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尙書注疏(4)

상서정의(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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乃問與百執事하신대
[傳]二公 倡王啓之 先見書 史百執事 皆從周公이라
對曰 信하니이다 이로소이다
[傳]史百執事言 信有此事 周公使我勿道 今言之 則負周公이라하니라 恨辭
○噫 馬本作懿 猶億也


(召公太公)과 왕이 이에 諸史百執事에게 그 일에 대해 물으시니,
을 인도하여 金縢의 궤를 열었기 때문에 먼저 책서를 본 것이다. 百執事는 모두 周公을 따라 을 청한 자들이다.
그들은 대답하기를 “사실입니다. 아! (周公)께서 우리들로 하여금 감히 말하지 말도록 했을 뿐입니다.”라고 하였다.
百執事가 말하기를 “참으로 이런 일이 있었지만 周公께서 우리로 하여금 말하지 말라고 하셨으니, 지금 만일 말한다면 周公을 저버리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는 한탄하는 말이다.
○‘’가 馬本에는 ‘’로 되어 있는데, ‘’과 같은 뜻이다.


역주
역주1 二公及王 : 顧炎武는 “임금은 어리고 나라는 불안한데 周公은 또 밖에 나가서 거하고 있었으나 위아래가 편안하여 腹心의 우환이 없었던 것은 두 公의 힘이었다.[主少國疑 周公又出居於外 而上下安寧 無腹心之患者 二公之力也]”라고 하였다.(≪日知錄≫ 〈周公居東〉)
역주2 諸史 : 孔傳은 ‘諸’자를 빼고 ‘史’자만 적었고, 孔疏는 “史가 公을 위하여 책서를 지었다.[史爲公造策書]”라고 하였으니, 이들은 ‘史’를 太史로 본 것 같은데, 蔡傳은 “諸史와 百執事는 아마 卜筮의 일을 집행한 사람들이었을 것이다.[諸史百執事 蓋卜筮執事之人]”라고 하였으니, ‘史’가 太史인지 史官인지 모르겠다.
역주3 請命 : 古本과 ≪史記集解≫에는 ‘命’ 아래에 ‘者’자가 있다.
역주4 公命我勿敢言 : 孔安國은 “周公이 저희들로 하여금 감히 말하지 말도록 하였다.[周公使我勿敢道]”라고 풀이하였고, 宋代의 林之奇‧時瀾‧黃度 등은 孔安國을 따랐는데, 유독 蔡沈만은 ‘이는 실로 周公께서 하신 일이었지만, 저희들이 감히 말하지 못하였을 뿐입니다.’라고 한 것인데, 孔氏가 ‘周公이 말하지 말도록 하였다.’고 한 것은 옳지 않다.[此實周公之命 而我勿敢言爾 孔氏謂 周公使之勿道者 非是]”라고 하였으니, ‘勿敢言’의 勿을 不의 뜻으로 본 점이 어색하다. 그러나 元代 王希朝(≪書傳集註≫ 小註)는 “蔡沈의 句讀대로라면 응당 ‘우리는 감히 말하지 못했을 뿐이다.’고 해야 하니, ≪說文解字≫에 ‘勿은 莫의 뜻이다.’고 했다.[如蔡點 當云我莫敢言耳 說文勿莫也]”라고 하여 蔡沈을 옹호하였다.

상서정의(4) 책은 2020.12.29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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