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尙書注疏(4)

상서정의(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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于後 乃爲詩하여 以貽王하시고 名之曰鴟鴞라하시니 王亦未敢誚公하시다
[傳]成王信流言而疑周公이라 周公旣誅三監하고 而作詩하여
解所以宜誅之意以遺王이나 王猶未悟 欲讓公而未敢이라
[疏]‘武王’至‘誚公’
○正義曰:公於成王之世, 爲管蔡所誣, 王開金縢之書, 方始明公本意, 卒得成就周道, 天下太平.
史官美大其事, 述爲此篇, 故追言‘請命’於前, 乃說‘流言’於後, 自此以下, 說周公身事.
武王旣喪, 成王幼弱, 周公攝王之政, 專決萬機. 管叔及其群弟蔡叔‧霍叔, 乃流放其言於國中曰 “公將不利於孺子.”
言欲篡王位爲不利. 周公乃告二公曰 “我之不以法法此三叔, 則我無以成就周道, 告我先王.” 旣言此, 遂東征之.
周公居東二年, 則罪人於此皆得, 謂獲三叔及諸叛逆者. 罪人旣得訖, 成王猶尙疑公.
公於此旣得罪人之後, 爲詩遺王, 名之曰鴟鴞. 鴟鴞言三叔不可不誅之意.
王心雖疑, 亦未敢責誚公. 言王意欲責而未敢也.
[疏]○傳‘武王死’至‘成王’
○正義曰:武王旣死, 成王幼弱, 故周公攝政. 攝政者, 雖以成王爲主, 政令自公出, 不復關成王也.
蔡仲之命云 “群叔流言, 乃致辟管叔于商, 囚蔡叔于郭隣, 降霍叔于庶人.” 則知‘群弟’是蔡叔‧霍叔也.
周語云 “獸三爲群.” 則滿三乃稱群. 蔡霍二人而言群者, 竝管故稱群也.
傳旣言周公攝政, 乃云 “其弟管叔”, 蓋以管叔爲周公之弟. 孟子曰 “周公, 弟也, 管叔, 兄也.” 史記亦以管叔爲周公之兄.
孔似不用孟子之說. 或可孔以‘其弟’謂武王之弟, 與史記亦不違也. ‘流言’者, 宣布其言, 使人聞知, 若水流然.
‘流’卽放也, 乃放言於國, 以誣周公, 以惑成王. “王亦未敢誚公.” 是王心惑也.
鄭玄云 “流公將不利於孺子之言於京師, 於時管蔡在東, 蓋遣人流傳此言於民間也.”
[疏]○傳‘叔’至‘成王’
○正義曰:殷法多兄亡弟立, 三叔以周公大聖, 又是武王之弟, 有次立之勢, 今復秉國之權, 恐其因卽篡奪, 遂生流言.
不識大聖之度, 謂其實有異心, 非是故誣之也. 但啓商共叛, 爲罪重耳.
[疏]○傳‘辟 法也’
○正義曰:釋詁文.
[疏]○傳‘周公’至‘此得’
○正義曰:詩東山之篇, 歌此事也. 序云 ‘東征’, 知‘居東’者, 遂東往征也. 雖征而不戰, 故言‘居東’也.
東山詩曰 “自我不見, 于今三年.” 又云 “三年而歸.” 此言‘二年’者, 詩言初去及來, 凡經三年,
此直數居東之年, 除其去年, 故二年也. 罪人旣多, 必前後得之, 故云 “二年之中, 罪人此得.” 惟言‘居東’, 不知居在何處.
王肅云 “東, 洛邑也. 管蔡與商奄共叛, 故東征鎭撫之. 案驗其事, 二年之間, 罪人皆得.”
[疏]○傳‘成王’至‘未敢’
○正義曰:成王信流言而疑周公, 管蔡旣誅, 王疑益甚. 故周公旣誅三監, 而作詩解所以宜誅之意.
其詩云 “鴟鴞鴟鴞, 旣取我子, 無毁我室.” 毛傳云 “無能毁我室者, 攻堅之故也. 寧亡二. 不可以毁我周室.” 言宜誅之意也.
釋言云 “貽, 也.” 以詩遺王, 王猶未悟, 故欲讓公而未敢. 政在周公, 故畏威未敢也.
鄭玄以爲武王崩, 周公爲冢宰, 三年服終, 將欲攝政, 管蔡流言, 卽避居東都.
成王多殺公之屬黨, 公作鴟鴞之詩, 救其屬臣, 請勿奪其官位土地.
及遭風雷之異, 啓金縢之書, 迎公來反, 反乃居攝, 後方始東征管蔡, 解此一篇及鴟鴞之詩, 皆與孔異.


그 뒤에 周公를 지어 왕에게 드리고 제목을 ‘鴟鴞’라 하시니, 왕 또한 감히 (周公)을 꾸짖지 못하셨다.
成王이 유언비어를 믿고 周公을 의심하였다. 그러므로 周公이 이미 三監을 주벌하고 나서 를 지어
‘마땅히 주벌해야 할 뜻’을 풀이해서 에게 주었으나 은 아직도 깨닫지 못했다. 그러므로 을 꾸짖고 싶어도 감히 꾸짖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의 [武王]에서 [誚公]까지
正義曰周公成王의 세대에 管叔蔡叔에게 무함을 당하였는데, 成王金縢의 궤 속에 소장된 책서를 열어보자, 周公의 본의가 끝내 나라의 治道를 성취시켜서 천하를 태평하게 만드는 것이었다는 사실이 비로소 밝혀졌다.
史官이 그 일을 아름답고 대단하게 여겨서 서술하여 이 을 만들었기 때문에 앞에다 ‘請命’을 소급해서 말하고 뒤에다 ‘流言’을 말하였으니, 여기로부터 이하는 周公의 신상에 관한 일을 말한 것이다.
武王이 이미 별세하고 成王이 아직 幼弱하기 때문에, 周公의 정사를 섭행하여 여러 가지 정무를 專決하였다. 管叔이 그 여러 아우 蔡叔霍叔과 함께 곧 國中에 말을 흘리기를 “은 장차 孺子에게 불리한 존재이다.”라고 하였으니,
王位를 찬탈하여 불리하게 하려고 함을 말한 것이다. 周公이 이에 두 에게 고하기를 “내가 법으로 이 三叔을 다스리지 않는다면 나는 나라의 治道를 성취시키지 못하여 우리 先王께 고할 말이 없게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미 이렇게 말하고는 드디어 東征하였다.
周公이 동쪽에 거한 지 2년 만에 죄인을 이에 모두 포획하였다는 것이니, 곧 三叔과 여러 반역자를 포획했음을 이른 것이다. 죄인이 이미 다 포획되었건만, 成王은 아직도 周公을 의심하고 있었다.
그래서 周公은 이에 이미 죄인을 포획한 뒤에 를 지어 成王에게 보내면서 시명을 ‘鴟鴞’라 하였으니, 鴟鴞三叔을 베지 않을 수 없는 뜻을 말한 것이다.
成王은 마음속으로는 비록 周公을 의심하지만, 또한 감히 周公을 꾸짖지는 못하였다는 것이니, 곧 成王의 생각은 꾸짖고 싶지만 감히 꾸짖지 못하였음을 말한 것이다.
의 [武王死]에서 [成王]까지
正義曰武王이 이미 별세하고 成王이 아직 幼弱하기 때문에 周公攝政한 것이다. 攝政이란 비록 成王主上으로 삼지만, 政令이 직접 周公으로부터 나오고 成王을 통하지 않는 것이다.
蔡仲之命〉에 “여러 (형제)들이 근거 없는 말을 퍼뜨리자, 곧 管叔 땅에서 誅殺하고 蔡叔郭隣 땅에 가두고 霍叔庶人으로 강등시켰다.”라고 하였으니, ‘群弟’가 바로 蔡叔霍叔임을 〈공안국은〉 알았던 것이다.
國語≫ 〈周語〉에 “짐승 세 마리가 ‘무리’가 된다.”라고 하였으니, 셋을 채우면 곧 ‘무리’라 칭한다. 蔡叔霍叔 두 사람 뿐인데 ‘무리’라 말한 것은 管叔까지 아우르기 때문에 ‘무리’라 칭한 것이다.
에서 이미 “周公攝政했다.”라고 말하였고, 이에 “그 아우 管叔”이라 하였으니, 아마 管叔周公의 아우로 여긴 모양이다. ≪孟子≫에 “周公은 아우요, 管叔은 형이다.”라고 하였고, ≪史記≫에도 管叔周公의 형으로 여겼다.
孔安國은 ≪孟子≫의 을 사용하지 않은 것 같다. 혹 孔安國은 ‘其弟’를 武王의 아우로 이른 듯도 하니, 〈그렇다면〉 ≪史記≫와도 또한 어긋나지 않는다. ‘流言’은 그 말을 유포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들어 알게 하기를 마치 물이 흐르듯이 하는 것이다.
’는 곧 의 뜻이니 곧 나라에 함부로 말을 내어 周公을 무함하고 成王을 미혹시킨 것이다. “ 또한 감히 을 꾸짖지 못했다.”라는 것이 바로 의 마음이 미혹된 것이다.
鄭玄은 “‘周公이 장차 孺子에게 불리할 존재이다.’란 말을 京師에 유포하였는데 이때에 管叔蔡叔이 동쪽에 있었으므로 아마 사람을 보내서 이 말을 민간에 流傳하였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의 [三叔]에서 [成王]까지
正義曰나라 에 대부분 형이 죽으면 아우가 즉위하는 것으로 되어 있으니, 三叔은 ‘周公大聖人인데다 또 武王의 아우이므로, 서열상 즉위할 형세가 있고 지금 다시 나라의 권력을 잡았으니, 그대로 찬탈할까 싶어서 드디어 流言을 지어낸 것이다.
대성인의 도량을 모르고 실제로 딴 마음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였는데, 이것이 아니기 때문에 무함한 것이다. 다만 을 계도하여 함께 반역했기 때문에 죄가 무거울 뿐이다.
의 [ 法也]
正義曰:≪爾雅≫ 〈釋詁〉의 글이다.
의 [周公]에서 [此得]까지
正義曰:≪詩經≫ 〈豳風 東山〉편에서 이 일을 노래하였다. 小序에서 ‘東征’이라 했기 때문에 ‘居東’이란 드디어 동쪽으로 간 것임을 〈공안국은〉 알았던 것이다. 비록 갔으나 싸우지는 않았기 때문에 ‘居東’이라 말한 것이다.
東山에 “내 이것을 보지 못한 지가 지금 3년이다.”라고 하고, 또 〈小序에서〉 “3년 만에 돌아왔다.”라고 하였다. 여기서 말한 ‘2년’이란 것은, ≪詩經≫에서는 처음에 가서 올 때까지 3년이 경과하였음을 말한 것이고,
여기서는 단지 동쪽에 거한 해만을 셈하고 간 해는 제외했기 때문에 2년인 것이다. 죄인이 이미 많아서 반드시 전후에 걸쳐 포획했기 때문에 “2년 중에 죄인을 이제야 포획하였다.”라고 한 것이다. 오직 ‘居東’만을 말했으니, 어떤 곳에 거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王肅은 “洛邑이다. 管叔蔡叔나라‧나라와 함께 반역했기 때문에 東征하여 鎭撫하게 된 것이다. 그 일을 살펴 징험하면 2년 사이에 죄인을 모두 포획했던 것이다.”라고 하였다.
의 [成王]에서 [未敢]까지
正義曰成王流言을 믿고 周公을 의심하였는데, 管叔蔡叔이 이미 誅殺되자 成王의 의심이 더욱 심하였다. 그러므로 周公이 이미 三監을 주살하고 나서 를 지어 마땅히 주살해야 하는 뜻을 풀이하였다.
에 “올빼미야! 올빼미야! 이미 내 새끼를 잡아갔으니, 내 집을 헐지 말지어다.”라고 하였는데, 毛傳에서 “내 집을 헐지 말라는 것은 노력해서 견고하게 지었기 때문이다. 차라리 두 새끼를 잡아갈지언정 우리 周室을 헐어서는 안 된다.”라고 하였으니, 마땅히 주살해야 하는 뜻을 말한 것이다.
爾雅≫ 〈釋言〉에 “‘’는 의 뜻이다.”라고 하였다. 成王에게 주었지만 성왕은 아직도 깨닫지 못하였기 때문에 周公을 꾸짖으려고 했으나 감히 꾸짖지 못하였다. 곧 정권이 周公에게 있기 때문에 위엄이 무서워서 감히 꾸짖지 못한 것이다.
鄭玄은 “武王이 별세하자, 周公冢宰로서 삼년상을 마치고 장차 攝政을 하려고 하다가 管叔蔡叔이 유언비어를 퍼뜨리므로 곧 東都로 피해가 거하였다.
成王周公屬黨을 많이 죽이기 때문에 周公이 〈鴟鴞〉의 를 지어서 그 屬臣을 구하고 그들의 官位土地를 빼앗지 말도록 청하였다.
風雷의 이변을 만났을 때에 〈성왕이〉 가서 金縢의 궤 속에 소장된 책서를 열어보고 周公을 맞아 돌아왔는데, 周公은 돌아와서 攝位에 거하였고 뒤에 비로소 동쪽으로 管叔蔡叔을 쳤다.”라고 하였으니, 이 한 과 〈鴟鴞〉의 를 풀이한 것이 모두 孔傳과 다르다.


역주
역주1 (王)[三] : 저본에는 ‘王’로 되어 있으나, 傳文에 의거하여 ‘三’으로 바로잡았다.
역주2 (字)[子] : 저본에는 ‘字’로 되어 있으나, 宋刊 單疏本에 의거하여 ‘子’로 바로잡았다.
역주3 (道)[遺] : 저본에는 ‘道’로 되어 있으나, 宋刊 單疏本에 의거하여 ‘遺’로 바로잡았다.

상서정의(4) 책은 2020.12.29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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