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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說新語補(3)

세설신어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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諸葛瑾․弟亮及從弟誕注+① 吳書曰 “瑾, 字子瑜. 其先葛氏, 琅邪諸縣人, 後徙陽都. 陽都先有姓葛者, 時人謂諸葛, 因爲氏. 瑾少以至孝稱. 累遷豫州牧, 六十八卒.” 魏志曰 “誕, 字公休. 爲吏部郞, 人有所屬託, 輒顯其言而亟用之. 後有當不, 則公議其得失, 以爲褒貶. 自是羣僚莫不愼其所擧. 累遷揚州刺史․鎭東將軍․司空. 謀逆伏誅.” 竝有盛名이나 各在一國이라 于時以為 蜀 得其龍하고 得其虎하고 得其狗라하다
誕在魏 與夏侯玄齊名하고 瑾在吳 吳朝服其弘量注+② 吳書曰 “瑾避亂渡江, 大皇帝取爲長史. 遣使蜀, 但與弟亮公會相見, 反無私面, 而又有容貌思度, 時人服其弘量.”하다
【頭註】
王云 “後兩語, 正自推尊武侯.”


17-7 제갈근諸葛瑾과 동생 제갈량諸葛亮, 사촌동생 제갈탄諸葛誕注+① ≪오서吳書≫에 말했다. “제갈근諸葛瑾자유子瑜이다. 그 선대는 갈씨葛氏낭야琅邪 제현諸縣 사람이었다. 후에 양도陽都으로 옮겼는데 양도에 먼저 갈씨 성을 가진 사람이 있어 당시 사람들이 ‘제갈諸葛’이라고 불렀고 그래서 성씨가 되었다. 제갈근은 어려서부터 지극한 효성으로 유명했다. 여러 벼슬을 거쳐 예주목豫州牧에 올랐고 68세에 죽었다.”
삼국지三國志≫ 〈위지魏志〉에 말했다. “제갈탄諸葛誕공휴公休이다. 이부랑吏部郞일 때에 사람들이 부탁하기만 하면 곧장 그 말을 공개하고 즉시 등용하였다. 나중에 합당한지 아닌지의 논의가 있으면 그 추천을 제대로 했는지 잘못했는지를 공동으로 따져보고 〈이것을 바탕으로 추천자를〉 포폄하였다. 이로부터 관료들이 모두 인재의 추천을 신중히 하였다. 여러 벼슬을 거쳐 양주자사揚州刺史진동장군鎭東將軍사공司空에 올랐다. 반역을 도모했다가 복주伏誅되었다.”
나란히 이름이 크게 났는데 각자 다른 나라에서 벼슬하였다. 당시에 사람들이 나라는 을 얻었고 나라는 범을 얻었고 나라는 개를 얻었다고 하였다.
제갈탄은 위나라에 있었는데 하후현夏侯玄과 이름을 나란히 했고, 제갈근은 오나라에 있었는데 오나라 조정에서는 그의 큰 도량에 탄복하였다.注+② ≪오서吳書≫에 말했다. “제갈근諸葛瑾이 난리를 피해 강을 건너 오자 대황제大皇帝(손권孫權)가 기용해 장사長史로 삼았다. 나라에 사신으로 파견되서는 단지 동생 제갈량諸葛亮과는 공적인 자리에서만 만나고 〈숙소로〉 돌아가서는 사적으로 얼굴을 마주하지 않았으며, 게다가 용모도 뛰어나고 사려도 깊어 당시의 사람들이 그의 넓은 도량에 탄복하였다.”
제갈량諸葛亮제갈량諸葛亮
두주頭註
왕세무王世懋:〈제갈근諸葛瑾제갈탄諸葛誕에 관한〉 뒤의 두 말은 자연스럽게 무후武侯(제갈량諸葛亮)를 높인다.



세설신어보(3) 책은 2023.12.1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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