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尙書正義(1)

상서정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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以典刑하시되
법은 일정한 형벌을 쓰시되
[傳]象 法也
이란 뜻이다.
法用常刑하고 用不越法이니라
은 일정한 형벌을 쓰고, 형벌을 씀에 있어서는 법을 이탈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流宥五刑하시며
유형流刑으로 오형五刑을 관대하게 하시며,
[傳]宥 寬也
관대寬大하다는 뜻이다.
以流放之法으로 寬五刑이니라
유방流放(유배)하는 으로써 오형五刑을 관대하게 하였다.
○馬云 宥
마융馬融은 “삼유三宥를 가리킨다.”라고 하였다.
作官刑하시고
채찍으로 관사官事를 다스리는 형벌을 만드시고,
[傳]以爲治官事之刑이니라
채찍으로 관사官事를 다스리는 형벌을 삼았다.
扑作敎刑하시고
회초리로 교육하는 형벌을 만드시고,
[傳]扑榎楚也
가초榎楚(회초리)의 뜻이다.
不勤道業則撻之니라
도리를 닦는 학업을 게을리하면 매를 때렸다.
金作贖刑하시며
황금으로 속죄하는 형벌을 만드시며,
[傳]金 黃金이라
황금黃金이다.
誤而入刑하면 出金以贖罪니라
잘못해서 형벌에 걸려들었으면 황금을 내어 속죄하게 하였다.
眚災 肆赦하시고 賊刑하시되
과오로 지은 죄는 관대하게 용서하시고, 끝까지 간악해서 지은 죄는 사형에 처하시되,
[傳]眚이요 殺也
은 과오란 뜻이요, 는 해치다라는 뜻이요, 는 관대하다라는 뜻이요, 은 죽이다라는 뜻이다.
過而有害 當緩赦之 怙姦自終하면 當刑殺之니라
과오로 죄를 지었으면 당연히 관대하게 사면해야 하지만 끝까지 간악해서 죄를 지었으면 당연히 사형에 처해야 한다.
임금께서 “조심하고 신중하도록 하라.
惟刑之恤哉인저하시니라
오직 형벌을 꼭 맞게 적용할 것을 근심하라.” 하셨다.
[傳]舜陳典刑之義하고 勅天下使敬之 憂欲得中이니라
임금이 전형典刑의 뜻을 베풀고 천하에 신칙하여 신중히 하도록 한 것은 형벌을 꼭 맞게 적용할 것을 근심하였기 때문이다.
○恤 憂也
은 근심하다라는 뜻이다.
공공共工유주幽州유사流徙하시며,
[傳]象恭滔天 足以惑世 流放之니라
외모는 공손하지만, 마음은 오만하여 하늘을 업신여기는 것이 족히 세상을 의혹시켰기 때문에 유방流放한 것이다.
幽(洲)[州] 北裔
유주幽州는 북쪽의 변방이다.
水中可居者曰州니라
물 가운데 살 만한 데를 라고 한다.
○共工 左傳 少皞氏有不才子하니 毁信廢忠하고 崇飾惡言하고 靖譖庸回하고 服讒蒐慝하여 以誣盛德하니 天下之民 謂之窮奇
공공共工은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소호씨少皞氏에게 불초不肖한 아들이 있었는데, 신의信義를 헐뜯고 충직忠直을 버리며, 사악邪惡한 말을 모아 수식하고, 참소하는 말을 편안하게 여기고 간사한 사람을 신용하며, 참소讒訴를 자행하고 악인惡人을 비호하여 성덕盛德이 있는 사람을 무함하니, 천하의 백성들이 이를 궁기窮奇라 했다.”라고 하였다.
杜預云 卽共工이라
두예杜預가 이르기를 “곧 공공共工이다.”라고 하였다.
放驩兜于崇山하시며
환도驩兜숭산崇山으로 방축放逐하시며,
[傳]黨於共工하니 罪惡同이니라
공공共工과 한패가 되었으니 죄악罪惡이 같았다.
崇山 南裔
숭산崇山은 남쪽의 변방이다.
○左傳 帝鴻氏有不才子하니 掩義隱賊하고 好行凶德하고 醜類惡物하며 頑嚚不友 是與比周하니 天下之民 謂之渾敦이라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제홍씨帝鴻氏에게 불초한 아들이 있었는데, 의로운 사람을 가로막고 간적奸賊을 숨겨주며, 흉덕凶德을 행하기 좋아하고, 악인惡人을 동류로 삼으며, 덕의德義를 본받지 않는 자와 충신忠信을 말하지 않는 자와 형제간에 우애하지 않는 자를 친밀하게 대하니, 천하의 백성들이 이를 혼돈渾敦이라 했다.”라고 하였다.
杜預云 卽驩兜也
두예杜預가 이르기를 “곧 환도驩兜이다.
帝鴻 黃帝也
제홍帝鴻황제黃帝이다.”라고 하였다.
竄三苗于三危하시며
삼묘三苗삼위三危투찬投竄하시며,
[傳]三苗 國名이니
삼묘三苗는 나라 이름이다.
縉雲氏之後 爲諸侯하여 號饕餮이니라
진운씨縉雲氏의 후손이 제후諸侯가 되어 호를 도철饕餮이라 하였다.
三危 西裔
삼위三危는 서쪽 변방이다.
○三苗 馬王云 三苗 國名也
삼묘三苗에 대하여 마융馬融왕숙王肅은 이르기를 “삼묘三苗는 나라 이름이다.
縉雲氏之後 爲諸侯하니 蓋饕餮也
진운씨縉雲氏의 후손이 제후諸侯가 되었는데, 대개 탐닉했다.”라고 하였다.
左傳 縉雲氏有不才子하니 貪于飮食하고 冒于貨賄하며 侵欲崇侈하되 不可盈厭하고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진운씨縉雲氏에게 불초한 아들이 있었는데, 음식飮食을 탐하고 재물을 탐하며, 침탈해서 사치를 누리려는 욕심을 부리되 만족할 줄을 몰랐고,
聚斂積實하되 不知紀極하며孤寡하고 不恤窮匱하니 天下之民 以比三凶하여 謂之饕餮이라
거두어들여 재산을 축적하되 끝없이 하였으며, 고아나 과부에게 나누어주지도 않고, 곤궁한 사람을 구휼하지도 않았으니, 천하의 백성들이 삼흉三凶에 비하여 이를 도철饕餮이라 했다.”라고 하였다.
杜預云 縉雲 黃帝時官名이니라
두예杜預가 이르기를 “진운縉雲황제黃帝 때 벼슬 이름이었다.
非帝子孫이라 以比三凶也니라
제왕帝王자손子孫이 아니기 때문에 삼흉三凶에 비한 것이다.
貪財曰饕 貪食曰餮이라
재물을 탐하는 것을 라 하고, 음식을 탐하는 것을 이라 한다.”라고 하였다.
殛鯀于羽山하사
우산羽山으로 주극誅殛하시어
[傳]方命圮族하고 績用不成이니라
곧고 방정하다는 이름을 좋아하고 명령하면 어기고 족류族類를 무너뜨리고 공적이 이루어지 못하였다.
殛竄放流 皆誅也
는 모두 주책誅責하는 것이다.
異其文 述作之體니라
그 글을 다르게 적은 것은 바로 술작述作문체文體이다.
羽山 東裔 在海中이니라
우산羽山은 동쪽 변방이니 바다 가운데 있다.
○左傳 顓頊氏有不才子하니 不可敎訓하고 不知話言하며 告之則頑하고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전욱씨顓頊氏에게 불초한 아들이 있었는데, 교훈敎訓을 받아들이지도 않고, 착한 말을 할 줄도 모르며, 덕의德義를 가르쳐주면 따르지 않고,
舍之則嚚하며 傲很明德하여 以亂天常하니 天下之民 謂之檮杌이라
내버려두면 못된 말만 하며, 명덕明德을 업신여기어 강상綱常을 어지럽히니, 천하의 백성들이 이를 도올檮杌이라 했다.”라고 하였다.
杜預云 卽鯀也
두예杜預가 이르기를 “곧 이다.
檮杌 凶頑無儔匹之貌
도올檮杌흉완凶頑하기 짝이 없는 모양이다.”라고 하였다.
하신대 而天下咸服하니라
네 사람의 죄를 다스리니 천하 사람이 모두 복종하였다.
[傳]皆服舜用刑當其罪
임금이 그들의 죄에 합당한 형벌을 적용한 것에 대해 모두들 복종하였다.
作者先敍典刑하고 而連引四罪하여 明皆徵用所行하여 於此總見之니라
그러므로 작자作者가 먼저 전형典刑을 서술하고 연달아서 네 사람의 치죄 사실을 이끌어서, 이것들은 모두 임금의 부름을 받아 등용되었을 때 행한 바임을 밝혀서 여기에 모두 보인 것이다.
[疏]‘肇十’至‘咸服’
의 [肇十]에서 [咸服]까지
○正義曰:史言
정의왈正義曰:사관史官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舜旣攝位, 出行巡守, 復分置州域, 重愼刑罰.
임금은 이미 섭위攝位했을 때에 나가서 다니며 순수巡守하여 다시 주역州域을 나누어 설치하고 거듭 형벌刑罰을 신중하게 다루었다.
於禹治水後, 始分置十有二州, 每州以大山爲鎭, 殊大者十有二山.
가 홍수를 다스린 뒤에 비로소 12를 나누어 설치하고 매 마다 큰 산을 진산鎭山으로 삼았는데, 특이하게 큰 산이 12개였다.
深其州內之川, 使水通利.
그리고 안에 있는 내를 깊이 파서 물이 잘 흐르게 하였다.
又留意於民, 詳其罪罰, 依法用其常刑, 使罪各當, 刑不越法.
또 백성에 유의하여 그 죄벌罪罰을 상세하게 밝히고 에 의하여 일정한 형벌을 써서 는 각각 합당한 형벌을 받게 하고, 형벌은 을 넘지 않게 하였다.
用流放之法, 寬宥五刑.
유방流放하는 을 써서 오형五刑을 관대하게 적용하였다.
五刑雖有犯者, 或以恩減降, 不使身服其罪, 所以流放宥之.
오형五刑을 범한 자가 있더라도 혹은 은혜로써 감형하여 몸이 직접 그 죄를 받지 않게 하였으니, 그래서 유방流放하는 법을 가지고 관대하게 처벌하였던 것이다.
五刑之外, 更有鞭作治官事之刑, 有扑作師儒敎訓之刑, 其有意善功惡, 則令出金贖罪之刑, 若過誤爲害, 原情非故者, 則緩縱而赦放之, 若怙恃姦詐, 終行不改者, 則賊殺而刑罪之.
오형五刑 이외에 다시 채찍으로 관사官事를 다스리는 형벌을 만든 일이 있고, 회초리로 사유師儒교훈敎訓하는 형벌을 만든 일이 있으며, 마음은 착한데 하는 일이 우연히 잘못된 경우는 황금을 내어 속죄하는 형벌을 적용하게 하였고, 만일 과오로 사고를 저질렀지만 실정을 캐내어 고의가 아니었을 경우라면 사면해주었고, 만일 믿는 구석이 있어 간사한 짓을 하여 끝까지 고치지 않은 경우라면 사형을 적용해서 죄를 다스렸다.
舜愼刑如此, 又設言以誡百官曰 ‘敬之哉, 敬之哉.
임금은 이처럼 형벌을 신중하게 다루었고, 또 가설하여 백관百官을 경계하기를 ‘조심하고 신중하도록 하라.
惟此刑罰之事, 最須憂念之哉.’ 令勸念刑罰, 不使枉濫也.”
오직 이 형벌에 관한 일만은 가장 모름지기 걱정하고 염려해야 한다.’고 하여 형벌에 신경을 쓰도록 권장해서 남용하는 일이 없게 하였다.”
又言
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舜非於攝位之後, 方始重愼刑罰, 初於登用之日, 卽用刑當其罪, 流徙共工於北裔之幽(洲)[州], 放逐驩兜於南裔之崇山, 竄三苗于西裔之三危, 誅殛伯鯀于東裔之羽山.
임금은 섭위攝位한 뒤에 비로소 형벌刑罰을 신중하게 다룬 것이 아니고, 처음 등용되었을 때부터 곧 그 죄에 합당한 형벌을 써서 공공共工은 북쪽 변방의 유주幽州유사流徙하고, 환도驩兜는 남쪽 변방의 숭산崇山으로 방축放逐하고, 삼묘三苗는 서쪽 변방의 삼위三危찬배竄配하고, 백곤伯鯀은 동쪽 변방의 우산羽山으로 주극誅殛하였다.
行此四罪, 各得其實, 而天下皆服從之.”
이 네 사람의 죄에 적용한 형벌이 각각 그 실정에 알맞으니, 천하가 모두 복종하였다.”
[疏]傳‘肇始’至‘二州’
의 [肇始]에서 [二州]까지
○正義曰:‘肇 始’, 釋詁文.
정의왈正義曰:[肇 始] 《이아爾雅》 〈석고釋詁〉의 글이다.
禹貢治水之時, 猶爲九州, 今始爲十二州, 知禹治水之後也.
우공禹貢〉에 홍수를 다스릴 때에도 오히려 9로 되어있었으니, 지금 비로소 12를 만든 것은 가 홍수를 다스린 뒤의 일이란 것을 알 수 있다.
禹之治水, 通鯀九載, 爲作十有三載, 則舜攝位元年, 始畢. 當是二年之後, 以境界太遠, 始別置之.
가 홍수를 다스린 기간은 이 다스리던 9년을 합산하여 13년이 되니, 임금이 섭위攝位원년元年에 9의 일이 비로소 끝났으나 2년 후에 경계境界가 너무 멀다고 해서 비로소 특별히 설치한 것이다.
知分冀州爲幽州‧幷州者, 以王者廢置, 理必相沿.
기주冀州를 나누어 유주幽州병주幷州로 만들었음을 알 수 있는 것은, 왕자王者는 폐지하기도 하고 설치하기도 하는 권한을 가져서 이치상 반드시 서로 연혁을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 有幽‧幷無徐‧梁.
주례周禮》 〈하관夏官 직방씨職方氏〉의 9 이름에 유주幽州병주幷州는 있고 서주徐州양주梁州는 없다.
周立州名, 必因於古, 知舜時當有幽‧幷.
나라가 의 이름을 세운 것은 반드시 옛 제도를 따랐을 것이니, 임금 때에 응당 유주幽州병주幷州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職方幽‧幷山川, 於禹貢, 皆冀州之域, 知分冀州之域爲之也.
직방씨職方氏〉에 있는 유주幽州병주幷州산천山川은 《상서尙書》 〈하서夏書 우공禹貢〉에 모두 기주冀州의 지역으로 되어있으니, 기주冀州의 지역을 나누어서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於禹貢無梁‧靑而有幽‧營, 云“燕曰幽州, 齊曰營州.”
이아爾雅》 〈석지釋地〉의 9 이름은 〈우공禹貢〉에 있는 양주梁州청주靑州는 없고 〈우공禹貢〉에 없는 유주幽州영주營州는 있는데, “유주幽州라 하고, 영주營州라 한다.”라고 하였다.
孫炎以爾雅之文與職方, 禹貢竝皆不同, 疑是殷制. 則營州亦有所因, 知舜時亦有營州.
손염孫炎은 《이아爾雅》의 글이 〈직방職方〉이나 〈우공禹貢〉과 모두 같지 않기 때문에 이는 나라의 제도일 것이라고 의심하였는데, 영주營州 또한 인습因襲한 바가 있었을 것이니, 임금 때에도 역시 영주營州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齊卽靑州之地, 知分靑州爲之.
는 곧 청주靑州의 땅이니, 청주靑州를 나누어서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於此居攝之時, 始置十有二州, 蓋終舜之世常然.
거섭居攝할 때에 비로소 12를 설치하였으니, 아마 임금의 세대가 끝날 때까지는 항상 그렇게 했을 것이다.
宣三年左傳云 “昔夏之方有德也, 貢金九牧.” 則禹登王位, 還置九州.
선공宣公 3년 조의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이르기를 “옛날 나라의 천자가 훌륭한 을 가지고 있었을 때에 9(9州)의 우두머리들에게 명하여 쇠를 바치게 했다.”라고 하였으니, 왕위王位에 오르자 도로 9를 설치한 것이다.
其名, 蓋如禹貢, 其境界, 不可知也.
그 이름은 아마 〈우공禹貢〉과 같을 것이지만, 그 경계境界는 알 수 없다.
[疏]傳‘封大’至‘通利’
의 [封大]에서 [通利]까지
○正義曰:釋詁云 “冢, 大也.”
정의왈正義曰:《이아爾雅》 〈석고釋詁〉에 이르기를 “은 크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舍人曰 “冢, 封之大也.”
곽사인郭舍人에 “봉분封墳의 큰 것이다.”라고 하였다.
定四年左傳云 “.” 相對, 是封爲大也.
정공定公 4년 조의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말한 ‘봉시封豕’와 ‘장사長蛇’는 대우對偶로 썼으니, 여기서는 의 뜻으로 본 것이다.
周禮職方氏每州皆云 “其山鎭曰某山.”
주례周禮》 〈하관夏官 직방씨職方氏〉에는 매 마다 모두 이르기를 “그 산의 진산鎭山은 무슨 산이다.”라고 하였으니,
揚州會稽, 荊州衡山, 豫州華山, 雍州吳山, 冀州霍山, 幷州恒山, 幽州醫無閭, 靑州沂山, 兗州岱山,
양주揚州회계산會稽山, 형주荊州형산衡山, 예주豫州화산華山, 옹주雍州오산吳山, 기주冀州곽산霍山, 병주幷州항산恒山, 유주幽州의무려산醫無閭山, 청주靑州기산沂山, 연주兗州대산岱山
是周時九州之內最大之山.
바로 나라 때 9의 안에서 가장 큰 산이었다.
舜時十有二山, 事亦然也.
임금 때의 12도 사적은 또한 그러했을 것이다.
州內雖有多山, 取其最高大者, 以爲其州之鎭.
안에 비록 많은 산이 있으나 그중에서 가장 높고 큰 산을 취하여 그 진산鎭山으로 삼은 것이다.
特擧其名, 是殊大之也.
특별히 그 이름을 든 것은 곧 유달리 크게 여겼기 때문이다.
其有川, 無大無小, 皆當深之.
내가 있으면 대소를 막론하고 모두 깊이 파야만 했다.
故云“濬川.”
그러므로 “내를 깊이 팠다.”라고 한 것이다.
有流川則深之, 使通利也.
흐르는 내가 있으면 깊이 파서 물이 잘 흐르게 하였다.
職方氏每州皆云‘其川’‧‘其浸’, 亦擧其州內大川,
직방씨職方氏〉에는 매 마다 모두 그 내는 어떻고 그 호수는 어떻다고 하여 또한 그 안의 큰 내를 들었다.
但令小大俱通, 不復擧其大者.
다만 대소를 모두 통하게 하기만 하고 그 큰 것은 다시 들지 않았다.
故直云濬之而已.
그러므로 단지 깊이 팠다고만 했을 뿐이다.
[疏]傳‘象法’至‘越法’
의 [象法]에서 [越法]까지
○正義曰:易繫辭云 “象也者, 象此者也.” 又曰 “.”
정의왈正義曰:《주역周易》 〈계사繫辭〉에 이르기를 “이란 이것을 형상한 것이다.”라고 하였고, 또 이르기를 “하늘이 형상을 드리우니 성인聖人이 그것을 본받는다.”라고 하였다.
是象爲倣法,
여기서는 을 모방하는 법의 뜻으로 본 것이다.
故爲法也.
그러므로 이라고 한 것이다.
五刑雖有常法, 所犯未必當條, 皆須原其本情, 然後斷決.
오형五刑에는 비록 일정한 이 있지만 범죄가 꼭 조항에 맞지는 않으니, 모두 모름지기 그 본정本情을 따져본 연후에 결단해야 한다.
或情有差降, 俱被重科, 或意有不同, 失出失入, 皆是違其常法.
혹은 정상에 약간 차등이 있는데도 모두 중과重科를 입게 되고, 혹은 뜻에 다른 점이 있는데도 중한 죄에 가벼운 벌을 내리거나[失出] 가벼운 죄에 중한 벌을 내리는[失入] 것은 모두 그 일정한 법을 어기는 것이다.
故令依法用其常刑, 用之使不越法也.
그러므로 법에 의하여 일정한 형벌을 쓰고, 형벌을 씀에 있어서는 법을 넘지 않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疏]傳‘宥寬’至‘五刑’
의 [宥寬]에서 [五刑]까지
○正義曰:‘’, 周語文.
정의왈正義曰:[宥 寬] 《국어國語》 〈주어周語〉의 글이다.
流, 謂徙之遠方, 放, 使生活, 以流放之法, 寬縱五刑也.
는 먼 지방으로 옮기는 것을 이르고, 은 자유롭게 생활生活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니, 귀양 보내고 추방하는 을 가지고 오형五刑을 관대하게 적용하였다.
此惟解以流寬之刑, 而不解宥寬之意.
이것은 오직 유배流配하는 것으로 관대하게 베푸는 형벌을 해석했을 뿐이지, 의 뜻임을 해석한 것은 아니다.
鄭玄云 “其輕者或流放之, 四罪是也.”
정현鄭玄은 이르기를 “경범죄를 지은 사람에 대해서는 더러 유배도 하고 추방도 하였으니, 네 사람의 죄를 처결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라고 하였다.
王肅云 “謂君不忍刑殺, 宥之以遠方.”
왕숙王肅은 이르기를 “임금이 차마 형살刑殺을 할 수가 없어서 먼 지방으로 보내는 것으로 관대하게 처결했다.”라고 하였다.
然則知此是據狀合刑, 而情差可恕, 全赦則太輕, 致刑則太重.
그렇다면 이는 바로 정상을 참작하고 형벌에 합당하게 해서 정상에 따라 약간씩 용서해준 것임을 알 수 있으니, 온전히 사면하면 너무 가벼운 처벌이고, 형벌대로 다스리면 너무 무거운 처벌인 것이다.
不忍依例刑殺. 故完全其體, 宥之遠方, 應刑不刑, 是寬縱之也.
차마 법례대로 형살刑殺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육체를 온전히 한 상태에서 관대하게 먼 지방으로 보낸 것이니, 응당 형벌해야 할 것을 형벌하지 않는 것이 바로 관대하게 놓아주는 것이다.
上言典刑, 此言五刑者, 其法是常, 其數則五.
위에서는 전형典刑을 말하고, 여기서는 오형五刑을 말한 것은, 그 은 바로 일정한 것이고 그 숫자는 다섯이기 때문이다.
象以典刑, 謂其刑之也, 流宥五刑, 謂其遠縱之也.
상이전형象以典刑’은 그들을 형벌대로 처결함을 이르고, ‘유유오형流宥五刑’은 그들을 멀리 놓아보낸 것을 이른다.
流言五刑, 則典刑亦五, 其文互以相見.
에서 오형五刑을 말했으면 전형典刑 역시 다섯인 것이니, 그 글을 상호적으로 써서 서로 보인 것이다.
王肅云 “言宥五刑, 則正五刑見矣.” 是言二文相通之意也.
왕숙王肅이 이르기를 “오형五刑을 관대하게 적용하는 것을 말했으면 오형五刑을 정상적으로 적용하는 것도 나타날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두 글이 서로 통하는 뜻을 말한 것이다.
典刑, 是其身, 流宥, 離其鄕.
전형典刑은 그 몸이 직접 형벌을 받는 것이고, 유유流宥는 그 고향을 떠나는 것이다.
流放致罪爲輕, ,
유배하고 추방하는 것으로 죄를 다스림은 경벌輕罰이지만, 채찍에 비하면 중벌重罰이다.
故次典刑之下, 先言流宥.
그러므로 전형典刑의 아래에 차례를 두어서 먼저 유유流宥를 말한 것이다.
鞭扑雖輕, 猶虧其體, 比於出金贖罪, 又爲.
회초리로 때리는 체벌은 비록 경벌이지만 오히려 그 몸을 훼손하니, 황금을 내어 속죄하는 것에 비하면 또 중벌인 것이다.
且呂刑五罰, 雖主贖五刑, 其鞭扑之罪, 亦容輸贖.
또 〈여형呂刑〉의 오벌五罰은 비록 오형五刑을 속죄하는 것을 주목하였지만, 그 채찍이나 회초리를 맞는 죄 또한 속전贖錢을 바칠 수 있다.
故後言之.
그러므로 뒤에 말한 것이다.
此正刑五與流宥鞭扑, 俱有常法, 典字可以統之. 故發首言典刑也.
정형正刑 다섯 가지는 유유流宥편복鞭扑과 더불어 모두 일정한 이 있는 것이니, 전자典字가 통솔할 수 있으므로 발언하는 머리에서 전형典刑을 말한 것이다.
[疏]傳‘以鞭’至‘之刑’
의 [以鞭]에서 [之刑]까지
○正義曰:此有鞭刑, 則用鞭久矣.
정의왈正義曰:여기에 편형鞭刑이 있는 것으로 보아 편형을 쓴 시기는 퍽 오래였을 것이다.
周禮滌狼氏 左傳有鞭徒人費圉人犖是也.
주례周禮》 〈추관秋官 척랑씨滌狼氏〉에 대부大夫와의 서약에서 “감히 여쭙지 않으면 채찍 500대를 친다.”는 것과 장공莊公 8년 조와 32년 조의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도인徒人 어인圉人 에게 채찍을 쳤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子玉使鞭七人‧衛侯鞭師曹三百.
희공僖公 27년 조의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자옥子玉은 일곱 사람에게 채찍을 치게 했다고 하였고, 양공襄公 14년 조의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위후衛侯사조師曹에게 채찍 300대를 쳤다고 하였다.
日來亦皆施用, 大造律, 方使廢之.
근래까지도 모두 편형鞭刑을 사용하였는데, 나라가 율령律令을 만들어서 바야흐로 그 편형鞭刑이 폐지되게 하였다.
治官事之刑者, 言若於官事不治, 則鞭之.
관사官事를 다스리는 형벌이란 것은 만일 관사官事가 다스려지지 않을 경우엔 편형鞭刑에 처함을 말한 것이다.
蓋量狀加之, 未必有定數也.
대개 형량을 감안해서 가하는 것이지, 꼭 정해진 숫자가 있는 것은 아니다.
[疏]傳‘扑榎’至‘撻之’
의 [扑榎]에서 [撻之]까지
○正義曰:學記云 “榎‧楚二物, 以收其威.” 鄭玄云 “榎, 槄也. 楚, 荊也.”
정의왈正義曰:《예기禮記》 〈학기學記〉에 이르기를 “팽나무와 가시나무는 그 위엄을 거두는 것이다.”라고 하였고, 정현鄭玄은 “는 팽나무이고, 는 가시나무이다.”라고 하였다.
二物, 可以扑撻犯禮者, 知扑是榎楚也. 旣言以收其威, 知不勤道業則撻之.
이 두 나무는 예법을 범한 자를 매질할 수 있는 것이니, (종아리채)은 바로 팽나무와 가시나무라는 것을 알 수 있고, 그 위엄을 거두는 것이라고 이미 말하였으니, 도업道業을 게을리 하면 매질을 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益稷云 “撻以記之.” 又大射鄕射皆云 “司馬搢扑.” 則扑亦官刑.
익직益稷〉에 이르기를 “종아리를 쳐서 기억하게 한다.”라고 하였고, 또 《의례儀禮》의 〈대사의大射義〉와 〈향사례鄕射禮〉에 모두 이르기를 “사마司馬가 종아리채를 허리춤에 꽂았다.”라고 하였으니, 종아리채도 역시 관형官刑이었던 것이다.
惟言作敎刑者, 官刑鞭扑俱用, 敎刑惟扑而已.
오직 “교육하는 형벌을 만들었다.”고만 말한 것은 관형官刑에는 채찍과 종아리채를 다 쓰고, 교형敎刑에는 오직 종아리채만을 썼을 뿐이다.
故屬扑於敎, 其實, 官刑亦當用扑.
그러므로 종아리채를 교형敎刑에 소속시켰지만 실은 관형官刑에도 역시 종아리채를 사용했던 것이다.
蓋重者鞭之, 輕者撻之.
대개 죄질이 무거운 경우에는 채찍질을 하고, 가벼운 경우에는 매질을 하였던 것이다.
[疏]傳‘金黃’至‘贖罪’
의 [金黃]에서 [贖罪]까지
○正義曰:此以金爲黃金, 呂刑, 其罰百鍰, 傳爲黃鐵.
정의왈正義曰:여기서는 에서 황금黃金으로 풀이하였고, 〈여형呂刑〉의 “그 벌금이 600이다.”라고 할 때의 ‘’은 에서 황철黃鐵로 풀이하였다.
俱是贖罪, 而金‧鐵不同者, 古之金‧銀‧銅‧鐵, 總號爲金, 別之四名耳.
여기서나 〈여형呂刑〉에서나 다 속죄贖罪하는 것이거늘, 이 같지 않은 이유는 옛날의 이 모두 으로 불렸는데 이를 네 가지 이름으로 구별했을 뿐이다.
釋器云 “黃金謂之盪, 白金謂之銀.” 是黃金‧白銀, 俱名金也.
이아爾雅》 〈석기釋器〉에 이르기를 “황금黃金이라 이르고, 백금白金이라 이른다.”라고 하였으니, 이 황금黃金백은白銀은 모두 으로 명명하였다.
周禮考工記 “攻金之工, 築氏爲削, 氏爲殺矢, 鳧氏爲鐘, 㮚氏爲, 段氏爲鏄, 桃氏爲劍.”
주례周禮》 〈동관고공기冬官考工記〉에 “쇠를 다루는 기술자들인 축씨築氏는 창칼을 만들고, 야씨冶氏살시殺矢를 만들고, 부씨鳧氏을 만들고, 율씨㮚氏는 도량형의 기구를 만들고, 단씨段氏는 쇳덩이를 만들고, 도씨桃氏을 만든다.”라고 하였는데,
其所爲者, 有銅有鐵.
만드는 재료에는 이 있다.
是銅鐵, 俱名爲金, 則鐵名亦包銅矣.
은 모두 이름이 이니, 이란 이름도 또한 을 포함한 것이다.
此傳黃金, 呂刑黃鐵, 皆是今之銅也.
여기의 에서 풀이한 황금黃金과 〈여형呂刑〉의 에서 풀이한 황철黃鐵은 모두 지금의 인 것이다.
古之贖罪者, 皆用銅, 漢始改用黃金.
옛날의 속죄贖罪하는 죄인은 모두 을 사용했었는데, 한대漢代에 비로소 황금黃金을 사용하였다.
但少其斤兩, 令與銅相敵.
다만 그 근량斤兩을 적게 해서 과 상응하도록 하였을 뿐이다.
故鄭玄駁異義言 “贖死罪千鍰, 鍰, 六兩大半兩, 爲四百一十六斤十兩半兩銅,
그러므로 정현鄭玄의 《박이의駁異義》에 “죽을죄에 대한 속금贖金은 1천 이고 은 6 반이 훨씬 넘는 것이며, 〈1천 은〉 바로 416 10 반이 훨씬 넘는 이었으니,
贖死罪金三斤, 爲價相依附.”
지금의 죽을죄에 대한 속전贖錢 3과 값이 서로 비슷했다.”라고 말하였으니,
是古贖罪, 皆用銅也.
이로 봐서 옛날의 속죄贖罪에는 모두 을 사용하였던 것이다.
實謂銅而謂之金‧鐵, 知傳之所言, 謂銅爲金‧鐵耳.
실제로는 인데 이니 이니 하였으니, 에서 말한 것은 을 일러 황금黃金이라 하고 황철黃鐵이라 했을 뿐임을 알 수 있다.
漢及後魏, 贖罪皆用黃金.
후위後魏속죄贖罪에 모두 황금黃金을 사용하였다.
後魏以金難得, 合金一兩收絹十匹.
후위後魏을 얻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합금合金 1 값으로 명주 10을 거두었다.
今律乃復依古, 死罪贖銅一百二十斤, 於古稱爲三百六十斤.
오늘날의 율령律令에는 다시 옛 제도에 의하여 죽을죄에 대한 속동贖銅이 120이니 옛날 저울로 달면 360이다.
孔以鍰爲六兩, 計千鍰, 爲三百七十五斤. 今贖輕於古也.
공안국孔安國을 6이라 했으니, 1천 을 계산하면 375근이니, 지금의 속전贖錢이 옛날보다 가볍다.
誤而入罪, 出金以贖, 卽律過失殺傷人, 各依其狀, 以贖論, 是也.
과오로 죄를 지었을 경우는 을 내고 속죄를 하였으니, 곧 율령律令에 “과실로 인명을 살상했을 경우에는 각각 그 상태에 의하여 속전으로 논한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呂刑所言‘疑赦乃罰’者, 卽今律“疑罪各從其實, 以贖論.” 是也.
여형呂刑〉에서 말한 “죄가 의심스러워서 사면해야 할 경우는 벌금을 물린다.”는 것은 곧 지금의 율령律令에 “의심스러운 죄는 각각 그 사실에 따라서 속전으로 논한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疑, 謂虛實之證等, 是非之理均, 或事涉疑似, 旁無證見, 或雖有證見, 事非疑似, 如此之類, 言皆爲疑罪.
허실虛實의 증빙이 동등하고 시비是非의 이론이 균등하며, 혹은 일이 반신반의하는 처지에 놓여서 곁에 증견證見이 없고, 혹은 비록 증견證見은 있으나 일이 의심이 가는 것도 아니고 믿음이 가는 것도 아닌 것을 이르니, 이와 같은 를 모두 의심스런 죄라고 말한다.
疑而罰贖, 呂刑已言, 誤而輸贖, 於文不顯.
죄가 의심스러울 경우 벌금으로 속죄를 시키는 것은 〈여형呂刑〉에서 이미 분명하게 말했지만, 과오로 죄를 지었을 경우 속전을 바치는 것은 글에 분명하게 나타나지 않았다.
故此傳指言, 以解此贖.
그러므로 이 에서 ‘오이입죄誤而入罪’를 가리켜 말해서 이 으로 풀이한 것이다.
鞭扑加於人身, 可云‘扑作敎刑’, 金非加人之物, 而言‘金作贖刑’, 出金之與受扑, 俱是人之所患.
인신人身에 가해지는 것이니 “으로 교형敎刑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지만, 은 사람에 가해지는 물건이 아닌데 “으로 속형贖刑을 만들었다.”고 말한 것은, 을 내는 것이나 을 받는 것은 모두 사람들이 걱정하는 바이다.
故得指其所出以爲刑名.
그러므로 그 내는 바를 가리켜서 형벌의 이름을 만든 것이다.
[疏]傳‘眚過’至‘殺之’
의 [眚過]에서 [殺之]까지
○正義曰:春秋言肆眚者, 皆謂緩縱過失之人, .
정의왈正義曰:《춘추春秋》에서 말한 ‘사생肆眚’은 모두 과실이 있는 사람을 놓아준 것을 일렀기 때문에 여기서 의 뜻으로, (과실)의 뜻으로 본 것이다.
公羊傳云 “害物曰災.” 是爲害也.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에 이르기를 “을 해치는 것을 라 한다.”라고 하였기 때문에 여기서 의 뜻으로 본 것이다.
宣二年左傳, 晉侯殺趙盾, “使鉏麑賊之.” 是賊爲殺也.
선공宣公 2년 조의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진후晉侯조돈趙盾을 죽인 것을 “서예鉏麑를 시켜 그를 죽이게[賊] 하였다.”라고 하였으니, 여기서 의 뜻으로 본 것이다.
此經二句, 承上典刑之下, 總言用刑之.
경문經文의 두 글귀는 위에 있는 ‘전형典刑’의 아래를 이어받아서 형벌을 쓰는 요령을 총괄적으로 말한 것이다.
過而有害, 雖據狀合罪, 而原心非故, 如此者, 當緩赦之.
과실로 해를 보인 것은 비록 상태로 보면 죄를 주는 것이 합당하지만 그 마음을 파고들어 가보면 고의가 아니니, 이와 같은 경우는 당연히 사면해야 한다.
小則恕之, 大則宥之, 上言流宥贖刑, 是也.
해를 보인 것이 경미하면 그냥 용서해주고 중대하면 다른 벌로 대체하는 것이니, 위에서 말한 유유流宥속형贖刑이 바로 그것이다.
怙恃姦詐, 欺罔時人, 以此自終, 無心改悔, 如此者, 當刑殺之.
믿는 구석이 있어 간사한 짓을 해서 사람들을 속이고 그것을 끝까지 하여 고칠 마음이 없으면 이와 같은 사람은 당연히 형벌을 주거나 사형에 처해야 한다.
小者刑之, 大者殺之, 上言‘典刑’及‘鞭扑’皆是也.
작은 것은 형벌을 주고 큰 것은 사형에 처해야 하니, 위에서 말한 전형典刑편복鞭扑이 모두 그것이다.
經言‘賊刑’, 傳云‘刑殺’, 不順經文者, 隨便言之.
에서는 적형賊刑이라 말하고, 에서는 형살刑殺이라고 말하였으니, 경문經文을 따르지 않은 것은 편의에 따라 말한 것이다.
[疏]傳‘舜陳’至‘得中’
의 [舜陳]에서 [得中]까지
○正義曰:此經, 舜之言也.
정의왈正義曰:이 의 두 구는 임금의 말이다.
不言‘舜曰’, 以可知而略之.
순왈舜曰’을 말하지 않은 것은 알 만한 것이라 해서 생략한 것이다.
舜旣制此典刑, 又陳典刑之義, 以勅天下百官, 使敬之哉敬之哉, 惟刑之憂哉.
임금은 이미 이 전형典刑을 만들고 또 전형典刑의 뜻을 설명하여 천하의 백관百官들에게 주의를 주어서 조심하고 신중을 기하여 오직 형벌에 대한 걱정만을 하도록 하였다.
憂念此刑, 恐有濫失, 欲使得中也.
이 형벌을 행여 남용하거나 실수가 있을까 염려하여 형벌을 꼭 맞게 적용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疏]傳‘象恭’至‘曰
의 [象恭]에서 [曰州]까지
○正義曰:堯典言共工之行云 “靜言庸違, 象恭滔天.” 言貌象恭敬, 傲狠漫天, 足以疑惑世人. 故流放也.
정의왈正義曰:〈요전堯典〉에서 공공共工의 행실에 대해 말하기를 “말은 곧잘 하지만 행동은 말과 위배되고, 용모는 공경하나 마음은 오만하다.”라고 하였으니, 용모는 공손하나 마음은 오만하여 하늘을 업신여긴다는 것이 충분히 세상 사람을 의혹할 수 있기 때문에 유방流放했다고 말한 것이다.
左傳說此事, 言“投諸四裔.”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서 이 일에 대해 설명하되 “사방의 변방으로 내쳤다.[投之四裔]”고 말하였다.
釋地云 “燕曰幽州.” 知北裔也.
이아爾雅》 〈석지釋地〉에 이르기를 “유주幽州라 한다.”라고 하였으니, 북쪽의 변방임을 알 수 있다.
‘水中可居者曰洲’, 釋水文.
[水中可居者曰洲] 《이아爾雅》 〈석수釋水〉의 글이다.
李巡曰 “四方有水, 中央高, 獨可居. 故曰洲.”
이순李巡이 말하기를 “사방에 물이 있고 중앙이 높아서 홀로 살 만하기 때문에 라 한다.”라고 하였다.
天地之勢, 四邊有水. 鄒衍書說 “九州之外, 有瀛海環之.” 是九州居水內. 故以州爲名.
천지天地의 형세는 사방 변두리에 물이 있기 마련이라, 추연鄒衍의 《서설書說》에 “9의 밖에 영해瀛海가 있어 빙 둘렀다.”고 하였으니, 이는 9가 물 안에 있기 때문에 로써 이름한 것이다.
共在一(洲)[州]之上, 分之爲九耳.
다 같이 1의 위에 있는데, 나누어서 9를 만들었을 뿐이다.
州取水內爲名.
는 물 안을 취하여 이름한 것이다.
故引爾雅解州也.
그러므로 《이아爾雅》를 이끌어서 를 풀이한 것이다.
‘投之四裔’, 裔訓遠也.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의 ‘투지사예投之四裔’의 의 뜻으로 풀이하였다.
當在九州之外, 而言‘於幽州’者, 在州境之北邊也.
당연히 9의 밖에 있어야 할 것인데, 경문經文에 ‘어유주於幽州’라고 말한 것은 북쪽 변방에 주경州境이 있기 때문이다.
禹貢羽山在徐州, 三危在雍州.
우공禹貢〉에는 우산羽山서주徐州에 있고, 삼위三危옹주雍州에 있다.
故知北裔在幽州.
그러므로 북쪽 변방이 유주幽州에 있음을 알았던 것이다.
下三者所居, 皆言山名, 此共工所處, 不近大山. 故擧州言之.
아래 세 사람이 거처하는 데는 모두 산 이름을 말하였고, 공공共工이 거처하는 데는 큰 산에 가깝지 않기 때문에 를 들어서 말한 것이다.
此流四凶, 在治水前.
여기의 사흉四凶유방流放한 시기는 홍수를 다스리기 전에 있었다.
於時未作十有二州, 則無幽州之名, 而云‘幽州’者, 史據後定言之.
이때에는 아직 12를 만들지 못하였으니, 유주幽州란 이름이 없었건만, 유주幽州라고 한 것은 사관史官이 후일의 일에 의거해서 말을 정리했기 때문이다.
[疏]傳‘黨於’至‘南裔’
의 [黨於]에서 [南裔]까지
○正義曰:共工象恭滔天, 而驩兜薦之, 是黨於共工.
정의왈正義曰:공공共工은 외형상으로는 공손하나 오만함이 하늘을 업신여겼는데, 환도驩兜가 그를 추천하였으니, 이는 공공共工과 한 패거리였던 것이다.
罪惡同. 故放之也.
죄악罪惡이 같았기 때문에 추방한 것이다.
左傳說此事云 “流四凶族, 投諸四裔.” 則四方方各有一人.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서 이 일에 대해 말하기를 “네 흉족凶族유방流放하여 사방의 변방으로 내쳤다.”라고 하였으니, 사방의 매 마다 각각 한 사람씩 있게 된 것이다.
幽州在北裔, 雍州三危在西裔, 徐州羽山在東裔.
유주幽州는 북쪽 변방에 있고, 옹주雍州삼위산三危山은 서쪽 변방에 있고, 서주徐州우산羽山은 동쪽 변방에 있었다.
三方旣明, 知崇山在南裔也.
3이 이미 밝혀졌으니, 숭산崇山은 남쪽 변방에 있음을 알았던 것이다.
禹貢無崇山, 不知其處, 蓋在衡嶺之南也.
우공禹貢〉에 숭산崇山이 없으니 그 위치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아마 형령衡嶺의 남쪽에 있었을 것이다.
[疏]傳‘三苗’至‘西裔’
의 [三苗]에서 [西裔]까지
○正義曰:昭元年左傳說自古諸侯不用王命者, “虞有三苗, 夏有觀扈.” 知三苗是國.
정의왈正義曰:소공昭公 원년 조의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서 자고로 왕명王命을 듣지 않는 제후諸侯에 대해 말하기를 “나라에는 삼묘三苗가 있고 나라에는 관호觀扈가 있었다.”고 하였으니, 삼묘三苗가 바로 나라임을 알았던 것이다.
其國以三苗爲名, 非三國也.
그 나라가 삼묘三苗를 이름으로 한 것이지, 세 나라라는 뜻은 아니다.
杜預言 “三苗地闕, 不知其處.
두예杜預가 말하기를 “삼묘三苗의 땅이 없어졌으므로 그 소재처를 알 수 없다.
三凶皆是王臣, 則三苗亦應是諸夏之國, 入仕王朝者也.”
삼흉三凶은 모두 의 신하이니 삼묘三苗도 응당 제하諸夏(중국)의 나라로서 왕조王朝에 들어와 벼슬한 자였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文十八年左傳言 “縉雲氏有不才子, 貪于飮食, 冒于貨賄, 侵欲崇侈, 不可盈厭,
문공文公 18년 조의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말하기를 “진운씨縉雲氏에게 불초한 아들이 있었는데, 음식飮食을 탐하고 재물을 탐하며, 침탈해서 사치를 누리려는 욕심을 부리되 만족할 줄을 몰랐고,
聚斂積實, 不知紀極, 不分孤寡, 不恤窮匱, 天下之民, 以比三凶, 謂之饕餮.” 卽此三苗是也.
거두어들여 재산을 축적하되 끝없이 하였으며, 고아나 과부에게 나누어주지도 않고, 곤궁한 사람을 구휼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천하의 백성들이 삼흉三凶에 비하여 이를 ‘도철饕餮’이라 했다.”라고 하였으니, 곧 이것이 삼묘三苗이다.
知其然者, 以左傳說此事言 “舜臣堯, 流四凶族渾敦‧窮奇‧檮杌‧饕餮, 投諸四裔, 以禦螭魅.” 謂此驩兜‧共工‧三苗與鯀也.
그 그러함을 알 수 있는 것은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서 이 일을 설명하되 “임금이 임금에게 신하 노릇을 할 때에 사흉四凶의 족속인 혼돈渾敦궁기窮奇도올檮杌도철饕餮유방流放하되 사방의 변방으로 내쳐서 이매螭魅를 막았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환도驩兜공공共工삼묘三苗와 그리고 을 이른 것이다.
雖知彼言四凶, 此等四人, 但名不同, 莫知孰是, 惟當驗其行跡, 以別其人.
저기서 말한 사흉四凶이 이들 4임은 비록 알지만, 다만 이름이 동일하지 않으므로 어떤 것이 옳은지 모를 뿐이니, 오직 그들의 행적行跡을 징험하여 그 사람들을 구별해야 할 것이다.
左傳說窮奇之行云 “靖譖庸回.” 堯典言共工之行云 “靜言庸違.” 其事旣同. 知窮奇是共工也.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는 궁기窮奇의 행실에 대하여 “참소하는 말을 편안하게 여기고 간사함을 쓴다.”라고 말하였고, 〈요전堯典〉에는 공공共工의 행실에 대하여 “말은 곧잘 하지만 행동은 말과 위배된다.”라고 말하였으니, 그 사적이 이미 같은지라, 궁기窮奇가 바로 공공共工임을 알겠다.
左傳說渾敦之行云 “醜類惡物, 是與比周.” 堯典言驩兜薦擧共工, 與惡比周, 知渾敦是驩兜也.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는 혼돈渾敦의 행실에 대하여 “악인惡人을 동류로 삼고, 〈덕의德義를 본받지 않는 자와 충신忠信을 말하지 않는 자와 형제간에 우애하지 않는 자를〉 친밀하게 대하였다.”라고 말하였고, 〈요전堯典〉에는 환도驩兜공공共工을 천거하여 악인惡人과 함께 사당을 조직하다고 한 것이니, 혼돈渾敦이 바로 환도驩兜임을 알겠다.
左傳說檮杌之行言 “不可敎訓, 不知話言, 傲狠明德, 以亂天常.” 堯典言鯀之行云 “咈哉,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는 도올檮杌의 행실에 대하여 “교훈敎訓을 받아들이지도 않고, 말할 줄도 모르며, 명덕明德을 업신여기어 천상天常(綱常)을 어지럽혔다.”라고 말하였고, 〈요전堯典〉에서는 의 행실에 대하여 “안 된다.
方命圮族.” 其事旣同. 知檮杌是鯀也.
곧고 방정하다는 이름을 좋아하고 명하여 일을 행하면 선량한 무리를 훼패毁敗한다.”라고 말하였으니, 그 사적이 이미 같은지라, 도올檮杌이 바로 임을 알겠다.
惟三苗之行, 堯典無文.
오직 삼묘三苗의 행실만은 〈요전堯典〉에 그에 대한 글이 없다.
鄭玄具引左傳之文, 乃云 “命驩兜擧共工.” 則驩兜爲渾敦也, 共工爲窮奇也, 鯀檮杌也.
정현鄭玄이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의 글을 구체적으로 인용하여 곧 “환도驩兜에게 명하여 공공共工을 천거하게 했다.”라고 하였으니, 환도驩兜혼돈渾敦이고 공공共工궁기窮奇이고 도올檮杌이다.
而三苗爲饕餮, 亦可知.
그러니 삼묘三苗도철饕餮이란 것도 알 수 있다.
是先儒以書傳相考, 三苗是饕餮也.
이것은 선유先儒가 《서전書傳》을 가지고 상고한 것이니, 삼묘三苗가 바로 도철饕餮이다.
禹貢雍州, 言“三危旣宅, 三苗丕敍.” 知三危是西裔也.
우공禹貢〉의 옹주雍州에서 “삼위三危가 이미 집을 짓고 살게 되었으니, 삼묘三苗가 공이 크게 펴졌다.”라고 말하였으니, 삼위三危가 바로 서쪽 변방임[西裔]을 알겠다.
[疏]傳‘方命’至‘海中’
의 [方命]에서 [海中]까지
○正義曰:‘方命圮族’, 是其本性, ‘績用不成’, 試而無功, 二者俱是其罪.
정의왈正義曰:‘방명비족方命圮族’은 그 본성이 그런 것이고, ‘적용불성績用不成’은 시험해본 결과 공적이 없는 것이니, 이 두 가지는 모두 죄로 다스려야 할 사안이다.
故竝言之.
그러므로 아울러서 말한 것이다.
釋言云 “殛, 誅也.”
이아爾雅》 〈석언釋言〉에 “의 뜻이다.”라고 하였다.
傳稱流四凶族者, 皆是流, 而謂之殛竄放流皆誅者,
흉족凶族을 유배시킴은 모두 유형流刑에 처한 것인데, 공전孔傳에서는 이에 대하여 “는 모두 주책誅責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流者移其居處, 若水流然, 罪之正名,
는 그 거처를 옮기기를 마치 물이 흐르듯이 하는 것이니, 죄의 정명正名이다.
故先言也.
그러므로 먼저 말한 것이다.
放者使之自活, 竄者投棄之名, 殛者誅責之稱.
은 자유로이 활동할 수 있게 하는 것이고, 투기投棄를 이르는 명칭이고, 주책誅責을 이르는 명칭이다.
俱是流徙, 異其文, 述作之體也.
이것은 모두 유사流徙하는 벌칙이건만, 그에 대한 글을 달리 쓴 것은 바로 술작述作의 문체이다.
四者之次, 蓋以罪重者先.
네 사람의 차서는 아마 죄가 무거운 자로 선두를 삼았을 것이다.
共工滔天, 爲罪之最大, 驩兜與之同惡.
공공共工은 마음의 오만함이 마치 하늘을 능가하는 듯하였으니 죄가 가장 크고, 환도驩兜공공共工과 더불어 악한 행동이 같았다.
故以次之.
그러므로 그것을 가지고 차서를 정한 것이다.
祭法以鯀障洪水. 故列諸祀典.
예기禮記》 〈제법祭法〉에 은 홍수를 막았기 때문에 사전祀典에 올린 것이다.
功雖不就, 爲罪最輕.
공은 비록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죄는 가장 가벼웠다.
故後言之.
그러므로 뒤에 말한 것이다.
禹貢徐州云 “蒙‧羽其藝.” 是羽山爲東裔也.
우공禹貢〉의 서주徐州 조에서 “몽산蒙山우산羽山이 곡식을 심을 수 있게 되었다.”라고 하였으니, 이 우산羽山이 동쪽 변방이 된 것이다.
漢書地理志, 羽山在東海郡祝其縣, 海水漸及.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의하면 우산羽山동해군東海郡 축기현祝其縣 서남쪽에 있으니 바닷물이 닿는다.
故言‘在海中’也.
그러므로 “바다 가운데에 있다.”라고 말한 것이다.
[疏]傳‘皆服’至‘見之’
의 [皆服]에서 [見之]까지
○正義曰:此四罪者, 徵用之初, 卽流之也.
정의왈正義曰:이 네 명의 죄인은 〈임금의〉 부름을 받아 등용될 초기에 곧 유배시킨 것이다.
舜以微賤超升上宰, 初來之時, 天下未服.
미천微賤한 신분으로 갑자기 상재上宰에 올랐으니, 처음에 왔을 때 천하 사람들이 복종하지 않았다.
旣行四罪, 故天下皆服, 舜用刑得當其罪也.
이미 네 명의 죄인을 유배시켰기 때문에 천하 사람들이 모두 복종하였으니, 그것은 의 형벌적용이 그들의 죄에 딱 들어맞았기 때문이다.
自象以典刑以下, 徵用而卽行之.
상이전형象以典刑’으로부터 이하는 〈임금의〉 부름을 받아 등용됐을 때 즉시 행한 일들이다.
於此居攝之後, 追論成功之狀. 故作者先敍典刑, 言舜重刑之事, 而連引四罪, 述其刑當之驗.
그런데 여기서는 섭위攝位한 뒤에 성공한 상태를 추론하였기 때문에 작자作者가 먼저 전형典刑을 서술하여 이 형벌을 중시한 일을 말하고, 연달아 네 명의 죄인에 관한 일을 이끌어서 그 형벌이 그들의 죄에 딱 맞게 적용된 징험을 기술하였다.
明此諸事, 皆是徵用之時所行, 於此總見之也.
이 모든 일들은 다 부름을 받아 등용되었을 때에 행한 것임을 밝혀서 여기에 모두 보인 것이다.
知此等諸事皆徵用所行者,
이 같은 여러 가지 일이 다 부름을 받아 등용되었을 때 행한 바를 알 수 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전거가 입증한다.
洪範云 “鯀則殛死, 禹乃嗣興.”
홍범洪範〉에 “주책誅責으로 죽고 가 뒤를 이어서 일어났다.”라고 하였고,
僖三十三年左傳云 “舜之罪也殛鯀, 其擧也興禹.”
희공僖公 33년 조의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이 죄인을 처벌할 때에는 주책誅責하였지만 인재를 등용할 때에는 를 기용하였다.”라고 하였고,
襄二十一年左傳云 “鯀殛而禹興.” 此三者, 皆言殛鯀而後用禹.
양공襄公 21년 조의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주책誅責되고 는 일어났다.”라고 하였으니, 이 세 가지는 모두 주책誅責한 뒤에 를 등용함을 말한 것이다.
爲治水, 是徵用時事, 四罪, 在治水之前, 明是徵用所行也.
홍수를 다스리게 함은 바로 부름을 받아 등용되었을 때의 일이고, 네 죄인을 다스림은 홍수를 다스리기 전에 있었으니, 이것들은 부름을 받아 등용되었을 때 행한 바를 밝힌 것이다.
又下云 “.” 所言‘稷播百穀’‧‘契敷五敎’‧‘皐陶作士’, 皆是徵用時事.
또한 아래에서 “고요皐陶에게 양보하니 제순帝舜이 세 사람의 공을 탄미하였다.”라고 한 것이나 “백곡百穀을 파종했다.”란 것과 “오교五敎를 폈다.”라고 한 것과 “고요皐陶(法官)가 되었다.”라고 한 것은 모두 부름을 받아 등용되었을 때의 일이다.
皐陶所行, , 有宅, 卽是“象以典刑, 流宥五刑.”
고요皐陶가 행한 바는 ‘오형五刑중정中正하게 적용하는 것’과 ‘오형五刑유형流刑에는 각각 거처하는 바를 두는 것’이었으니, 이는 곧 〈경문經文의〉 “법은 일정한 형벌을 쓰시되 유형流刑으로 오형五刑을 관대하게 하시다.”란 것이다.
此爲徵用時事, 足可明矣. 鄭玄以爲“禹治水事畢, 乃流四凶.”
이것은 부름을 받아 등용되었을 때의 일임이 분명하건만, 정현鄭玄은 “가 홍수를 다스리는 일을 마치자, 이에 사흉四凶을 유배시켰다.”고 하였다.
故王肅難鄭言 “若待禹治水功成而後, 以鯀爲無功殛之, 是爲舜用人子之功, 而流放其父,
그러므로 왕숙王肅정현鄭玄의 말을 힐난하기를 “만일 가 홍수를 다스린 공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린 뒤에 을 공이 없다고 주책誅責하였다면 이는 이 아들의 공으로 그 아버지를 유방流放한 것이고,
則禹之勤勞, 適足使父致殛, 爲舜失五典克從之義, 禹陷之罪.
근로勤勞한 점이 마침 그 아버지를 주책誅責하게 만든 꼴이니, 은 ‘〈부자형제 간에〉 오전五典을 잘 따랐다.’라는 뜻을 잃고 는 불효의 죄에 빠진 것이다.
進退無據, 亦甚迂哉.”
아무리 보아도 근거가 없으니, 또한 매우 오활한 말이다.”라고 하였다.
역주
역주1 : 蔡傳에서는 “象은 하늘이 형상을 드리워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과 같다.[象如天之垂象以示人]”라고 풀이하였는데, 이는 孔疏에서는 《周易》 〈繫辭 上〉의 “하늘이 형상을 드리운다.[天垂象]”는 내용을 인용하여 “이 형상이 본받을 法이기 때문에 法이라 한 것이다.[是象爲倣法 故爲法也]”라고 한 것을 따른 것이다.
역주2 三宥 : 세 번 관대한 법을 베푸는 일이다. 《周禮》 〈秋官司寇〉에 “첫째 관대하게 용서하는 것은 모르고 저지른 죄요, 둘째 관대하게 용서하는 것은 과실로 저지른 죄요, 셋째 관대하게 용서하는 것은 어떤 사실을 잊어버리고 저지른 죄이다.[壹宥曰不識 再宥曰過失 三宥曰遺亡]”라고 보인다.
역주3 : 笞는 볼기에 매질을 하는 것이고, 鞭은 등에 채찍질을 하는 것이다.
역주4 (作)[鞭] : 저본에는 ‘作’으로 되어있으나, 阮刻本에 “毛本에는 ‘作’이 ‘鞭’으로 되어있으니, 살펴보건대 ‘鞭’자가 옳다.”라고 한 것에 의거하여 ‘鞭’으로 바로잡았다.
역주5 怙(호)終 : 蔡傳에서는 “怙는 믿는 구석이 있음을 이르고, 終은 再犯을 이른다.”라고 풀이하였다.
역주6 欽哉欽哉 : 孔傳에서는 “천하에 신칙하여 신중히 하도록 한 것이다.”라고 하여, 舜임금이 천하에 당부한 것으로 풀이하였고, 蔡傳에서는 “조심하고 신중하여”라고 하여, 舜임금이 자신을 독려한 것으로 풀이하였다.
역주7 流共工于幽(洲)[州] : 流는 流徙로 放逐‧投竄‧誅殛과 함께 誅責에 해당한다. 아래 誅殛에 대한 孔傳과 孔疏 참조.
저본에는 ‘洲’로 되어있으나, 阮刻本에 “상고하건대 《說文解字》에는 ‘洲’字가 없다. 물 가운데 있는 지대를 본래는 단지 ‘州’로만 적었는데, 後人이 물수[氵]변을 보태어 관행이 된 지 오래지만, 이 句만은 ‘洲’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岳本에 ‘州’가 ‘洲’로 된 것은 잘못이다. 아래의 ‘幽州’도 같다.”라고 한 것에 의거하여 ‘州’로 바로잡았다. 아래도 같다.
역주8 (念)[分] : 저본에는 ‘念’으로 되어있으나, 《春秋左氏傳》에 의거하여 ‘分’으로 바로잡았다.
역주9 四罪 : 조선시대 李滉의 《三經釋義》 〈書釋義〉에는 ‘四를 罪하신대’, ‘네 곳으로’, ‘네 가지로’ 등으로 다양하게 풀이하고 있다.
역주10 九州 : 《尙書》 〈夏書 禹貢〉의 9州로 곧 冀州‧兗州‧靑州‧徐州‧揚州‧荊州‧豫州‧梁州‧雍州를 가리킨다.
역주11 周禮職方氏九州之名 : 揚州‧荊州‧豫州‧靑州‧兗州‧雍州‧幽州‧冀州‧幷州를 가리키니, 《尙書》의 9州에 비하여 幽州와 幷州가 있고 徐州와 梁州가 없다.
역주12 爾雅釋地九州之名 : 冀州‧豫州‧雍州‧荊州‧揚州‧兗州‧徐州‧幽州‧營州를 가리키니, 《尙書》의 9州에 비하여 幽州와 營州가 있고 靑州와 梁州가 없다.
역주13 封豕長蛇 : 《春秋左氏傳》 定公 4년 조에 申包胥가 秦나라로 가서 援兵을 청하며 말하기를 “吳나라는 큰 멧돼지[封豕]와 큰 뱀[長蛇]과 같아서 중원의 나라들을 잠식하니 그 탐학이 우리 楚나라에 먼저 미쳤습니다.”라고 하였다.
역주14 天垂象 聖人則之 : 《周易》 〈繫辭 上〉에는 “하늘이 형상을 드리워 吉凶을 나타내자 성인이 그것을 본받았다.[天垂象 見吉凶 聖人象之]”로 되어있다.
역주15 (寬宥)[宥寬] : 저본에는 ‘寬宥’로 되어있으나, 阮刻本에 “浦鏜이 이르기를 ‘宥寬이니, 글자가 잘못 도치되었다.’ 하였다.”라고 한 것에 의거하여 ‘宥寬’으로 바로잡았다.
역주16 (此)[比]鞭爲[重] : 저본에는 ‘此鞭爲’로 되어있으나, 阮刻本에 “毛本에는 ‘此’가 ‘比’로 되어있고 ‘爲’ 아래에 ‘重’자가 있으니, 옳다.”라고 한 것에 의거하여 ‘此’를 ‘比’로 바로잡고 ‘重’을 보충하였다.
역주17 (輕)[重] : 저본에는 ‘輕’으로 되어있으나, 文義에 의거하여 ‘重’으로 바로잡았다.
역주18 誓大夫曰……鞭五百 : 《周官義疏》에는 “王이 軍中에 있으면 王이 主將이 되고, 王이 軍中에 있지 않으면 卿이 主將이 된다.……大夫는 師帥와 旅帥를 말한다. 당연히 關白해야(여쭈어야) 할 일이 있는데도 關白하지 않으면 鞭刑에 처한다.[王在軍則王爲主將 王不在軍則卿爲主將……大夫則師帥旅帥也 事有當關白而不關者 則鞭之]”라고 풀이하였다.
역주19 : 저본에는 ‘隨’로 되어있다. 唐代 사람은 ‘隋’와 ‘隨’를 통용했기 때문에 틀린 것은 아니지만, 혼동을 피하려는 뜻에서 《隋書》의 ‘隋去鞭刑’에 의하여 ‘隋’로 바꾸었다.
역주20 (治)[冶] : 저본에는 ‘治’로 되어있으나, 阮刻本에 “살펴보건대 ‘治’는 마땅히 ‘冶’가 되어야 한다.”라고 한 것에 의거하여 ‘冶’로 바로잡았다.
역주21 (重)[量] : 저본에는 ‘重’으로 되어있으나, 阮刻本에 “岳本에는 ‘重’이 ‘量’으로 되어있으니, 살펴보건대 ‘量’자가 옳다.”라고 한 것에 의거하여 ‘量’으로 바로잡았다.
역주22 (六)[大] : 저본에는 ‘六’으로 되어있으나, 孫詒讓이 閩本에 근거하여 바로잡은 것을 따라 ‘大’로 바로잡았다.
역주23 (金)[今] : 저본에는 ‘金’으로 되어있으나, 孫詒讓이 陳氏의 《五經異義疏證》의 설에 근거하여 바로잡은 것을 따라 ‘今’으로 바로잡았다.
역주24 (用)[明] : 저본에는 ‘用’으로 되어있으나, 阮刻本에 “岳本에는 ‘用’이 ‘明’으로 되어있으니, 옳다.”라고 한 것에 의거하여 ‘明’으로 바로잡았다.
역주25 誤而入罪 : 孔傳에는 ‘誤而入刑’으로 되어있다.
역주26 是肆(爰)[爲]緩也 眚(爰)[爲]過也 : 저본에는 ‘爰’으로 되어있으나, 阮刻本에 “岳本에는 ‘爰’이 모두 ‘爲’로 되어있으니, 옳다.”라고 한 것에 의거하여 ‘爲’로 바로잡았다.
역주27 (罪)[要] : 저본에는 ‘罪’로 되어있으나, 阮刻本에 “岳本에는 ‘罪’가 ‘要’로 되어있으니, 옳다.”라고 한 것에 의거하여 ‘要’로 바로잡았다.
역주28 二句 : ‘欽哉欽哉 惟刑之恤哉’를 가리킨다.
역주29 (洲)[州] : 저본에는 ‘洲’로 되어있으나, 阮刻本에 “毛本에는 ‘洲’가 ‘州’로 되어있다.”라고 한 것에 의거하여 ‘州’로 바로잡았다.
역주30 西南 : 지금의 《漢書》 〈地理志〉에는 ‘西’자가 없다.
역주31 禹讓稷契(설)皐陶(고요) 帝因追美三人之功 : 〈舜典〉의 “禹가 절을 하여 머리를 조아려 稷과 契 및 皐陶에게 양보하니, 帝舜이 말씀하기를 ‘네 말이 옳다. 너는 가서 임무를 수행하라.’고 했다.[禹拜稽首 讓于稷契曁皐陶 帝曰兪汝往哉]”를 이렇게 말을 만든 것이다.
역주32 五刑 : 墨刑‧劓刑‧剕刑‧宮刑‧大辟(死刑)을 가리킨다.
역주33 五刑有服 : 孔傳에서는 “輕重이 中正하게 됨을 말한다.”라고 하고, 蔡傳에서는 〈呂刑〉에서 말한 ‘上服下服’이라고 하였는데, ‘上服下服’은 곧 “上刑適輕下服 下刑適重上服”으로서 죄가 上刑(重刑)에 해당하더라도 초범이거나 모르고 저지른 경우에는 형량을 낮게 적용하며, 죄가 下刑(輕刑)에 해당하더라도 고의로 저질렀거나 재범‧삼범일 경우에는 형량을 높게 적용함을 말한다.
역주34 五流 : 五刑에 해당하는 죄인에 대해서 너그럽게 용서하여 다섯 가지 등급으로 나누어 유배보내는 것을 말한다.
역주35 三千莫大 : 《孝經》 〈五刑章〉에 “五刑의 등속이 3천 가지이나, 죄는 불효보다 더 큰 것이 없다.[五刑之屬三千而罪莫大於不孝]”라고 한 것을 말한다.

상서정의(1) 책은 2019.11.11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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