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尙書注疏(3)

상서정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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爾尙輔予一人하여 致天之罰하라 予其大賚汝하리라
너희들은 부디 나 한 사람을 도와서 하늘의 벌을 이루도록 하라. 그러면 내가 너희들에게 큰 상을 줄 것이다.
[傳]賚 與也 汝庶幾輔成我하면 我大與汝爵賞하리라
‘賚’는 與(주다)의 뜻이다. 너희들이 부디 나를 도와 공을 이루게 하면 내가 너희들에게 크게 爵賞을 줄 것이란 말이다.
爾無不信하라 朕不食言하리라
너희들은 불신하지 말라. 朕은 식언하지 않으리라.
[傳]食盡其言이면 僞不實이라
내뱉은 말을 먹어버리면(실천하지 않으면) 실없는 말이 되는 것이다.
爾不從誓言하면
너희들이 서약한 말을 따르지 않는다면
[傳]不用命이라
命을 따르지 않는 것이다.
予則孥戮汝하여 罔有攸赦하리라
나는 너희들을 孥戮하여 절대 용서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傳]古之用刑 父子兄弟罪不相及이라 今云孥戮汝하여 無有所赦 權以脅之하여 使勿犯이라
옛날에는 형벌을 사용함에 있어서 父子와 兄弟 사이에는 罪가 서로 미치지 않았다. 지금 “너희들을 孥戮하여 절대 용서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라고 한 것은 임시로 협박해서 범법하지 말도록 한 것이다.
[疏]‘王曰’至‘攸赦’
經文의 [王曰]에서 [攸赦]까지
○正義曰:商王成湯將與桀戰, 呼其將士曰 “來, 汝在軍之衆庶, 悉聽我之誓言.
○正義曰:商나라 王 成湯이 장차 桀과 싸우려고 할 적에 그 장수와 병사들을 불러서 말씀하기를 “이리 오너라. 너희 군인으로 있는 여러 사람들아. 모두 나의 誓戒하는 말을 들을지어다.
我伐夏者, 非我小子輒敢行此, 以臣伐君, 擧爲亂事, 乃由有夏君桀多有罪, 上天命我誅之.
내가 夏나라를 치려고 하는 것은 나 小子가 문득 이를 감행하여 신하로서 임금을 쳐서 兵亂의 일을 일으키자는 것이 아니라, 곧 夏나라 임금 桀이 큰 죄가 많이 있어서 하늘이 나에게 명하여 그를 주벌하도록 하였기 때문이다.
桀旣失君道, 我非復桀臣, 是以順天誅之, 由其多罪故也. 桀之罪狀, 汝盡知之. 今汝桀之所有之衆, 卽汝輩是也.
桀이 이미 임금의 도리를 잃었고, 나는 다시 桀의 신하가 아니므로, 이래서 하늘의 명에 순종하여 주벌하는 것은 그에게 많은 죄가 있기 때문이다. 桀의 罪狀은 너희들이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지금 너희 桀이 소유한 군중은 바로 너희들이 그들이다.
汝等言曰 ‘我君夏桀, 不憂念我等衆人, 舍廢我稼穡之事, 奪我農功之業, 而爲割剝之政於夏邑, 斂我貨財.’
그런데 너희들은 ‘우리 임금 夏桀이 우리들을 걱정해주지 않아, 우리의 농사짓는 일을 폐기시켜 우리 農功의 業을 빼앗아가고, 夏나라 고을들에 수탈하는 정사를 펼쳐서 우리 재물을 거두어간다.’고 말한다.
我惟聞汝衆言, 夏氏旣有此罪, 上天命我誅桀, 我畏上天之命, 不敢不正桀罪而誅之.
나는 너희들의 말을 듣고 夏氏에게 이미 이런 죄가 있어서 하늘이 나에게 명하여 桀을 주벌하게 하니, 나는 하늘의 명을 두려워하여 감히 桀의 죄를 바로잡아 주벌하지 않을 수 없노라.
又質而審之, 今汝衆人其必言曰 ‘夏王之罪, 其實如我所言.’
또 대질하여 심문한다면 지금 너희들은 틀림없이 말하기를 ‘夏나라 임금의 죄는 실제로 우리들이 말한 것과 같다.’고 할 것이다.
夏王非徒如此, 又與臣下相率遏絶衆力, 使不得事農, 又相率爲割剝之政於此夏邑, 使不得安居. 上下同惡, 民困益甚.
夏나라 임금은 이와 같은 일을 했을 뿐만 하니라, 또 신하들과 서로 거느리고 민중의 힘을 빼어 농사를 지을 수 없게 하고, 또 서로 거느리고 이 夏나라 고을들에 수탈하는 정사를 펼쳐서 편안히 살 수 없게 한다. 그래서 上下가 함께 惡을 자행하니 백성들의 곤궁함이 더욱 심해졌다.
由是汝等相率怠惰, 不與在上和協, 比桀於日曰 ‘是日何時能喪, 其可喪, 我與汝皆亡身殺之.’
이로 말미암아 너희들은 서로 거느리고 게으름을 부려 위에 있는 사람과 화협하지 않으면서 桀을 해에 견주어 말하기를 ‘저 해는 언제 없어질 건가. 만약 없어지게 할 수 있다면 우리는 너와 함께 모두 없어지기 위해 殺身하리라.’라고 한 것이다.
寧殺身以亡桀, 是其惡之甚. 夏王惡德如此, 今我必往誅之. 汝庶幾輔成我一人, 致行天之威罰, 我其大賞賜汝.
차라리 殺身함으로써 桀을 없어지게 하였으니, 이는 그를 몹시 미워한 것이다. 夏나라 임금의 惡德이 이와 같으니, 지금 내가 꼭 가서 주벌할 것이다. 너희들은 부디 나 한 사람을 도와 이루어 하늘의 威罰을 행하게 한다면 나는 너희들에게 크게 상을 줄 것이다.
汝無得不信我語, 我終不食盡其言, 爲虛僞不實. 汝若不從我之誓言, 我則竝殺汝子, 以戮汝身, 必無有所赦.”
너희들은 내 말을 불신하지 말라. 나는 끝내 식언함으로써 실없는 말로 만들지 않을 것이다. 너희들이 만일 나의 서계한 말을 따르지 않는다면 나는 너희들의 자식까지 아울러 죽임으로써 너희 몸을 욕보이고 반드시 사면하는 바가 없을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勸使勉力, 勿犯法也. 庶, 亦衆也. 古人有此重言, 猶云‘艱難’也.
힘을 쓰고 법을 범하지 말도록 권면한 것이다. 庶 또한 衆의 뜻이다. 옛사람은 이와 같이 중복하는 말을 하였으니, ‘艱難’이란 말과 같은 것이다.
[疏]○傳‘契始’至‘一夫’
○傳의 [契始]에서 [一夫]까지
○正義曰:以湯於此稱王, 故本其號商之意, “契始封商, 湯遂以商爲天下之號.” 鄭玄之說亦然.
○正義曰:湯을 여기서 ‘王’이라고 칭했기 때문에 그 ‘商’을 국호로 한 뜻을 推本하여 “契이 처음 商에 봉해졌으니 湯임금이 드디어 ‘商’을 天下의 호칭으로 삼은 것이다.”라고 한 것이다. 鄭玄의 說도 그러했다.
惟王肅云 “相土居商丘, 湯取商爲號.” 若取商丘爲號, 何以不名商丘, 而單名商也.
오직 王肅만은 “相土가 商丘에서 살았기 때문에 湯임금이 ‘商’을 취하여 국호로 삼은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만일 ‘商丘’를 취하여 국호로 삼았다면 무엇 때문에 ‘商丘’ 두 글자로 나라를 이름하지 않고 ‘商’ 한 글자로 나라를 이름했겠는가.
若八遷, 國名商不改, 則此商猶是契商. 非相土之商也. 若八遷, 遷卽改名, 則相土至湯改名多矣.
만일 여덟 번 도읍을 옮겼어도 나라 이름 ‘商’을 고치지 않았다면 이 ‘商’은 여전히 契의 商이지 相土의 商이 아니었다. 만일 여덟 번 도읍을 옮겼고 옮기고 나서 곧 나라 이름을 고쳤다면 相土에서 湯에 이르기까지 나라 이름을 고치는 일이 많았을 것이다.
相土旣非始祖, 又非受命, 何故用其所居之地, 以爲天下號名. 成湯之意, 復何取乎, 知其必不然也.
相土는 이미 始祖가 아니고 또 천명을 받은 이도 아닌데, 무엇 때문에 그가 살던 땅을 써서 천하의 호칭으로 삼았겠는가. 成湯의 뜻이 다시 무엇을 취하겠는가. 반드시 그렇지 않음을 알 수 있다.
湯取契封商, 以商爲天下之號, 周不取后稷封邰爲天下之號者, 契後八遷, 商名不改, 成湯以商受命, 故宜以商爲號,
湯임금은 契이 봉해진 ‘商’을 취하여 商으로 천하의 호칭을 삼고, 周나라는 后稷이 봉해진 邰를 천하의 호칭으로 삼지 않은 것은, 契 이후에 도읍을 여덟 번 옮겼으나 ‘商’이란 이름을 고치지 않았으니 成湯은 ‘商’이 천명을 받았기 때문에 의당 ‘商’을 국호로 삼은 것이요,
后稷之後, 隨遷易名, 公劉爲豳, 大王爲周, 文王以周受命, 故當以周爲號. 二代不同, 理則然矣.
后稷의 후손은 옮길 때마다 나라 이름을 바꾸었으니 公劉는 ‘豳’으로, 太王은 ‘周’로 바꾸었으며, 文王은 ‘周’가 천명을 받았기 때문에 당연히 ‘周’를 국호로 삼은 것이다. 二代(商‧周)가 동일하지 않은 것은 이치상 그런 것이다.
泰誓云 “獨夫受.” 此湯稱爲王, 則比桀於一夫, 桀旣同於一夫, 故湯可稱王矣.
〈泰誓〉에 “獨夫 受”라고 하였다. 여기서 湯을 ‘王’이라 칭한 것은 桀을 일개 匹夫에 견준 것이고, 桀이 이미 일개 필부와 같았기 때문에 湯을 ‘王’으로 칭할 수 있었던 것이다.
是言湯於伐桀之時, 始稱王也. 周書泰誓稱王, 則亦伐紂之時, 始稱王也. 鄭玄以文王生稱王, 亦謬也.
이것은 湯임금이 桀을 칠 때에 비로소 ‘王’을 칭하였고, 〈周書 泰誓〉에 ‘王’을 칭한 것을 보면 또한 紂를 칠 때에 비로소 ‘王’을 칭했음을 말한 것이다. 鄭玄이 文王은 生時에 ‘王’을 칭했다고 한 것 역시 잘못이다.
[疏]○傳‘稱擧’至‘順天’
○傳의 [稱擧]에서 [順天]까지
○正義曰:‘稱 擧’, 釋言文. 常法以臣伐君, 則爲亂逆, 故擧亂謂“以諸侯伐天子.”
○正義曰:[稱 擧] ≪爾雅≫ 〈釋言〉의 글이다. 常法에 신하가 임금을 치면 亂逆이 되기 때문에 ‘擧亂’을 ‘諸侯로서 天子를 친 것이다.’라고 일렀다.
‘桀有昏德’, 宣三年左傳文. 以有昏德, 天命誅之, 今乃順天行誅, 非復臣伐君也. 以此解衆人守常之意也.
[桀有昏德] ≪春秋左氏傳≫ 宣公 3년 조에 있는 글이다. 昏德이 있기 때문에 하늘이 명하여 그를 주벌하게 하니, 지금 하늘의 명을 순종하여 주벌을 행한 것이고 신하가 임금을 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로써 여러 사람이 常道를 지키는 뜻을 풀이한 것이다.
[疏]○傳‘今汝’至‘之言’
○傳의 [今汝]에서 [之言]까지
○正義曰:‘如我’者, 謂湯之自稱我也. 湯謂其衆云 “汝言桀之罪, 如我誓言所述也.”
○正義曰:[如我] 湯임금이 스스로 ‘나’라고 칭한 것을 이른다. 湯임금이 그 여러 사람에게 이르기를 “너희들이 말한 桀의 罪는 내가 誓言에서 기술한 바와 같다.”라고 한 것이다.
[疏]○傳‘言桀’至‘賦重’
○傳의 [言桀]에서 [賦重]까지
○正義曰:此經與上‘舍我穡事 而割正夏’, 其意一也. 上言夏王之身, 此言‘君臣相率’, 再言所以積桀之也.
○正義曰:이 經은 위의 ‘舍我穡事 而割正夏’와 그 뜻이 동일하다. 위에서는 夏나라 임금의 몸을 말하였고 여기서는 ‘君臣이 서로 거느린 것’을 말하였으니, 桀의 죄가 쌓인 점을 재차 말한 셈이다.
力施於農, 財供上賦, 故以止絶衆力, 謂廢農功, 割剝夏邑, 謂征賦重.
힘은 농사짓는 데 쓰고 재물은 賦稅를 올리는 데 제공하기 때문에 “勞役의 일을 시켜 민중의 힘을 뺀 것은 농사를 폐기시킨 점을 이른 것이다.”라고 하고, “夏나라의 고을을 수탈한 것은 征稅와 賦役이 과중함을 이른 것이다.”라고 하였다.
言以農時勞役, 又重斂其財, 致使民困而怨深, 賦斂重則民不安矣.
농번기에 노역을 시키고 또 그 재물을 과중하게 거두어 백성들을 곤궁하여 원망이 깊어지게 만든 것을 말하였으니, 賦斂이 과중했으면 백성들이 편안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疏]○傳‘衆下’至‘喪桀’
○傳의 [衆下]에서 [喪桀]까지
○正義曰:上旣馭之非道, 下亦不供其命. 故 “衆下相率爲怠惰, 不與上和合.” 不肯每事順從也.
○正義曰:위에서 이미 非道로 통솔하자, 아래에서도 그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 그러므로 “민중이 서로 거느리고 게으름을 부려 윗사람과 화합하지 않는다.”라고 하였으니, 매사를 순종하지 않으려고 한 것이다.
比桀於日曰 “是日何時喪亡.” 欲令早喪桀命也.
桀을 해에 견주어 말하기를 “저 해는 언제 없어질 건가.”라고 한 것은 일찍이 桀의 命을 상망하게 하려고 한 것이다.
‘我與汝俱亡’者, 民相謂之辭, 言竝欲殺身以喪桀也.
[我與汝俱亡] 백성들이 서로 이르는 말이니, 아울러 殺身함으로써 桀을 상망하게 하려고 함을 말한 것이다.
所以比於日者, 以日無喪之理, 猶云桀不可喪, 言喪之難也. 不避其難, 與汝俱亡, 欲殺身以喪桀, 疾之甚也.
桀을 해에 견주는 것은 해는 상망할 이치가 없기 때문이니, ‘桀은 상망할 수 없다.’는 것과 같은 바, 상망하기 어려움을 말한 것이다. 그 어려움을 피하지 않고 ‘너와 함께 상망하겠다.’고 하여, 殺身함으로써 桀을 상망하게 하려고 함은 몹시 미워한 것이다.
鄭云 “桀見民欲叛, 乃自比於日, 曰 ‘是日何嘗喪乎. 日若喪亡, 我與汝亦皆喪亡.’ 引不亡之徵, 以脅恐下民也.”
鄭玄은 “桀이 백성들이 배반하려는 것을 보고 이에 스스로 해에 견주어 말하기를 ‘저 해가 어찌 상망하겠는가. 해가 만일 상망한다면 나는 너와 함께 상망하리라.’라고 하였으니, 상망하지 않을 징조를 끌어다 백성들을 위협해서 공포심을 갖게 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疏]○傳‘食盡’至‘不實’
○傳의 [食盡]에서 [不實]까지
○正義曰:釋詁云 “食, 僞也.” 孫炎曰 “食言之僞也.” 哀二十五年左傳云 “孟武伯惡郭重, 曰 ‘何肥也.’
○正義曰:≪爾雅≫ 〈釋詁〉에 “‘食’은 僞의 뜻이다.”라고 하였는데, 孫炎은 “食言의 거짓이다.”라고 하였다. ≪春秋左氏傳≫ 哀公 25년 조에 “孟武伯이 郭重을 미워하며 빈정대기를 ‘당신은 어찌 그리 살이 쪘소?’ 하니,
公曰 ‘是食言多矣, 能無肥乎.’” 然則言而不行, 如食之消盡, 後終不行前言爲僞, 故通謂僞言爲‘食言’, 故爾雅訓食爲僞也.
이에 哀公이 말하기를 ‘그는 食言을 많이 했는데 살이 찌지 않을 수 있겠는가.’ 했다.”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말해놓고 실천하지 않는 것은 마치 먹어서 消盡한 것과 같다. 뒤에 끝내 앞서 한 말을 실천하지 않는 것을 ‘僞’라고 하기 때문에 공통적으로 거짓말을 ‘食言’이라 이른다. 그러므로 ≪爾雅≫에서 食을 僞의 뜻으로 풀이한 것이다.
[疏]○傳‘古之’至‘勿犯’
○傳의 [古之]에서 [勿犯]까지
○正義曰:昭二十年左傳引康誥曰 “父子兄弟, 罪不相及.” 是古之用刑如是也.
○正義曰:≪春秋左氏傳≫ 昭公 20년 조에서 ≪書經≫ 〈康誥〉에 “부자, 형제 사이에는 죄가 서로 연계되지 않는다.”라고 한 말을 인용하였다. 이는 예전의 형벌을 씀이 이와 같았던 것이다.
旣刑不相及, 必不殺其子, 權時以迫脅之, 使勿犯刑法耳. 不於甘誓解之者, 以夏啓承舜‧禹之後, 刑罰尙寬.
이미 형벌에서 서로 연계되지 않았으니 필시 그 자식을 죽이지는 않고 임시 협박해서 刑法을 범하지 말도록 했을 뿐이다. 〈甘誓〉에서 이 점을 풀이하지 않은 것은 夏나라 啓가 舜‧禹의 뒤를 이어서 刑罰을 오히려 너그럽게 썼기 때문이다.
殷‧周以後, 其罪或相緣坐, 恐其實有孥戮, 故於此解之.
殷‧周 이후에 그 죄가 혹 서로 緣坐되기도 하였으니, 실제로 孥戮한 일이 있었는가 하는 의심을 살까 싶었기 때문에 여기에서 풀이한 것이다.
鄭玄云 “大罪不止其身, 又孥戮其子孫, 周禮云 ‘其奴, 男子入於罪隸, 女子入於舂槁’.”
鄭玄은 “큰 죄는 당사자의 몸에만 그치지 않고 또 그 자손까지 孥戮하였으니, ≪周禮≫에 ‘〈籍沒한〉 奴는, 남자는 罪隸官으로 沒入하고 여자는 舂人官과 槁人官으로 沒入한다.’ 했다.”라고 하였다.
鄭意以爲實戮其子, 故周禮注云 “奴, 謂從坐而沒入縣官者也.” 孔以孥戮爲權脅之辭, 則周禮所云非從坐也.
鄭玄의 생각은 실제로 그 자손을 노륙한 것으로 여겼기 때문에 ≪周禮≫의 注에서 “奴는 從坐(연좌)되어 縣官에 沒入된 자를 이른다.”라고 하였다. 孔安國은 孥戮을 임시 협박한 말로 여겼으니, ≪周禮≫에서 말한 것은 從坐가 아니었다.
鄭衆云 “謂坐爲盜賊而爲奴者, 輸於罪隸舂人‧稿人之官.” 引此“孥戮汝”,
鄭衆은 “도적에 연좌되어 奴가 된 자를 罪隸와 舂人‧槁人의 관속으로 보낸 것을 이른다.”라고 하면서 여기의 “너를 孥戮한다.”는 말을 인용하고,
又引論語云 “箕子爲之奴.” 或如衆言, 別有沒入, 非緣坐者也.
또 ≪論語≫의 “箕子는 종이 되었다.”라는 말을 인용하였다. 혹 鄭衆의 말대로라면 별도로 沒入함이 있는 것이지, 緣坐된 것은 아니다.
湯旣勝夏하고 欲遷其社라가 不可하니라
湯임금이 이미 夏나라를 토벌하여 승리하고 나서 그 社를 옮기려고 하다가 불가한 일이라 해서 중지하였다.
[傳]湯承堯‧舜禪代之後하여 順天應人하여 逆取順守 而有慙德이라
湯임금은 堯임금과 舜임금이 禪代한 뒤를 이어서 〈자신만 토벌로 왕위를 취하였으니 비록〉 天命에 따르고 인심에 응해서 逆으로 취하고 順으로 지켰으나 부끄러운 마음을 가졌다.
革命創制하고 改正易服하며 變置社稷이로되 而後世無及句龍者 不可而止니라
그러므로 〈옛사람에 미치지 못함을 스스로 한탄하며〉 天命을 변혁하고 제도를 창제하고 正朔을 고치고 服色을 바꾸며, 따라서 社稷을 변경해 설치하려 했으되 후세에 句龍을 따를 자가 없었기 때문에 불가한 일이라 해서 중지하였다.
○社 后土之神이요 應對之應이라 句龍 共工之子 爲后土
○社는 后土의 神이고, 應은 ‘應對’의 應이다. 句龍은 共工의 아들인데 后土의 神이 되었다.
作夏社疑至臣扈
〈史官이 그 일을 서술하여〉 〈夏社〉‧〈疑至〉‧〈臣扈〉를 지었다.
[傳]言夏社不可遷之義러니 疑至及臣扈三篇 皆亡이라
〈〈夏社〉는 湯임금이 夏나라를 멸망시키고 나서〉 夏나라의 社를 옮기지 않은 내용을 말한 것인데, 〈疑至〉 및 〈臣扈〉와 함께 3篇이 다 망실되었다.
[疏]‘湯旣’至‘臣扈’
書序의 [湯旣]에서 [臣扈]까지
○正義曰:湯旣伐而勝夏, 革命創制, 變置社稷, 欲遷其社, 無人可代句龍, 故不可而止.
○正義曰:湯임금이 이미 夏나라를 토벌하여 승리하고 나서 天命을 변혁하고 제도를 창제하고 社稷을 변경해 설치할 때 그 社를 옮기려고 했으나 句龍을 대신할 만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불가한 일이라 해서 중지하였다.
於時有言議論其事, 故史敍之, 爲夏社‧疑至‧臣扈三篇, 皆亡.
이때에 그 일을 의논함이 있었기 때문에 史官이 서술하여 〈夏社〉‧〈疑至〉‧〈臣扈〉 3篇을 지었는데, 모두 망실되었다.
[疏]○傳‘湯承’至‘而止’
○傳의 [湯承]에서 [而止]까지
○正義曰:傳解湯遷社之意, 湯承堯‧舜禪代之後, 己獨伐而取之,
○正義曰:孔傳에서는 湯임금이 社를 옮기려 한 뜻을 풀이하기를 “湯임금은 堯임금과 舜임금이 禪代한 뒤를 이어 자기만 토벌해서 취하였으므로
雖復應天順人, 乃是逆取順守, 而有慙愧之德, 自恨不及古人, 故革命創制, 改正易服, 因變置社稷也.
비록 천명을 따르고 인심에 응하는 것이 곧 逆으로 취하여 順으로 지킨 것이라 하지만 부끄러운 마음을 가져 예전 사람에 미치지 못함을 한탄했기 때문에 천명을 변혁하고 제도를 창제하고 正朔을 고치고 服色을 바꾸며, 따라서 社稷을 변경해 설치하려고 했다.”라고 하였다.
易革卦彖曰 “湯武革命, 順乎天而應乎人.” 下篇言湯有慙德.
≪周易≫ 革卦 〈彖傳〉에서는 “湯임금과 武王은 천명을 변혁하여 천명을 따르고 인심에 응했다.”라고 하였다. 下篇에서는 湯임금이 부끄러운 마음을 가진 것을 말하였다.
大傳云 “改正朔易服色, 此其所得與民變革者也.” 所以變革此事, 欲易人之視聽, 與之更新, 故於是之時, 變置社稷.
≪禮記≫ 〈大傳〉에서는 “正朔을 고치고 服色을 바꾸는 것은 백성들과 함께 변혁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 일을 변혁한 것은 사람들의 視聽을 바꾸어 그들과 함께 경신하려고 하였기 때문에 이때에 社稷을 변경해서 설치한 것이다.
昭二十九年左傳云 “共工氏有子曰句龍, 爲后土, 后土爲社. 有烈山氏之子曰柱, 爲稷, 自夏已上祀之.
≪春秋左氏傳≫ 昭公 29년 조에는 “共工氏에게 아들이 있어 ‘句龍’이라 불렸는데 后土가 되었고, 后土가 社가 되었다. 烈山氏의 아들이 있어 ‘柱’라고 불렸는데 稷이 되었다. 夏나라 이전에는 〈柱를〉 제사 지냈다.
周棄亦爲稷, 自商已來祀之.” 祭法云 “厲山氏之有天下也, 其子曰農, 能殖百穀.
周나라 〈시조인〉 棄도 稷이 되었기 때문에 商나라 이후로는 〈棄를〉 제사 지내게 되었다.”라고 하였다. ≪禮記≫ 〈祭法〉에서는 “厲山氏(炎帝神農氏)가 천하를 소유했을 때에 그 아들을 ‘農’이라고 했는데 능히 百穀을 번식시켰다.
夏之衰也, 周棄繼之, 故祀以爲稷. 共工氏之霸九州也, 其子曰后土, 能平九州, 故祀以爲社.” 是言變置之事也.
夏나라가 쇠퇴하자, 周나라의 棄가 이를 계승했기 때문에 제사 지내어 稷(穀神)으로 삼았다. 共工氏가 九州에 패권을 잡았을 때 그 아들을 ‘后土’라고 했는데 능히 九州를 평정했기 때문에 제사 지내어 社(土神)로 삼았다.”라고 하였다. 이는 변경해서 설치한 일을 말한 것이다.
魯語文與祭法正同, 而云 “夏之興也, 周棄繼之.” 興當爲衰字之誤耳.
≪國語≫ 〈魯語〉의 글은 ≪禮記≫ 〈祭法〉과 꼭 같으나 “夏나라가 흥기하자, 周나라 棄가 이를 계승했다.”라고 하였으니, ‘興’자는 응당 ‘衰’자의 誤字일 뿐이다.
湯於初時, 社稷俱欲改之, 周棄功多於柱, 卽令廢柱祀棄, 而上世治水土之臣, 其功無及句龍者, 故不可遷而止.
湯임금이 처음에는 社와 稷을 모두 고치려고 하였으나 周나라 棄의 공로가 柱보다 많았기 때문에 곧 柱를 폐기하고 棄를 제사 지내도록 하였고, 상고시대에 水土를 다스린 신하 중에는 그 공로가 句龍을 따를 자가 없었기 때문에 社를 옮기는 것을 불가한 일이라 해서 중지하였다는 것이다.
[疏]此序之次在湯誓之下, 云 “湯旣勝夏.” 下云“夏師敗績, 湯遂從之.” 是未及逐桀, 已爲此謀.
이 書序의 차례가 〈湯誓〉의 아래에 있어서 “湯임금이 이미 夏나라를 토벌해 승리했다.”라고 하고, 아래에서 “夏나라 군사가 敗績하자, 湯임금이 결국 토벌했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미처 桀을 쫓아내기 전에 이미 이와 같은 謀慮를 했던 것이다.
鄭玄等注此序, 乃在湯誓之上, 若在作誓之前, 不得云“旣勝夏”也.
鄭玄 등은 이 書序에 注를 달 때에 차례를 곧 〈湯誓〉의 위에 두었는데, 만일 〈湯誓〉를 짓기 이전에 둔다면 “이미 夏나라를 토벌해서 승리했다.”라고 할 수 없었을 것이다.
孟子曰 “犧牲旣成, 粢盛旣絜, 祭祀以時, 然而旱乾水, 則變置社稷.”
≪孟子≫ 〈盡心 下〉에 “犧牲이 이미 이루어지고 粢盛이 이미 정결하게 차려진 상태에서 제사를 제때에 지냈지만, 그래도 가뭄이 들고 홍수가 나면 社稷을 변경해서 설치한다.”라고 하였는데,
鄭玄因此乃云 “湯伐桀之時, 大旱. 旣置其禮祀, 明德以薦, 而猶旱至七年, 故更社稷.”
鄭玄은 이로 인하여 “湯임금이 桀을 칠 때에 크게 가뭄이 들었다. 이미 예법을 갖춘 제사를 마련해서 정성껏 제사를 지냈으나 오히려 가뭄이 들어서 7년 동안 계속되었기 때문에 社稷을 변경하여 설치했다.”라고 하였으니,
乃謂湯卽位之後, 七年大旱, 方始變之. 若實七年乃變, 何當系之‘勝夏’. ‘勝夏’猶尙不可, 況在湯誓前乎.
곧 湯임금이 즉위한 뒤에 7년 동안 크게 가뭄이 들자, 비로소 〈사직을〉 변경함을 이른 것이다. 만일 실제로 7년 만에 변경했다면 어떻게 ‘勝夏’에 연계할 수 있겠는가. ‘勝夏’도 오히려 불가하거늘, 하물며 〈湯誓〉 앞에 놓을 수 있겠는가.
且禮記云 “夏之衰也, 周棄繼之.” 商興七年乃變, 安得以‘夏衰’爲言也.
또 ≪禮記≫ 〈祭法〉에 “夏나라가 쇠퇴하자, 周나라의 棄가 이를 계승했다.”라고 하였다. 商나라가 흥기한 지 7년 만에 〈사직을〉 변경했다면 어떻게 ‘夏衰’를 가지고 말할 수 있겠는가.
若商革夏命, 猶七年祀柱, 左傳亦不得斷爲自夏已上祀柱, 自商以來祀棄也.
만일 商나라가 夏나라의 命을 고쳤는데도 오히려 7년 동안 柱에게 제사 지냈다면, ≪春秋左氏傳≫에서 또한 “夏나라 이전에는 柱에게 제사 지냈고 商나라 이후에는 棄에게 제사 지냈다.”라고 단정할 수 없었을 것이다.
由此而言, 孔稱改正朔而變置社稷, 所言得其旨也. 漢世儒者說社稷有二,
이로 말미암아 말한다면 孔安國이 칭한 “正朔을 개정하고 社稷을 변경해 설치했다.”는 것은 그 말이 본뜻을 얻은 것이다. 漢世 儒者의 社稷에 대한 說이 두 가지가 있다.
左傳說社祭句龍, 稷祭柱‧棄, 惟祭人神而已. 孝經說社爲土神, 稷爲穀神, 句龍‧柱‧棄是配食者也.
≪春秋左氏傳≫의 說은 社에는 句龍을 제사 지내고 稷에는 柱와 棄를 제사 지내어 오직 人神에게만 제사 지냈을 뿐이다. ≪孝經≫의 說은 社는 土神으로 여기고 稷은 穀神으로 여겼으며, 句龍‧柱‧棄는 바로 配食(配享)者였다.
孔無明說, 而此經云“遷社.” 孔傳云 “無及句龍.” 卽同賈逵‧馬融等說, 以社爲句龍也.
孔安國은 이에 대해 분명한 말이 없었는데, 이 經文에서 “遷社”라고 하자, 孔傳에서 “句龍을 따를 자가 없다.”라고 하였으니, 곧 賈逵‧馬融 등의 說과 함께 社를 句龍으로 여긴 것이다.
[疏]○傳‘言夏’至‘皆亡’
○傳의 [言夏]에서 [皆亡]까지
○正義曰:‘疑至’與‘臣扈’相類, 當是二臣名也. 蓋亦言其不可遷之意. 馬融云 “聖人不可自專, 復用二臣自明也.”
○正義曰:‘疑至’와 ‘臣扈’는 서로 같은 부류이니 응당 두 신하의 이름일 것이다. 이들은 아마 또한 〈社를〉 옮겨서는 안 된다는 의견을 말했을 것이다. 馬融은 “聖人은 단독으로 일을 하지 않으니, 다시 두 신하〈의 의견〉을 썼음이 자명하다.”라고 하였다.
夏師敗績하니 湯遂從之
夏나라 군사가 敗績하자, 湯임금이 드디어 쫓아가서 토벌하였다.
[傳]大崩曰敗績이라討之
크게 붕괴된 것을 ‘敗績’이라고 한다. 從은 쫓아가서 토벌한 것을 이른다.
遂伐三朡하고 俘厥寶玉이라
드디어 三朡을 치고 그 寶玉을 취하였다.
[傳]三朡 國名이라 桀走保之하니 今定陶也 桀自安邑東入山하고 出太行하여 東南涉河
三朡은 나라 이름이다. 桀이 도주하여 몸을 보존한 곳이니, 지금의 定陶이다. 桀은 安邑으로부터 동쪽으로 산에 들어갔고, 太行山에서 나가 동남쪽으로 黃河를 건넜다.
湯緩追之하고 不迫하니 遂奔南巢 取也 玉以禮神하여 使無水旱之災 取而寶之니라
湯임금이 느슨하게 추격하고 핍박하지 않으니, 드디어 南巢로 달아났다. 俘는 取의 뜻이다. 玉은 神에게 禮物을 바쳐 水災나 旱災가 없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취해서 보배로 삼은 것이다.
[疏]傳 ‘三朡’至‘寶之’
傳의 [三朡]에서 [寶之]까지
○正義曰:湯伐三朡, 知是國名. 逐桀而伐其國, 知‘桀走保之’也.
○正義曰:湯임금이 三朡을 쳤기 때문에 그것이 나라 이름임을 〈孔安國은〉 알았던 것이다. 桀을 쫓아가서 그 나라를 쳤기 때문에 桀이 도주하여 몸을 보존한 곳임을 〈孔安國은〉 알았던 것이다.
‘今定陶’者, 相傳爲然. 安邑在洛陽西北, 定陶在洛陽東南, 孔跡其所往之路, 桀自安邑東入山,
[今定陶] 서로 그렇게 전하고 있다. 安邑은 洛陽의 서북쪽에 위치해 있고 定陶는 洛陽의 동남쪽에 위치해 있다. 孔安國이 桀이 간 길을 추적해보니, 桀이 安邑으로부터 동쪽으로 산에 들어갔고,
出太行, 乃東南涉河, 往奔三朡, 湯緩追之不迫, 遂奔南巢.
太行山에서 나가 동남쪽으로 黃河를 건너 三朡으로 달아났으며, 湯임금이 느슨하게 추격하고 핍박하지 않았기 때문에 桀이 드디어 南巢로 달아난 것이다.
‘俘 〮取’, 釋詁文. 桀必載寶而行, 棄於三朡. 取其寶玉, 取其所棄者也.
[俘 取] ≪爾雅≫ 〈釋詁〉의 글이다. 桀이 필시 보물을 싣고 가다가 三朡에 버렸을 것이다. 그 寶玉을 취함은 그가 버린 것을 취한 것이다.
楚語云 “玉足以庇蔭嘉穀, 使無水旱之災, 則寶之.” 韋昭云 “玉, 禮神之玉也.”
≪國語≫ 〈楚語〉에 “玉은 충분히 곡식을 보호하여 水災나 旱災가 없게 하므로 이를 보물로 여긴다.”라고 하였는데, 韋昭가 “玉은 神에게 예물로 바치는 玉이다.”라고 하였으니,
言用玉禮神, 神享其德, 使風雨調和, 可以庇蔭嘉穀, 故取而寶之.
玉을 神에게 예물로 바치면 神이 그 玉德을 흠향하여 바람과 비가 조화를 이루게 해서 곡식을 보호할 수 있기 때문에 옥을 취해서 보물로 여겼음을 말한 것이다.
誼伯 仲伯 作典寶
誼伯과 仲伯이 〈典寶〉를 지었다.
[傳]二臣 作典寶一篇하여 言國之常寶也러니이라
두 신하가 〈典寶〉 1篇을 지어 나라의 常寶에 대해 말하였는데, 망실되었다.
○誼 本或作義
○誼는 어떤 本에 더러 義로 되어 있다.
역주
역주1 (夏)[大] : 저본에는 ‘夏’로 되어 있으나, “毛本에는 ‘夏’가 ‘大’로 되어 있으니, 살펴보건대 ‘大’자가 옳다.”라고 한 阮元의 校勘記에 의거하여 ‘大’로 바로잡았다.
역주2 (君)[若] : 저본에는 ‘君’으로 되어 있으나, “毛本에는 ‘君’이 ‘若’으로 되어 있으니, 살펴보건대 ‘若’자가 옳다.”라고 한 阮元의 校勘記에 의거하여 ‘若’으로 바로잡았다.
역주3 (非)[罪] : 저본에는 ‘非’로 되어 있으나, 毛本에 의거하여 ‘罪’로 바로잡았다.
역주4 [桀] : 저본에는 없으나, “宋本에는 ‘桀’자가 있으니, 살펴보건대 있는 것이 옳다.”라고 한 阮元의 校勘記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역주5 (益)[溢] : 저본에는 ‘益’으로 되어 있으나, ≪孟子≫에 의거하여 ‘溢’로 바로잡았다.
역주6 (致)[置] : 저본에는 ‘致’로 되어 있으나, 毛本에 의거하여 ‘置’로 바로잡았다.
역주7 (遂)[逐] : 저본에는 ‘遂’로 되어 있으나, “古本‧岳本‧宋本에 ‘遂’가 ‘逐’으로 되어 있고, ≪纂傳≫에도 ‘逐’으로 되어 있다.”라고 한 阮元의 校勘記에 의거하여 ‘逐’으로 바로잡았다.

상서정의(3) 책은 2019.10.01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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