王曇首
注+① 李延壽南史曰 “王曇首, 太保弘之弟. 幼有素尙, 兄弟分財, 曇首唯取圖書而已. 辟瑯琊王大司馬屬.”는 年十四五
에 便歌
라 諸妓
가 向謝公
注+② 靈運.稱歎
하니 公
이 甚欲聞之
나 而王
이 名家年少
일새 無由得聞
하고 諸妓
가 又向王說謝公意
라
謝가 後에 出東府土山上하여 作伎할새 王이 時作兩丸髻하고 著袴褶하고 騎馬하여 往土山下의 庾家墓林中하여 作一曲歌라
于時에 秋月하니 王이 因擧頭하여 看北林하고 卒曲에 便去라 妓가 白謝公曰
26-10 【
보補】
왕담수王曇首는
注+① 의 ≪남사南史≫ 〈왕담수열전王曇首列傳〉에 말하였다. “왕담수王曇首는 태보太保 왕홍王弘의 아우이다. 어릴 때부터 소박하고 고상했는데, 형제들이 재산을 나눌 때 왕담수는 단지 책만 취했을 뿐이었다. 낭야왕瑯琊王인 대사마大司馬의 속관으로 초빙되었다.” 나이 14,5세에 노래를 잘 불렀다. 여러 기녀들이
사공謝公(
사영운謝靈運)에게
注+② 〈사공謝公〉은 사영운謝靈運이다. 〈그의 노래를〉 칭찬하자, 사공이 그 노래를 매우 듣고 싶었지만 왕담수가 명문가의 젊은이였기 때문에 들어볼 길이 없었다. 여러 기녀들이 또 왕담수에게 사공의 뜻을 말하였다.
사공이 이후에
에 있는
위로 가서 풍악을 울리면서 연회를 베풀었는데, 왕담수가 그때 쌍상투를 틀고 승마복 차림으로 말을 타고 토산 아래에 있는
유씨庾氏 집안의
묘림墓林 속으로 들어가 노래 한 곡조를 불렀다.
그때는 〈맑은〉 가을 달이 떠 있었는데, 왕담수가 이로 인해 머리를 들어 북쪽 숲을 바라보고 노래를 마친 뒤에 곧장 떠났다. 기녀들이 사공에게 아뢰었다.
“이것이 바로 왕랑王郎(왕담수)의 노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