注
呂氏春秋愼人篇에 云 陶於河濱이라한대 高注에 云 陶는 作瓦器라하다 史記五帝本紀에 瀕은 亦作濱이라
畢云 此는 古濱字이니 見說文이라 史記集解에 云 皇甫謐曰 濟陰은 定陶西南陶丘亭이 是也라하고
正義에 曰 按 於曹州濱河에 作瓦器也라 括地志에 云 陶城은 在蒲州河東縣北三十里라하니
卽舜所都也니 南去歷山不遠이라 或耕或陶는 所在則可한대 何必定陶라야 方得爲陶也리오
舜之陶也
는 斯或一焉
이라하다 按
說
이 本水經注
한대 是也
라 雷澤則亦以山西永濟說爲強也
라하다
詒讓案 水經濟水注에 云 陶丘는 墨子以爲釜丘也라한대 今檢勘全書하니 無釜丘之文이라 疑古本此文或作陶釜丘矣라
注
≪呂氏春秋≫ 〈愼人〉에 “河濱에서 그릇을 구웠다.”고 하였는데, 高誘의 注에 “陶는 瓦器를 만드는 것이다.”라 하였다. ≪史記≫ 〈五帝本紀〉에서도 ‘瀕’이 ‘濱’으로 되어 있다.
畢沅:이 ‘瀕’은 ‘濱’의 古字이니 ≪說文解字≫에 보인다. ≪史記集解≫에 “皇甫謐이 말하기를 ‘濟陰은 定陶의 서남쪽 陶丘亭이다.’라 하였다.”고 하였고,
≪史記正義≫에 “살펴보건대, 曹州 濱河에서 瓦器를 만든 것이다. ≪括地志≫에서 ‘陶城은 蒲州 河東縣 북쪽 30리에 있다.’라 하였는데,
바로 舜임금이 도읍으로 삼은 곳으로, 남쪽으로는 歷山이 멀지 않다. 밭 갈거나 도자기 굽는 것은 어디에서도 가능한데 어찌 반드시 定陶라야 비로소 도자기를 구울 수 있겠는가?
이곳은 곧 舜임금이 도자기를 구운 곳 중의 하나일 것이다. 생각건대 張守節의 說은 ≪水經注≫에 근거를 두고 있는데 옳다. 雷澤은 또한 山西 永濟縣으로 보는 說이 비교적 좋다.
詒讓案:≪水經注≫ 〈濟水〉에 “陶丘는 ≪墨子≫에서는 ‘釜丘’라 하였다.”고 하였는데, 지금 ≪墨子≫ 전체를 점검해보니 ‘釜丘’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는다. 아마도 古本에 이 글이 혹 ‘陶釜丘’로 되어 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