齊許由
注+① 晉百官名曰 “孫潛, 字齊由, 太原人.” 中興書曰 “潛, 盛長子也. 豫章太守殷仲堪, 下討王國寳, 潛時在郡, 逼爲咨議參軍, 固辭不就, 遂以憂卒.”라
庾公
이 大喜小兒對
注+② 孫放别傳曰 “放, 字齊莊, 監君次子也. 年八歲, 太尉庾公召見之, 放清秀. 欲觀試, 乃授紙筆令書, 放便自疏名字. 公題後問之曰‘爲欲慕莊周邪?’ 放書答曰‘意欲慕之.’ 公曰‘何故不慕仲尼, 而慕莊周?’ 放曰‘仲尼生而知之, 非希企所及, 至於莊周, 是其次者, 故慕耳.’ 公謂賓客曰‘王輔嗣應答, 恐不能勝之.’ 卒長沙王相.”라
22-18 손제유孫齊由(손잠孫潛)와 손제장孫齊莊(손방孫放) 두 사람이 어렸을 때 유공庾公(유량庾亮)에게 갔는데, 유공이 제유에게 물었다.
“
자字가 무엇이냐?”
허유許由
“
와 같이 되고 싶습니다.”
注+① ≪진백관명晉百官名≫에 말하였다. “손잠孫潛은 자字가 제유齊由이고, 태원太原 사람이다.”
≪중흥서中興書≫에 말하였다. “손잠은 손성孫盛의 큰아들이다. 예장태수豫章太守 은중감殷仲堪이 왕국보王國寳를 토벌하러 내려갔을 때, 손잠은 당시 군郡에 있다가 억지로 자의참군咨議參軍에 임명되었으나 극력 사양하고 취임하지 않다가 결국 근심으로 인해 죽었다.”
재장齊莊에게 자가 무엇인지 묻자, 제장이 대답하였다.
유공이 말하였다.
공자孔子
“어찌 중니仲尼(공자孔子)를 본받지 않고 장주莊周를 본받으려 하느냐?”
“성인께서는 나면서부터 〈만물의 이치를〉 아시는 분이기 때문에 같아지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유공이 아이들의 대답에 크게 기뻐하였다.
注+② 〈손방별전孫放别傳〉에 말하였다. “손방孫放은 자字가 재장齊莊이고, 의 둘째 아들이다. 8살 때 태위太尉 유공庾公(유량庾亮)이 손방을 불러 만나보니 성품이 맑고 재주가 뛰어났다. 시험을 해보려고 마침내 종이와 붓을 주어 쓰게 하니 손방이 대번에 자신의 이름과 자字를 썼다. 유공이 글씨를 써준 뒤 그에게 “장주莊周를 본받으려 하느냐?”라고 묻자, 손방이 글로 써서 “그분을 본받으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라고 답하였다. 유공이 “무엇 때문에 중니仲尼(공자孔子)를 본받지 않고 장주를 본받으려 하느냐?”라고 묻자, 손방이 “중니께서는 나면서부터 아는 분이니 그분에게 미치기를 바라지 못하지만, 장주의 경우는 그 아래에 해당하는 분이기 때문에 본받으려한 것일 뿐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유공이 빈객들에게 “의 대답도 이 아이의 대답보다 나을 수는 없을 듯합니다.”라고 말하였다. 〈손방은〉 의 재상宰相으로 있다가 죽었다.왕필王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