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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說新語補(1)

세설신어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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元凶 簒立注+① 宋書曰 “元凶劭, 字休遠, 文帝長子也. 與始興王濬同謀弑逆, 世祖入討, 劭伏誅.”하고 以顔延之 為光禄大夫注+② 沈約宋書曰 “顔延之, 字延年, 瑯琊人, 晉光祿大夫含之曾孫. 好讀書, 無所不覽, 文章之美, 冠絶當時. 吳國內史劉柳以爲行軍參軍. 後爲秘書監.” 先是 延之子竣 為世祖參軍이러니 及義師入討 參定密謀하고 兼造書檄이라 召延之하여 示以檄文하고 問曰
此筆 誰所造오하니
延之曰
竣之筆也라하다
何以知之오하니
延之曰
竣筆體 臣不容不識이라하다
又問
言辭 何至乃爾오하니
延之曰
尚不顧有老父하니 何縁復有陛下리오하니
劭意 遂釋注+③ 姓氏英賢錄曰 “顔竣, 字士遜, 延之長子也. 少有令譽, 爲宋孝武撫軍主簿, 甚被知遇, 竣盡心補益. 孝武鎭潯陽, 遷南中郞記室. 及文帝崩問至, 孝武擧兵入討, 轉諮議參軍․領軍錄事.”이라
【頭註】
“此延之所以能友陶淵明也.”


5-5【원흉元凶(유소劉劭)이 찬립簒立하고서注+① ≪송서宋書≫ 〈유소전劉劭傳〉에 말하였다 “원흉元凶 유소는 휴원休遠이고 문제文帝장자長子이다. 시흥왕始興王 유준劉濬과 같이 시역弑逆을 도모하였는데, 세조世祖가 들어가 토벌하였고, 유소는 〈이에〉 복주伏誅되었다.” 안연지顔延之광록대부光禄大夫로 삼았다.注+심약沈約의 ≪송서宋書≫ 〈안연지전顔延之傳〉에 말하였다. “안연지顔延之연년延年이고 낭야瑯琊 사람으로 나라 광록대부光祿大夫 안함顔含증손曾孫이다. 독서讀書를 좋아하여 보지 않은 것이 없었으며, 문장文章의 아름다움은 당시의 으뜸이었다. 오국내사吳國內史 유류劉柳행군참군行軍參軍으로 삼았고, 나중에 비서감秘書監이 되었다.” 이에 앞서 안연지의 아들 안준顔竣 세조世祖(효무제孝武帝)의 참군參軍이었는데, 〈세조의〉 의군義軍이 〈도성으로〉 들어와 반군을 토벌할 때에 안준은 은밀한 모의에 참여하고 아울러 격문도 지었다. 유소가 안연지를 불러 격문을 보여주며 물었다.
“이 글은 누가 지었는가?”
안연지가 대답했다
“안준의 글입니다.”
유소가 물었다.
“어떻게 그것을 아는가?”
안연지가 말했다.
“안준의 필체(문체)를 신이 어떻게 모를 수 있겠습니까.”
또 물었다.
“〈격문의〉 언사言辭가 어찌하여 이렇게까지 심한가?”
안연지가 말했다.
“안준은 늙은 아비가 있는 것도 돌아보지 않는데, 어찌 폐하를 염두에 두겠습니까.”
유소의 〈안연지에 대한 의심이〉 드디어 풀렸다.注+에 말하였다. “안준顔竣사손士遜으로 안연지顔延之장자長子이다. 어려서부터 명성이 알려졌다. 효무제孝武帝(유준劉駿)의 무군주부撫軍主簿가 되어서는 크게 인정받았고 안준은 마음을 다해 보필하였다. 효무제가 심양潯陽진수鎭守하자 남중랑기실南中郞記室로 자리를 옮겼다. 문제文帝가 붕어하였다는 부고가 이르자 효무제가 거병하여 도성으로 들어가 토벌하였고, 〈안준은〉 자의참군諮議參軍영군록사領軍錄事에 올랐다.”
두주頭註
이지李贄:이런 점이 안연지顔延之도연명陶淵明과 벗할 수 있었던 이유이다.


역주
역주1 姓氏英賢錄 : ≪隋書≫ 〈經籍志〉에 ≪姓氏英賢譜≫ 100권을 賈執이 지었다고 하였고, ≪漢魏六朝百三家集≫에 가집을 탄핵하는 내용의 〈彈賈執傅湛文〉이 있는데 작자는 南朝 梁나라 문학가인 劉孝儀이다. ≪姓氏英賢錄≫과 ≪姓氏英賢譜≫에 등장하는 인물과 시대 등을 고려할 때 두 책은 같은 책이고 작자는 가집인 듯하다.
역주2 [李云] : 저본에는 ‘李云’이 없으나, ≪初潭集≫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세설신어보(1) 책은 2023.12.1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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