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瞻
은 才學
과 風流
가 爲後來之秀
注+① 北史曰 “瞻, 字彥通, 㥄之子也. 潔白善容止, 祌彩嶷然, 言不妄發, 才學風流, 後來之秀. 魏孝靜嘗人日登雲龍門, 㥄․瞻皆侍宴, 有應詔詩, 帝問邢卲曰 ‘贍詩, 何如其父?’ 卲曰 ‘㥄博雅弘麗, 贍氣調淸新, 竝詩人之冠.’ 讌罷, 共嗟賞之, 咸曰 ‘今日之讌, 幷爲崔瞻父子.’”라 侍中李神儁
은 晚年無子
니 語邢劭曰
昨見崔㥄兒하니 便爲後生第一이라 我遂無此物이니 使人傷懷라하다
26-13 【
보補】
최첨崔瞻은 재능과 학문과 풍류가 후생 가운데 으뜸이었다.
注+① ≪북사北史≫ 〈최첨열전崔瞻列傳〉에 말하였다. “최첨崔瞻은 자字가 언통彥通으로, 최릉崔㥄의 아들이다. 〈성품이〉 고결하고 행동거지가 훌륭하며, 풍채가 단아하고 함부로 말하지 않으며, 재능과 학문과 풍류가 후생 가운데 으뜸이었다. 〈북조北朝〉 동위東魏 효정제孝靜帝(원선견元善見)가 한번은 에 운룡문雲龍門에 올랐는데, 최릉과 최첨이 모두 연회에서 모셨다. 응제시를 시었는데, 효정제가 형소邢卲에게 ‘최첨의 시는 그의 부친과 비교하면 어떠한가?’라고 물으니, 형소가 ‘최릉은 내용이 풍부하면서 장중하고 표현이 우아하면서 화려하며, 최첨은 기운이 맑고 새로우니, 모두 시인 가운데 으뜸입니다.’라고 하였다. 연회가 끝나자, 함께 〈그들의 시에〉 감탄하면서 모두 ‘오늘의 연회는 모두 최첨 부자를 위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시중侍中 이신준李神儁은 만년에도 아들이 없었는데,
형소邢劭에게 말하였다.
“어제
의 아들(최첨)을 보았는데, 정말 후생 가운데 제일이었소. 나는 결국 이런 아들을 두지 못할 것이니,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