知愧不
注+① 晉諸公贊曰 “齊王當出藩, 而王濟諫請無數, 又累遣常山與長廣公主共入, 稽顙陳乞留之. 世祖甚恚, 謂王戎曰 ‘我兄弟至親, 今出齊王, 自朕家計, 而甄德․王濟連遣婦入來, 生哭人邪. 濟等尙爾, 況餘者乎.’ 濟自此被責, 左遷國子祭酒.”아하니
尺布斗栗之謠
에 常爲陛下恥之
注+② 漢書曰 “淮南厲王長, 高祖少子也. 有罪, 文帝徙之於蜀, 不食而死. 民作歌曰 ‘一尺布, 尙可縫, 一斗栗, 尙可舂, 兄弟二人, 不能相容.’” 瓚注曰 “言一尺布帛, 可縫而共衣, 一斗米粟, 可舂而共食, 況以天下之廣, 而不相容也.”니이다 他人
은 能令踈親
이어늘 臣
은 不能使親
하니 以此愧陛下
니이다하다
10-17 진晉 무제武帝(사마염司馬炎)가 화교和嶠에게 말하였다.
“나는 우선
를 통렬히 꾸짖은 뒤에 그에게 작위를 주려고 하오.”
“왕무자는 재능이 출중하고 호방하니 아마 굴복시킬 수 없을 것입니다.”
무제가 마침내 왕무자를 불러 호되게 꾸짖은 뒤에 말하였다.
“부끄러움을 느끼는가?”
注+① 부창傅暢의 ≪진제공서찬晉諸公敍贊≫에 말하였다. “제왕齊王(사마유司馬攸)이 〈조정에 있다가〉 봉국封國으로 나가게 되었을 때, 왕제王濟가 〈보내지 말라고〉 무수하게 간하고 요청하였다. 또, 여러 차례 〈자신의 아내〉 상산공주常山公主(사마염의 누이)와 의 아내 장광공주長廣公主(사마염의 누이 경조공주京兆公主)를 함께 조정에 들여보내 머리를 땅에 조아리면서 〈제왕을 조정에〉 머물게 해달라고 간청하게 하였다. 세조世祖(사마염)가 매우 화를 내면서 에게 ‘우리 형제들은 더할 나위 없이 친밀하지만, 지금 제왕을 내보내는 것은 짐의 집안을 위해 생각한 것인데, 견덕과 왕제가 연달아 자기 부인을 들여보내 산채로 곡을 하는구나. 〈인척 관계에 있는〉 왕제 등이 오히려 이러하니 하물며 다른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다.’ 하였다. 왕제가 이로부터 견책을 받아 국자좨주國子祭酒로 좌천되었다.”
“한 자의 베와 한 말의 곡식에 대한 노래를 생각하면 항상 폐하께 부끄러운 마음이 듭니다.
注+② ≪한서漢書≫에 말하였다. “회남여왕淮南厲王 유장劉長은 고조高祖(유방劉邦)의 막내아들이다. 백성들이 노래를 지어 ‘한 자의 베도 오히려 재봉하여 〈함께 옷을〉 입을 수 있고, 한 말의 곡식도 오히려 찧어 〈함께〉 먹을 수 있거늘, 형제 두 명이 서로 용납할 수 없구나.” 하였다. 의 주석에 말하였다. “한 자의 옷감도 재봉하여 함께 옷을 입을 수 있고, 한 말의 곡식도 찧어 함께 먹을 수 있는데, 하물며 광대한 천하를 소유하고도 〈아우를〉 용납할 수 없었다는 말이다.” 타인들은 소원한 사람을 친밀하게 할 수 있는데, 저는 친밀한 사람조차
이 때문에 폐하께 부끄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