王渾
이 平吳之日
注+① 晉書曰 “王渾, 字玄冲, 太原晉陽人, 父昶魏司徒. 渾沉雅有器量. 以平吳功, 封一子江陵侯, 位至司徒.”에 登建業宮
하고 釃酒旣酣
에 謂吳人曰
漢末分崩하여 三國鼎立이라가 魏滅於前하고 吳亡於後하니 亡國之戚이 豈唯一人이리오하니
王
이 大有慚色
注+② 虞預晉書曰 “周處, 字子隱, 吳郡陽羨人, 父魴吳裨將軍. 處入晉爲御史中丞, 多所彈糾, 不避彊禦. 齊萬年反, 以建威將軍西征. 臨陣慷慨, 奮不顧命, 遂死於戰.”하다
3-16【
보補】
왕혼王渾이
오吳나라를 평정한 날에
注+① ≪진서晉書≫ 〈왕혼전王渾傳〉에 말하였다. “왕혼王渾은 자字가 현충玄冲이고 태원太原 진양晉陽 사람으로 부친 왕창王昶은 위魏나라 사도司徒였다. 왕혼은 신중하고 기품이 있으며 기량器量이 뛰어났다. 오吳나라를 평정한 공으로 아들 하나가 강릉후江陵侯에 봉해졌으며, 지위가 사도司徒에 이르렀다.” 건업建業의 궁전에 올랐다. 술을 마시다가 술기운이 오르자 오나라 사람들에게 말했다.
“제군諸君들은 망국亡國의 남은 백성들이니 슬픈 마음이 없을 수 있겠는가.”
“한말漢末에 나라가 쪼개져 삼국三國이 정립鼎立하다가 위魏나라는 앞서 망하고 오나라는 뒤에 망하였습니다. 망국의 슬픔이 어찌 한 사람뿐이겠습니까.”
왕혼이 크게 부끄러워하였다.
注+② 우예虞預의 ≪진서晉書≫에 말하였다. “주처周處는 자字가 자은子隱이고 오군吳郡 양선陽羨 사람으로 부친 주방周魴은 오吳나라 비장군裨將軍이었다. 주처는 진晉나라에 들어가 어사중승御史中丞이 되어 탄핵한 사람이 많았는데 권세가 있는 이라고 피하지 않았다. 제만년齊萬年이 반란을 일으키자 건위장군建威將軍으로 서쪽으로 정벌에 나섰다. 전투에 임해 비분강개悲憤慷慨하여 분전奮戰하며 목숨을 돌보지 않다가 마침내 전투에서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