王文度가 爲桓公長史時에 桓이 爲兒求王女하니 王이 許咨藍田이라 旣還에 藍田이 愛念文度하여 雖長大라도 猶抱著膝上할새 文度가 因言桓求己女婚하니 藍田大怒하여 排文度下膝하고 曰
惡見文度已復癡아 畏桓溫面가 兵이니 那可嫁女與之아하다
後
에 桓女
는 遂嫁文度兒
注+① 王氏譜曰 “坦之子愷, 娶桓溫第二女, 字伯子.” 中興書曰 “愷, 字茂仁, 歷吳國內史․丹陽尹, 贈太常.”하다
注
王云 “舊以面兵爲句, 而不可解, 今始曉, 所以言文度癡兒, 畏桓溫面孔, 渠, 兵也, 那可嫁女與兵?”
11-28
가
환공桓公(
환온桓溫)의
장사長史가 되었을 때, 환공이 〈자신의〉 아들을 위해 왕문도의 딸을 〈며느리로〉 청하니, 왕문도가 〈부친인〉
왕람전王藍田(
왕술王述)에게 여쭈어보겠다고 하였다. 〈왕문도가 집에〉 돌아온 뒤에, 왕남전은 왕문도를 매우 사랑했기 때문에 비록 〈왕문도가〉 장성했으나 여전히 끌어안아 무릎 위에 앉혔다. 왕문도가 그 기회를 틈타 환공이 자신의 딸을 〈며느리로〉 청해 〈환공의 아들과〉 혼인시키기를 청했다고 말하니, 왕남전이 크게 화를 내면서 왕문도를 밀쳐 무릎에서 내려가게 하고 말하였다.
“
문도가 이렇게 멍청할 줄 알았겠는가.
어찌 딸을 시집보내 그에게 줄 수 있겠느냐.”
“하관下官(저)의 집에서는 이미 혼처를 얻었습니다.”
“나는 알겠소. 이것은 그대의 부친이 내켜하지 않을 뿐이겠지.”
이후에 환공의 딸은 결국 왕문도의 아들에게 시집갔다.
注+① ≪왕씨보王氏譜≫에 말하였다. “왕탄지王坦之의 아들 왕개王愷는 환온桓溫의 둘째 딸에게 장가들었는데, 그녀의 자字는 백자伯子이다.”
하법성何法盛의 ≪진중흥서晉中興書≫에 말하였다. “왕개는 자字가 무인茂仁으로, 오국내사吳國內史와 단양윤丹陽尹을 역임하였고, 〈세상을 떠난 뒤에〉 태상太常에 추증되었다.”
注
◦ 왕세무王世懋:〈원문의 외환온면병畏桓溫面兵 나가가녀여지那可嫁女與之〉에 대해 예전에는 ‘면병面兵’으로 구두를 떼어 이해할 수 없다가 지금에야 깨달았으니, “문도文度는 어리석은 아이라서 환온의 면공面孔(얼굴과 생김새)을 두려워했다. 그(환온)는 군인이니, 어찌 딸을 시집보내 그에게 줄 수 있겠느냐.”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