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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說新語補(2)

세설신어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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有往來者云
庾公有東下意라하니
或謂王公하되
可潛稍嚴하여 以備不虞니이다하다
王公曰
我與元規 雖俱王臣이나 本懷布衣之好 若其欲來 角巾으로 徑還烏衣注+① 丹陽記曰 “烏衣之起, 吳時烏衣營處所也. 江左初立, 瑯琊諸王所居.” 何所稍嚴注+② 中興書曰 “於是風塵自消, 內外緝穆.” 丞相非高也, 正著數也.가하다


12-16 〈형주荊州건강建康을〉 왕래하는 이 말하였다.
어떤 이가 왕공王公(왕도王導)에게 말하였다.
“조금이나마 은밀하게 〈방비를〉 엄중히 하여 불의의 상황에 대비해야 합니다.”
왕공이 말하였다.
“나와 원규元規(유량)는 비록 대왕의 신하이지만, 본래 신분을 초월한 친분을 품고 있소. 만약 그가 침공해 오고자 한다면 나는 을 쓰고 곧장 로 돌아갈 것이니,注+에 말하였다. “오의烏衣의 기원은 (삼국三國)나라 때의 오의영烏衣營이 위치했던 곳인데, 강좌江左(동진東晉)가 처음 성립되었을 때 낭야군瑯琊郡 출신의 왕씨들이 거주하던 곳이다.” 어찌 조금 더 〈방비를〉 엄중히 하겠소?”注+하법성何法盛의 ≪진중흥서晉中興書≫에 말하였다. “이에 전란이 저절로 멈추고 안팎이 화목하게 되었다.”
승상丞相(왕도王導)이 고상한 것이 아니라 정작 술수를 부린 것이다.


역주
역주1 어떤 사람 : 南蠻校尉 陶稱을 이른다.(≪晉書≫ 〈王導傳〉)
역주2 庾公(庾亮)이……있다 : 유량이 蘇峻의 반란을 진압할 임무를 띠고 도성인 建康을 떠나 安徽省 蕪湖에 주둔한 후로 그가 반란을 일으킬 것이라는 소문이 있었다.
역주3 角巾 : 네모진 형태의 두건으로, 處士나 隱者가 착용하였다.
역주4 烏衣巷 : 南京市 秦淮河 남쪽에 있는 지명으로, 三國시대 吳나라가 이곳에 烏衣營을 설치했는데, 사병들이 烏衣(검은색 옷)를 입었기 때문에 이렇게 불렀다.
역주5 山謙之의 ≪丹陽記≫ : 산겸지(?~454?)는 南朝 宋 文帝 元嘉 연간(424~453)의 사학가로, 學士와 奉朝請이 되었다. 著作郞 何承天의 위임을 부탁으로 ≪宋書≫를 함께 편찬하였다. 저서로 ≪단양기≫․≪南徐州記≫․≪吳興記≫․≪尋陽記≫ 등이 있다. ≪단양기≫는 南朝시대 지리지로, 가장 이른 시기의 南京을 파악할 수 있는 지리지이다. 단양은 당시의 단양군으로, 劉宋시대의 단양군은 9개 현을 관할했는데, 대부분 남경 지역에 속한다.

세설신어보(2) 책은 2023.12.1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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