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尙書注疏(3)

상서정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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厥弟五人 御其母以從이라가
[傳]御 言從畋이라
徯于洛之汭하더니 五子咸怨하고
[傳]待太康하고 怨其久畋失國이라
述大禹之戒하여 以作歌하니라
[傳]述 循也 歌以敍怨이라
[疏]○‘太康’至‘作歌’
○正義曰:天子之在天位, 職當牧養兆民. 太康主以尊位, 用爲逸豫, 滅其人君之德, 衆人皆有二心.
太康乃復愛樂遊逸, 無有法度, 畋獵於洛水之表, 一出十旬不反.
有窮國君其名曰羿, 因民不能堪忍太康之惡, 率衆距之於河, 不得反國. 太康初去之時, 其弟五人, 侍其母以從太康.
太康畋於洛南, 五弟待於洛北, 太康久而不反, 致使羿距於河. 五子皆怨太康, 追述大禹之戒以作歌, 而各敍己怨之志也.
其弟侍母以從太康, 太康初去卽然. 待於洛水之北, 以冀太康速反. 羿旣距之, 五子乃怨.
史述太康之惡旣盡, 然後言其作歌, 故令‘羿距’之文, 乃在‘母從’之上, 作文之勢當然也.
[疏]○傳‘尸 主也’
○正義曰:釋詁文.
[疏]○傳‘有窮’至‘廢之’
○正義曰:襄四年左傳曰 “夏之方衰也, 后羿自鉏遷於窮石.” 然則羿居窮石, 故曰 “有窮, 國名.”
窮是諸侯之國, 羿是其君之名也. 說文云 “羿, 帝嚳射官也.” 賈逵云 “羿之先祖, 世爲先王射官, 故帝賜羿弓矢使司射.”
淮南子云 “堯時十日竝生, 堯使羿射九日而落之.”
楚辭天問云 “羿焉彃日烏解羽.” 歸藏易亦云 “羿彃十日.” 說文云 “彃者, 射也.”
此三者, 言雖不經, 以取信, 要言帝嚳時有羿, 堯時亦有羿, 則羿是善射之號, 非復人之名字.
信如彼言, 則不知羿名爲何也. 夏都河北, 洛在河南, 距太康於河北, 不得入國, 遂廢太康耳. 羿猶立仲康, 不自立也.
[疏]○傳‘述循’至‘敍怨’
○正義曰:‘述 循’, 釋詁文. 循其所戒, 用作歌以敍怨也. 其一曰‘皇祖有訓’, 其二曰 ‘訓有之’, 是‘述大禹之戒’也.
其三恨亡國都, 其四恨絶宗祀, 其五言追悔無及, 直是指怨太康, 非爲述祖戒也. 本述戒作歌, 因卽言及時事, 故言祖戒以總之.


太康의 아우 다섯 사람이 어머니를 모시고 〈사냥을〉 따라갔다가
御는 侍의 뜻이니, 사냥하는 데 따라감을 말한 것이다.
洛水의 북쪽에서 기다렸는데, 〈급기야〉 다섯 사람이 모두 〈太康을〉 원망하고
太康을 〈애타게〉 기다렸고, 그가 오래 사냥하다가 나라를 잃게 됨을 원망하였다는 것이다.
大禹의 훈계를 追述하여 노래를 지었다.
述은 循의 뜻이다. 노래를 하여 원망을 서술한 것이다.
經의 [太康]에서 [作歌]까지
○正義曰:天子가 天位에 앉아 있으면 직분 상 당연히 兆民을 牧養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太康은 尊位를 차지하고서 지나치게 안락을 즐겨 임금의 德을 상실하니, 민중이 모두 두 마음을 가졌다.
太康은 다시 愛樂하고 遊逸하기를 法度 없이 하여 洛水의 밖에서 사냥하되 한번 나가면 100일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有窮國의 임금은 그 이름이 ‘羿’인데, 백성들이 太康의 惡行을 감내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민중을 거느리고 河水에서 太康을 막아 나라로 돌아오지 못하게 하였다. 太康이 처음 〈사냥을〉 갈 때에는 아우 다섯 사람이 그 어머니를 모시고 太康을 따라갔다.
太康이 洛水의 남쪽에서 사냥하자 다섯 아우는 洛水의 북쪽에서 기다렸는데, 太康이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아 羿로 하여금 河水에서 막게 하는 화를 초래하였다. 다섯 사람이 모두 太康을 원망하고 大禹의 훈계를 追述해서 노래로 지었는데, 각각 자기들의 원망하는 뜻을 서술하였다.
그 아우들이 어머니를 모시고 太康을 따랐는데 太康이 처음 갈 때부터 곧 그렇게 하였던 것이다. 洛水의 북쪽에서 기다린 것은 太康이 속히 돌아오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羿가 이미 太康을 막자 다섯 사람이 이에 〈太康을〉 원망하였다.
史官이 太康의 惡行을 이미 다 기술하고 난 뒤에 그들이 노래를 지은 것을 말하였기 때문에 ‘羿距’의 글이 ‘母從’의 앞에 놓인 것이니, 文勢上 당연한 것이다.
傳의 [尸 主也]
○正義曰:≪爾雅≫ 〈釋詁〉의 글이다.
傳의 [有窮]에서 [廢之]까지
○正義曰:≪春秋左氏傳≫ 襄公 4년 조에 “夏나라가 바야흐로 쇠약해질 때에 后羿가 鉏國에서 窮石國으로 옮겨왔다.”라고 하였으니, 그렇다면 羿가 窮石에 살았기 때문에 “有窮은 나라 이름이다.”라고 한 것이다.
窮은 바로 諸侯의 나라이고, 羿는 바로 임금의 이름이다. ≪說文解字≫에 “羿는 帝嚳의 射官이다.”라고 하였는데, 賈逵는 “羿의 先祖가 대대로 先王의 射官이 되었기 때문에 帝嚳이 羿에게 弓矢를 하사하여 활 쏘는 일을 맡게 했다.”라고 하였다.
≪淮南子≫에 “堯임금 때에 열 개의 해가 한꺼번에 나오자, 堯임금이 羿로 하여금 아홉 개의 해를 쏘아서 떨어뜨리게 했다.”라고 하고,
≪楚辭≫ 〈天問〉에 “羿가 해를 쏘니 까마귀가 깃을 떨어뜨렸다.”라고 하였고, ≪歸藏易≫에도 “羿가 열 개의 해를 쏘았다.”라고 하였는데, ≪說文解字≫에 “彃은 射의 뜻이다.”라고 하였다.
이 세 가지는 말이 비록 황당하여 믿을 만한 자료로 취하기는 어렵지만, 결과적으로 말하면 帝嚳 때에 羿가 있었고, 堯 때에도 羿가 있었다면 羿는 바로 활 잘 쏘는 사람을 이르는 호칭이지 사람의 이름자는 아닌 것이다.
참으로 저들의 말과 같다면 羿의 이름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夏나라는 河北에 도읍을 세우고 洛水는 河南에 있었으니, 太康을 河北에서 막아 나라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결국은 太康을 폐위시킨 것이다. 羿는 오히려 仲康을 세우고 자신이 서지는 않았다.
傳의 [述循]에서 [敍怨]까지
○正義曰:[述 循] ≪爾雅≫ 〈釋詁〉의 글이다. 大禹의 훈계를 기술하여 노래로 지어서 원망을 서술한 것이다. 그 첫 번째의 ‘皇祖有訓’과 그 두 번째의 ‘訓有之’가 바로 ‘大禹의 훈계를 추술한 것’이다.
그 세 번째는 國都가 망함을 한탄한 것이고, 그 네 번째는 宗祀가 끊어짐을 한탄한 것이고, 그 다섯 번째는 후회해도 소용없음을 말한 것이니, 다만 太康을 가리켜 원망하려 했을 뿐, 皇祖의 훈계를 추술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본래 훈계를 추술하여 노래를 짓고 따라서 곧 당면한 일을 말하였기 때문에 皇祖의 훈계를 말해서 총괄한 것이다.


역주
역주1 (待)[侍] : 저본에는 ‘待’로 되어 있으나, “岳本‧閩本‧監本‧毛本에는 ‘待’가 ‘侍’로 되어 있으니, 살펴보건대 ‘侍’자가 옳다.”라고 한 阮元의 校勘記에 의거하여 ‘侍’로 바로잡았다.
역주2 [而] : 저본에는 없으나, “宋本에는 ‘而’자가 있다.”라고 한 阮元의 校勘記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역주3 [難] : 저본에는 없으나, “浦鏜이 ‘以’자 위에 마땅히 ‘難’자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라고 한 阮元의 校勘記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상서정의(3) 책은 2019.10.01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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