注
王云 焉字는 下屬爲句라 焉은 猶於是也니 乃也라 下文의 湯焉敢奉率其衆과 武王焉襲湯之緖가 義竝與此同이라
又云 磨字는 義不可通이라 磨는 當爲磿하니 磿은 與歷으로 通이라 周官遂師注에 曰 磿者는 適歷이라
中山經에 歷石之山이라한대 郭注에 或作磿이라하다 史記高祖功臣侯表에 磿簡侯程黑이라한대
漢表
에 作歷
이라 春申君傳
에 濮磿之北
이라한대 善謀篇
엔 作歷
이라
樂毅傳에 故鼎反乎磿室이라한대 燕策엔 作歷이라 歷之言離也라 大戴五帝德篇에 曰 歷離日月星辰이라하니 是歷與離同義라
淮南精神篇에 曰 別爲陰陽하고 離爲八極이라하니 然則磿爲山川은 亦謂離爲山川也라
離與磿은 皆分別之義라 故로 曰 磿爲山川 別物上下라 世人多見磨하고 少見磿이라 故로 書傳中磿字가 多譌作磨라
史記及山海經注의 磿字가 今本에 皆譌作磨라 又逸周書世俘篇에 作伐磿하고 楚策에 遠自棄於磿山之中이라한대 今本에 亦譌作磨라
勉學篇
에 曰 太山羊肅
이 讀世本容成造磿
하고 以
爲碓磨之磨
라하니 則以
爲磨
는 自古已然矣
라
이에 山川을 구별하고, 上下의 사물을 분별하고,
注
王念孫:‘焉’자는 아래로 붙여 구를 떼어야 한다. ‘焉’은 ‘於是’와 같으니, ‘乃(이에)’이다. 아래 글에 “湯焉敢奉率其衆(湯이 이에 감히 그 무리를 받들어 거느리다.)”과 “武王焉襲湯之緖(武王이 이에 湯의 緖業를 계승하였다.)”라고 한 것이 그 뜻이 모두 이와 같다.
王念孫:‘磨’자는 뜻이 통하지 않는다. ‘磨’는 응당 ‘磿’이 되어야 하니, ‘磿’과 ‘歷’은 통한다. ≪周官≫ 〈遂師〉의 注에 “‘磿’은 適歷이다.”라 하였다.
≪山海經≫ 〈中山經〉에 “歷石之山(歷石山)”이라 하였는데, 郭璞의 注에 〈‘歷’은〉 혹 ‘磿’으로 되어 있다고 하였다. ≪史記≫ 〈高祖功臣侯表〉에 “磿簡侯程黑(磿簡侯 정흑)”이라 하였는데,
≪漢書≫ 〈王子侯表〉에는 〈‘磿’이〉 ‘歷’으로 되어 있다. ≪史記≫ 〈春申君傳〉에 “濮磿之北(濮磿의 북쪽)”이라 하였는데, ≪新序≫ 〈善謀〉에는 〈‘磿’이〉 ‘歷’으로 되어 있다.
≪史記≫ 〈樂毅傳〉에 “故鼎反乎磿室(故鼎을 磿室에 도로 가져왔다.)”이라 하였는데, ≪戰國策≫ 〈燕策〉에는 ‘歷’으로 되어 있다. ‘歷’은 ‘離’를 말한다. ≪大戴禮記≫ 〈五帝德〉편에 “歷離日月星辰(일월성신을 분별하였다.)”이라 하였으니, 곧 ‘歷’과 ‘離’가 뜻이 같은 것이다.
≪淮南子≫ 〈精神〉편에 “別爲陰陽 離爲八極(陰陽을 분별하고 八極를 분별한다.)”이라 하였으니, 그렇다면 ‘磿爲山川’ 또한 ‘離爲山川’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離’와 ‘磿’은 모두 분별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본문에 ‘磿爲山川 別物上下(山川을 구별하고 上下의 사물을 분별하였다.)’라 하였다. 世人은 ‘磨’를 본 경우는 많고, ‘磿’을 본 경우는 적기 때문에 典籍 중의 ‘磿’자가 대부분 ‘磨’자로 잘못되어 있다.
≪史記≫와 ≪山海經≫ 注의 ‘磿’자가 今本에 모두 ‘磨’자로 잘못되어 있다. 또 ≪逸周書≫ 〈世俘〉에 ‘伐磿(磿山을 쳤다.)’이라 하였고, ≪戰國策≫ 〈楚策〉에 ‘遠自棄於磿山之中(멀리 磿山의 가운데 스스로 버렸다.)’이라 하였는데, 今本에 또한 〈‘磿’이〉 ‘磨’자로 잘못되어 있다.
≪顔氏家訓≫ 〈勉學〉에 “太山의 羊肅이 ≪世本≫의 ‘容成造磿(〈黃帝의 사관〉 容成이 역사를 서술하였다.)’이라는 구절을 읽고 ‘磿’을 ‘碓磨(디딜방아와 맷돌)’의 ‘磨’자로 여겼다.”라 하였으니, ‘磿’을 ‘磨’로 여긴 것은 예로부터 이미 그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