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尙書注疏(4)

상서정의(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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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五事 一曰貌
[傳]容儀
○貌 本亦作䫉
二曰言이요
[傳]詞章이라
三曰視
[傳]觀正이라
四曰聽이요
[傳]察是非
五曰思이니다
[傳]心慮所行이라
貌曰恭이요
[傳]儼恪이라
言曰從이요
[傳]是則可從이라
視曰明이요
[傳]必淸審이라
聽曰聰이요
[傳]必微諦
思曰睿이니다
[傳]必通於微
○睿 馬云 通也라하니라
恭作肅하며
[傳]心敬이라
從作乂하며
[傳]可以治
明作하며
[傳]照了
聰作謀하며
[傳]所謀必成當이라
睿作聖이니다
[傳]於事無不通 謂之聖이라
[疏]‘二五’至‘作聖’
○正義曰:此章所演 亦爲三重, 第一言其所名, 第二言其所用, 第三言其所致. 貌是容儀, 擧身之大名也.
言是口之所出, 視是目之所見, 聽是耳之所聞, 思是心之所慮, 一人之上, 有此五事也.
貌必須恭, 言可從, 視必當明, 聽必當聰, 思必當通於微密也. 此一重, 卽是敬用之事.
貌能恭, 則心肅敬也. 言可從, 則政必治也. 視能明, 則所見照晢也. 聽能聰, 則所謀必當也.
思通微, 則事無不通, 乃成聖也. 此一重, 言其所致之事. 洪範本體與人主作法, 皆據人主爲說.
貌總身也. 口言之, 目視之, 耳聽之, 心慮之. 人主始於敬身, 終通萬事, 此五事, 爲天下之本也.
五事爲此次者, 鄭云 “此數本諸陰陽, 昭明人相見之次也.”
五行傳曰 “貌屬木, 言屬金, 視屬火, 聽屬水, 思屬土.” 五行傳伏生之書也.
孔於太戊桑穀之下云 “七日大拱, 貌不恭之罰.” 高宗雊雉之下云 “耳不聰之異.” 皆書傳之文也.
孔取書傳爲說, 則此次之意, 亦當如書傳也. 木有華葉之容, 故貌屬木. 言之決斷, 若金之斬割, 故言屬金.
火外光, 故視屬火. 水內明, 故聽屬水. 土安靜而萬物生, 心思慮而萬事成, 故思屬土.
又於易東方震爲足, 足所以動容貌也. 西方兌爲口, 口出言也. 南方離爲目, 目視物也.
北方坎爲耳, 耳聽聲也. 土在內, 猶思在心. 亦是五屬之義也.
[疏]○傳‘察是非’
○正義曰:此五事皆有是非, 論語云 “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 非禮勿動.” 又引詩云 “思無邪.” 故此五事, 皆有是非也.
此經歷言五名, 名非善惡之稱, 但爲之有善有惡, 傳皆以是辭釋之. 貌者言其動有容儀也,
言者道其語有辭章也, 視者言其觀正不觀邪也, 聽者受人言察是非也, 思者心慮所行使行得中也.
傳於聽云 “察是非.” 明五者皆有是非也. 所爲者, 爲正不爲邪也.
於視不言視邪正, 於聽言“察是非.” 亦所以互相明也.
[疏]○傳‘必通於微’
○正義曰:此一重, 言敬用之事. 貌戒惰容, 故恭爲儼恪. 曲禮曰 “儼若思.” 儼是正之貌也.
恪, 敬也, 貌當嚴正而莊敬也. 言非理則人違之, 故言是則可從也. 視必明於善惡, 故必淸徹而審察也.
聽當別彼是非, 必微妙而審諦也. 王肅云 “睿, 通也. 思慮苦其不深, 故必深思, 使通於微也.”
此皆敬用使然, 故經以善事明之. 鄭玄云 “此恭‧明‧聰‧睿, 行之於我身, 其從則是彼人從我.
, 我是而彼從, 亦我所爲不乖倒也.” 此據人主爲文, 皆是人主之事.
說命云 “接下思恭, 視遠惟明, 聽德惟聰.” 卽此是也.
[疏]○傳‘於事’至‘之聖’
○正義曰:此一重, 言所致之事也. 恭在貌而敬在心, 人有心慢而貌恭, 必當緣恭以致敬, 故貌恭作心敬也.
下從上則國治, 故人主言必從, 其國可以治也. 視能淸審, 則照了物情, 故視明致照晢也.
聽聰則知其是非, 從其是爲謀必當, 故聽聰致善謀也. 睿‧聖俱是通名, 聖大而睿小.
緣其能通微, 事事無不通, 因睿以作聖也. 鄭玄周禮注云 “聖通而先識也.”
是言識事在於衆物之先, 無所不通, 以是名之爲聖. 聖是智之上, 通之大也. 此言人主行其小而致其大, 皆是人主之事也.
鄭云 “皆謂其政所致也. 君貌恭則臣禮肅, 君言從則臣職治, 君視明則臣照晢, 君聽聰則臣進謀, 君思睿則臣賢智.”
鄭意謂此所致, 皆是君致臣也. 案‘庶徵’之意, 休徵‧咎徵, 皆肅‧乂所致. 若肅‧乂‧明‧聰, 皆是臣事, 則休‧咎之所致, 悉皆不由君矣.
又聖大而睿小, 若君睿而致臣聖, 則臣皆上於君矣, 何不然之甚乎.
晢字, 王肅及漢書五行志皆云 “晢, 智也.” 定本作晢, 則讀爲哲.


두 번째 ‘五事’는, 첫째는 용모요,
容儀이다.
가 어떤 에는 또 로 되어 있다.
둘째는 말이요,
詞章이다.
셋째는 봄이요,
올바른 것을 보는 것이다.
넷째는 들음이요,
옳고 그름을 살피는 것이다.
다섯째는 생각함입니다.
心慮가 행하는 것이다.
용모는 공손해야 하는 것이요,
儼恪한 태도이다.
말은 따르게 해야 하는 것이요,
옳으면 따를 수 있다는 것이다.
봄은 밝게 보아야 하는 것이요,
반드시 맑게 살피라는 것이다.
들음은 분명해야 하는 것이요,
반드시 세밀하게 살피라는 것이다.
생각은 슬기로워야 하는 것입니다.
반드시 미세한 일에 통해야 한다는 것이다.
馬融이 “‘’의 뜻이다.”라고 하였다.
공손하면 엄숙하게 되며,
마음이 경건함이다.
따르면 다스리게 되며,
다스릴 수 있다는 것이다.
밝으면 명철하게 되며,
밝게 비친다는 것이다.
총명하면 계책이 바로 서게 되며,
계책한 바가 반드시 합당하게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슬기로우면 성인이 되는 것입니다.
일에 통하지 않음이 없음을 ‘’이라 이른다.
의 [二五]에서 [作聖]까지
正義曰:이 에서 부연한 것도 또한 3중으로 되어 있으니, 첫 번째는 그 명칭한 바를 말하고, 두 번째는 그 쓰인 바를 말하고, 세 번째는 그 초래된 바를 말하였다. 는 바로 容儀이니, 몸을 총칭하는 이름을 든 것이다.
은 바로 입으로 내뱉은 것이고, 는 바로 눈으로 보는 것이고, 은 바로 귀로 듣는 것이고, 는 바로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이니, 한 사람의 신상에 이와 같은 다섯 가지 일이 있는 것이다.
용모는 반드시 공손해야 하고, 말은 반드시 따를 수 있게 해야 하고, 보는 것은 반드시 밝게 해야 하고, 듣는 것은 반드시 총명하게 해야 하고, 생각하는 것은 반드시 세밀한 것까지 통해야 한다. 이 한 겹[]은 곧 경건히 쓰는 일이다.
용모가 능히 공손하면 마음이 엄숙하고 경건해질 것이다. 말이 따를 수 있게 발출되면 정사가 반드시 다스려질 것이다. 보는 것이 능히 밝으면 보는 바가 명석할 것이다. 듣는 것이 능히 총명하면 謀劃한 것이 반드시 타당할 것이다.
생각하는 것이 세밀한 것까지 통하면 통하지 않는 일이 없어 곧 성스러움을 이룰 것이다. 이 한 겹은 그 초래된 일을 말한 것이다. 〈洪範〉의 本體君主作法은 모두 君主에 의거해서 말한 것이다.
용모는 몸을 총칭한 것이다. 입은 말하는 기관이고 눈은 보는 기관이고 귀는 듣는 기관이고 마음은 생각하는 기관이다. 군주는 몸을 경건히 갖는 데서 시작하여 만사를 통하는 데서 끝을 맺으니, 이 다섯 가지 일은 천하의 근본이 되는 것이다.
다섯 가지 일이 이와 같은 차례로 전개되는 것에 대해, 鄭玄은 “이 陰陽에 바탕을 두고 사람이 서로 보는 차원에서 밝게 설명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洪範五行傳≫에 “용모는 에 속하고 말은 에 속하고 보는 것은 에 속하고 듣는 것은 에 속하고 생각하는 것은 에 속한다.”라고 하였는데, ≪洪範五行傳≫은 伏生이 저술한 책이다.
孔安國은 〈書序의〉 太戊 때에 “〈妖怪스런 일이 있어〉 뽕나무와 닥나무가 하나로 합해져 조정에서 났다.”라고 한 아래에 “〈두 나무가 하나로 합쳐져 나서〉 7일 만에 큰 아름드리가 되었으니, 불공스러움에 대한 징벌을 예시한 것이다.”라고 단 와 〈書序의〉 “高宗이 〈成湯에게 제사 지낼 때에〉 날아가던 꿩이 〈솥귀로 올라가서 울었다.〉”라고 한 아래에서 “귀가 밝지 못한 데 대한 이상한 징후이다.”라고 단 는 모두 伏生의 ≪尙書大傳≫의 글이다.
孔安國이 ≪尙書大傳≫을 취하여 말을 만들었으니, 이 차례를 한 뜻도 응당 ≪尙書大傳≫과 같게 하였을 것이다. 나무에는 꽃과 잎으로 이루어진 용모가 있기 때문에 용모는 에 속하는 것이다. 말의 결단이 마치 쇠를 베는 것과 같기 때문에 말은 에 속하는 것이다.
불은 밖으로 빛을 내기 때문에 보는 것은 에 속하는 것이다. 물은 안으로 밝기 때문에 듣는 것은 에 속하는 것이다. 흙이 안정함에 만물이 나고, 마음이 사려함에 만사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생각하는 것은 에 속하는 것이다.
또 ≪周易≫ 〈說卦傳〉에 의하면, 東方은 발이 되는데 발은 容貌를 움직이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西方는 입이 되는데, 입은 말을 토해내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南方는 눈이 되는데 눈은 물체를 보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北方은 귀가 되는데 귀는 소리를 듣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흙은 안에 있는 것이 마치 생각이 마음에 있는 것과 같으니, 또한 이것이 다섯 군데 속하게 되는 뜻이다.
의 [察是非]
正義曰:이 다섯 가지 일에는 모두 옳고 그름이 있으니, ≪論語≫ 〈顔淵〉에 “예에 맞지 않는 일이거든 보지도 말며, 예에 맞지 않는 일이거든 듣지도 말며, 예에 맞지 않는 일이거든 말하지도 말며, 예에 맞지 않는 일이거든 행동하지도 말아야 한다.”라고 하였고, 또 ≪詩經≫ 〈魯頌 〉의 “생각함에 간사함이 없다.”라는 것을 인용했기 때문에 이 다섯 가지 일에 모두 옳고 그름이 있는 것이다.
에서 다섯 가지의 이름을 일일이 말하였는데, 이름은 의 명칭이 아니고 다만 하는 일에 따라 이 있고 이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에서 모두 이 말을 가지고 해석하였으니, 의 경우는 그 움직임에 容儀가 있다는 것을 말하였고,
의 경우는 그 말에 辭章이 있다는 것을 말하였고, 의 경우는 그 올바른 것을 보고 간사한 것을 보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였고, 의 경우는 사람의 말을 듣고 옳고 그름을 살핀다는 것을 말하였고, 의 경우는 心慮의 행하는 바가 행함이 중정을 얻게 하였다.
에서는 에서 “옳고 그름을 살피는 것이다.”라고 한 것은 다섯 가지에 모두 옳고 그름이 있음을 밝힌 것이니, 하는 바가 올바른 것은 하고 간사한 것은 하지 않는 것이다.
에서는 간사하고 올바름을 살필 것을 말하지 않고, 에서 “옳고 그름을 살피는 것이다.”라고 말하였으니, 또한 상호적으로 밝히려 한 것이다.
의 [必通於微]
正義曰:이 한 겹은 경건히 쓰는 일을 말한 것이다. 용모는 게으른 모습을 경계하기 때문에 儼恪의 뜻으로 여긴 것이다. ≪禮記≫ 〈曲禮 〉에 “엄숙하기를 마치 무엇을 생각하는 것처럼 한다.”라고 하였으니, 은 바로 嚴正한 모습이다.
의 뜻이니, 용모는 마땅히 嚴正하고 莊敬하게 해야 하는 것이다. 말은 이치에 맞지 않으면 사람들이 어긴다. 그러므로 말이 옳으면 따르는 것이다. 보는 것은 반드시 善惡에 밝아야 하기 때문에 반드시 철저하게 살펴야 한다.
듣는 것은 마땅히 저쪽의 옳고 그름을 구별하여 반드시 세밀하게 살펴야 한다. 王肅은 “의 뜻이다. 思慮는 깊이 생각하지 않는 것이 문제이기 때문에 반드시 깊이 생각하여 미세한 것에 통하도록 하는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모두 경건히 쓰는 것이 그렇게 만들기 때문에 에서 의 일을 가지고 밝혔다. 鄭玄은 “이 는 나의 몸에서 행해지는 것이니, 그 ‘따른다’는 것은 바로 저 사람이 나를 따르는 것이다.
위아래와 서로 어긋난 경우, 내가 옳으면 저 사람이 따르기 때문에 또한 내가 하는 것이 어긋나지 않아야 한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君主 입장에서 글을 만들었기 때문에 모두 군주에 대한 일이다.
說命〉에 “아랫사람을 대할 때에는 공손하게 할 것을 생각하시고, 멀리 보는 데는 밝게 볼 것을 생각하시고, 스런 말을 들을 때에는 귀 밝게 들을 것을 생각하소서.”라고 하였으니, 곧 이것이다.
의 [於事]에서 [之聖]까지
正義曰:이 한 겹은 빚어지게 되는 일을 말한 것이다. 공손함은 용모에 있고 경건함은 마음에 있는 것인데, 사람 중에는 마음은 오만하면서 용모는 공손하게 하는 사람이 있으니, 반드시 공손함으로 인하여 경건함을 다해야 하기 때문에 용모가 공손하면 마음이 경건해야 하는 것이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따르면 나라가 다스려지기 때문에 군주의 말을 반드시 따른다면 나라가 다스려질 수 있는 것이다. 보기를 능히 세심하게 하면 물정을 비추어볼 수 있기 때문에 보기를 밝게 하는 것이 비추어 밝게 인식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듣기를 밝게 하면 그 옳고 그름을 알아서 그 옳음을 따라 모책을 반드시 타당하게 하기 때문에 듣기를 밝게 하는 것이 좋은 모책을 불러온다. 은 다 통달함을 이르는 명칭인데, 은 범위가 크고 는 범위가 작다.
그 능란함을 인하여 미세함을 통하면 무슨 일이든 통하지 않음이 없을 것이니, 슬기로움으로 인하여 이 되는 것이다. 鄭玄의 ≪周禮에 “은 통하여 먼저 아는 것이다.”라 하였다.
이는 일을 아는 것이 만물의 앞에 있기 때문에 통하지 않는 바가 없음을 말한 것이니, 이러므로 이름을 ‘’이라 한 것이다. 은 바로 의 상층이고 중에 큰 것이다. 이는 군주가 그 작은 것을 행해서 그 큰 것을 이룸을 말한 것이니, 모두 이 군주가 하는 일이다.
鄭玄은 “모두 그 정사가 빚어낸 것을 이른다. 임금의 용모가 공손하면 신하의 예모가 엄숙하고, 임금의 말이 따를 수 있으면 신하의 직책이 다스려지고, 임금의 보는 것이 밝으면 신하의 비추어 봄이 명철하고, 임금의 들음이 총명하면 신하가 모책을 올리고, 임금의 생각이 슬기로우면 신하가 어질고 지혜롭다.”라고 하였다.
정현의 뜻은 이렇게 된 소치는 모두 임금이 신하가 그렇게 하도록 만든 결과임을 이른 것이다. 상고하건대, ‘庶徵’의 뜻은 休徵咎徵은 모두 가 빚어낸 것이다. 이를테면 과 같은 것은 모두 신하의 일이니, 가 빚어낸 것은 모두 임금에 연유하지 않는다.
은 범위가 크고 는 범위가 작은 것이니, 만일 임금이 슬기로워서 신하의 성스러움을 빚어낸 것이라면 신하들이 모두 임금의 위에 놓인 꼴인데, 어찌 그리도 옳지 못함이 심한가.
’자에 대하여 王肅과 ≪漢書≫ 〈五行志〉에 모두 “의 뜻이다.”라고 하였다. 定本로 되어 있으니, 로 읽어야 한다.


역주
역주1 晢(철) : 晢은 哲의 통용자이다.
역주2 (乃)[必] : 저본에는 ‘乃’로 되어 있으나, “宋板에는 ‘乃’가 ‘必’로 되어 있다. 살펴보건대 宋板이 옳다.”라고 한 阮元의 校勘記에 의거하여 ‘必’로 바로잡았다.
역주3 (言)[嚴] : 저본에는 ‘言’으로 되어 있으나, 宋刊 單疏本에 의거하여 ‘嚴’으로 바로잡았다.
역주4 以與上下違者 : 宋本과 宋刊 單疏本은 모두 같고 ≪尙書古今文注疏≫에는 ‘以’가 ‘似’로 되어 있으나, 문맥이 통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誤書나 落字가 있는 것 같다. 우선 원문대로 풀이해둔다.

상서정의(4) 책은 2020.12.29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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