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墨子閒詁(1)

묵자간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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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 匹也 楊子之書 不傳하고 略見於列子之書하니 而已
孟子楊朱墨翟을 병칭하여 논변하여 배척하였으나 楊子墨子에 필적할 정도는 아니었다. 楊子의 글은 전해지지 않고 列子의 글에 대략 보이니,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을 좋아하는 정도에 그친 사람이었다.
孟子孟子
墨子 則達於天人之理하며 熟於事物之情하고 又深察春秋戰國百餘年間時勢之變하여 欲補弊扶偏하여 以復之於古
墨子天人의 이치에 통달하고 사물의 實情을 익숙히 알았으며, 또 춘추전국 100여 년간의 時勢의 변화를 깊이 통찰하여 낡은 것을 깁고 치우친 것을 바로 세워 옛것을 회복하고자 하였다.
鄭重其意하며 反復其言하여 以冀世主之一聽하니 雖若有稍詭於正者 而實千古之有心人也
그리하여 그 뜻을 鄭重히 하며 그 말을 반복하여 당세의 人主가 한번 들어주기를 기대하였으니, 비록 正道에서 조금 벗어난 점이 있는 듯하나 실로 千古에 남을 뜻있는 사람이다.
謂孔貴公하며 墨子貴兼하니 其實則一하고 韓非 以儒竝爲世之顯學하고
屍佼는 공자가 ‘’을 귀하게 여겼고 墨子가 ‘’을 귀하게 여겼으니 그 사실은 똑같다고 하였으며, 韓非子儒家墨家와 아울러 세상의 顯學이라 하였으며,
하여도 猶以竝稱하니 尼山而外 其莫尙於此老乎인저
나라 때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孔子墨子를〉 ‘孔墨’이라 나란히 일컬었으니, 尼山(공자)을 제외하고 이 어르신보다 숭상된 분은 없으리라.
墨子死而分爲三하니 有相里氏之하며 有相夫氏之하며 有鄧陵氏之이라
墨子가 죽고 墨家가 셋으로 나뉘었으니, 相里氏의 묵가가 있으며 相夫氏의 묵가가 있으며 鄧陵氏의 묵가가 있다.
今觀尙賢尙同兼愛非攻節用節葬天志明鬼非樂非命 皆分上中下三篇이니 字句小異而大旨無殊
지금 살펴보건대 〈尙賢〉‧〈尙同〉‧〈兼愛〉‧〈非攻〉‧〈節用〉‧〈節葬〉‧〈天志〉‧〈明鬼〉‧〈非樂〉‧〈非命〉이 모두 상‧중‧하 3편으로 나뉘었는데, 字句가 약간 다르더라도 大旨는 다름이 없다.
意者컨대 此乃相里相夫鄧陵三家相傳之本 不同이러니 後人 合以成書 一篇而有三乎인저
추측컨대 이는 곧 상리씨‧상부씨‧등릉씨의 세 묵가가 서로 전한 이 같지 않았는데, 후대의 사람들이 모아서 〈하나의〉 책을 만들었기 때문에 하나의 편인데 세 편으로 되었을 것이다.
墨氏弟子 網羅放失하고 參考異同하여 具有條理로대 較之하여 至今遂無可考者컨대 轉似過之
묵자의 제자들이 散逸된 것을 망라하고 異同을 참고하여 모두 條理가 있게 되었지만, 여덟으로 분파되어 이제 마침내 상고할 수 없게 되어버린 儒家의 경우에 비교해보더라도 더욱 심한 듯하다.
以來 韓昌黎 無一人能知墨子者하니 傳誦旣少 注釋亦稀
이에 나라 이래로 韓昌黎(韓愈) 외에는 한 사람도 묵자를 제대로 아는 자가 없었는데, 傳誦하는 자들이 적어지자 注釋을 내는 자들도 거의 없게 되었다.
韓愈韓愈
樂臺舊本 久絶流傳이라 闕文錯簡 無可校正이요 古言古字 更不可曉하니 而墨學 塵薶終古矣
樂臺舊本은 세상에 전해지지 않은 지 오래라 闕文錯簡校正할 수 없게 되었고 古言古字도 다시는 이해할 수 없게 되니, 墨學이 오래도록 파묻혀버리고 말았다.
國朝 鎭洋畢氏始爲之注하고 嗣是以來 諸儒益加讎校 塗徑旣闢 奧窔粗窺하니 墨子之書 稍稍可讀이라
國朝()에 鎭洋畢氏(畢沅)가 처음으로 ≪墨子≫에 注釋을 내었고, 이를 이어서 학자들이 더욱 校正을 가하였다. 길이 열리자 深奧한 내용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게 되니, ≪墨子≫라는 책을 조금씩 읽을 수 있게 되었다.
於是 瑞安孫詒讓仲容 乃集諸說之大成하여墨子閒詁
이에 瑞安孫詒讓 仲容諸說集大成하여 ≪墨子閒詁≫를 저술하였다.
凡諸家之說 是者 從之하며 非者 正之하고 闕略者 補之
〈그는〉 무릇 諸家의 설에서 옳은 것은 따르고 옳지 않은 것은 바로잡았으며, 빠지고 疏略한 부분은 보충하였다.
經說備城門以下諸篇하야는 尤不易讀이어늘 整紛剔蠹하며 衇摘無遺하여
經說〉과 〈備城門〉 이하 편들은 더욱 읽기가 쉽지 않았는데, 어지러운 부분은 정리하고 쓸데없는 부분은 刪削하며 맥락을 남김없이 들추어내어,
之文 盡還舊觀하며 訛奪之處 咸秩無紊하니 蓋自有墨子以來 未有此書也
旁行한 글은 모두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렸으며, 착오가 있거나 탈락된 부분은 모두 차례 지어 어지럽지 않게 하였으니, ≪墨子≫라는 책이 있은 이래로 이와 같은 책은 없었다.
以余亦嘗從事於此 問序於余하니 余何足序此書哉리오 竊嘗推而論之컨대 墨子 惟兼愛 是以 尙同하며
나 역시 이 일에 종사하였다는 이유로 〈仲容이〉 나에게 序文을 부탁하였으니, 내 어찌 이 책에 序文을 쓸 만한 사람이겠는가? 미루어 논해보자면 墨子는 아울러 사랑[兼愛]하였는지라 같음을 숭상[尙同]하였으며,
惟尙同이라 是以 非攻하며 惟非攻이라 是以 講求備禦之法이라
같음을 숭상하였는지라 공격을 비난[非攻]하였으며, 공격을 비난하였는지라 防禦하는 법을 강구하였다.
近世西學中 光學重學 或言皆出於墨子하니 然則其備梯備突備穴諸法 或卽泰西機器之權輿乎인저
근세 西學 가운데 光學力學이 혹자는 모두 墨子에게서 나왔다고 말하니, 그렇다면 〈備梯〉‧〈備突〉‧〈備穴〉 등의 방법들은 어쩌면 서양 기계의 시초인지도 모른다.
嗟乎 今天下 一大戰國也一言으로 爲主하고 而以墨子之書 輔之 儻足以安內攘外乎
오호라! 지금 천하는 하나의 큰 전국시대니, 孟子의 ‘反本(근본으로 돌아감)’ 이 한마디를 로 하고 墨子의 글로 보완한다면 혹시라도 內治를 편안히 하고 外勢를 물리치기에 족하지 않겠는가.
勿謂仲容之爲此書 窮年兀兀徒하여 敝精神於無用也어다 光緖二十一年夏 德淸兪樾이라
仲容이 이 책을 지은 것을 두고 늘그막에 오도카니 앉아 한갓 쓸데없는 데 정신을 허비했다고 말하지 말지어다. 光緖 21년(1895) 여름에 德淸 兪樾이 〈하노라.〉
역주
역주1 孟子……辭而闢之 : ≪孟子≫ 〈滕文公 下〉에 보인다. “聖王이 나오지 아니하여 諸侯가 방자하고 草野의 선비가 멋대로 의론하니, 楊朱‧墨翟의 말이 天下에 가득하여 天下의 말이 楊朱에게 돌아가지 않으면 墨翟에게 돌아갔다. 楊氏는 ‘爲我’를 주장하였으니 이는 군주가 없는 것이며, 墨氏는 ‘兼愛’를 주장하였으니 이는 아비가 없는 것이다. 아비가 없고 군주가 없으면 이는 禽獸이다.[聖王不作 諸侯放恣 處士橫議 楊朱墨翟之言 盈天下 天下之言 不歸楊則歸墨 楊氏爲我 是無君也 墨氏兼愛 是無父也 無父無君 是禽獸也]”라 하였다.
역주2 自適其適 : ≪莊子≫ 〈騈拇〉에 “남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은 좋아하지 못하는 자[適人之適而不自適其適者]”라고 보인다.
역주3 屍佼 : B.C.390?~B.C.330? 戰國시대 사람이다. 秦나라 商鞅의 문객으로 출입하면서 變法 시행에 참여하였다가, 상앙이 죽은 뒤 蜀나라로 갔다. 저서에 ≪屍子≫가 있는데 현전하지 않는다. ‘屍’는 ‘尸’로도 쓴다.
역주4 儒分爲八 : ≪韓非子≫ 〈顯學〉에 “自孔子之死也 有子張之儒 有子思之儒 有顔氏之儒 有孟氏之儒 有漆雕氏之儒 有仲良氏之儒 有孫氏之儒 有樂正氏之儒 自墨子之死也 有相里氏之墨 有相夫氏之墨 有鄧陵氏之墨 故孔墨之後 儒分爲八 墨離爲三 取舍相反不同 而皆自謂眞孔墨(공자 사후에 자장, 자사, 안씨, 맹씨, 칠조씨, 중량씨, 손씨, 악정씨의 儒家가 있었고, 묵자 사후에 상리씨, 상부씨, 등릉씨의 墨家가 있다. 그러므로 공자와 묵자 이후에 유가는 분파되어 여덟이 되었고, 묵가는 분파되어 셋이 되어, 取舍한 것이 상반되어 같지 않으면서 모두 저마다 자신이 진정한 유가이며 묵가라고 말한다.)”라고 보인다.
역주5 旁行 : ≪墨子≫의 편 중 〈經 上〉은 100조, 〈經 下〉는 82조이며, 경의 각 條마다 說이 있다. 이 經과 說을 나란히 써서 해독에 용이하도록 배열하는 방식이 ‘旁行’이다. ≪묵자≫의 원문이 旁行本이었는지는 異說이 있다. 伍非百과 奕調甫 등의 ‘旁行’에 관한 연구에 의하면 ≪묵자≫는 竹簡本이 원문이다. 죽간에 기록할 때 〈經〉과 〈經說〉을 나란히 배열하기 힘들었기 때문에 좁은 죽간을 좌우에 놓고 한 쪽에는 〈經〉을 한쪽에는 〈經說〉을 배열하였다가, 후대에 이를 별도로 나누어 정리하면서 해독이 어려워진 것이다.
역주6 孟子反本 : ≪孟子≫ 〈梁惠王 上〉에 보인다. “작은 나라는 진실로 큰 나라를 대적할 수 없고, 적은 사람은 진실로 많은 사람을 대적할 수 없고, 약한 자는 진실로 강한 자를 대적할 수 없습니다. 海內의 땅이 사방 千里 되는 것이 아홉인데, 齊나라의 땅을 다 모으면 그중 하나를 소유한 셈이니, 하나를 가지고 여덟을 복종시키는 것이 어찌 鄒나라가 楚나라를 대적함과 다르겠습니까? 역시 그 근본을 돌이켜야 할 것입니다.[小固不可以敵大 寡固不可以敵衆 弱固不可以敵強 海內之地 方千里者九 齊集有其一 以一服八 何以異於鄒敵楚哉 蓋亦反其本矣]”라 하였다.

묵자간고(1) 책은 2020.11.1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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