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尙書注疏(2)

상서정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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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서정의(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夔曰 予擊石拊石 百獸率舞하며 庶尹 允諧하나이다
[傳]尹 正也 衆正官之長 信皆和諧 言神人治 始於任賢하여 立政以禮하고 治成以樂하니 所以太平이라
○於 竝如字
[疏]‘夔曰’至‘允諧’
○正義曰:皐陶‧大禹爲帝設謀, 大聖納其昌言, 天下以之致治, 功成道洽, 禮備樂和, 史述夔言, 繼之於後.
夔曰 “在舜廟堂之上, 戛敔擊柷, 鳴球玉之磬, 擊搏拊, 鼓琴瑟, 以謌詠詩章, 樂音和協, 感致幽冥, 祖考之神來至矣.
虞之賓客丹朱者在於臣位, 與群君諸侯以德相讓. 此堂上之樂, 所感深矣.
又於堂下吹竹管, 擊鼗鼓, 合樂用柷, 止樂用敔, 吹笙擊鍾, 以次迭作, 鳥獸相率而舞, 其容蹌蹌然.
堂下之樂, 感亦深矣. 簫韶之樂, 作之九成, 以致鳳皇來而有容儀也.” 夔又曰 “嗚呼.” 歎舜樂之美.
“我大擊其石磬, 小拊其石磬, 百獸相率而舞, 鳥獸感德如此, 衆正官長信皆和諧矣.”
言舜敎平, 而樂音和, 君聖臣賢, 謀爲成功所致也.
[疏]○傳‘戛擊’至‘明之’
○正義曰:戛擊是作用之名, 非樂器也, 故以戛擊爲柷敔. 柷敔之狀, 經典無文.
漢初已來, 學者相傳, 皆云 “柷如漆桶, 中有椎柄, 動而擊其旁也. 敔狀如伏虎, 背上有刻, 戛之以爲聲也.”
樂之初, 擊柷以作之, 樂之將末, 戛敔以止之, 故云‘所以作止樂’, 雙解之.
釋樂云 “所以鼓柷謂之止, 所以鼓敔謂之籈.” 郭璞云 “柷如漆桶, 方二尺四寸, 深一尺八寸, 中有椎柄連氐, 挏之令左右擊.
止者, 其椎名也. 敔如伏虎, 背上有二十七鉏鋙刻, 以木長一尺櫟之. 籈者, 其名也.”
是言擊柷之椎名爲止, 戛敔之木, 名爲籈, 戛卽櫟也. 漢禮器制度及白虎通‧馬融‧鄭玄‧李巡, 其說皆爲然也.
惟郭璞爲詳, 據見作樂器而言之. 搏拊形如鼓, 以韋爲之, 實之以糠, 擊之以節樂, 漢初相傳爲然也.
[疏]釋器云:“球, 玉也.” 鳴球, 謂擊球使鳴. 樂器惟磬用玉, 故球爲玉磬. 商頌云‘依我磬聲’, 磬亦玉磬也.
鄭玄云 “磬, 懸也, 而以合堂上之樂. 玉磬和, 尊之也.” 然則鄭以球玉之磬, 懸于堂下, 尊之, 故進之使在上耳.
‘此舜廟堂之樂’, 謂廟內堂上之樂. 言‘祖考來格’, 知在廟內, 下云‘下管’, 知此在堂上也.
馬融見其言‘祖考’, 遂言“此是舜除瞽瞍之喪, 祭宗廟之樂.” 亦不知舜父之喪在何時也.
但此論韶樂, 必在卽政後耳. 此說樂音之和, 而云‘祖考來格’者, 聖王先成於人, 然後致力於神.
言“人悅其化, 神歆其祀, 禮備樂和, 所以祖考來至明矣.” 以祖考來至, 明樂之和諧也.
詩稱神之格思, 不可度思, 而云‘祖考來至’者, 王肅云 “祖考來至者, 見其光輝也.” 蓋如漢書郊祀志稱武帝郊祭天, 祠上有美光也.
此經文次, 以柷敔是樂之始終, 故先言戛擊. 其球與搏拊琴瑟, 皆當彈擊, 故使鳴冠於球上, 使下共蒙之也.
鄭玄以“戛擊鳴球三者, 皆總下樂, 櫟擊此四器也.” 樂器惟敔當櫟耳, 四器不櫟, 鄭言非也.
[疏]○傳‘丹朱’至‘有德’
○正義曰:微子之命云 “作賓于王家.” 詩頌微子之來, 謂之有客, 是王者之後, 爲時王所賓也.
故知虞賓謂丹朱, 爲王者後, 故稱賓也. 王者立二代之後, 而獨言丹朱者, 蓋高辛氏之後, 無文而言, 故惟指丹朱也.
王者之後, 尊於群后, 故殊言在位. 群后亦在位也. 後言德讓, 丹朱亦以德讓矣, 故言與諸侯助祭, 班爵同者, 推先有德也.
, 竝爲上公, 亦有與丹朱爵同, 故丹朱亦讓也. 丹朱之性下愚, 堯不能化, 此言有德者, 猶上云 ‘瞽亦允若’. 暫能然也.
[疏]○傳‘堂下’至‘互見’
○正義曰:經言‘下管’, 知是堂下樂也. 敔當戛之. 柷當擊之, 上言‘戛擊’, 此言‘柷敔’,
其事是一, 故云 ‘上下合止樂, 各有柷敔’也. 言堂下堂上合樂各以柷, 止樂各以敔也.
上言作用, 此言器名, 兩相備也. 上下皆有柷敔, 兩見其文, 明球‧絃‧鐘‧籥, 上下樂器不同, 各自更互見也.
絃謂琴瑟. 鐘, 鏞也. 籥, 管也. 琴瑟在堂, 鐘籥在庭, 上下之器各別, 不得兩見其名, 各自更互見之.
依大射禮, 鐘磬在庭, 今鳴球於廟堂之上者, 案郊特牲云 “歌者在上, 貴人聲也.”
左傳云 “歌鐘二肆.” 則堂上有鐘, 明磬亦在堂上. 故漢魏已來, 登歌皆有鐘磬. 燕禮‧大射, 堂上無鐘磬者, 諸侯樂不備也.
[疏]○傳‘鏞大’至‘蹌蹌然’
○正義曰:釋樂云 “大鐘, 謂之鏞.” 李巡曰 “大鐘, 音聲大, 鏞, 大也.” 孫炎曰 “鏞, 深長之聲.”
釋詁云 “間, 代也.” 孫炎曰 “間厠之代也.” 釋言云 “遞, 迭也.” 李巡曰 “遞者, 更迭間厠, 相代之義,
故間爲迭也. 吹笙擊鐘, 更迭而作, 鳥獸化德, 相率而舞, 蹌蹌然. 下云‘百獸率舞’, 知此蹌蹌然, 亦是舞也.
禮云 “凡行容愓愓.” “大夫濟濟, 士蹌蹌.” 是爲行動之貌, 故爲舞也.
[疏]○傳‘韶舜’至‘率舞’
○正義曰:韶是舜樂, 經傳多矣. 但餘文不言簫. 簫乃樂器, 非樂名. 簫是樂器之小者.
‘言簫 見細器之備’, 謂作樂之時, 小大之器皆備也. 釋鳥云 “鶠, 鳳, 其雌皇.” 是此鳥雄曰鳳, 雌曰皇.
禮運云 “麟‧鳳‧龜‧龍, 謂之四靈.” 是鳳皇爲神靈之鳥也. 易漸卦上九, “鴻漸于陸, 其羽可用爲儀.” 是儀爲有容儀也.
成, 謂樂曲成也. 鄭云 “成, 猶終也.” 每曲一終, 必變更奏, 故經言‘九成’, 傳言‘九奏’, 周禮謂之‘九變’, 其實一也.
“言簫見細器之備, 備樂九奏而致鳳皇, 則其餘鳥獸, 不待九而率舞”也. 尊者體盤, 靈瑞難致, 故‘九成’之下, 始言“鳳皇來儀.”
‘鳥獸蹌蹌’, 乃在上句. 傳據此文言鳥獸易來, 鳳皇難致, 故云‘鳥獸不待九’也.
[疏]樂之作也, 依上下遞奏, 間合而後曲成, 神物之來, 上下共致, 非堂上堂下別有忻感.
以祖考尊神, 配堂上之樂, 鳥獸賤物, 故配堂下之樂. 總上下之樂, 言九成致鳳.
尊異靈瑞, 故別言爾, 非堂上之樂, 獨致神來, 堂下之樂, 偏令獸舞也.
鄭玄注周禮, 具引此文, 乃云 “此其於宗廟, 九奏效應也.” 是言祖考來格‧百獸率舞, 皆是九奏之事也.
大司樂云 “凡者, 六變而致象物及天神.” 鄭玄云 “象物, 有象在天, 所謂四靈者.”
彼謂大蜡之祭, 作樂以致其神, 此謂鳳皇身至, 故九奏也.
[疏]○傳‘尹正’至‘太平’
○正義曰:‘尹 正’, 釋言文.
‘衆正官之長’, 謂每職之首, 周官所謂‘唐虞稽古, 建官惟百’. 是也.
‘信皆和諧’, 言職事修理也. 上云‘祖考來格’, 此言衆正官治, 言神人洽, 樂音和也.
此篇初說用臣之法, 末言樂音之和, 言其‘始用任賢, 立政以禮, 治成以樂, 所以得致太平’. 解史錄夔言之意.


夔가 말하였다. “아! 제가 경쇠를 치고 두드릴 적에 온갖 짐승이 서로 이끌고 춤을 추었으며, 여러 正官의 長이 진실로 화합하였습니다.”
尹은 正의 뜻이다. 여러 正官의 長이 진실로 모두 和諧했다는 것은 神과 사람이 화합함을 말한 것이다. 어진 이를 임용하는 데서 시작하여 禮로써 정치〈의 기반을〉 세우고, 樂으로써 治國을 이루었으니, 그래서 태평하게 된 것이다.
○於와 予는 모두 본음대로 읽는다.
經의 [夔曰]에서 [允諧]까지
○正義曰:皐陶와 大禹가 帝舜을 위하여 謀慮를 내놓자 大聖(帝舜)이 그 온당한 말을 받아들이니, 천하가 이로써 다스려져서 功이 이루어지고 道가 흡족해졌으며, 禮가 갖추어지고 樂이 화평해졌으므로 史官이 夔의 말을 기술해서 뒤에 잇댄 것이다.
夔가 말하기를 “舜임금의 廟堂 위에서 敔를 치고 柷을 치며 球玉의 경쇠를 울리고 搏拊를 치고 거문고와 비파를 연주하면서 詩章을 노래하니, 樂의 소리가 和協하여 幽冥(神)을 감격시켰으므로 조상들의 神이 내려왔다.
虞나라 賓客인 丹朱란 자도 臣位에 있어 群君‧諸侯와 함께 德을 가지고 서로 양보하였습니다. 이것은 堂上의 樂으로서 감격시킨 바가 깊었습니다.
또 堂下에서 竹管을 불고 鼗鼓를 치고 樂을 합주할 때에는 柷을 사용하고 樂을 그칠 때에는 敔를 사용하였으며 생황을 불고 종을 쳐서 차례로 번갈아 〈여러 악기 소리를〉 연주하니, 새와 짐승들이 서로 이끌고 춤을 추었는데, 그 容儀가 너울너울하였습니다.
堂下의 樂이 감격시킴 또한 깊었습니다. 簫韶의 樂을 아홉 번 연주하자 봉황이 와서 〈춤을 춤에〉 용의가 있었습니다.”라고 하였다. 夔가 또 말하기를 “아아.”라고 하였으니, 舜임금의 음악이 아름다움을 찬미한 것이다.
“제가 石磬을 크게 치고 石磬을 작게 쳤더니 온갖 짐승이 서로 이끌고 춤을 추어 새와 짐승이 德에 감화됨이 이와 같았으며, 여러 正官의 長이 진실로 모두 和諧하였습니다.”라고 하였으니,
舜임금의 정치 교화가 평정되어 음악 소리가 화평한 것이 임금은 성스럽고 신하는 어질어서 謀慮가 공을 이루게끔 하였음을 말한 것이다.
○傳의 [戛擊]에서 [明之]까지
○正義曰:戛과 擊은 작용의 이름이지, 樂器가 아니기 때문에 戛과 擊을 柷과 敔라고 한 것이다. 柷과 敔의 형상은 經典에 〈그에 대한〉 글이 없다.
그러나 漢나라 초기 이래로 학자들이 서로 전하는데 모두 이르기를 “柷은 漆桶(검은색 통)과 같은데 통 속에 망치자루가 있어서 이것을 움직여서 그 곁을 친다. 敔는 형상이 伏虎(엎드린 호랑이)와 같은데 등 위에 홈이 있어 긁어서 소리를 낸다.”라고 하였다.
樂을 시작할 때에는 柷을 두들겨서 시작하고, 樂이 끝나려 할 때에는 敔를 긁어서 그치게 하기 때문에 “樂을 시작하거나 그치게 하기 위한 것이다.”라고 하여 두 가지를 풀이한 것이다.
≪爾雅≫ 〈釋樂〉에 “柷을 두들기는 것을 ‘止’라 이르고, 敔를 문지르는 것을 ‘籈’이라 이른다.”라고 하였다. 郭璞은 “柷은 漆桶과 같은데 모서리가 2자 4치이고 깊이가 1자 8치이며, 가운데에 밑바닥까지 닿은 몽치(방망이) 자루가 있어 그것을 밀었다 당겼다 하여 좌우로 쳐지게 한다.
止는 그 몽치의 이름이다. 敔는 〈모양이〉 엎드린 호랑이와 같은데 등 위에 27개의 톱니조각이 있으니 1자 길이의 막대기로 문지른다. 籈은 그 〈문지르는 막대기의〉 이름이다.”라고 하였다.
여기서 “柷을 두들기는 몽치 이름을 ‘止’라 하고, 敔를 문지르는 막대기 이름을 ‘籈’이라 한다.”라고 말하였으니 戛이 곧 櫟의 뜻이다. 漢나라 시대의 禮器制度 및 ≪白虎通≫‧馬融‧鄭玄‧李巡이 그 설을 모두 옳다고 하였다.
오직 郭璞이 자세하였으니, 樂器 제작을 직접 본 것에 의거하여 말했기 때문이다. 搏拊는 형상이 북과 같은데 가죽으로 만들고 겨를 채웠으니, 두들겨 음악의 拍節(박자)을 맞추는 것으로 漢나라 초기부터 서로 전하는 것이 그러하였다.
≪爾雅≫ 〈釋器〉에 “球는 玉이다.”라고 하였다. 鳴球는 球를 쳐서 〈소리가〉 울리게 함을 이른다. 樂器 중에 오직 磬만 玉을 사용하기 때문에 球를 玉磬이라고 한 것이다. ≪詩經≫ 〈商頌 那〉에 ‘우리 磬 소리에 의지하니’라고 하였으니, 磬 또한 玉磬이다.
鄭玄은 “磬은 매다는 악기이지만 堂上의 樂과 합한다. 玉磬이 화합하므로 높이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鄭玄은 球玉의 磬을 堂下에 매달아 놓지만 〈당상의 악과 화합하여〉 높이기 때문에 올려서 위에 있게 한 것일 뿐이다.
[此舜廟堂之樂] 廟內 堂上의 樂을 이른다. ‘조상들의 신이 내려오시고’라고 말했기 때문에 廟內에 있음을 안 것이고, 아래에 ‘下管’이라고 했기 때문에 이것이 堂上에 있음을 안 것이다.
馬融은 ‘祖考’라고 말한 것을 보고 드디어 “이것은 舜임금이 瞽瞍의 喪을 탈상하면서 宗廟에 제사 지낼 때 연주한 樂이다.”라고 하였으나, 또한 舜임금 아버지의 喪이 어느 때에 있었는지 알 수 없다.
다만 여기서 ‘韶樂’을 논하였으니, 반드시 卽政(즉위)한 뒤에 있었을 것이다. 여기 〈經文에서〉 음악소리의 화평함을 말하면서 ‘조상들의 神이 내려오시고’라고 한 것은 聖王이 먼저 〈敎化를〉 사람에게 이루고 연후에 神에게 힘을 쓴 것이니,
〈傳文에서〉 ‘백성들은 그 교화를 기뻐하고 神은 그 제사를 흠향하니, 禮가 갖추어지고 樂이 화평하기 때문에 조상들의 神이 내려온 것’이라고 말한 것이 분명하다. 〈이는〉 조상들의 神이 내려온 것을 가지고 樂의 조화로움을 밝힌 것이다.
≪詩經≫에서 “神의 이르름을 헤아릴 수 없다.”라고 하였는데, ‘조상들의 신이 내려오시고’라고 한 것에 대하여 王肅은 “‘조상들의 신이 내려오시고’란 그 光輝를 보인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아마 ≪漢書≫ 〈郊祀志〉에서 “武帝가 하늘에 郊祭를 지낼 때 사당 위에 아름다운 광채가 있었다.”라고 칭한 것과 같은 것일 것이다.
이 經文의 차서는 柷과 敔가 樂의 시작과 끝이기 때문에 먼저 ‘戛擊’을 말한 것이다. 그 球는 搏拊‧琴‧瑟과 함께 모두 퉁기고 쳐야 하는 악기이기 때문에 鳴을 球의 위에 얹어서 아래에서 함께 이어받게 한 것이다.
鄭玄은 “柷과 敔를 문지르고 치며 球를 울리는 세 가지를 가지고 모두 堂下의 樂을 총괄하였으니 이 네 악기를 櫟擊한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악기는 오직 敔만 문지르는 것일 뿐, 네 악기는 문지르지 않으니, 鄭玄의 말은 잘못된 것이다.
○傳의 [丹朱]에서 [有德]까지
○正義曰:〈微子之命〉에 “〈周나라〉 王家에 賓客이 되게 하노니”라 하였고, ≪詩經≫ 〈周頌 有客〉에서 微子가 〈祖廟에〉 와 〈뵙는 것을〉 칭송하여 ‘有客’이라고 일렀으니, 이는 王者의 후손으로 時王의 賓客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虞賓은 丹朱를 이른 것임을 알 수 있으니, 그가 王者의 후손이기 때문에 ‘賓’이라 칭한 것이다. 王者에 대해서는 두 王代의 후손을 세웠지만, 유독 丹朱만을 말한 것은 아마 高辛氏의 후손에 대해서는 언급한 글이 없기 때문에 오직 丹朱만을 가리킨 것이리라.
王者의 후손은 여러 諸侯보다 높기 때문에 특별히 ‘在位’라고 말한 것이다. 여러 제후 또한 자리에 있었는지라 뒤에서 ‘德讓’이라고 말하였으니, 丹朱 역시 德으로 사양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諸侯들과 함께 제사를 도울 때에 爵位가 같을 경우는 德이 있는 이에게 선두를 양보함을 말한 것이다.”라고 하게 된 것이다.
두 王代의 후손이 모두 上公이 되었고 또한 丹朱와 더불어 벼슬이 같기 때문에 丹朱도 사양했다는 것이다. 丹朱의 성품은 下愚여서 堯임금이 교화할 수 없었는데, 여기에서 ‘有德’이라고 한 것은 위에서 ‘瞽叟 또한 믿고 따랐다.’라고 한 경우와 같으니, 잠깐 동안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이다.
○傳의 [堂下]에서 [互見]까지
○正義曰:經文에서 ‘下管’이라고 말하였기 때문에 堂下의 樂임을 안 것이다. 敔는 문질러야 하고 柷은 쳐야 한다. 위에서는 ‘戛擊’이라 말하고 여기서는 ‘柷敔’라고 말했으나
그 일이 동일한 것이기 때문에 “堂上과 堂下에서 樂을 합주하거나 그칠 때에는 각각 柷과 敔를 두었다.”라고 하였으니, 堂下와 堂上에서 樂을 합주할 때에는 각각 柷을 가지고 하고, 樂을 그칠 때에는 각각 敔를 가지고 했음을 말한 것이다.
위에서는 작용을 말하고 여기서는 악기 이름을 말하였으니 두 가지가 서로 구비된 셈이다. 堂上樂과 堂下樂에 모두 柷과 敔가 있으므로 양쪽에서 그 글을 보인 것이고, 明球‧絃‧鐘‧籥은 堂上과 堂下의 악기가 같지 않으므로 각각 번갈아가며 보인 것이다.
絃은 거문고와 비파를 이른다. 鐘은 鏞이고, 籥은 管이다. 거문고와 비파는 堂에 놓여 있고 북과 피리는 뜰에 놓여 있으니, 堂上과 堂下의 악기가 각각 다르므로 양쪽에서 그 이름을 보일 수 없기 때문에 각각 다시 서로 보인다는 것이다.
≪儀禮≫ 〈大射禮〉에 의하면 鐘과 경쇠가 뜰에 놓여 있었는데 지금 鳴球가 廟堂의 위에 놓여있는 것은, 상고해보면 ≪禮記≫ 〈郊特牲〉에 “노래 부르는 사람이 堂 위에 있는 것은 사람의 음성을 귀히 여긴 것이다.”라 하였고,
≪春秋左氏傳≫ 襄公 11년 조에 “歌鐘 32개를 선물했다.”라고 하였은즉 堂上에 鐘이 놓여 있었으니, 경쇠도 堂上에 놓여 있었음을 밝힌 것이다. 그러므로 漢魏시대 이래로 堂上에 올라가 노래 부르는 자리에는 모두 鐘과 경쇠가 놓여 있었다. 燕禮와 大射禮 때 堂上에 鐘과 경쇠가 없는 것은 諸侯의 樂으로서 구비되지 못한 것이다.
○傳의 [鏞大]에서 [蹌蹌然]까지
○正義曰:≪爾雅≫ 〈釋樂〉에 “큰 鐘을 鏞이라 이른다.”라고 하였는데, 李巡은 “큰 종은 소리가 크게 나니, 鏞은 크다는 뜻이다.”라 하고, 孫炎은 “鏞은 深長한 소리를 낸다.”라고 하였다.
≪爾雅≫ 〈釋詁〉에 “間은 代(대신하다)의 뜻이다.”라고 하였는데, 孫炎은 “間厠(중간에 끼어들다)의 代이다.”라고 하였다. ≪爾雅≫ 〈釋言〉에 “遞는 迭의 뜻이다.”라고 하였는데, 李巡은 “遞는 번갈아 바꾸기도 하고 중간에 끼어들기도 하면서 서로 갈음한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間이 迭이라고 한 것이다. 생황을 불고 종을 쳐서 〈악기 소리가〉 번갈아 울리니, 새와 짐승이 德에 감화하여 서로 이끌고 너울너울 춤을 춘다는 것이다. 아래에 ‘온갖 짐승이 서로 이끌고 춤을 추었다.’라고 하였으니, 여기의 ‘蹌蹌然’ 역시 춤을 추는 것임을 알 수 있다.
≪禮記≫ 〈玉藻〉에 “모든 걷는 모습은 바르면서 빨리한다.”라 하였고, ≪禮記≫ 〈曲禮 下〉에 “大夫의 용의는 다듬은 듯이 정제되고, 士의 걸음걸이는 절도가 있다.”라고 하였으므로, 이는 행동하는 모습이기 때문에 춤이라고 한 것이다.
○傳의 [韶舜]에서 [率舞]까지
○正義曰:韶는 舜임금의 樂인데 經傳에 많이 보인다. 다만 다른 글에서는 簫를 말하지 않았을 뿐이다. 簫는 바로 樂器이지 樂名이 아니다. 簫는 樂器 가운데 작은 것이다.
[言簫 見細器之備] 음악을 연주할 때에 크고 작은 악기가 다 구비됨을 이른 것이다. ≪爾雅≫ 〈釋鳥〉에 “鶠은 鳳인데, 그 암컷은 皇이다.”라고 하였으니, 이 새의 수컷을 ‘鳳’이라 하고 암컷을 ‘皇’이라 한다.
≪禮記≫ 〈禮運〉에 “麟‧鳳‧龜‧龍을 四靈이라 이른다.”라고 하였으니, 鳳皇은 신령스러운 새이다. ≪周易≫ 漸卦 上九爻辭에 “기러기가 점점 육지로 날아가니, 그 깃이 容儀가 될 만하다.”라고 하였으니, 儀는 容儀가 있음을 이른다.
‘成’은 樂曲이 이루어짐을 이른다. 鄭玄은 “成은 終의 뜻과 같다.”라고 하였다. 매 曲이 한 번 끝날 때마다 반드시 변경해서 연주하기 때문에 經文에서는 ‘九成’이라 말하고, 孔傳에서는 ‘九奏’라 말하고, ≪周禮≫에서는 ‘九變’이라 일렀는데, 실은 동일한 것이다.
〈그래서 孔傳에서〉 “簫를 말함은 세쇄한 악기까지 구비된 점을 보이기 위한 것이며, 악기를 구비하고 아홉 번 연주하여 봉황을 오게 하였으니, 나머지 새와 짐승들은 아홉 번 연주하기 전에 이끌고 춤을 추었을 것이다.”라고 한 것이다. 尊者는 몸이 서려 있으니 靈瑞를 초치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九成’의 아래에서 비로소 “봉황이 와서 의젓이 춤을 추었습니다.”라고 말한 것이다.
[鳥獸蹌蹌] 바로 上句에 있다. 孔傳에서는 이 글에 의거하여 鳥獸는 오기 쉽고 鳳皇은 오게 하기 어려운 점을 말하였기 때문에 “나머지 새와 짐승들은 아홉 번 연주하기 전에 이끌고 춤을 추었을 것이다.”라고 한 것이다.
음악을 연주할 때에는 堂上의 樂과 堂下의 樂을 번갈아 연주하고 간간이 합주한 뒤에 曲이 이루어진다. 神物이 오는 것은 당상의 악과 당하의 악이 공동으로 초치하는 것이지 당상의 악과 당하의 악이 각기 따로 감동을 줌이 있는 것은 아니다.
祖考는 尊神이기 때문에 당상의 악에 배치하고, 鳥獸는 賤物이기 때문에 당하의 악에 배치한 것이다. 당상의 악과 당하의 악을 총괄해서 아홉 번 연주하여 봉황을 초치하게 됨을 말한 것이다.
尊者는 특별하고 靈者는 상서롭기 때문에 별도로 말했을 뿐이다. 당상의 악만이 神을 오게 하고 당하의 악만이 짐승을 춤추게 하는 것은 아니다.
鄭玄은 ≪周禮≫에 주를 달 때에 이 글을 모두 인용하고서 곧 “이는 그 宗廟에서 아홉 번 연주하여 효과를 본 것이다.”라고 하였다. ‘조상들이 내려옴’과 ‘온갖 짐승이 이끌고 춤을 춤’을 말한 것은 모두 아홉 번 연주한 일 때문이다.
≪周禮≫ 〈大司樂〉에 “六樂은 여섯 번 변하여 象物과 天神을 오게 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鄭玄은 “象物은 象이 하늘에 있는 것이니, 이른바 四靈이란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저기(≪周禮≫)서는 大蜡의 제사 때 음악을 연주하여 그 神을 오게 함을 이르고, 여기서는 鳳皇이 몸소 온 것을 이르기 때문에 아홉 번 연주한 것이다.
○傳의 [尹正]에서 [太平]까지
○正義曰:[尹 正] ≪爾雅≫ 〈釋言〉의 글이다.
[衆正官之長] 職位마다의 우두머리를 이르니, ≪尙書≫ 〈周官〉에 이른바 “唐‧虞가 옛날 제도를 상고하여 관원을 세우되 〈인원수를〉 百으로 한정하였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信皆和諧] 職事가 修理됨을 말한 것이다. 위에서 “조상들의 신이 내려오셨다.”고 하였고 여기에서 “여러 正官이 화평하게 다스려졌다.”라고 하였으니, 神과 사람이 흡족해 하고 음악 소리가 화평함을 말한 것이다.
이 篇은 첫머리에서는 신하를 임용하는 방법에 대해 말하고, 끝에서는 음악 소리의 화평함에 대해 말하였으니, 〈孔傳은〉 “어진 이를 임용하는 데서 시작하여 禮로써 정치〈의 기반〉을 세우고, 樂으로써 治國을 이루었으니, 그래서 태평하게 된 것이다.”라고 말하여 史官이 夔의 말을 기록한 뜻을 해석하였다.


역주
역주1 於(오) : 조선시대의 校正廳에서 발행한 ≪書傳諺解≫에서는 ‘어’로 발음하여 前置詞로 보았다.
역주2 (致)[政] : 저본에는 ‘致’로 되어 있으나, 諸本에 의거하여 ‘政’으로 바로잡았다.
역주3 二王之後 : 夏나라의 후손인 杞나라와 商나라의 후손인 宋나라를 가리킨다.
역주4 (在) : 저본에는 있으나, ≪周禮≫에 의거하여 衍字로 처리하였다.
역주5 六樂 : 黃帝 이하 六代의 음악 이름으로 곧 雲門(黃帝樂)‧咸池(堯樂)‧大韶(舜樂)‧大夏(禹樂)‧大濩(湯樂)‧大武(文武樂)를 가리킨다.

상서정의(2) 책은 2019.10.01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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