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尙書注疏(3)

상서정의(3)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상서정의(3)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降監殷民하니 用乂讐하고 召敵讐不怠하여
殷나라 백성들을 내려다보니, 다스리는 자들은 원수처럼 斂聚하고, 원수를 부르는 짓만을 게을리하지 아니하여
殷나라 백성들을 내려다보니, 다스리는 자들은 모두 부세를 무겁게 부과하여 백성들을 상하게 하고 원수처럼 斂聚하는 방법만을 쓰며, 게다가 또 자주 暴虐한 짓을 행하여 스스로 敵讐를 부르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讐 馬本作稠하여 云數이라하고 馬‧鄭 謂賦斂也라하니라 數也 本又作極이라
○‘讐’는 馬本에는 ‘稠’로 되어 있으니, “數(자주)의 뜻이다”라고 하였고, ‘斂’은 馬融과 鄭玄이 “賦斂을 이른다.”라고 하였다. ‘亟’는 數의 뜻인데, 어떤 本에는 또 ‘極’으로 되어 있다.
죄가 하나에 합해졌는지라, 수척한 병이 많고 구제하는 사람이 없게 만들었습니다.
[傳]言殷民上下有罪하여 皆合於一法紂 使民多瘠病하고 而無詔救之者
殷나라의 백성들이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죄를 지어 모두 紂 한 사람을 본받는 데 합해졌기 때문에 백성들이 수척한 병이 많게 만들고 구제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말한 것이다.
역주
역주1 : 蔡傳에서는 ‘掊斂’의 斂(긁어모음)의 뜻으로 보았다.
역주2 下視殷民……自召敵讐不解怠 : 兪樾은 “傳의 뜻대로라면 ‘讐斂’과 ‘召敵讐’가 동일한 것인데, 어찌 중복된 말을 할 필요가 있었겠는가. 鄭玄은 ‘讐’를 疇의 뜻으로 읽었으니, 응당 이 說을 따라야 한다. 殷나라 제도는 助法을 썼기 때문에 정부의 소득은 公田에서 들어온 것뿐이었고, 그 외는 모두 백성의 私田이었기 때문에 정부에서 거두어들일 수 없었다. 여기에서 말한 ‘疇斂’은 바로 井田을 감안해서 거두는 것이니, 이 취렴은 公田만 한정하지 않았다. 이는 아마 殷나라의 紂가 처음으로 더 부과한 것인 듯하다. ‘乂’는 응당 ‘刈’여야 하니, ≪說文解字≫에 ‘乂’와 ‘刈’가 본래 한 글자였다. 王逸이 〈離騷〉에 注를 달기를 ‘「刈」는 「穫」의 뜻이다.’라고 하였다. ‘降監殷民 用乂疇斂’은 ‘아래로 殷나라 백성들을 살펴보니, 수확할 때에 田疇를 계산해서 거두었다.’는 점을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群經平議≫
역주3 罪合于一 多瘠罔詔 : 蔡傳에서는 ‘詔’를 告(호소)의 뜻으로 보아 “君臣과 上下가 악한 짓을 함께 하고 서로 협조하니 그 죄가 합쳐져 하나가 되었다. 그러므로 백성들은 많이 굶어 죽는데도 호소할 곳이 없다.[君臣上下 同惡相濟 合而爲一 故民多飢殍而無所告]”라고 풀이하였다.

상서정의(3) 책은 2019.10.01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18 By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