 천한 옷에 새끼줄을 띠고 虞나라와 虢나라의 사이, 傅巖의 들에서 노역을 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는데 이름이 說이었다.
그를 傅巖에서 얻었기 때문에 ‘傅說’이라 일렀다.”라고 하였다. 皇甫謐의 말을 살펴보면, 처음에 꿈속에서는 곧 “성은 傅요 이름을 說이다.”라고 하고, 또 말하기를 “傅巖에서 얻었기 때문에 ‘傅說’이라 일렀다.”라고 하여 그의 말이 자연스럽게 서로 부합되지 않으니,
皇甫謐은 오직 이 책만을 보고 억지로 끌어대어 근세의 말을 만들었을 뿐, 그 말은 實事가 아니다.


역주
역주1 築傅巖之野 : 蔡傳에서 “築은 居(살다)의 뜻이니, 지금도 사는 곳을 말할 때에는 오히려 ‘卜築’이라 이른다.[築居也 今言所居 猶謂之卜築]”라고 풀이하였는데, 袁仁은 ≪尙書砭蔡編≫에서 “舊說(孔傳)이 옳다. 蔡氏가 築을 거처로 여긴 것은 근거를 찾을 수 없다.”라고 하였다.
역주2 (令)[以] : 저본에는 ‘令’으로 되어 있으나, “宋板에는 ‘令’이 ‘以’로 되어 있다. 살펴보건대 ≪史記≫ 〈殷本紀〉에 ‘以’로 되어 있으니, 宋板이 옳다.”라고 한 阮元의 校勘記에 의거하여 ‘以’로 바로잡았다.
역주3 (曰)[且] : 저본에는 ‘曰’로 되어 있으나, “宋板에는 ‘曰’이 ‘且’로 되어 있다.”라고 한 阮元의 校勘記에 의거하여 ‘且’로 바로잡았다.

상서정의(3) 책은 2019.10.01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22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