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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說新語補(1)

세설신어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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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설신어보(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諸名士 共至洛水하여注+① 竹林七賢論曰 “王濟諸人, 嘗至洛水, 解禊事. 明日, 或問濟曰 ‘昨游, 有何語議.’ 濟云云.”하고하니 樂令注+② 廣也. 問王夷甫曰
今日戯樂乎注+③ 虞預晉書曰 “王衍, 字夷甫, 瑯琊臨沂人, 司徒戎從弟. 父乂, 平北將軍. 夷甫蚤知名, 以淸虛通理稱, 仕至太尉. 爲石勒所害.”아하니
王曰
裴僕射 善談名理 混混有雅致注+④ 晉惠帝起居注曰 “裴頠, 字逸民, 河東聞喜人, 司空秀之少子也.” 冀州記曰 “頠弘濟有淸識, 稽古善言名理, 履行高整, 自少知名. 歷侍中․尙書左僕射. 爲趙王倫所害.”하고 張茂先 論史漢 靡靡可聽注+⑤ 王隱晉書曰 “張華, 字茂先, 范陽人也. 累遷司空, 爲趙王倫所害.” 晉陽秋曰 “華博覽洽聞, 無不貫綜. 世祖嘗問漢事, 及建章千門萬戶, 華畫地成圖, 應對如流, 張安世不能過也.”하고 我與王安豐 說延陵子房 亦超超玄注+⑥ 晉諸公贊曰 “夷甫好尙談稱, 爲時人物所宗.”이라하다
【頭註】
劉云 “玄箸, 猶沈著.”
王云 “古本原作箸字, 殆不可曉. 後皆倣此.”


4-6 여러 명사名士들이 함께 낙수洛水에 가서 놀고 돌아오자,注+에 말하였다. “왕제王濟 등 여러 사람들이 낙수洛水에 가서 를 지낸 적이 있었다. 다음날 누군가가 왕제에게 ‘어제 놀이에서 어떤 말과 논의가 있었습니까?’라고 묻자, 왕제가 〈위와 같이〉 운운하였다.” 악령樂令(악광樂廣)이注+② 〈악령樂令은〉 악광樂廣이다. 왕이보王夷甫(왕연王衍)에게 물었다.
계찰季札계찰季札
“오늘의 놀이는 즐거웠습니까?”注+우예虞預의 ≪진서晉書≫에 말하였다. “왕연王衍이보夷甫이고 낭야瑯琊임기臨沂 사람으로 사도司徒왕융王戎종제從弟이다. 부친 왕예王乂평북장군平北將軍이었다. 왕이보王夷甫는 일찍 이름이 알려졌는데 청허淸虛하고 이치에 통달한 것으로 유명하였으며, 벼슬이 태위太尉에 이르렀다. 석륵石勒에게 살해당했다.”
왕이보가 말했다.
배복야裴僕射(배외裴頠)는 명리名理에 대해 잘 이야기하였는데 흐르는 물처럼 끊임없는 것이 아치雅致가 있었고,注+에 말하였다. “배위裴頠일민逸民이고 하동河東 문희聞喜 사람으로 사공司空 배수裴秀의 막내아들이다.”
기주기冀州記≫에 말하였다. “배외는 도량이 크고 넓었으며 탁견이 있었다. 옛일을 살펴 명리名理(명칭과 이치)에 대해 잘 이야기하였고, 행실이 고상하고 반듯하여 어려서부터 이름이 알려졌다. 시중侍中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를 역임하였다. 서진西晉조왕趙王 사마륜司馬倫에게 해를 당했다.”
장무선張茂先(장화張華)은 ≪사기史記≫와 ≪한서漢書≫에 대해 논하였는데 흥미진진한 것이 들을 만하였고,注+왕은王隱의 ≪진서晉書≫에 말하였다. “장화張華무선茂先이고 범양范陽 사람이다. 여러 자리를 거쳐 사공司空에 이르렀다. 조왕趙王 사마륜司馬倫에게 해를 당했다.
진양추晉陽秋≫에 말하였다. “장화는 널리 보고 두루 들어서 사물의 이치에 통달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한번은 세조世祖(사마염司馬炎)가 나라의 일을 물어보다가 〈이야기가〉 의 많은 건물에 미치자, 장화가 바닥에 그림을 그리면서 물처럼 막힘없이 대답하였는데 도 그보다 나을 순 없었다.”
나와 왕안풍王安豐(왕융王戎)은 연릉延陵(계찰季札)과 자방子房(장량張良)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이 또한 말이 진실하여 허황되지 않았습니다.”注+⑥ ≪진제공찬晉諸公贊≫에 말하였다. “왕이보王夷甫는 담론을 좋아하였는데 당시 사람들에게 으뜸으로 추앙되었다.”
장량張良장량張良
두주頭註
유신옹劉辰翁현저玄箸침착沈著(진실하여 허황되지 않음)과 뜻이 같다.
왕세무王世懋:옛 판본에는 원래 ‘’자로 되어 있는데, 참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역주
역주1 竹林七賢論 : 晉의 戴逵가 지었고 2권이었는데 지금은 일부만 남아 있다. 魏晉 시대 죽림 아래 거칠 것 없이 술을 마시던 阮籍․嵇康․山濤․向秀․劉伶․阮咸․王戎 등의 竹林七賢에 대한 기록이다.
역주2 禊祭祀 : 액운을 떨어버리기 위하여 물가에서 지내는 제사로, 1년에 두 번 음력 3월 삼짇날과 7월 14일에 지냈다.
역주3 晉惠帝起居注 : 2권이다. ≪隋書≫ 〈經籍志〉에는 저자가 나와 있지 않는데 姚振宗의 ≪隋書經籍志考證≫에서는 陸機가 지었다고 하고 여러 輯本에서도 육기가 지었다고 하였다. 起居注란 史官이 천자의 곁에서 매일의 언행을 시간에 따라 기록한 역사 기록이다.
역주4 建章宮 : 漢 武帝가 長安城 외곽에 지은 궁전이다.
역주5 張安世 : 西漢 武帝에서 宣帝 때까지 重臣으로, 어릴 때부터 한번 보면 기억할 정도로 기억력이 비상하였다. 行幸 중의 무제가 소중히 여기는 책 세 상자를 분실했는데, 장안세가 그 책의 내용을 전부 외워 썼고 나중에 책을 찾은 뒤 비교해보니 일치하였다.(≪說郛≫, ≪緯略≫)
역주6 箸(착) : 安永本, ≪世說講義≫ 등에는 ‘著’으로 되어 있다.
역주7 뒤에는……따른다 : ‘箸’으로 잘못 쓰인 것을 ‘著’으로 고친다는 말이다.

세설신어보(1) 책은 2023.12.1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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