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尙書注疏(5)

상서정의(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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乃惟孺子 頒朕 不暇하고 聽朕 敎汝于어다
[傳]小子當分取我之不暇而行之하고 聽我敎汝於輔民之常而用之
○頒 馬云 猶也라하니라
汝乃是不蘉하면 乃時惟不永哉인저
[傳]汝乃是不勉爲政이면 汝是惟不可長哉인저 欲其必勉爲可長이라
○蘉 馬云 勉也라하니라
篤敍乃하며 罔不若予하면 不敢廢乃命하리니
[傳]厚次序汝正父之道而行之하고 無不順我所爲 則天下不敢棄汝命하고 常奉之리라
[傳]汝往居新邑하여 敬行敎化哉인저 如此 我其退老하여 明敎農人以義哉인저
彼天下被寬裕之政이면 則我民無遠用來라하니 言皆來
[疏]‘乃惟’至‘用戾’
○正義曰:又曰 “己居攝之時, 爲政常若不暇, 汝惟小子, 當分取我之不暇而施行之.
又聽我敎汝於輔民之常而用之. 汝乃於是事, 不勉力爲政, 則汝是惟不可長久哉.
必須勉力爲之, 乃可長久. 此所言, 皆是汝父所行, 汝欲勉之, 但厚次序汝正父之道而行之,
無不順我所爲, 則天下不敢廢棄汝命, 必常奉而行之. 汝往居新邑, 敬行敎化哉. 如此我其退老, 明敎農人以義哉.
汝若能使彼天下之民, 被寬裕之政, 則我天下之民無問遠近者, 悉皆用來歸汝矣.”
[疏]○傳‘我爲’至‘用之’
○正義曰:‘爲政常若不暇’, 謂居攝時也. 聖人爲政, 務在人,
雖復治致太平, 猶恨意之不盡, 故謙言己所不暇, 若言猶有美事未得施者然.
故戒之成王 “汝惟小子, 當分取我之不暇而行之.” 言己所不暇行者, 欲令成王勉行之.
鄭玄云 “成王之才, 周公倍之, 猶未而言分者, 誘掖之言也.”
生民之爲業, 雖復志有經營, 不能獨自成就, 須王者設敎以輔助之.
‘聽我敎汝輔民之常法而用之’, 謂用善政以安民. 說文云 “頒, 分也.”
[疏]○傳‘汝乃’至‘可長’
○正義曰:成王言 “公其以予萬億年.” 言欲己長久也. 故周公於此戒之 “汝乃於是不勉力爲政, 汝惟不可長哉.”
欲其必勉力勤行政敎, 爲可長久之道, 然後可至萬億年耳. ‘蘉’之爲勉, 相傳訓也. 鄭‧王皆以爲勉.
[疏]○傳‘厚次’至‘奉之’
○正義曰:‘正父’, 謂武王, 言其德正, 故稱‘正父’. ‘厚次序汝正父之道而行之’, 令其爲武王之政也.
武王‧周公俱是大聖, ‘無不順我所爲’, 又令法周公之道. 旣言法武王, 又法周公, 則天下不敢棄汝命, 常奉行之.
[疏]○傳‘汝往’至‘皆來’
○正義曰:歸其王政令, 汝往居新邑, 敬行敎化哉. 公旣歸政, 則身當無事, 如此我其退老於州里, 明敎農人以義哉.
又令成王行寬裕之政, 以治下民, 民被寬裕之政, 則天下之民無問遠近者, 用來歸王,
言遠處皆來也. 上文使之“惇大成裕.” 故此言裕政來民, 結上事也.
伏生書傳稱“禮致仕之臣, 敎於州里, 大夫爲父師, 士爲少師, 朝夕坐於門塾, 而敎出入之子弟.” 是“敎農人以義”也.


당신 孺子께서는 내가 겨를을 내지 못한 일들을 나누어다가 〈행하고,〉 내가 당신에게 백성을 돕는 常性을 가르쳐준 것을 새겨들으소서.
나는 정사를 함에 있어 항상 겨를을 내지 못할 듯이 하였으니, 당신 小子는 마땅히 나의 겨를을 내지 못한 일들을 나누어다가 행하고, 내가 당신에게 백성을 돕는 常性을 가르쳐준 것을 새겨들어 이용해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은 馬融이 “의 뜻이다.”라고 하였다.
당신께서 힘쓰지 않으신다면 당신은 〈나라를〉 영원히 누리지 못할 것입니다.
당신이 힘써 정사를 하지 않으신다면 당신은 〈나라를〉 길이 누리지 못할 것이란 말이니, 반드시 힘써서 나라를 길이 누리게 하려고 한 것이다.
○‘’은 馬融이 “의 뜻이다.”라고 하였다.
당신 正父의 도리를 돈독히 생각하고 차서대로 행하며, 내가 〈섭정할 때〉 하던 바를 따르지 않음이 없으면 〈백성들 또한〉 감히 당신의 을 폐기하지 않을 것이니,
당신 正父의 도리를 돈독히 생각하고 차서대로 행하며, 내가 〈섭정할 때〉 하던 바를 따르지 않음이 없다면 천하가 감히 당신의 을 폐기하지 않고 항상 받들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당신은 〈洛邑으로〉 가서 경건하게 〈교화를 행〉하소서. 이와 같이 하면 나는 〈퇴로하여〉 농민을 〈의리로써〉 밝게 가르칠 것입니다. 저 〈천하 사람들이 당신의〉 寬裕한 정사의 혜택을 입는다면 우리 백성들은 먼 거리를 따지지 않고 모두 몰려올 것입니다.”
당신은 새로 세운 도읍으로 가서 거주하며 敎化를 경건하게 행하소서. 이와 같이 하면 저는 退老하여 농민들을 의리로써 밝게 가르칠 것입니다.
저 천하 사람들이 〈당신의〉 寬裕한 정사의 혜택을 입는다면 우리 백성들은 먼 거리를 따지지 않고 모두 몰려 올 것이라고 한 것이니, 모두 올 것임을 말한 것이다.
의 [乃惟]에서 [用戾]까지
正義曰:또 말씀하였다. “내가 居攝(왕을 대신하여 정무를 봄)할 때에 정사를 함에 있어 항상 겨를을 내지 못할 듯이 하였으니, 당신 小子는 마땅히 나의 겨를을 내지 못한 일들을 나누어 가져다가 시행하고,
또 내가 당신에게 백성을 돕는 常性을 가르쳐준 것들을 새겨들어 이용해야 합니다. 당신이 이 일에 힘써 정사를 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나라를〉 영원히 누릴 수 없을 것입니다.
반드시 모름지기 힘써서 해야만 장구히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이에 말한 것은 모두 당신 아버지가 행했던 것이니, 당신이 힘쓰려고 할 것은 다만 당신 正父의 도리를 돈독히 생각하고 차서대로 행하며,
내가 〈섭정할 때〉 하던 바를 따르지 않음이 없다면 천하가 감히 당신의 을 폐기하지 않고 반드시 항상 받들어 행할 것입니다. 당신은 새로 세운 도읍으로 가서 거주하며 敎化를 경건하게 행하소서. 이와 같이 하면 나는 退老하여 농민들을 의리로써 밝게 가르칠 것입니다.
당신이 만일 능히 저 천하의 백성들로 하여금 寬裕한 정사의 혜택을 입게 한다면 우리 천하의 백성들은 거리의 멀고 가까움을 따지지 않고 모두 당신에게로 몰려 올 것입니다.”
의 [我爲]에서 [用之]까지
正義曰:‘爲政常若不暇’는 居攝할 때를 이른다. 聖人이 정사를 함에 있어 힘쓰는 일이 사람들을 화평하게 하는 데에 있으므로
비록 잘 다스려서 태평성세를 이루었다 하더라도 외려 뜻이 다하지 못함을 한스럽게 여긴다. 그러므로 자기의 겨를을 내지 못한 것을 겸손하게 말하여 마치 오히려 아름다운 일이 있어도 시행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처럼 한 것이다.
그러므로 成王을 경계하기를 “당신 小子는 마땅히 나의 겨를을 내지 못한 일들을 나누어 가져다가 행하소서.”라고 하였으니, 자기가 겨를을 내서 행하지 못한 것을 成王으로 하여금 힘써 행하게 하고자 함을 말한 것이다.
鄭玄은 “成王의 재주를 周公이 배나 가졌어도 외려 못하는 판인데, 나누어 가져가라고 말한 것은 이끌어 도와주기 위한 말이다.”라고 하였다.
生民은 비록 뜻을 경영에 두더라도 독자적으로 성취할 수 없으니, 王者를 위하여 가르침을 베풀어서 輔助하는 것이 필요하다.
聽我敎汝輔民之常法而用之’는 善政을 써서 백성들을 편안하게 함을 이른 것이다. ≪說文解字≫에 “‘’은 의 뜻이다.”라고 하였다.
의 [汝乃]에서 [可長]까지
正義曰成王이 말하기를 “은 나로 하여금 萬億年토록 〈하늘의 아름다운 을 공경히 받들도록 하신다.〉”라고 하였으니, 자기에게 장구한 역년을 누리도록 하려고 함을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周公이 여기에서 경계하기를 “당신이 이에 힘써 정사를 하지 않으신다면 당신은 나라를 영원히 누리지 못할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반드시 힘써 정치교화를 부지런히 행하여 장구한 역년을 누릴 수 있는 도리를 실천한 연후에야 萬億年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이 의 뜻이기 때문에 서로 전하여 그렇게 풀이한다. 鄭玄王肅이 모두 의 뜻으로 여겼다.
의 [厚次]에서 [奉之]까지
正義曰:‘正父’는 武王을 이르니 그 이 바르기 때문에 ‘正父’라 칭함을 말한 것이다. ‘厚次序汝正父之道而行之’는 武王의 정사를 하도록 한 것이다.
武王周公은 모두 大聖人이니, ‘無不順我所爲’는 또 周公의 도리를 본받게 한 것이다. 이미 武王을 본받을 것을 말하였으니, 또 周公을 본받는다면 天下가 감히 당신의 을 폐기하지 않고 항상 받들어 행할 것이다.
의 [汝往]에서 [皆來]까지
正義曰政令을 돌려주었기 때문에 “당신은 새로 세운 도읍으로 가서 거주하며 敎化를 경건히 행하소서.”라고 하였고, 은 이미 政令을 돌려주었으면 몸에 응당 일이 없을 것이므로 “이와 같이 하면 나는 州里退老하여 농민들을 의리로써 밝게 가르칠 것입니다.”라고 하였으며,
成王으로 하여금 寬裕한 정사를 행하여 下民을 다스리게 해서 백성들이 寬裕한 정사의 혜택을 입는다면 천하의 백성들은 멀고 가까움을 따질 것 없이 모두 몰려와 에게 돌아갈 게란 것이니,
먼 곳에서 모두 몰려옴을 말한 것이다. 윗글에서 “돈후하고 관대한 德政으로 풍속을 넉넉하게 이루도록 하시면”이라고 했기 때문에 여기서 寬裕한 정사가 백성들을 몰려오게 함을 말하여 위의 일을 맺은 것이다.
伏生의 ≪尙書大傳≫에서 칭한 “致仕한 신하는 州里에서 가르치고, 大夫父師가 되고 少師가 되어 조석으로 門塾에 앉아서 출입하는 子弟들을 가르친다고 했다.”라는 것이 바로 “農人을 의리로써 가르친다.”라는 것이다.


역주
역주1 棐民彛 : 蔡傳은 ‘백성의 常性을 돕는 것[輔民常性]’으로 보았다.
역주2 我爲政……行之 : 蔡傳은 “‘頒朕不暇’는 未詳이다. 어떤 이는 ‘成王은 마땅히 나의 바빠서 겨를을 내지 못한 것들을 나누어 布陳해야 한다.’고 한다.[頒朕不暇 未詳 或曰 成王 當頒布我汲汲不暇者]”라고 하였는데, 이에 대하여 丁若鏞(≪尙書知遠錄≫)은 “梅說이 정확해서 조금도 의심할 것이 없는데, 仲黙(蔡沈)은 까닭 없이 이를 위배하고 별도로 왜곡된 論을 지어내 ‘或說’이라 이르니, 망령스럽기 그지없다.[梅說的確 毫無可疑 仲黙無故違之 別作乖曲之論 謂之或說 妄矣]”라고 하였다.
역주3 (爲)[惟] : 저본에는 ‘爲’로 되어 있으나, 諸本에 의거하여 ‘惟’로 바로잡았다.
역주4 正父 : 孔疏와 蔡傳은 다같이 武王으로 보았는데, 이에 대하여 丁若鏞은 “‘正父(정보)’란 것은 〈酒誥〉에서 말한 ‘圻父(기보)’‧‘農父(농보)’‧‘宏父(굉보)’와 같은 따위인데, ‘正父’를 武王으로 여기면 되겠는가. 만일 ‘正父’가 바로 武王이라고 한다면, 묻겠는데 ‘罔不若予’의 予는 누구이겠는가? 〈周誥〉가 비록 어려워 뜻을 통하기 어렵다 하더라도 또한 모름지기 조리가 있게 말해야 하지, 앞뒤가 뒤틀리게 하기를 註에서 말한 것처럼 해서는 안 된다.[正父者 若酒誥所云 圻父農父宏父之類也 以正父爲武王可乎 若云正父是武王 請問罔不若予者爲誰 周誥雖聱牙難通 亦須言有條理 不當首尾橫決 如註所言也]”라고 하였다.(≪尙書知遠錄≫)
역주5 乃惟孺子……無遠用戾 : 陳師凱는 “이 1節은 ‘汝往敬哉 玆予其明農哉’ 두 글귀를 제외한 그 밖의 것들은 다 이해할 수 없으니 모두 빼놓아야 한다. 이 두 글귀를 음미하면, 周公이 이때 鎬京에 있으면서 成王이 새로 세운 도읍으로 가도록 하고 자기는 장차 退老하고자 한 것을 볼 수 있다. 이 章의 아래에 응당 반드시 ‘周公이 成王을 따라 새로 세운 도읍으로 가서 제사를 거행하고 명령을 발표한 일’이 있어야 할 것인데 지금 빠졌다.[此一節 除汝往敬哉 玆予其明農哉二句外 皆不可曉 皆當缺之 味此二句 可見公時在鎬 欲王往新邑 而己將退老也 此章之下 當必有公從王至新邑 擧祀發命之事 而今缺矣]”라고 하였다.(≪書蔡氏傳旁通≫)
역주6 汝往敬哉 : 孔安國은 “당신은 새로 세운 도읍으로 가서 거주하며 敎化를 경건하게 행할진저.”로, 朱子는 “당신은 宗周로 돌아가십시오. 나는 여기에 머물겠습니다.[汝往歸宗周 我留於此]”로, 蔡沈은 “왕께서는 洛邑에 가서 경건하게 하소서.[王往洛邑 其敬之哉]”로 풀이하였는데, 이에 대하여 丁若鏞은 “〈召誥〉와 〈洛誥〉는 모두 成王더러 洛邑에 거주하도록 권면하는 내용인데, 周公이 어찌 ‘당신은 宗周로 돌아가시오. 나는 成周에 머물겠소.’라고 말하려 하였겠는가. ‘往敬哉’는 〈堯典〉의 ‘往欽哉’와 같은 것이다. 成王과 周公이 비록 함께 洛邑에 있다 하더라도 그 ‘往’이라 말하는 것은 해롭지 않다.[召誥洛誥 皆是勸成王宅洛之戒 周公豈肯曰汝歸宗周 我留成周乎 往敬哉 如堯典之往欽哉 王與公 雖同在洛邑 不害其言往也]”라고 하였다. (≪尙書知遠錄≫)
역주7 玆予 其明農哉 : 孔安國은 “나는 退老(늙어서 벼슬에서 물러나 은퇴함)하여 농민들을 의리로써 밝게 가르칠 것입니다.[我其退老 明敎農人以義哉]”로, 蔡沈은 “‘나는 물러가 田野에서 쉬면서 오직 농사만을 밝힐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아마 公은 歸老(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에 돌아가 老後를 보냄)할 뜻을 가졌던 것이다.[我其退休田野 惟明農事 蓋公有歸老之志矣]”로, 朱子는 “나는 여기에 머물러 后稷 先公의 業을 닦아 농사일을 밝혀서 백성을 가르칠 것입니다.[我留於此 修后稷先公之業 明農事以敎民]”로 풀이하였는데, 이에 대하여 丁若鏞은 “‘明農’의 뜻은 종래에 잘못 풀이하였다. 이때에 周公이 어떻게 田野로 물러가 쉴 수 있었겠는가. 정말 成王이 周公과 召公의 말을 잘 들어서 洛邑에 거주하며 親政을 펼친다면 周公은 응당 輔相을 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豊鎬를 가서 지켰을 것이니, 周公의 지극한 소원은 다만 노고를 분담하는 데 있을 뿐이고, 退老는 그의 본뜻이 아니었을 것이다. 〈君奭〉 1篇을 살펴보면 周公의 마음을 알 수 있다.[明農之義 從來誤解 此時 周公安得退休田野 誠使成王能聽二公之言 宅洛親政 周公當留輔相 不然 往守豊鎬 公之至願 只在分勞 退老非其志也 觀於君奭一篇 可知公心]”라고 하였다.(≪尙書知遠錄≫)
역주8 彼裕……無遠用戾 : 呂祖謙(≪增修東萊書說≫)은 “王이 洛邑에서 백성들을 和裕하게 하면 백성들이 장차 먼 것을 따지지 않고 올 것이다.[王於洛邑 和裕其民 則民特無遠而至焉]”라고 풀이하였다.
역주9 (知)[和] : 저본에는 ‘知’로 되어 있으나, 宋刊 單疏本‧宋兩浙東路茶鹽司本‧宋慶元間建安魏縣慰宅本에 의거하여 ‘和’로 바로잡았다.

상서정의(5) 책은 2020.12.29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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