疏
○正義曰:上言能明俊德, 又述能明之事, 堯之聖德美政如上所陳.
堯以須臣之故, 乃命有俊明之人, 羲氏‧和氏, 敬順昊天之命, 曆此法象.
, 月之大小, 昏明遞中之星, 日月所會之辰, 定其所行之數, 以爲一歲之曆.
其總爲一歲之曆, 其分有四時之異, 旣擧總目, 更別序之.
堯於羲和之內, 乃分別命其羲氏而字仲者, 令居治東方嵎夷之地也.
日所出處, 名曰暘明之谷, 於此處所主之職, 使羲仲主治之.
旣主東方之事, 而日出於東方, 令此羲仲恭敬導引將出之日, 平均次序東方耕作之事, 使彼下民務勤種植.
於日晝夜中分, 刻漏正等, 天星朱鳥南方七宿合昏畢見, 以此
, 調正仲春之氣節.
此時農事已起, 不居室內, 其時之民, 宜分析適野.
疏
又就所分羲氏之內, 重命其羲氏而字叔者, 使之居治南方之職, 又於天分南方與東交, 立夏以至立秋時之事, 皆主之.
於日正長, 晝漏最多, 天星大火東方七宿合昏畢見, 以此天時之候, 調正仲夏之氣節.
於時苗稼已殖, 農事尤煩, 其時之民, 老弱因一丁壯就在田野.
日所入處, 名曰昧冥之谷. 於此處所主之職, 使和仲主治之.
旣主西方之事, 而日入在於西方, 令此和仲恭敬從送旣入之日, 平均次序西方成物之事, 使彼下民務勤收斂.
於晝夜中分, 漏刻正等, 天星之虛北方七宿合昏畢見, 以此天時之候, 調正仲秋之氣節.
於時禾苗秀實, 農事未閑, 其時之民與夏齊平, 盡在田野.
疏
於日正短, 晝漏最少, 天星之昴西方七宿合昏畢見, 以此天時之候, 調正仲冬之氣節.
於時禾稼已入, 農事閑暇, 其時之人, 皆處深隩之室, 鳥獸皆生耎毳細毛以自溫暖.
羲‧和所掌如是, 故帝堯乃述而嘆之曰 “咨嗟, 汝羲仲‧羲叔與和仲‧和叔.
一期之間, 三百有六旬有六日, 分爲十二月, 則餘日不盡, 令
, 若以閏月補闕, 令氣朔得正, 定四時之氣節, 成一歲之歷象, 是汝之美可嘆也.
又以此歲曆告時授事, 信能和治百官, 使之衆功皆廣也.”
嘆美羲‧和能敬天之節, 衆功皆廣, 則是風俗大和.
疏
重雖少昊之胤, 而與黎同命, 明使重爲句芒亦是顓頊時也.
祝融火官可得稱爲火正, 句芒木官不應號爲南正, 且木不主天, 火不主地,
而
稱顓頊命南正司天, 火正司地者, 蓋使木官兼掌天, 火官兼掌地.
鄭答趙商云 “先師以來, 皆云火掌爲地, 當云黎爲北正.”
昭十七年左傳郯子稱少昊氏以鳥名官, 自顓頊已來乃命以民事.
何則. 傳稱共工氏有子曰句龍, 共工氏在顓頊之前多歷年代, 豈復共工氏親子至顓頊時乎.
高辛所命重‧黎或是重‧黎子孫, 未必一人能歷二代.
明是重‧黎之後, 世以重‧黎爲號, 所誅重‧黎, 是有功重‧黎之子孫也.
呂刑說羲‧和之事, 猶尙謂之重‧黎, 況彼尙近重‧黎, 何故不得稱之.
顓頊命重司天, 黎司地, 羲氏掌天, 和氏掌地, 其實重‧黎‧羲‧和通掌之也.
此云 “乃命羲‧和, 欽若昊天.” 是羲‧和二氏共掌天地之事.
以乾坤相配, 天地相成, 運立施化者天, 資生成物者地, 天之功成, 其見在地,
故下言‘日中’‧‘星鳥’之類, 是天事也. ‘平秩東作’之類, 是地事也. 各分掌其時, 非別職矣.
疏
天地旣別, 人神又殊, 而云通掌之者, 外傳之文說呂刑之義,
以爲少昊之衰, 天地相通, 人神雜擾, 顓頊乃命重‧黎分而異之, 以解
,
天地相通, 人神雜擾, 見其能離絶天地, 變異人神耳, 非卽別掌之.
下文別序所掌, 則羲主春夏, 和主秋冬, 俱掌天時, 明其共職.
彼又言 “至于夏‧商, 世掌天地.” 胤征云 “羲‧和湎淫, 廢時亂日 不知日食, 羲‧和同罪.” 明其世掌天地共職可知.
顓頊命掌天地, 惟重黎二人, 堯命羲‧和則仲‧叔四人者, 以羲‧和二氏賢者旣多,
且後代稍文, 故分掌其職事, 四人各職一時, 兼職
, 以有四嶽, 故用四人.
馬融‧鄭玄皆以此‘命羲和’者, 命爲天地之官. 下云‘分命’, 申命爲四時之職.
孔言 “此擧其目, 下別序之.” 則惟命四人, 無六官也.
下傳云 “四嶽, 卽羲和四子, 舜典傳稱禹‧益六人新命有職, 與四嶽十二牧凡爲二十二人.”
然新命之六人, 禹命爲百揆, 契作司徒, 伯夷爲秩宗, 皐陶爲士, 垂作共工, 亦禹‧契之輩卽是卿官.
孔意以羲‧和非是卿官, 別掌天地, 但天地行於四時, 四時位在四方, 平秩四時之人, 因主方嶽之事, 猶自別有卿官分掌諸職.
疏
‘使敬順昊天’, 昊天者, 混元之氣, 昊然廣大, 故謂之‘昊天’也.
釋天云 “春爲蒼天, 夏爲昊天, 秋爲旻天, 冬爲上天.”
毛詩傳云 “尊而君之則稱皇天, 元氣廣大則稱昊天, 仁覆閔下則稱旻天, 自上降監則稱上天, 據遠視之蒼蒼然則稱蒼天.”
鄭玄讀爾雅云 “春爲昊天, 夏爲蒼天.” 故駁異義云
“春氣博施, 故以廣大言之. 夏氣高明, 故以遠言之.
秋氣或生或殺, 故以閔下言之. 冬氣閉藏而淸察, 故以監下言之.
疏
‘星 四方中星’者, 二十八宿, 布在四方, 隨天轉運, 更互在南方, 每月各有中者.
中則人皆見之, 故以中星表宿, ‘四方中星’, 總謂二十八宿也.
或以書傳云 “主春者, 張昏中, 可以種
. 主夏者, 火昏中, 可以種黍.
主秋者, 虛昏中, 可以種麥. 主冬者, 昴昏中, 可以收斂.” 皆云
“上告天子, 下賦臣人, 天子南面而視四方星之中, 知人緩急, 故曰敬授人時.”
孔於虛昴諸星本無取中之事, 用書傳爲孔說非其旨矣.
日行遲, 月行疾, 每月之朔月行及日而與之會, 其必在宿.
‘日月所會’與‘四方中星’ 俱是二十八宿. 擧其人目所見, 以星言之. 論其日月所會, 以辰言之, 其實一物,
益稷稱古人之象, 日‧月‧星‧辰共爲一象, 由其實同故也.
故命羲‧和, 令以算術推步, 累歷其所行, 法象其所在, 具有分數節候, 參差不等,
周禮大宗伯云 “
祀日‧月‧星‧辰.” 鄭玄云‘星謂五緯, 辰謂日月所會十二次’者, 以星‧辰爲二者.
五緯與二十八宿俱是天星, 天之神祇, 禮無不祭, 故鄭玄隨事而分之.
疏
據日所出謂之暘谷, 指其地名卽稱嵎夷, 故云 “暘谷‧嵎夷一也.”
又解居者居其官不居其地, 故云 “羲仲居治東方之官.”
此言‘分命’者, 上云 “乃命羲和.” 總擧其目.
就‘乃命’之內分其職掌, 使羲主春夏, 和主秋冬, 分一歲而別掌之,
所命無伯‧季者, 蓋時無伯‧季, 或有而不賢, 則外傳稱 “堯育重‧黎之後, 不忘舊者, 使復典之.” 明仲‧叔能守舊業, 故命之也.
此羲‧和掌序天地, 兼知人事, 因主四時而分主四方,
地東擧嵎夷之名, 明分三方皆宜有地名, 此爲其始, 故特詳擧其文.
‘羲仲 居治東方之官’, 居在帝都而遙統領之. 王肅云 “皆居京師而統之, 亦有時述職.” 是其事也.
故於和仲之下云 “此居治西方之官, 掌秋天之政.” 明此掌春天之政.
疏
一歲之事, 在東則耕作, 在南則化育, 在西則成熟, 在北則改易,
日之出也, 物始生長, 人當順其生長, 致力耕耘. 日之入也, 物皆成熟, 人當順其成熟, 致力收斂.
東方之官當恭敬導引日出, 平秩東作之事, 使人耕耘. 西方之官當恭敬從送日入, 平秩西成之事, 使人收斂.
日之出入, 自是其常, 但由日出入, 故物有生成.
‘平秩南訛’, 亦是導日之事, ‘平在朔易’, 亦是送日之事.
勸課下民, 皆使致力, 是敬導之. 平均次序, 卽是授人, 田裏各有疆埸, 是平均之也.
耕種收斂使不失其次序. 王者以農爲重, 經主於農事.
言‘敬導出日’者, 正謂平秩次序東作之事以務農也.
直說生成, 明此以歲事初起, 特言‘東作’, 以見四時亦當力作,
鄭玄云 “寅賓出日, 謂春分朝日.” 又以 ‘寅餞納日, 謂秋分夕日’也.
疏
“古制刻漏晝夜百刻. 晝長六十刻, 夜短四十刻. 晝短四十刻, 夜長六十刻. 晝中五十刻, 夜亦五十刻.”
“夏至之晝六十五刻, 夜三十五刻. 冬至之晝四十五刻, 夜五十五刻.
春分秋分之晝五十五刻, 夜四十五刻. 此其不易之法也.”
又於每氣之間增減刻數, 有多有少, 不可通而爲率.
鄭註書緯考靈曜仍云 “九日增減一刻.” 猶尙未覺誤也.
鄭註此云 “日長者日見之漏五十五刻, 日短者日見之漏四十五刻.” 與歷不同.
故王肅難云 “知日見之漏減晝漏五刻, 不意馬融爲傳已減之矣.
故日長爲五十五刻, 因以冬至反之, 取其夏至夜刻, 以爲冬至晝短, 此其所以誤耳.”
疏
曲禮說軍陳象天之行, “前
, 後玄武, 左靑龍, 右白虎.” 雀卽鳥也.
春言星鳥, 總擧七宿. 夏言星火, 獨指房‧心, 虛‧昴惟擧一宿.
計仲春日在奎‧婁而入於酉地, 則初昏之時, 井‧鬼在午, 柳‧星‧張在巳, 軫‧翼在辰, 是朱鳥七宿, 皆得見也.
春則南方見, 夏則東方見, 秋則北方見, 冬則西方見, 此則勢自當然.
而書緯爲文生說, 言 “春夏相與交, 秋冬相與互, 謂之母成子, 子助母.” 斯假妄之談耳.
春分之昏七星中, 仲夏之昏心星中, 秋分之昏虛星中, 冬至之昏昴星中, 皆擧正中之星, 不爲一方盡見.” 此其與孔異也.
星鳥‧星火爲季月, ‘以殷’‧‘以正’ 皆總三時之月, 讀仲爲中, 言各正三月之中氣也.
星火之屬, 仲月未中, 故爲每時皆歷陳三月, 言日以正仲春, 以正春之三月中氣,
若正春之三月中, 當言‘以正春中’, 不應言‘以正仲春’.
孔氏直取畢見, 稍爲迂闊, 比諸王‧馬, 於理最優.
疏
經言‘南交’, 謂南方與東方交, 傳言‘夏與春交’, 見其時‧方皆掌之.
春盡之日與立夏之初, 時相交也. 東方之南, 南方之東, 位相交也, 言羲叔所掌與羲仲相交際也.
四時皆擧仲月之候, 嫌其不統季孟, 於此言‘交’, 明四時皆然,
春上無冬, 不得見其交接, 至是夏與春交, 故此言之.
疏
因此而推之, 足知日永則宵短, 日短則宵長, 皆以此而備知也.
正於此時變文者, 以春之與秋日夜皆等, 春言‘出日’, 卽以日言之, 秋云‘納日’, 卽以夜言之, 亦事之宜也.
計仲秋日在角‧亢而入于酉地, 初昏之時, 斗‧牛在午, 女‧虛‧危在巳, 室‧壁在辰, 擧虛中星言之, 亦言七星皆以秋分之日昏時竝見, 以正秋之三月.
疏
○正義曰:釋訓云 “朔, 北方也.” 舍人曰 “朔, 盡也. 北方萬物盡, 故言朔也.” 李巡曰 “萬物盡於北方, 蘇而復生, 故言北方.”
羲‧和主四方之官, 四時皆應言方, 於此言方者, 卽三方皆見矣.
春爲歲首, 故擧地名, 夏與春交, 故言南交, 秋言西以見嵎夷當爲東, 冬言方以見三時皆有方.
幽之與明, 文恒相對, 北旣稱幽, 則南當稱明, 從此可知,
經冬言幽都, 夏當云明都, 傳不言都者, 從可知也.
鄭云 “夏不言‘曰明都’三字, 摩滅也.” 伏生所誦與壁中舊本竝無此字, 非摩滅也.
‘都謂所聚’者, 總言此方, 是萬物所聚之處, 非指都邑聚居也.
疏
‘易謂歲改易於北方’者, 人則三時在野, 冬入隩室, 物則三時生長, 冬入囷倉, 是人之與物皆改易也.
王肅云 “改易者, 謹約蓋藏, 循行積聚.” 引詩“嗟我婦子, 曰爲改歲, 入此室處.”
釋詁云 “在, 察也.” 舍人曰 “在, 見物之察.”
是在爲察義, 故言 “平均在察其政, 以順天常.”
三時皆言‘平秩’, 此獨言‘平在’者, 以三時乃役力田野, 當次序之, 冬則物皆藏入, 須省察之, 故異其文.
秋日物成就, 故傳言‘助成物’, 冬日蓋藏, 天之常道, 故言‘順天常’, 因明‘東作’‧‘南訛’ 亦是助生物, 類常道也.
明此四時之節, 卽順天之政, 實恐人以‘敬順昊天’直是歷象日月, 嫌仲‧叔所掌非順天之事,
.
疏
然古時眞歷, 遭戰國及秦而亡, 漢存
, 雖詳於
, 皆秦漢之際假託爲之,
.
周天
百六十五度四分度之一, 而日日行一度, 則一期三百六十五日四分日之一.
此言三百六十六日者, 王肅云 “四分日之一又入六日之內, 擧全數以言之, 故云三百六十六日也.”
傳又解所以須置閏之意, 皆據大率以言之, 云 “一歲十二月, 月三十日, 正三百六十日也. 除小月六, 又爲六日.”
今經云 “三百六十六日.” 故云 “餘十二日.” 不成期.
以時分於歲, 故云‘氣節’, 謂二十四氣, 時月之節.
歲總於時, 故云 “歷象日月星辰, 敬授人時.” 以相配成也.
六歷‧諸緯與周髀皆云, 日行一度, 月行十三度十九分度之七, 爲每月二十九日過半.
日之於法, 分爲日九百四十分日之四百九十九, 卽月有二十九日半强.
爲十二月, 六大之外有
分三百四十八, 是除小月無六日, 又大歲三百六十六日, 小歲三百五十五日, 則一歲所餘無十二日.
今言‘十二日’者, 皆以大率據整而計之, 其實一歲所餘正十一日弱也.
以爲十九年七閏, 十九年, 年十一日則二百九日, 其七月四大三小猶二百七日, 況無四大乎.
所以弱者, 以四分日之一於九百四十分, 則一分爲二百三十五分, 少於小月餘分三百四十八.
以二百三十五減三百四十八, 不盡一百一十三, 是四分日之一餘矣.
皆以五日爲率, 其小月雖爲歲
殘分所減, 猶餘一百一十三, 則實餘尙無六日.
就六日抽一日爲九百四十分, 減其一百一十三分, 不盡八百二十七分.
以不抽者五日, 竝三百六十日外之五日爲十日, 其餘九百四十分日之八百二十七, 爲每歲之實餘.
以竝一百九十日爲二百六日, 不盡六百七十三分爲日餘.
又每四百九十九分, 以七乘之得三千四百九十三, 以日法九百四十分, 除之得三日.
所以無閏時不定, 歲不成者, 若以閏無, 三年差一月, 則以正月爲二月, 每月皆差, 九年差三月, 卽以春爲夏, 若十七年差六月, 卽四時相反, 時何由定, 歲何得成乎.
傳
중重과 여黎의 후손인 희씨羲氏와 화씨和氏는 대대로 하늘과 땅을 관장하는 벼슬아치이다.
그러므로 요堯임금이 그들에게 명하여 호천昊天을 경건하게 따르게 하였다.
성星은 사방四方의 중성中星이고, 신辰은 일월日月이 모인 곳이니, 그 분절分節을 관측하여 경건하게 천시天時를 기록해서 사람들에게 알려주게 하였다.
여기서는 그 명목만을 들고 아래에서 따로 순서에 따라 기록하였다.
○희羲‧화和에 대하여 마융馬融은 말하기를 “희씨羲氏는 천관天官을 관장하고, 화씨和氏는 지관地官을 관장하고, 사자四子는 사시四時를 관장했다.”라고 하였다.
중重은 소호少皞의 후손이고, 여黎는 고양高陽의 후손이다.
‘일월日月이 모인 곳’은 해와 달이 12방위에서 교접하여 모이는 것을 가리킨다.
인寅을 석목析木, 묘卯를 대화大火, 진辰을 수성壽星, 사巳를 순미鶉尾, 오午를 순화鶉火, 미未를 순수鶉首, 신申을 실침實沈, 유酉를 대량大梁, 술戌을 강루降婁, 해亥를 추자娵訾, 자子를 현효玄枵, 축丑을 성기星紀라고 한다.
疏
○정의왈正義曰:위에서 능히 준덕俊德을 밝힌 것을 말하고 또 능히 밝히는 일을 서술하였으니, 요堯임금의 성덕聖德과 미정美政은 위에서 진술한 바와 같다.
다만 성인聖人은 반드시 혼자 다스리지 못하고 꼭 어진 보필을 필요로 한다.
요堯임금도 어진 신하를 필요로 했기 때문에 이에 준명俊明한 덕을 가진 사람에게 명하였으니, 희씨羲氏와 화씨和氏가 호천昊天의 명을 경건히 따라 하늘이 운행하는 법상法象을 책력으로 만들게 된 것이다.
그 날의 갑을甲乙, 달의 대소大小, 그리고 어둠과 밝음이 교체되는 가운데의 별, 해와 달이 모이는 시각 등 그 운행의 도수를 정하여 한 해의 책력을 작성하였다.
그래서 이 책력에 의하여 백성들에게 천시天時의 조만早晩에 관한 절기를 경건히 알려주었다.
그 총체적인 것으로는 한 해의 책력을 만들고 그 분리에 있어서는 사시四時의 다른 점이 있기 때문에 이미 총목總目을 설립하고 다시 차서를 분별한 것이다.
요堯임금은 희씨羲氏와 화씨和氏 내에서 희씨羲氏로서 자字가 중仲인 사람에게 따로 명하여 동방東方 우이嵎夷의 땅에 거주하며 다스리게 하였다.
해가 솟아나오는 곳의 이름을 양명暘明의 골짜기라 하는데, 이곳에서 관리하는 직무를 희중羲仲으로 하여금 주관해 다스리게 하였다.
이미 동방의 일을 주관하고 있고 해가 동방에서 솟아나오는 이상, 희중羲仲으로 하여금 장차 솟아나오는 해를 공경히 인도하여 동방의 경작하는 일을 고루 차례에 따라 진행하되 저 농민들로 하여금 열심히 씨앗을 뿌리게 하였다.
해의 낮과 밤의 길이가 균등해지고 각루刻漏가 평등한 시간을 유지하며, 천성天星인 주조朱鳥 남방南方의 7수宿가 어두울 무렵에 모두 나타나는 춘분날에 이 하늘의 시후時候를 가지고 시후時候가 중춘仲春의 절기를 조정해준다.
이때는 농사일이 이미 시작되었으므로 집 안에 있을 시기가 아니니, 이때에 백성들은 흩어져 들로 나가는 것이 마땅하다.
그래서 노약자들은 집에 남아 있고 장정들은 일하러 나간다.
이때에 조수鳥獸는 모두 잉태하고 알을 낳기 위하여 쌍쌍이 교미를 한다.
疏
또한 희씨羲氏들에게 직무를 분담시킨 속에서 다시 희씨羲氏로 자字가 숙叔인 사람에게 명하여 그로 하여금 남방南方에 거주하며 남방의 일을 다스리게 하고, 또 남방과 동방을 나누는 하늘의 문제와 입하立夏에서 입추立秋에 이르기까지의 일들을 모두 주관하게 하였다.
남방南方의 화육化育하는 일을 고루 차서에 따라 진행하되 가르침을 경건히 행하여 그 공을 이루게 하였다.
해의 길이가 제일 긴 시기이고 낮의 누수漏水가 가장 많이 떨어지며, 천성天星인 대화大火 동방東方의 7수宿가 어두울 무렵에 모두 나타나는 하짓날에 이 천시天時의 기후를 가지고 중하仲夏의 절기를 조정해준다.
이때에는 묘가苗稼가 이미 심어졌으니 농사일이 더욱 분답하므로 이때에 백성들은 노약자가 한 장정을 따라 전야田野에 나가 있게 된다.
이때에 조수鳥獸는 털과 깃이 희소希少해졌다가 추울 때에 변개變改한다.
또한 화씨和氏로서 자字가 중仲인 사람에게 따로 명하여 서방西方에 거주하며 다스리게 하였다.
해가 지는 곳의 이름을 매명昧冥이라 하는데, 이곳에서 관리하는 직무를 화중和仲으로 하여금 주관해 다스리게 하였다.
이미 서방西方의 일을 주관하고 있고 해가 지는 곳이 서방西方에 있는 이상, 화중和仲으로 하여금 이미 지는 해를 공경히 따라가 전송하면서 서방西方의 만물을 이루는 일을 고루 차례에 따라서 진행하되 저 하민下民으로 하여금 부지런히 수확하게 하였다.
해가 낮과 밤의 길이가 균등해지고 각루刻漏가 평등한 시간을 유지하며, 천성天星인 허수虛宿 북방北方의 7수宿가 어두울 무렵에 모두 나타나는 추분날에 이 천시天時의 기후를 가지고 중추仲秋의 절기를 조정해준다.
이때는 벼가 자라서 열매를 맺은 시기이므로 농사일이 한가하지 못하니, 이때의 백성들은 여름과 함께 어우러져서 모두 전야田野에 있게 된다.
이때에 조수鳥獸는 털과 깃이 다시 나서 약간 정리된다.
疏
또한 화씨和氏로서 자字가 숙叔인 사람에게 거듭 명하여 북방北方에 거주하며 다스리게 하였다.
그곳 이름은 유도幽都의 땅이라 하는데, 이곳에서 관리하는 직무를 화숙和叔으로 하여금 주관해 다스리게 하였다.
동시에 북방北方의 해가 바뀌는 일들을 고루 시찰하게 하였다.
해의 길이가 제일 짧은 시기이고 낮의 각루刻漏가 가장 적게 떨어지며, 천성天星인 묘수昴宿 서방西方 7수宿가 어두울 무렵에 모두 나타나는 동짓날에 이 천시天時의 기후를 가지고 중동仲冬의 절기를 조정해준다.
이때에는 벼를 이미 거두어 들여 농사일이 한가하니, 이때의 사람들은 모두 아랫목이 깊이 박힌 방에 거처하고, 조수鳥獸는 모두 부드럽고 가는 털이 나서 스스로 보온한다.
이것은 바로 희씨羲氏와 화씨和氏가 하늘을 공경하고 사람들에게 절기를 알려주는 실제의 일이다.
희씨羲氏와 화씨和氏가 주관하는 일이 이와 같기 때문에 제요帝堯가 이에 술회하고 찬탄하기를 “아, 너희들 희중羲仲‧희숙羲叔 그리고 화중和仲‧화숙和叔아.
1년은 366일인데, 12개월로 나누면 남은 날이 다하지 않아 해와 달의 운행 도수가 차이 나게 되니, 만일 윤달로 모자란 것을 보충하여 해와 달의 운행 도수가 정상적인 도수를 얻게 하면 사시四時의 절기를 정하여 한 해의 역상曆象을 이루게 되니, 이것이 바로 찬탄할 만한 너의 아름다운 점이다.
또 이와 같은 세력歲曆을 가지고 시절을 알려주는 동시에 씨 뿌리고 수확하기 알맞은 때를 알려주며, 참으로 백관百官을 잘 다스려서 여러 공이 모두 넓혀지도록 하라.”고 하였다.
희씨羲氏와 화씨和氏가 능히 하늘의 절후를 경건하게 받든 것을 탄미하였으니, 여러 공이 모두 넓혀지면 바로 풍속이 크게 화평해지는 것이다.
疏
○정의왈正義曰:《국어國語》 〈초어楚語〉에 “소호씨少皞氏가 쇠락하자 구려九黎가 덕德을 어지럽히므로 사람과 귀신이 뒤섞여 사람인지 귀신인지 구별할 수 없었다.
전욱顓頊이 소호씨少皞氏의 뒤를 이어받아 이에 남정南正인 중重에게 명하여 하늘을 주관해서 여러 귀신을 모아 〈각각 서열을 두고〉 화정火正인 여黎에게 명하여 땅을 주관해서 백성을 모아 〈각각 질서를 유지시킴으로써〉 옛 상도常道를 회복하여 서로 침범하고 번독한 일이 없게 하였다.
그 뒤에 삼묘三苗가 구려九黎의 덕德을 회복하였으므로 요堯임금이 다시 중씨重氏와 여씨黎氏의 후손을 육성하여 구업舊業을 잊지 않은 자로 다시 하늘과 땅을 주관하게 하였다.
이렇게 하여 하夏와 상商에 이르렀기 때문에 중씨重氏와 여씨黎氏가 대대로 하늘과 땅의 질서를 세우고 그 직분을 구별했다.”라고 하였으니, 이 글에 의거하면 요堯임금으로부터 상商나라에 이르기까지는 다른 성씨가 없었다.
요堯임금이 중씨重氏와 여씨黎氏의 후손을 육성하였으니, 이는 바로 희씨羲氏와 화씨和氏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이 희씨羲氏와 화씨和氏는 중씨重氏와 여씨黎氏의 후손으로서 대대로 천관天官과 지관地官의 문서가 나가는 것을 관장하였다.
《상서尙書》 〈주서周書 여형呂刑〉에는 ‘중重’을 먼저, ‘여黎’를 뒤에 적었고, 이 글에는 ‘희羲’를 먼저, ‘화和’를 뒤에 적었으며, 양웅揚雄의 《법언法言》에는 “희羲는 중重에 가깝고, 화和는 여黎에 가깝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은 바로 희羲는 중重을 계승하고 화和는 여黎를 계승한 것이다.
〈여형呂刑〉에서 칭한 ‘내명중려乃命重黎’는 여기의 ‘내명희화乃命羲和’와 한 가지 사례가 된다.
그러므로 〈여형呂刑〉의 전傳에 “중重은 곧 희羲요 여黎는 곧 화和이다.”라고 한 것이다.
희羲와 화和는 비록 별도로 씨족氏族이 되었으나 중씨重氏와 여씨黎氏에서 나왔다.
그러므로 〈여형呂刑〉에서 중重과 여黎를 가지고 말한 것이다.
《국어國語》 〈정어鄭語〉에 “고신씨高辛氏의 화정火正이 되었다.”라고 하였으니, 고신씨高辛氏도 중重과 여黎에게 명하였다.
그러므로 정현鄭玄이 이 주註에서 이르기를 “고신씨高辛氏의 세대에 중重에게 명하여 남정南正을 삼아 하늘을 맡게 하고 여黎에게 명하여 화정火正을 삼아 땅을 맡게 했다.”라고 하였다.
이 “대대로 하늘과 땅을 관장하는 벼슬을 맡았다.”란 글은 《국어國語》 〈초어楚語〉로써 말을 만든 것이다.
《사기史記》 〈초세가楚世家〉에 이르기를 “중려重黎가 제곡帝嚳의 화정火正이 되어 능히 천하天下를 빛내자, 시곡啻嚳이 명하여 축융祝融이라고 하였다.
공공씨共工氏가 난亂을 일으키자, 제곡帝嚳이 중려重黎로 하여금 그를 베어 죽이게 하였으나 다 베어 죽이지 못하였다.
그러나 시곡啻嚳이 결국 경인일庚寅日을 이용해서 중려重黎를 베어 죽이고 그 아우 오회吳回로 중려重黎의 〈후사를〉 삼아 다시 화정火正에 앉히고, 축융祝融이라 했다.”라고 하였다.
상고하건대 소공昭公 29년 조의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소호씨少皞氏에게 중重이란 아들이 있고, 전욱씨顓頊氏에게 여黎라는 아들이 있었다고 칭하였으니, 중重과 여黎 두 사람은 각각 한 제帝에서 나왔는데,
《사기史記》에서 아울러 중려重黎를 초楚나라의 조상으로 삼고 오회吳回를 중려重黎로 삼아서 중려重黎를 관호官號로 만들었으니, 이것은 바로 《사기史記》의 오류인 것이다.
그러므로 진晉나라의 속석束晳이, 사마천司馬遷이 두 사람을 아울러 한 사람으로 만든 일을 기롱한 것은 이를 이른 말이다.
疏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중重은 구망句芒이 되고, 여黎는 축융祝融이 되었다고만 칭하고, 어떤 제帝가 이 벼슬을 시켰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다만 여黎는 바로 전욱顓頊의 아들이므로 그가 축융祝融이 된 일은 반드시 전욱顓頊의 세대에 있었을 것으로 여겨질 뿐이다.
중重은 비록 소호少皞의 아들이지만 여黎와 함께 임명되었으니, 중重으로 하여금 구망句芒이 되게 한 것도 분명히 전욱顓頊의 시대였을 것이다.
축융祝融은 화관火官이니 화정火正이 되었다고 칭할 수 있지만, 구망句芒은 목관木官이니 응당 남정南正이 되었다고 칭해서는 안 되며, 또 목관木官은 하늘을 주관하지 못하고 화관火官은 땅을 주관하지 못하는데,
《춘추외전春秋外傳》에 “전욱顓頊이 남정南正을 임명하여 하늘을 맡게 하고 화정火正을 임명하여 땅을 맡게 했다.”는 것은 아마 목관木官으로 하여금 하늘을 겸해서 관장하고 화관火官으로 하여금 땅을 겸해서 관장하게 했던 모양이다.
남쪽이 양위陽位이기 때문에 하늘을 관장한 것을 남정南正이라 이른 것이다.
그리고 여黎는 본관本官을 칭하기 때문에 땅을 관장했어도 오히려 화정火正이 된 것이다.
정현鄭玄이 조상趙商에게 답하기를 “선사先師 이래로 모두 화관火官이 땅을 관장한다고 하니, 응당 여黎는 북정北正이 되어야 한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에 대하여 공안국孔安國은 분명하게 말한 것이 없으니 꼭 그런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소공昭公 17년 조의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의하면 담자郯子가 “소호씨少皞氏는 새를 가지고 벼슬을 이름했고 전욱顓頊 이후로 민사民事에 관한 것으로 명명命名했다.”라고 칭하였다.
구망句芒과 축융祝融은 모두 인사人事를 가지고 벼슬을 이름한 것이니, 이것은 분명 전욱顓頊의 시대에 해당된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서 말한 소호씨少皞氏에게 네 아들이 있었다는 것은 응당 후대의 자손이지, 친자親子는 아니다.
그 이유는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서 공공씨共工氏에게 구룡句龍이란 아들이 있다고 하였는데, 공공씨共工氏는 전욱顓頊의 전 연대가 오래된 사람이니, 어찌 다시 공공씨共工氏의 친자親子가 전욱顓頊의 시대에까지 살아 있었겠는가?
소호少皞의 네 아들도 역시 친자親子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고신씨高辛氏가 임명한 중重과 여黎는 혹시 중重과 여黎의 자손子孫일 것이니, 반드시 한 사람이 두 시대를 거치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고신씨高辛氏가 앞에 임명한 사람과 뒤에 베어 죽인 사람은 응당 다른 사람이었을 것이다.
이미 죄가 있어 베어 죽였으면 응당 사전祀典에 올려두지 않았을 것이다.
이들은 분명 중重과 여黎의 후손으로 세상에서 중重과 여黎를 가지고 호칭을 한 것이니, 베어 죽인 중重과 여黎는 바로 공이 있는 중重과 여黎의 자손子孫인 것이다.
《상서尙書》 〈주서周書 여형呂刑〉에서 희羲와 화和의 일을 말하면서 오히려 중重과 여黎를 거론하였거늘, 하물며 저기에서 오히려 중重과 여黎에 가까운데 무엇 때문에 일컫지 않겠는가?
이로써 다른 세대의 중重과 여黎로서 이름은 같고 사람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욱顓頊이 중重을 임명하여 하늘을 맡게 하고 여黎를 임명하여 땅을 맡게 한 것이나 희씨羲氏가 하늘을 관장하고 화씨和氏가 땅을 관장한 것으로 말하면 실은 중重‧여黎‧희羲‧화和가 공통으로 관장한 것이다.
여기에서 “이에 희羲와 화和에게 명하여 호천昊天을 경건히 따르게 했다.”는 것은 바로 두 희씨羲氏와 화씨和氏가 공통으로 하늘과 땅의 일을 관장한 것이다.
건乾과 곤坤으로 서로 짝하고 천天과 지地로 서로 이루니, 운행하여 조화를 베푸는 것은 하늘이고, 의뢰해 생겨나 만물을 이루는 것은 땅이니, 하늘의 공이 이루어져 그 나타남은 땅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래에서 말한 ‘일중日中’과 ‘성조星鳥’의 유類는 바로 하늘의 일이고, ‘평질동작平秩東作’의 유類는 바로 땅의 일이니, 각각 그 사시를 나누어 관장하는 것은 별개의 직책이 아니다.
疏
상고하건대 《국어國語》 〈초어楚語〉에 “중重은 하늘을 맡아 귀신을 모으고, 여黎는 땅을 맡아 사람을 모았다.”고 하였다.
하늘과 땅이 이미 떨어졌고 사람과 귀신이 또 다른 상태인데도 공통으로 관장했다고 한 것은 《춘추외전春秋外傳》의 글에 〈여형呂刑〉의 뜻을 설명하기를
“소호少皞가 쇠락하자 하늘과 땅이 서로 통하고 사람과 귀신이 뒤섞였는데, 전욱顓頊이 이에 중重과 여黎에게 명하여 분리시켰다.”고 하여 “땅과 하늘이 통하는 것을 끊었다.”는 말을 해석하였다.
그러므로 “각각 관장한 바가 있었다.”고 말한 것이다.
그러나 하늘과 땅이 서로 통하고 사람과 귀신이 뒤섞일 때에 능히 하늘과 땅을 격리하고 사람과 귀신을 분리한 것을 보였을 뿐이지, 따로 관장한 것은 아니었다.
아래 글에서 관장한 바를 따로 분리한 것은, 희씨羲氏는 봄과 여름을 주관하고 화씨和氏는 가을과 겨울을 주관하여 함께 천시天時를 관장하였기 때문에 공직共職임을 밝힌 것이다.
저기에서 또 “하夏나라와 상商나라에 와서 대대로 하늘과 땅을 관장하였다.”고 말하고, 《상서尙書》 〈하서夏書 윤정胤征〉에 “희씨羲氏와 화씨和氏는 술에 빠져 기상을 살피지 않아 일식日食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희씨羲氏와 화씨和氏가 함께 죄를 받았다.”고 하였으니, 그것이 대대로 하늘과 땅을 관장한 공직共職을 밝힌 것임을 알 수 있다.
전욱顓頊이 임명해서 하늘과 땅을 관장하게 한 사람은 오직 중重과 여黎 두 사람뿐이었으나, 요堯임금이 희羲와 화和에게 명했을 때 희중羲仲, 희숙羲叔, 화중和仲, 화숙和叔 네 사람이었던 것은 희씨羲氏와 화씨和氏 집안에 어진 사람이 이미 많았기 때문이다.
또 후대에 와서는 점점 문명이 발달되었기 때문에 그 직무를 나누어서 맡게 되었으므로 네 사람이 각각 사시四時의 한 절기씩을 맡고 겸해서 방악方嶽을 맡았으니, 사악四嶽이 있기 때문에 네 사람을 쓰게 된 것이다.
전욱顓頊이 중重과 여黎를 임명할 때에는 오직 하늘과 땅만을 맡게 하였고, 악嶽을 주관하게 했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
설령 방악方嶽을 주관하게 했더라도 아마 중重과 여黎 두 사람이 동악東嶽과 서악西嶽을 분담하였을 것이다.
마융馬融과 정현鄭玄이 모두 이 ‘명희화命羲和’란 것은 하늘과 땅을 주관하는 관원에 임명한 것이고, 아래 ‘분명分命’이라 말한 것은 거듭 임명하여 사시四時를 맡는 관원에 임명한 것으로 여겼다.
천지天地와 사시四時는 주대周代에 있어서 총재冢宰와 사도司徒의 등속으로 육경六卿이 바로 그것이다.
공안국孔安國은 말하기를 “여기서는 그 명목만 들고 아래에서 따로 순서에 따라 기록했다.”라고 하였으니, 오직 네 사람만 임명하고 육관六官은 없다.
아래 전傳에는 “사악四嶽은 곧 희羲와 화和의 네 아들이다.”라고 하고, 〈순전舜典〉의 전傳에는 “우禹‧익益 등 여섯 사람이 새로 임명되어 관직을 갖게 되었으니 사악四嶽‧12목牧과 더불어 모두 22명이 되었다.”라고 일컬었다.
그러나 새로 임명된 여섯 사람은, 우禹는 백규百揆에 임명되고, 설契은 사도司徒가 되고, 백이伯夷는 질종秩宗이 되고, 고요皐陶는 사士가 되고, 수垂는 공공共工이 되었으며, 또한 우禹‧설契의 무리는 곧 경관卿官이다.
경관卿官 외에 따로 사악四嶽이 있으니, 사악四嶽은 경관卿官이 아니다.
공안국孔安國의 생각은 희羲와 화和는 이 경관卿官이 아니고 따로 하늘과 땅을 관장하나 다만 천지天地는 사시四時에 운행하고, 사시四時는 자리가 사방四方에 있기 때문에 사시四時를 고루 차서에 따라 다스리는 사람이 따라서 방악方嶽의 일도 주관하는데 오히려 따로 경관卿官을 두어 여러 직무를 분담하는 것으로 여긴 것이다.
疏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소호씨少皞氏가 새를 가지고 벼슬을 이름했다.”라고 일컬었는데, 오구씨五鳩氏는 곧 주대周代의 경관卿官급이었다.
오구씨五鳩氏 외에 따로 봉조씨鳳鳥氏가 있어, 역정曆正이 되었는데, 반차班次가 오구씨五鳩氏의 위에 있었으니, 이는 상대上代 이래로 모두 역수歷數를 중하게 여겼다는 증거이다.
그러므로 요堯임금이 경관卿官 외에 따로 희羲와 화和에게 명하여 하늘과 땅을 관장하게 했음을 알 수 있다.
이때에는 희羲와 화和의 지위가 모든 경卿보다 높았던 것 같은데 후세 이래로 점점 비천卑賤해진 것이다.
《주례周禮》에 “태사太史는 세년歲年을 바로잡아 모든 일을 차서에 따라 진행하는 것을 관장하였다.”고 하였으니, 곧 옛날 희羲와 화和가 맡던 일이다.
환공桓公 17년 조의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일관日官은 경卿의 자리에 거하여 해를 맞았다.”라고 하였으니, 아직도 그 소임을 존중하였던 것이다.
주周나라의 경관卿官급을 요堯시대에도 존중하였던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특별히 “이에 희羲와 화和에게 명하여”라고 말한 것이다.
이 “이에 희羲와 화和에게 명하여”라고 한 것은 능히 준덕俊德을 밝힌 선비를 임용하여 옹화雍和를 이루게 된 이유를 거듭 서술한 것이다.
이상에서는 요堯임금의 성성聖性에 대해 논하고 여기서는 요堯임금의 임현任賢에 대해 말하였는데, 요堯임금 자신에 의거(체험)해서 신하를 임용한 것을 말하였다.
그러므로 ‘내명乃命’이라 한 것이지, ‘시옹時雍’ 뒤에 비로소 명한 것이 아니다.
疏
[使敬順昊天]호천昊天은 혼원混元한 기운이 호연昊然히 광대廣大하기 때문에 호천昊天이라고 한 것이다.
《이아爾雅》의 〈석천釋天〉에는 “봄에는 창천蒼天, 여름에는 호천昊天, 가을에는 민천旻天, 겨울에는 상천上天이라 이른다.”고 하였고,
《모시毛詩》의 전傳에는 “높여 임금으로 여기면 황천皇天이라 칭하고, 원기元氣가 광대廣大하면 호천昊天이라 칭하고, 인仁으로 덮어서 아래를 애처롭게 여기면[閔下]민천旻天이라 칭하고, 위로부터 내려와 살펴보면[降監]상천上天이라 칭하고, 멀리 보는 시야가 새파란 것에 의거하면 창천蒼天이라 칭한다.”고 하였다.
《이아爾雅》는 사시四時의 하늘 이름을 다르게 하였고, 《모시毛詩》의 전傳은 곧 일에 따라 칭호를 세웠다.
정현鄭玄은 《이아爾雅》에서 “봄은 호천昊天, 여름은 창천蒼天이라 이른다.”는 것을 읽었기 때문에 《오경이의五經異義》를 반박하기를
“봄기운은 널리 베풀기 때문에 ‘광대廣大’를 가지고 말하고, 여름 기운은 높고 밝기 때문에 ‘원遠’을 가지고 말하고,
가을 기운은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기 때문에 ‘아래를 살펴보는 것[閔下]’을 가지고 말하고, 겨울 기운은 폐장閉藏하여 깨끗하기 때문에 ‘아래를 감독하는 것[監下]’을 가지고 말하였다.
육적六籍 가운데 모두 하늘이라 칭한 것은 정情의 구한 바를 가지고 말하였을 뿐이지, 반드시 그때(계절)에 대해서 칭한 것은 아니었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요堯임금이 네 하늘을 공경히 존대했기 때문에 광대廣大를 가지고 말한 것이다.
疏
[星 四方中星] 28수宿가 사방에 펴져 있어 하늘을 따라 회전하므로 번갈아 남방에 있게 되니, 매월 각각 중앙을 차지하는 별이 있는 것이다.
《예기禮記》 〈월령月令〉에서 매월 어두울 때와 아침에는 오직 남방의 중앙에 있는 한 별만을 들었는데, 만약 매일 보게 되면 곧 28수宿가 모두 매일 어두울 때와 아침이면 항상 남방의 중앙에 있지 않은 것이 없다.
남방의 중앙에 있으면 사람들이 모두 보기 때문에 중성中星을 가지고 수宿를 표시한 것이니, ‘사방중성四方中星’은 28수宿를 총체적으로 이른다.
혹은 《상서대전尙書大傳》에 “봄을 주관하는 자는 장성張星이 어두울 때 남방의 중앙에 있으면 곡식을 심어야 하고, 여름을 주관하는 자는 화성火星이 어두울 때 남방의 중앙에 있으면 기장을 심어야 하고,
가을을 주관하는 자는 허성虛星이 어두울 때 남방의 중앙에 있으면 보리를 심어야 하고, 겨울을 주관하는 자는 묘성昴星이 어두울 때 남방의 중앙에 있으면 수확을 하여야 한다.”라고 한 것을 가지고 모두 이르기를
“위로는 천자天子에게 고하고 아래로 신인臣人에게 부역을 부과하므로 천자天子가 남쪽으로 얼굴을 향하고 앉아서 사방의 별이 중앙에 있는 것을 보고 사람들의 한가함과 바쁜 것을 알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농사철을 경건하게 알려주도록 했다.”고 하면서
여기의 ‘사방중성四方中星’을 《상서대전尙書大傳》의 말처럼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공안국孔安國은 허성虛星과 묘성昴星 등에 대하여 본래 중中을 취한 일이 없는데, 《상서대전尙書大傳》을 가지고 공안국孔安國의 말로 여기는 것은 그 뜻을 제대로 설명한 것이 아니다.
[辰 日月所會]소공昭公 7년 조의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서 사문백士文伯(伯瑕)이 진晉 평공平公에게 대답한 말이다.
해의 운행 속도는 더디고 달의 운행 속도는 빠르므로 매월 초하루마다 달이 운행하여 해와 서로 만나는데, 반드시 수宿에서 만난다.
28수宿를 나누면 바로 해와 달이 모이는 곳이다.
신辰은 시時의 뜻이니, 집회集會에 때가 있으므로 신辰이라 이른 것이다.
‘일월소회日月所會’와 ‘사방중성四方中星’은 모두 28수宿인데,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을 들 때에는 성星을 가지고 말하고, 해와 달이 모이는 바를 논할 때에는 신辰을 가지고 말하였지만 실은 한 물상物象이다.
《상서尙書》 〈우서虞書 익직益稷〉에서 옛사람의 법상法象을 칭할 때에 일월日月과 성신星辰이 한 법상法象이 된 것은 그 실상이 서로 같기 때문이다.
사시四時가 변화變化하므로 이것을 가지고 정사를 하였다.
그러므로 희羲와 화和에게 명하여 산술算術과 추보推步를 가지고 일월日月과 성신星辰이 운행하는 것을 책력으로 기록하고, 일월日月과 성신星辰이 있는 곳을 법상法象으로 삼아서 모두 분수分數와 절후節候를 두되 들쑥날쑥 같지 않게 만들도록 하였다.
이 천시天時를 경건히 기록해서 책력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알려주도록 한 것이니, 여기서는 성星과 신辰이 함께 한 물상物象이 된 것을 말하였다.
《주례周禮》 〈춘관春官 대종백大宗伯〉에 “실시實柴로써 일월日月과 성신星辰에 제사 지낸다.”고 하였는데, 정현鄭玄이 “성星은 오위五緯(金‧목木‧수水‧화火‧토土)를 이르고, 신辰은 해와 달이 모이는 12차次를 이른다.”고 말한 것은 성星과 신辰이 두 가지가 되기 때문이다.
오위五緯와 28수宿는 모두 천성天星이니, 하늘의 신기神祇는 예禮에 제사 지내지 않음이 없기 때문에 정현鄭玄이 일에 따라 나눈 것이다.
이 때문에 ‘경수인시敬授人時’는 오위五緯의 뜻을 취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정현鄭玄은 이 주注에서도 역시 성星과 신辰을 하나로 여겼으니, 글의 쓰임을 봐서 설명을 하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성五星과 일월日月은 모두 따로 운행하여 28수宿와 더불어 부동물체가 되지 않는다.
疏
○정의왈正義曰:[宅 居] 《이아爾雅》 〈석언釋言〉의 글이다.
《상서尙書》 〈하서夏書 우공禹貢〉의 청주靑州 조條에 이르기를 “우이嵎夷 지방을 이미 다스리고 나서”라고 하였다.
청주靑州는 동계東界 밖의 변두리를 표表로 삼은 바로 그곳에 있다.
그러므로 〈공전孔傳에서〉 “동표東表의 땅을 우이嵎夷라 일컫는다.”고 한 것이다.
음陰과 양陽은 서로 대우對偶를 이루는 것이니, 음陰이 어두우면 양陽이 밝은 법이다.
골짜기에는 음陰과 양陽의 구별이 없어 해가 골짜기에서 솟아나오기 때문에 천하가 모두 밝은 것이다.
그러므로 해가 솟아나오는 곳을 양곡暘谷이라 이른다.
겨울에는 해가 남쪽에서 솟아나오고, 여름에는 해가 북쪽에서 솟아나오므로 일정하게 솟아나오는 곳이 정해져 있지 않다.
다만 해는 공도空道를 경유하므로 마치 골짜기로부터 운행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므로 곡谷을 가지고 말한 것이지, 실제로 골짜기가 있어서 해가 그 골짜기로부터 솟아나오는 것은 아니다.
해가 솟아나오는 곳에 의거하여 양곡暘谷이라 이르고, 그 지명을 가리켜 곧 우이嵎夷라 칭했기 때문에 〈공전孔傳에서〉 “양곡暘谷과 우이嵎夷는 한 가지이다.”라고 한 것이다.
또 거居는 그 관소에 거주한 것이지, 그 땅에 거주한 것이 아니라고 이해했기 때문에 〈공전孔傳에서〉 “희중羲仲이 동방東方의 관소에 거주하여 다스렸다.”고 한 것이다.
여기 경經에서 말한 ‘따로 명하여[分命]’란 것은 위에서 말한 ‘이에 희羲와 화和에게 명하여[乃命羲和]’란 것이 바로 그것이니, 그 명목을 총괄적으로 든 것이다.
‘내명乃命’의 안에서 그 직장職掌을 나누어 희羲는 봄과 여름을, 화和는 가을과 겨울을 주관하게 하였으니, 곧 한 해를 나누어서 따로 관장하게 한 것이다.
희羲와 화和의 소임 안에서 또 거듭 나누었기 때문에 여름에는 ‘다시 명하여[申命]’로 변개해서 말한 것이다.
이미 중仲에게 명하고 다시 숙叔에게 명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거듭 명한 것이다.
명한 바에 백伯과 계季가 없는 것은 아마 그때에 백伯과 계季가 없었거나 아니면 혹 있어도 어질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니, 《춘추외전春秋外傳》에서 일컫기를 “요堯임금이 중씨重氏와 여씨黎氏의 후손을 육성하여 구업舊業을 잊지 않는 자로 다시 하늘과 땅을 주관하게 하였다.”고 한 것은 중仲과 숙叔이 구업舊業을 잘 지키기 때문에 그들에게 명하였음을 밝힌 것이다.
여기서 희羲와 화和가 하늘과 땅의 질서를 세우는 일을 관장하고 겸하여 인류에 대한 일을 맡았으며, 따라서 사시四時를 주관하고 사방四方을 나누어서 맡았다.
그러므로 동표東表의 땅을 들어서 거행할 지역을 밝혔다.
땅 동쪽에서 우이嵎夷의 이름을 든 것은 분담하는 삼방三方에 모두 마땅히 지명地名이 있어야 함을 밝히기 위한 것인데, 이것이 그중 시초가 되기 때문에 특별히 그 글을 자세하게 적은 것이다.
[羲仲 居治東方之官]제도帝都에 거주하면서 멀리 동방의 솟아나오는 해에 관한 일을 통령統領했음을 말한 것이니, 왕숙王肅이 말한 “모두 경사京師에 거주하여 통령統領하되 또한 수시로 직무상황을 보고하였다.”는 것이 바로 그 일이다.
춘위春位가 동쪽에 있음으로 인해 동방東方에서 다스리나 실은 본래 사방四方의 춘정春政을 주관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전孔傳에서〉 화중和仲의 아래에 “이는 서방西方에 거주하여 다스리는 관원이 추천秋天의 정사를 관장하는 것이다.”라고 하여, 이 춘천春天의 정사를 관장하였음을 밝힌 것이다.
공안국孔安國은 경經에 대한 일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래 글에서 상호적으로 발명한 것이다.
疏
○정의왈正義曰:[寅 敬] 《이아爾雅》 〈석고釋詁〉의 글이다.
〈석고釋詁〉에서 질秩을 상常의 뜻으로 풀이하였는데, 상常은 곧 차제次第에 순서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질秩을 서序의 뜻으로 본 것이다.
한 해의 일이 동쪽에 있어서 봄철이 되면 경작耕作하는 일이 시작되고, 남쪽에 있어서 여름철이 되면 만물이 화육化育하게 되고, 서쪽에 있어서 가을이 되면 만물이 성숙하게 되고, 북쪽에 있어서 겨울철이 되면 만물이 개역하게 된다.
그러므로 방위의 이름을 세사歲事에 배당해서 문장을 만들었으니, 곧 하늘의 시기時氣에 따라 농사를 권장하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었다.
봄에는 만물이 생장하고 가을에는 만물이 성숙한다.
〈춘분春分의 아침에〉 해가 솟아나오면 만물이 비로소 생장하게 되므로 사람은 마땅히 그 생장에 따라 경운耕耘하는 일을 힘써야 하고, 〈추분秋分의 석양에〉 해가 지면 만물이 모두 성숙하므로 사람은 마땅히 그 성숙에 따라 수확하는 일을 힘써야 한다.
동방東方을 맡은 관원은 마땅히 경건하게 솟아나오는 해를 인도한 다음, 봄철 농사일을 고루 질서에 따라 진행하여 농민들로 하여금 논밭을 갈고 김을 매게 해야 하며, 서방西方을 맡은 관원은 마땅히 경건하게 지는 해를 전송한 다음, 가을철 농사일을 고루 질서에 따라 진행하여 농민들로 하여금 수확하게 해야 한다.
해가 솟아나오고 지는 것은 자연의 현상이나, 다만 해가 솟아나오고 지는 것으로 말미암아 만물이 생장하고 성숙해질 뿐이다.
비록 기후가 능히 만물을 생성하지만 사람이 아니면 성취하지 못한다.
논밭을 갈아 씨앗을 뿌리는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 바로 솟아나오는 해를 인도하는 과정이고, 곡식을 수확하여 저장하는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 바로 지는 해를 전송하는 과정이다.
겨울과 여름을 다룬 글에 이런 유類가 없는 것은 남南과 북北 두 방위는 해가 솟아나오거나 지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평질남와平秩南訛’ 또한 해를 인도하는 일이고, ‘평재삭역平在朔易’ 또한 해를 전송하는 일이다.
이에 의하여 봄과 가을에는 함께 해를 인도하고 해를 전송한다.
그러므로 겨울과 여름 두 시절에는 〈해를 인도함과 해를 전송함에 대한〉 한 글귀씩이 없는 것이다.
농민을 권장하여 모두 힘을 쓰도록 하는 것이 바로 경건하게 해를 인도하는 일이고, 고르게 하고 차서에 따라 진행하는 것이 바로 사람들에게 농사철을 알려주는 일이고, 전답 안에 각각 강역疆埸을 두는 것이 바로 고르게 하는 일이다.
그리고 논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곡식을 수확함에 있어서 그 차서를 잃지 않게 하니, 왕자王者가 농사를 귀중히 여겨 농사에 주력한 것이다.
‘인빈출일寅賓出日’은 ‘평질平秩’을 위하여 글을 설정한 것이다.
[敬導出日] 정확하게 봄철 농사를 지음에 있어서 〈강역疆埸을〉 고르게 정리하고 〈논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곡식을 수확하는 것을〉 차서에 따라서 농사에 힘쓰게 함을 이르는 것이다.
정현鄭玄은 작作을 생生의 뜻으로 보았는데, 가을에 대하여 ‘서성西成’이라고 말한 것을 감안하면 봄에 대해서는 응당 ‘동생東生’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다만 사시四時의 공功은 모두 ‘작력作力’을 필요로 하니, ‘역작力作’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곧바로 ‘생성生成’을 말한다면 여기서 세사歲事가 갓 일어난 것을 밝히기 위함이었지만, 특별히 ‘동작東作’이라고 말한 것은 사시四時에 또한 마땅히 역작力作해야 함을 보인 것이다.
그러므로 공안국孔安國은 ‘경작耕作’으로 해석하였다.
정현鄭玄은 “‘인빈출일寅賓出日’은 춘분春分 조일朝日을 이른다.”라고 하였고, 또 “‘인전납일寅餞納日’은 추분秋分 석일夕日을 이른다.”라고 하였다.
疏
○정의왈正義曰:중춘仲春‧중추仲秋‧동지冬至‧하지夏至에 대하여 마융馬融은 이르기를
“옛날 제도에 각루刻漏는 낮과 밤이 합해서 100각刻이었으니, 낮이 길어 60각刻이면 밤은 짧아 40각刻이었고, 낮이 짧아 40각刻이면 밤은 길어 60각刻이었으며, 낮의 길이가 50각刻이면 밤의 길이도 50각刻이었다.”고 하였다.
마융馬融의 이 말은 해의 출현에 의거해서 말한 것이다.
하늘의 주야晝夜는 해의 출입出入을 가지고 구분을 하고, 사람의 주야晝夜는 혼명昏明을 가지고 한계를 정한다.
해가 아직 나오기 전 2각刻 반半을 명明으로 삼고, 해가 진 후 2각刻 반半을 혼昏으로 삼는다.
밤의 5각刻을 덜어서 낮에 보태면 낮의 길이가 밤보다 더 기니, 다시 5각刻을 따지게 된다.
고금古今의 역술曆術과 태사太史가 관측한 데에 모두 이르기를
“하지夏至 때 낮의 길이가 65각刻이면 밤의 길이가 35각刻이고, 동지冬至 때 낮의 길이가 45각刻이면 밤의 길이가 55각刻이며,
춘분春分과 추분秋分 때 낮의 길이가 55각刻이면 밤의 길이가 45각刻이니, 이것은 바꿀 수 없는 법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지금 태사太史가 세밀히 관측하는 법은 상법常法 반각半刻을 계산한 것이다.
춘분春分에서부터 하지夏至까지는 낮의 길이가 점점 길어져서 9각刻 반半이 증가된다.
하지夏至에서 추분秋分까지는 감해진 각수刻數가 또한 증가된 각수刻數와 같다.
추분秋分에서 동지冬至까지는 낮의 길이가 점점 짧아져서 10각刻 반半이 감해진다.
동지冬至에서 춘분春分까지는 증가된 각수刻數가 또한 감해진 각수刻數와 같다.
또 매 절기의 사이마다 증감增減된 각수刻數에 많은 경우와 적은 경우 있으므로 통틀어 일률로 삼아서는 안 된다.
한漢나라 초기에는 잘 살펴서 알아보지 않고 일률적으로 9일에 1각刻을 증가하거나 감하였는데, 후한後漢 화제和帝 때에 대조待詔 곽융霍融이 비로소 청해서 그것을 개정하였다.
정현鄭玄이 《서위書緯》 〈고령요考靈曜〉에 주를 달 적에는 그대로 이르기를 “9일에 1각刻을 증가하거나 감한다.”고 하여, 오히려 오류를 깨닫지 못하였다.
그런데 정현鄭玄이 여기에 주를 달 적에는 “해가 긴 경우는 해가 출현하는 각루刻漏가 55각刻이고, 해가 짧은 경우는 해가 출현하는 각루刻漏가 45각刻이다.”라고 하여, 역曆과 동일하지 않다.
그러므로 왕숙王肅이 힐난하기를 “해가 출현하는 각루刻漏가 주루晝漏 5각刻이 감한 것만 알고 마융馬融이 전傳을 달 때에 이미 감한 것은 생각지 않았다.
그러므로 해의 길이가 55각刻이 되는데, 따라서 동지冬至에 이를 돌이키고, 그 하지夏至의 야각夜刻을 취하여 동지冬至의 주단晝短을 만들었으니, 이것이 오류를 범하게 된 이유이다.”라고 하였다.
疏
[鳥 南方朱鳥七宿] 하늘에 있어 형상을 이룰 때에 별이 새의 형상을 짓는 것이다.
《예기禮記》 〈곡례曲禮〉에서 군진軍陣과 하늘의 운행을 상징함을 설명하면서 “군대가 행진할 때 앞에는 주작기朱雀旗를, 뒤에는 현무기玄武旗를, 왼편에는 청룡기靑龍旗를, 오른편에는 백호기白虎旗를 세운다.”고 하였는데, 작雀은 곧 조鳥이다.
무武는 귀갑龜甲의 방어를 이르기 때문에 ‘현무玄武’로 변문變文하였다.
이것은 하늘의 별에 용과 범과 새와 거북의 형상이 있기 때문이다.
사방四方에는 모두 7수宿가 있어 각각 하나의 형상을 이룬다.
동방東方에는 용의 형상을 이루고 서방西方에는 범의 형상을 이루되 모두 남쪽으로 머리를 두고 북쪽으로 꼬리를 뻗었다.
남방南方에는 새의 형상을 이루고 북방北方에는 거북의 형상을 이루되 모두 서쪽으로 머리를 두고 동쪽으로 꼬리를 뻗었다.
남방南方의 수宿는 새를 형상했기 때문에 새를 ‘주작칠수朱鳥七宿’라고 이른다.
이 경經에서는 수宿를 거론함에 있어서 각각 문체를 다르게 하였다.
봄에는 ‘성조星鳥’를 말하여 7수宿를 모두 들고, 여름에는 ‘성화星火’를 말하여 방수房宿와 심수心宿만을 가리키고, 허虛와 묘昴는 오직 1수宿만을 들었을 뿐이다.
문체가 같지 않은 것은 상호적으로 통하기 때문이다.
《이아爾雅》 〈석언釋言〉에서 은殷을 중中으로 여긴 것은 중中과 정正이 뜻이 같기 때문이다.
이 경經에서는 겨울과 여름의 경우에는 ‘정正’을 가지고 말하고, 봄과 가을의 경우에는 ‘은殷’을 가지고 말한 것은 그 뜻이 같기 때문이다.
춘분날 어두울 때에 조성鳥星이 다 나타난 것을 보고 중춘仲春의 절기를 조정한다.
중춘仲春에는 해가 규수奎宿와 누수婁宿에 머물러 있다가 유방酉方의 땅으로 들어가는 것을 감안하면 갓 어두울 때에 정수井宿와 귀수鬼宿는 오방午方에 있고, 유수柳宿와 성수星宿와 장수張宿는 사방巳方에 있고, 진수軫宿와 익수翼宿는 진방辰方에 있으므로 이것이 바로 ‘주작칠수朱鳥七宿’를 모두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봄의 계절은 3개월인데도 이 경經에서는 달랑 ‘중춘仲春’이라고만 하였다.
그러므로 공전孔傳에서 변별하기를 이미 중춘仲春의 절기를 조정해준다 하였으니, 전환하여 계춘季春과 맹춘孟春을 추리하면 일을 또한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한 것이다.
천도天道는 왼편으로 돌고 일체日體는 오른편으로 운행한다.
그러므로 별이 나타나는 방위가 사시四時와 더불어 서로 어긋난다.
봄에는 남방南方에 나타나고, 여름에는 동방東方에 나타나고, 가을에는 북방北方에 나타나고, 겨울에는 서방西方에 나타나니, 이것은 형세상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서위書緯》에서 글을 지어 말을 만들어내기를 “봄과 여름이 서로 교접하고 가을과 겨울이 서로 관계를 갖는 것은 어머니가 자식을 생성하고 자식이 어머니를 돕는 것을 이른다.”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허무맹랑한 말일 뿐이다.
마융馬融과 정현鄭玄은 “성조星鳥와 성화星火는 정확하게 남방南方에 있는 것을 이른다.
춘분春分의 저물녘에는 칠성七星이 중정中正한 별이고, 중하仲夏의 저물녘에는 심성心星이 중정한 별이고, 추분秋分의 저물녘에는 허성虛星이 중정한 별이고, 동지冬至의 저물녘에는 묘성昴星이 중정한 별이니, 모두 중정한 별을 든 것이지, 한 방위가 다 나타나게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하였으니, 이 점은 공안국孔安國과 다르다.
중월仲月을 들어 한 시절을 통솔한 것에 대해서는 또한 공안국孔安國과 의견이 같다.
왕숙王肅 또한 성조星鳥의 등속을 저물녘의 중정한 별로 여겼으니, 결과적으로 다른 견해를 보인 것은
‘소택所宅’은 맹월孟月로 여기고, ‘일중日中’과 ‘일영日永’은 중월仲月로 여기고,
‘성조星鳥’와 ‘성화星火’는 계월季月로 여기고, ‘이은以殷’과 ‘이정以正’은 모두 삼시三時의 달을 총칭한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고, 중仲을 중中의 뜻으로 읽은 것은 각각 3개월의 중기中氣를 조정함을 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융馬融과 정현鄭玄의 말을 천상天象에 합하지 않은 것으로 여긴 것은,
성화星火의 등속이 중월仲月에는 중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매 시절마다 모두 3개월을 내리 베풀어놓고 해로써 중춘仲春을 조정하고 봄철 3개월의 중기中氣를 조정한 것이라 말하였는데,
만일 봄철 3개월의 중기中氣를 조정했다면 당연히 ‘이정춘중以正春中’으로 말하고 응당 ‘이정중춘以正仲春’으로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공안국孔安國은 곧장 ‘필견畢見’을 취했으니, 약간 우활迂闊하지만 왕숙王肅과 마융馬融에 비하면 이치에 있어서 가장 우세하다.
疏
○정의왈正義曰:[厥 其] 《이아爾雅》 〈석언釋言〉의 글이다.
그 사람들 중에 노약자는 집에 있고 장정은 들로 나가니, 이것이 바로 노약자와 장정이 흩어지는 것이다.
자孶와 자字는 고금을 통하여 뜻이 같은 글자인데, 자字는 사랑하다라는 뜻으로 풀이한다.
산생産生은 유乳, 태잉胎孕은 화化라고 하는데, 잉산孕産하면 반드시 사랑하기 때문에 유화乳化를 자孶라고 한다.
조수鳥獸는 모두 꼬리를 가지고 교접하기 때문에 교접하는 것을 미尾라고 한다.
순서상으로는 응당 미尾를 먼저 말하고 자孶를 뒤에 말해야 하지만 편의에 따라서 말한 것이다.
疏
○정의왈正義曰:[申 重] 《이아爾雅》 〈석고釋詁〉의 글이다.
이 관원은 이미 사시四時를 주관하였고, 또한 방면方面에 대한 것도 주관하였다.
경經에서 ‘남교南交’라고 말한 것은 남방南方과 동방東方이 교접함을 말한 것이고, 전傳에서 “여름과 봄이 교접하다.”라고 말한 것은 때와 방위를 모두 관장하였음을 보인 것이다.
봄이 끝나는 날과 입하立夏의 초에는 때가 서로 교접하고, 동방東方의 남쪽과 남방南方의 동쪽은 방위가 서로 교접한 것이니, 희숙羲叔이 관장한 바가 희중羲仲과 서로 교제함을 말한 것이다.
사시四時에서 모두 중월仲月의 기후를 든 것은 계월季月과 맹월孟月을 총섭하지 못할까 염려했기 때문에 여기에서 ‘교交’를 말한 것인데, 사시四時가 다 그러함을 밝힌 것이다.
그러므로 전傳에서 “한 모서리를 들어 보인 것이다.”라고 한 것이다.
봄 위에 겨울이 없으므로 그 교접交接을 볼 수가 없으며, 여기에 와서야 여름과 봄이 교접하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疏
○정의왈正義曰:[訛 化] 《이아爾雅》 〈석언釋言〉의 글이다.
벼가 싹이 트고 이삭이 패는 것도 역시 태생胎生하고 유화乳化하는 따위와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공전孔傳에서〉 “여름을 맡은 관원이 남방南方의 화육化育하는 일을 고루 차서에 따라 진행한다.”고 한 것은 백성들에게 김을 매어 싹이 자라 이삭이 패도록 함을 이르는 것이고, “교육행정을 경건하게 행하여 그 공을 이루었다.”고 한 것은 고루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교육행정을 경건하게 행하여 화육化育하는 공을 이룸을 이른 것이다.
농사일은 한 해가 끝나야만 마치게 되니, 경건하게 행함은 사시四時가 다 동일하므로 여기서 그것을 말하여 사시四時가 다 그러함을 보인 것이다.
그러므로 “또한 한 모서리를 든 것이다.”라고 한 것이다.
여름은 농사일이 더욱 바쁘기 때문에 여기서 그것을 말한 것이다.
疏
○정의왈正義曰:[永 長] 《이아爾雅》 〈석고釋詁〉의 글이다.
하짓날이 해가 가장 길기 때문에 하짓날을 이른 것임을 알 수 있다.
7수宿를 감안하면 방수房宿는 그 가운데 들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단지 방수房宿와 심수心宿만을 연대한 것은 심수心宿가 그 명칭을 총괄하기 때문이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서 ‘화중火中’이니, ‘화견火見’이니 하고 말한 것과 《시경詩經》 〈빈풍豳風 칠월七月〉에서 “7월에 대화심성大火心星이 서쪽으로 내려가거든[七月流火]”이라고 칭한 것은 모두 방수房宿와 심수心宿가 화성火星임을 가리킨 것이다.
그러므로 공전孔傳에서 “화火는 창룡蒼龍 7수宿의 중성中星이다.”라고 한 것이다.
단지 한 별만 든 것이 조성鳥星과 같지 않기 때문에 공전孔傳에서 “중성中星을 들어 보이면 7성星이 나타나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한 것이다.
중하仲夏에는 해가 동정東井에 머물러 있다가 유방酉方의 땅으로 들어감을 감안하면 갓 어두울 때에 각수角宿와 항수亢宿는 오방午方에 있고, 저수氐宿와 방수房宿와 심수心宿는 사방巳方에 있고, 미수尾宿와 기수箕宿는 진방辰方에 있으니, 이것이 바로 동방東方 7수宿를 다 볼 수 있는 것이다.
疏
○정의왈正義曰:《이아爾雅》 〈석언釋言〉에서 “회晦는 어둡다[冥]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명冥이 바로 어둡다는 뜻이기 때문에 매昧를 명冥의 뜻으로 본 것이다.
곡谷은 해가 다니는 길이니, 해가 골짜기에 들어가면 천하天下가 모두 어둡다.
그러므로 해가 들어가는 곳을 매곡昧谷으로 여긴 것이지, 실제로 골짜기가 있어서 해가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이 경經에서는 봄과 가을을 서로 대우對偶하였는데, 봄에는 동東을 말하지 않고 단지 매곡昧谷을 들어 서西라고만 하였으니, 우이嵎夷가 동쪽이란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동쪽을 우이嵎夷라고 말한 것이니, 서쪽에도 역시 땅이 있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그에 대한 글을 빠뜨린 것은 상호 연관성 있게 보기 위해서이다.
공전孔傳에서 봄에 대해서는 ‘동방지관東方之官’이라 말하고, ‘봄을 맡다[掌春]’라 말하지 않았으며, 여름에 대해서는 ‘여름을 맡은 관원[掌夏之官]’이라 말하고 ‘남방南方’이라 말하지 않았는데, 여기에서 “서방西方에 거주하여 다스리는 관원이 추천秋天의 정사를 관장하였다.”고 말한 것은 호문법互文法을 써서 사시四時가 다 같았음을 밝힌 것이다.
疏
○정의왈正義曰:술을 대접해서 보내는 것을 전餞이라 한다.
도導란 앞에서 인도함을 말하고, 송送이란 뒤에서 따름을 일컫는다.
나가려고 할 경우는 앞에 서서 인도하고, 들어가려고 할 경우는 뒤에 서서 전송하니, 이것은 일의 편의에 따라서 이 문장을 구사한 것이다.
가을의 위치는 서쪽에 있으니, 이때에 만물이 성숙하므로 추천秋天의 정사를 고루 차서에 따라 진행한다.
아직 성숙하지 않은 것은 김을 매어 가꾸고, 이미 성숙한 것은 거두어들이는 등 하늘을 도와 만물을 성숙하게 하니, 이렇게 하여 해가 지는 것을 전송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전孔傳에서 ‘입入’자로 ‘납納’자를 해석한 것이다.
疏
○정의왈正義曰:[宵 夜] 《이아爾雅》 〈석언釋言〉의 글이다.
곽사인郭舍人의 주注에 “소宵는 양기陽氣가 사그라진다.”고 풀이하였다.
삼시三時(봄‧여름‧겨울)에는 모두 낮[日]에 대해 말하였는데, 오직 가을만은 밤[夜]에 대해 말하였다.
그러므로 공전孔傳에서 변별하기를 “봄에 대해서는 낮을 말하고 가을에 대해서는 밤을 말하였으니, 상호간에 구비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상호간에 밝힌다는 뜻으로 곧 낮의 길이가 중간이면 밤의 길이도 중간이고, 밤의 길이가 중간이면 낮의 길이도 중간임을 밝힌 것이다.
이것으로 미루어본다면, 낮이 길면 밤이 짧고 낮이 짧으면 밤이 길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으니, 모두 이것을 가지고 두루 아는 것이다.
진정 이때에 변문變文한 것은 춘분春分과 추분秋分에는 낮과 밤의 길이가 모두 균등한데 봄은 ‘솟아오르는 해[出日]’라고 말하였기 때문에 곧 ‘일日’을 가지고 말하고, 가을은 ‘지는 해[納日]’라고 말하였기 때문에 곧 ‘야夜’를 가지고 말한 것이니, 또한 사리에 맞는다.
북방北方 7수宿는 허수虛宿가 중앙이 되므로 허수虛宿가 현무玄武의 중성中星이 된 것이다.
중추仲秋에는 해가 각수角宿와 항수亢宿에 머물러 있다가 유방酉方의 땅으로 들어감을 감안하면 갓 어두울 때에 두수斗宿와 우수牛宿는 오방午方에 있고, 여수女宿‧허수虛宿‧위수危宿는 사방巳方에 있고, 실수室宿와 벽수壁宿는 진방辰方에 있으니, 허수虛宿의 중성中星을 들어 말하였고, 또한 7성星이 모두 추분날 나타난 것을 가지고 삼추三秋의 절기를 조절함을 말한 것이다.
疏
○정의왈正義曰:《이아爾雅》 〈석훈釋訓〉에 “삭朔은 북방北方의 뜻이다.”라고 하였고, 곽사인郭舍人의 주注에는 “삭朔은 다하다라는 뜻이니, 북방北方은 만물萬物이 궁진窮盡한 곳이기 때문에 삭朔이라고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고, 이순李巡은 “만물萬物이 북방北方에서 궁진窮盡하고 다시 소생하기 때문에 북방北方이라고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희羲‧화和는 사방四方을 주관하는 관원이니, 사시四時에서 모두 응당 방方을 말해야 하는데, 여기에만 방方을 말한 것은 곧 삼방三方을 다 그런 식으로 볼 수 있게 한 것이다.
봄은 세수歲首이기 때문에 지명地名을 들었고, 여름은 봄과 교접하기 때문에 ‘남교南交’라고 말하였으며, 가을에 대해서는 ‘서西’를 말하여 우이嵎夷가 응당 동쪽임을 보였고, 겨울에 대해서는 ‘방方’을 말하여 삼시三時(세 철)에 모두 방方이 있음을 보였다.
고사古史는 간략하게 요약했기 때문에 그 글이 상호간에 발현發見한 것이다.
유幽와 명明은 문장에서 항상 서로 대우對偶가 되니, 북北을 이미 유幽라 칭하였으면 남南은 응당 명明이라 칭했을 것임은 이를 좇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여름에 있어서는 그러한 글이 없는 것이다.
경經에서 겨울에 대하여 ‘유도幽都’를 말하였으므로 여름에 대해서도 응당 ‘명도明都’를 말했어야 할 것 같은데, 전傳에서 도都를 말하지 않은 것을 따라서 알 수 있다.
정현鄭玄은 이르기를 “여름에 대하여 ‘왈명도曰明都’ 3자字를 말하지 않은 것은 마멸된 것이다.”라고 하지만, 복생伏生이 외워 전한 금본今本 《상서尙書》와 공벽孔壁에 소장된 구본舊本 《상서尙書》에 모두 이와 같은 글자가 없으니 마멸된 것이 아니다.
왕숙王肅은 “여름에 ‘명도明都’가 없는 것은 ‘경치敬致’를 피한 것이다.
그러나 유幽에서 충분히 명明을 볼 수 있으므로 글을 빼고 피한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왕숙王肅의 말과 같이 보아야 뜻이 통할 수 있을 것이다.
[都謂所聚] 총체적으로 이 삭방朔方은 바로 만물이 모인 곳임을 말한 것이지, 도읍都邑에 모여 사는 것을 가리킨 것은 아니다.
疏
[易謂歲改易於北方] 사람의 경우는 세 철 동안 들에 있다가 겨울에 오실隩室로 들어오고, 만물의 경우는 세 철 동안 생장하다가 겨울에 균창囷倉으로 들어가니, 이것이 바로 사람과 만물이 개역改易하는 것이다.
왕숙王肅이 이르기를 “개역改易이란 것은 조심스럽게 개장蓋藏을 약속하고 차서에 따라 적취積聚를 행하는 일이다.”라고 하고는 《시경詩經》 〈빈풍豳風 칠월七月〉에 “아, 우리 처자妻子들아 해가 바뀌게 되었으니 이 집에 들어와 거처할지어다.”를 인용하였다.
왕숙王肅은 사람과 만물이 모두 개역함을 말하였으니, 공안국孔安國의 생각도 응당 그랬을 것이다.
《이아爾雅》 〈석고釋詁〉에 “재在는 살피다[察]라는 뜻이다.”라고 하고, 곽사인郭舍人의 주注에 “재在는 사물을 보는 살핌이다.”라고 하였다.
여기서는 재在를 찰察의 뜻으로 보았기 때문에 “고루 그 정사를 살펴서 하늘의 상도常道를 따르는 것이다.”라고 한 것이다.
‘재찰在察’을 ‘평균平均’과 연계해서 말하느라고 재在가 찰察의 뜻이라고 다시 풀이하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순전舜典〉의 전傳에서 별도로 다시 풀이한 것이다.
세 철에는 모두 ‘평질平秩’이라고 말하였건만, 여기서만 유독 ‘평재平在’라고 말한 것은 세 철에는 전야田野에서 농사일에 힘쓰므로 마땅히 차서에 따라야 하고, 겨울에는 만물이 모두 장입藏入하므로 모름지기 살펴야 하기 때문에 그 문장을 다르게 구성한 것이다.
가을철은 만물이 성취하기 때문에 전傳에서 “도와서 만물을 성취한다.”라고 말하였고, 겨울철은 개장蓋藏하는 것이 하늘의 상도常道이기 때문에 “하늘의 상도常道를 따른다.”라고 말하였으며, 따라서 ‘동작東作’과 ‘남와南訛’ 또한 도와서 만물을 생성하는 것이 상도常道와 같음을 밝혔다.
이 사시四時의 절기가 곧 하늘의 정사를 따르는 것임을 밝힌 것이니, 실은 사람들이 ‘경순호천敬順昊天’이 다만 일월日月을 관찰하는 일일 뿐이고, 중仲‧숙叔이 관장한 것은 하늘을 따르는 일이 아니라고 혐의할까 염려했기 때문에 거듭 밝힌 것이다.
疏
○정의왈正義曰:《이아爾雅》 〈석궁釋宮〉에 이르기를 “서남西南의 모서리를 오隩라 이른다.”라고 하였고, 손염孫炎은 이르기를 “방 가운데 은오隱隩한 곳이다.”라고 하였다.
오隩는 바로 실내室內를 이르는 명칭이기 때문에 오隩를 실室의 뜻으로 본 것이다.
만물의 생성이 모두 다하고, 농사가 모두 끝났으니, 이것이 바로 해가 바뀌는 것이다.
천기天氣가 해를 바꾸었기 때문에 이 방에 들어와 거처함으로써 풍한風寒을 피한다.
천기天氣가 이미 이르렀기 때문에 조수鳥獸가 부드러운 털과 가는 털이 나서 스스로 보온을 한다.
경經에서 말한 용모氄毛는 살에 붙은 가는 털을 이르기 때문에 연취耎毳를 가지고 풀이한 것이다.
疏
○정의왈正義曰:[咨 嗟]‧[曁 和] 모두 《이아爾雅》 〈석고釋詁〉의 글이다.
[迊四時曰期] ‘기期’는 곧 ‘잡迊’(匝, 돌다)의 뜻이다.
그러므로 왕숙王肅이 말한 “기期는 사시四時이다.”라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그러나 옛날의 진짜 역曆은 전국戰國시대와 진秦나라를 만나 다 없어졌고, 한漢나라에 6종의 역법이 있어 비록 《오기론五紀論》보다 상세하기는 하지만, 모두 진秦‧한漢의 즈음에 가탁해 만들었으므로 실제로 정요正要를 얻지 못하고 대강의 말만 있을 뿐이다.
주천周天(天體)이 365도度와 1/4도度이니, 해가 하루에 1도度씩 운행하면 1기期(1년)가 365일과 1/4일이다.
지금 《영요靈曜》와 《건착도乾鑿度》 등 여러 위서緯書를 상고해보면 다 그렇게 되어있다.
여기에서 말한 366일에 대하여 왕숙王肅은 “1/4을 또 6일 속에 집어넣어 전수全數를 들어서 말했기 때문에 366일이라 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전傳에서 또 모름지기 윤달을 두어야 한다는 이유를 밝히면서 모두 대략적인 숫자에 의거해서 말하기를 “한 해가 12개월이고, 한 달이 30일이니, 정확하게 360일이고, 작은 달 여섯에서 각각 1일씩을 제하면 다시 6일이다.”라고 하였다.
지금 경經에서 366일이라고 했기 때문에 “12일이 남는다.”고 하였지만 1년을 이루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숫자이다.
한 달 30일이 정제하지 않기 때문에 지금 1년에 12일이 남는다.
그러므로 3년이 채 못 되어 족히 한 달을 얻으면 윤달을 두는 것이다.
시時를 세歲에 분배하였기 때문에 기절氣節이라고 하였으니, 24기氣와 시월時月의 절節을 이른 것이다.
세歲가 시時에 총괄되었기 때문에 “일월日月과 성신星辰의 운행하는 법상을 책력으로 만들어서 농민이 경작하는 농사철을 경건하게 알려주도록 했다.”라고 하였으니, 서로 분배해서 이루기 때문이다.
육력六曆과 여러 위서緯書 그리고 《주비산경周髀算經》에는 모두 해는 1도度를 운행하고, 달은 13도度와 7/19도度를 운행하므로 매월 29일과 과반過半(1일의 절반 이상)이 된다고 하였다.
일日은 일법日法에 있어서 나누면 일수가 499/940일이 되니, 곧 달에 29일과 반강半强(1일의 3/4)이 있게 되는 것이다.
12개월을 만드는 데 있어서 대월大月(30日) 여섯 개 외에 여분餘分이 348(1일의 940/348)이 있으니, 이것은 소월小月 〈여섯에서 각각 1일씩〉 제하여 없어진 6일이며, 또 대세大歲는 366일이고 소세小歲는 355일이니, 1세歲에 남는 것은 없어진 12일이다.
지금 12일이라고 말한 것은 모두 대략적으로 정리한 것에 의거해서 계산한 일수이지만 실은 1세歲에 남는 것은 정확하게 11일 약이다.
19년 동안에 윤달을 일곱 번 둔다고 하는데, 19년 동안 매년 11일이면 209일이니, 일곱 달 중에 대월大月이 네 개고 소월小月이 세 개일 때에도 오히려 207일밖에 안 되는데, 하물며 대월大月이 네 개가 없을 때에야 말할 것 있겠는가.
약인 까닭은 1/4일을 940분에 견주어서 계산하면 1분이 235분이 되니, 작은 달의 여분餘分인 348보다 적다.
235로 348을 감하면 나누어지지 않고 남는 것이 113이니, 이것이 1/4일이 남은 셈이다.
모두 5일을 비율로 하므로 그 소월小月이 비록 세일歲日 잔여분의 감한 바가 되어도 오히려 남는 것이 113이지만 실제로 남은 일수에는 오히려 6일이 없는 셈이다.
6일에서 1일을 뽑아 940분을 삼고 그 113분을 감하면 나누어지지 않고 남는 것이 827분이다.
뽑지 않는 5일을 360일 이외의 5일과 아울러 10일로 삼으면 그 나머지는 827/940일이니, 매년 실제로 남는 일수가 되는 것이다.
지금 19년 동안 매년 10일은 정리된 날 190을 얻는 것이다.
또 19를 가지고 827분을 곱하면 1만 5,713을 얻는다.
190일을 아우르면 206일이 되고, 나누어지지 않고 남는 673분이 일여日餘가 된다.
지금 윤달을 만들면 일곱 개를 얻는데, 매월 29일이면 일곱 달이 203일이 된다.
또 매 499분을 7로 곱하면 3,493을 얻고, 일법日法 940으로 제하면 3일을 얻는다.
203일을 아우르면 또한 206일이 되고, 나누어지지 않고 남는 673이 일여日餘가 되니, 또한 서로 적당한 셈일 것이다.
윤달이 없으면 시時가 정해지지 않고 세歲가 이루어지지 않는 까닭은 만일 윤달이 없어서 3년에 한 달이 어긋나면 정월正月을 2월로 삼게 되고, 매월 모두 어긋나서 9년에 3개월이 어긋나면 곧 봄을 여름으로 삼게 되며, 만일 17년에 6개월이 어긋나면 곧 사시四時가 상반될 터인데, 시時가 어디로 말미암아 정해지고 세歲가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모름지기 윤달을 두어 사시四時를 정해야 한다.
그러므로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이르기를 “책력의 시작을 동지로부터 추산하니 절서節序가 어긋나지 않고, 중기中氣를 가지고 달을 정하니 백성들이 의혹하지 않고, 여분餘分을 세말歲末로 돌리니 일이 어그러지지 않았다.”라고 한 것이 바로 이것이니, 선왕先王은 윤달을 중하게 여겼던 것이다.
왕숙王肅이 이르기를 “두斗의 세워진 바가 바로 중기中氣가 되니, 해와 달이 머물러 있는 곳이다.
두斗는 두 신辰의 사이에 중기中氣가 없는 것을 가리킨다.
疏
○정의왈正義曰:《이아爾雅》 〈석훈釋訓〉에 이르기를 “귀鬼는 귀歸(돌아가다)의 뜻이다.”라고 하였고, 《예기禮記》 〈향음주의鄕飮酒義〉에 이르기를 “춘春은 준蠢(꿈틀거리다)의 뜻이다.”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석훈釋訓〉의 예例에 소리가 서로 가까운 것을 가지고 그 뜻을 풀이한 경우가 있다.
“이釐는 다스리다[治]라는 뜻이다.”라는 것과 “공工은 관官의 뜻이다.”라는 것은 모두 소리가 가까운 것을 가지고 뜻풀이를 하였다.
[績 功]‧[咸 皆] 《이아爾雅》 〈석고釋詁〉의 글이다.
[熙 廣] 《국어國語》 〈주어周語〉의 글이다.
이 경문經文의 뜻은 ‘성세成歲’의 아래를 이었기 때문에 전傳에서 문세文勢를 가지고 차례로 정해서 책력을 만들어가지고 농사일을 알려주어 능히 여러 사람으로 하여금 공을 모두 넓히게 하였음을 말하였다.
[嘆其善]제요帝堯가 희씨羲氏와 화씨和氏의 공을 탄미함을 이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